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사이언스 고즈 온 = Science goes on : 바이러스와 싸우는 엄마 과학자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10429
가격
₩ 16,500
ISBN
9791159923302
페이지
273 p.
판형
130 X 213 mm
커버
Book
책 소개
바이러스-백신을 연구하는 미생물학자 문성실의 과학에세이. 순수 국내파 과학자로 한국에서 온갖 어려움을 뚫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으로 건너 가 백신을 연구하고 있는 이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롤모델보다 레퍼런스’가 되고 싶다는 문성실은 특유의 긍정성과 도전 정신으로 우리에게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연구 분야,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팬데믹에 대한 논평뿐 아니라 대학원 내의 복잡한 인간관계, 영어의 어려움, 이민자로서의 고충, 결혼생활과 육아에서 오는 고통과 환희 등 자신의 삶을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성으로 무장함과 동시에 감정에 파문을 일으키는, 글쓰는 여성 과학자의 출현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다.
연구 분야,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팬데믹에 대한 논평뿐 아니라 대학원 내의 복잡한 인간관계, 영어의 어려움, 이민자로서의 고충, 결혼생활과 육아에서 오는 고통과 환희 등 자신의 삶을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성으로 무장함과 동시에 감정에 파문을 일으키는, 글쓰는 여성 과학자의 출현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_과학하는 시간
바이러스-백신을 연구합니다
우리는 준비되지 않았다 / 낙인 / 신의 가호를… / 평범한 과학자 / 과학의 시간 / 죽음의 계곡 / 과학에 투자하는 법 / 백신에 대하여
한국 토박이 과학도_내 청춘의 실험실
라일락 그리고 기억 / 과학상자 / 독한 년 / 나의 첫 실험실 / 몰래 하는 영어 공부 / 신의 손 / 쥐잡이 인생 / 꼰대 선배 / 냄새나는 실험실 / 중증호흡기 증후군 / 내 인생의 친구 그리고 남 / 지난주에 면허 땄어요
외국인 과학자
샤이 걸 / 언니들을 만나다 / 가면 증후군 / 50년 근속 아저씨 / 내 친구 조 박사 / 우리의 흔적 / 산업재해 / 존경하는 닥터 G / 86년생 포닥이 들어오다 / 넓고 젊은 아프리카 땅
엄마 과학자
여자 박사의 결혼 / 엄마 되기 / 첫 번째 미션_모유 수유 / 또 다른 가족여행 / 엄마랑 학회 가자 / 한국과 미국 그 사이 어디쯤 / 엄마는 어떻게 좋은 엄마 되는 법을 배웠어? / 우리 엄마 과학자거든!
여성 과학자
그럼, 빨리 크세요! / 사라지는 언니들 / 레퍼런스 / 페미니스트가 되다 / 투 바디 프라블럼 / 다양성, 우리 모두의 문제 / 꽃무늬 마스크 / 젠더 평등은 얼마나 걸릴까? / 마흔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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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백신을 연구합니다
우리는 준비되지 않았다 / 낙인 / 신의 가호를… / 평범한 과학자 / 과학의 시간 / 죽음의 계곡 / 과학에 투자하는 법 / 백신에 대하여
한국 토박이 과학도_내 청춘의 실험실
라일락 그리고 기억 / 과학상자 / 독한 년 / 나의 첫 실험실 / 몰래 하는 영어 공부 / 신의 손 / 쥐잡이 인생 / 꼰대 선배 / 냄새나는 실험실 / 중증호흡기 증후군 / 내 인생의 친구 그리고 남 / 지난주에 면허 땄어요
외국인 과학자
샤이 걸 / 언니들을 만나다 / 가면 증후군 / 50년 근속 아저씨 / 내 친구 조 박사 / 우리의 흔적 / 산업재해 / 존경하는 닥터 G / 86년생 포닥이 들어오다 / 넓고 젊은 아프리카 땅
엄마 과학자
여자 박사의 결혼 / 엄마 되기 / 첫 번째 미션_모유 수유 / 또 다른 가족여행 / 엄마랑 학회 가자 / 한국과 미국 그 사이 어디쯤 / 엄마는 어떻게 좋은 엄마 되는 법을 배웠어? / 우리 엄마 과학자거든!
여성 과학자
그럼, 빨리 크세요! / 사라지는 언니들 / 레퍼런스 / 페미니스트가 되다 / 투 바디 프라블럼 / 다양성, 우리 모두의 문제 / 꽃무늬 마스크 / 젠더 평등은 얼마나 걸릴까? / 마흔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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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발췌
어슴푸레 새벽이 밝아오는 시간을 좋아한다. 대여섯 개나 되는 알람을 연달아 꺼가며 겨우 일어나 맞이하는 새벽은 작지만 소중한 만족감을 안겨준다.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서 가장 먼저 출근한 자의 특권인 커피를 내리고 밤새도록 전화기 진동을 울려댔던 이메일들을 확인하고 스케줄표를 보며 오늘 해야 할 실험을 손바닥만 한 수첩에 적는다. 웬만한 실험과정들은 따로 프로토콜을 보거나 메모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농도나 용량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어 꼼꼼히 계산을 하고 숫자를 적어 넣는다. 조용히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 나는 과학을 하는 시간과 공간을 사랑한다.
_들어가는 말, 7쪽
지난 3월, 나는 두 번째 코로나 백신 접종을 마쳤다. 코로나로 일주일에 두세 번 출근하던 일정을 거의 매일로 늘렸고, 새로운 연구 계획도 세웠다. 여행제한이 해제되면 기술 이전을 위한 출장과 작년에 취소된 학회에도 참가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내 팔에 찌른 두 번의 mRNA 백신으로 인해 이제 서서히 내가 사랑하는 일상으로 달려갈 채비를 하고 있다.
이 책의 반 이상은 코로나19와 함께 썼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내가 경험한 코로나의 시간은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나의 눈으로 멈추어버린 모든 것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_들어가는 말, 8쪽
아침 8시부터 동물실에 들어갔다. 전신 방호복을 입고 덧신을 신고 머리에는 헤어캡을 쓰고 안경 위에 고글을 덧쓰고 N95 마스크와 페이스 실드까지 쓰고 장갑은 두 겹을 낀다. 동물실의 온도와 습도는 실험을 하는 사람에 맞춰지지 않는다. 그곳을 집 삼아 살고 있는 동물들에게 가장 최적한 온도와 습도로 설정이 되어 있다. 설치류들은 40~60퍼센트의 습한 환경을 좋아한다. 60퍼센트 습도가 유지되는 꽉 막힌 동물실에서는 5분만 지나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고글 사이로 줄줄 비가 내린다. 꼬박 세 시간을 서서 일하고 이른 점심을 먹고 다시 들어가 3시가 넘어서야 나온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이런 시간이 반복된다. 우리가 개발 중인 백신이 보관 상태와 기간에 따라 면역 효과가 잘 유지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실험쥐에 백신을 접종시키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2년까지도 확인해야 하는 실험이다.
_〈과학의 시간〉, 38쪽
몇 번째 봄부터 라일락 향을 맡을 수 없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늘 톡 쏘듯이 느껴지던 아세트산의 냄새가 무뎌졌던, 특유의 독한 냄새를 풍기던 시약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던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흔히 냄새를 잘 못 맡는다고 하면 신경계통의 이상을 의심한다. 인터넷만 뒤져봐도 후각의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알츠하이머, 당뇨병, 고혈압, 파킨슨병 같은 질환을 의심하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라고 권한다. 박사학위 논문 준비를 앞두곤 신경계 질환보다, 실험실 환경과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생기는 현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곧 괜찮아지겠지. 한 달 정도 지나면, 아니 세 달 정도 지나면 후각이 다시 돌아오겠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무뎌진 후각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후각과 학위를 맞바꾸곤 나는 내 청춘의 실험실을 떠났다.
_〈라일락 그리고 기억〉, 62-63쪽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실험 기법을 익혀야 한다. 처음엔 세포를 키우는 법, 두 번째는 플라스크 안에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법, 세 번째는 세포 안에 바이러스가 잘 자라고 있는지를 형광물질을 붙여서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법, 그리고 가장 고난도의 실험인 바이러스 용액에 얼마나 많은 바이러스가 있는지 측정하는 플라크 어세이plaque assay가 있다. 플라크plaque는 바이러스 하나가 만들어내는 세포 파괴 영역을 말한다. 즉, 플라크 1개는 바이러스 1개로 정의하고 일정 바이러스 용액을 희석해 세포에 감염시켰을 경우 나타나는 플라크 숫자를 세어서 거꾸로 바이러스 양을 정량한다. 이 마지막 고난도의 실험을 가르치면서 L 선배는 이야기했다.
“이거 한 번에 성공하는 사람은 신의 손이야.”
_〈신의 손〉, 86쪽
닥터 B,
미국 바이러스학회 홈페이지의 공고를 보고 포닥에 지원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제가 아직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습니다. 논문이 게재 승인 나게 된다면 내년 2월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해보고 싶은 연구는 백신 개발에 앞서서 비슷한 질환을 일으키는 다양한 바이러스들 간의 간섭현상에 대한 것입니다. 저의 실험 기술과 발표자료를 담은 이력서를 첨부합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_〈지난주에 면허 땄어요〉, 120쪽
하루는 행정을 맡고 있는 비서가 심각하게 나를 불렀다.
“너, 일 많이 한다고 월급 더 안 줘. 그거 알고 있는 거지?”
하루 종일 실험실에 있다 보면 아침에 ‘헬로우’ 한 마디만 하고 집에 갈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샤이 걸shy girl’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 말수도 없고, 온종일 실험실에만 처박혀 있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무시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_〈샤이 걸〉, 129쪽
언제까지 피펫팅을 할 수 있을까? 실험 과학자로 늙어서 허리가 꼬부라지고, 흰머리가 나도 피펫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은 점점 빛을 잃어간다. 10년 후면 나도 수술을 해야 할까? 아니면 실험을 하지 않는 다른 직책으로 옮겨야 할까? 멋있게 실험실을 지키고 싶다는 꿈이 바래져가는 만큼 이제는 종종 기계에 일을 맡긴다. 기계보다 3배 빠른 내 손의 속도가 오히려 실험 과학자로서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_〈산업재해〉, 159쪽
86년생 포닥뿐만 아닌 다른 포닥이 왔을 때를 생각해보면 나와의 세대 차이도 분명히 있었다. 최신 기술은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따라가지만 뭐랄까? 학교를 떠나 처음으로 만나는 사회라는 공간에서 2~3년의 정해진 시간 동안 자신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통통 튀는 그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움과 또 한편으로는 질투심이 일었다.
‘나도 저랬을까?’ 생각해보면… 어쩌면 나는 더했을지 모른다. 앳돼 보이는 동양 여자가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도 인정받기 위해서 내가 아는 것을 전부 쏟아냈을 테니 말이다.
세대를 이해하는 건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나의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자 나의 미래를 예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야 세대 차가 나는 이들에게 어떤 것을 맡기고 어떤 부분을 자유롭게 놔줘야 하는지 좀 보이는 것 같다.
_〈86년생 포닥이 들어오다〉, 169쪽
인터넷을 뒤져서 저녁마다 아이 둘을 부엌 아일랜드로 불러댔다. 각양각색의 초콜릿으로 확산 실험을 하면 ‘와! 멋있다!’라는 말을 외치곤 손가락을 담가 이쁘게 확산되던 색깔들을 똥색으로 만들어 버렸다. 베이킹 소다와 식초로 화산을 만들고 콜라와 멘토스로 뒷마당에서 2리터짜리 대형 콜라 로켓을 쏘아 올리고, 어릴 적 만들던 고무 동력기를 다시 만들어 아이들과 뒷마당에서 누가 오래 날리나 시합도 했다. 액체 괴물을 만드는 실험을 하면 부엌 바닥과 카펫에 온통 흘려서 준비하고 노는 시간보다 치우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고, 더 갖고 놀고 싶다는 걸 어지를까 봐 몰래 숨겨놓기도 했지만 아이들과의 과학놀이는 계속됐다.
_〈우리 엄마 과학자거든!〉, 213쪽
‘레퍼런스.’ 나는 이 단어가 맘에 든다.
사실 실험실의 사수는 후배들의 롤모델이 될 수 없다. 당장 자신의 앞길도 정해지지 않은 채, 실험을 좀 더 많이 해봤고, 논문을 좀 더 많이 출판했고, 학회를 더 참가했다고 해서 후배들의 반짝이는 별이 될 수는 없다. 대학원에 들어간 지 19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내 앞의 사수도 내 뒤의 후배도 그 어느 누구 하나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은 없다. 생명과학을 전공한 수많은 사람들이 걷는 정형화된 코스를 걷더라도 사람마다 걷는 길의 깊이와 넓이는 다 다르다. 그저 후배들의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 중에 ‘기억할 만한 레퍼런스’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 아닐까?
_〈레퍼런스〉, 234쪽
나이 마흔에 주책없이 꿈을 또 꿔본다. 젊다고 생각하는 시기인 30대를 지났고, 기성 세대에겐 아직 철이 없어 보이는 딱 중간에 낀 세대가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앞에 있고, 희망에 찬 무모한 도전보단 될성부른 준비된 도전을 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추억을 디딤돌 삼아 설레는 미래를 준비해봄 직한 나이가 되었다. 비록 유방 조영술을 하듯 조심스레 한발 한발 두들겨보며 나아가야 하는 길이지만, 좀 더디 걷는 길일지라도 꿈이라도 즐겁게 꾸어보련다.
_〈마흔의 꿈〉, 263쪽
_들어가는 말, 7쪽
지난 3월, 나는 두 번째 코로나 백신 접종을 마쳤다. 코로나로 일주일에 두세 번 출근하던 일정을 거의 매일로 늘렸고, 새로운 연구 계획도 세웠다. 여행제한이 해제되면 기술 이전을 위한 출장과 작년에 취소된 학회에도 참가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내 팔에 찌른 두 번의 mRNA 백신으로 인해 이제 서서히 내가 사랑하는 일상으로 달려갈 채비를 하고 있다.
이 책의 반 이상은 코로나19와 함께 썼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내가 경험한 코로나의 시간은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나의 눈으로 멈추어버린 모든 것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_들어가는 말, 8쪽
아침 8시부터 동물실에 들어갔다. 전신 방호복을 입고 덧신을 신고 머리에는 헤어캡을 쓰고 안경 위에 고글을 덧쓰고 N95 마스크와 페이스 실드까지 쓰고 장갑은 두 겹을 낀다. 동물실의 온도와 습도는 실험을 하는 사람에 맞춰지지 않는다. 그곳을 집 삼아 살고 있는 동물들에게 가장 최적한 온도와 습도로 설정이 되어 있다. 설치류들은 40~60퍼센트의 습한 환경을 좋아한다. 60퍼센트 습도가 유지되는 꽉 막힌 동물실에서는 5분만 지나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고글 사이로 줄줄 비가 내린다. 꼬박 세 시간을 서서 일하고 이른 점심을 먹고 다시 들어가 3시가 넘어서야 나온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이런 시간이 반복된다. 우리가 개발 중인 백신이 보관 상태와 기간에 따라 면역 효과가 잘 유지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실험쥐에 백신을 접종시키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2년까지도 확인해야 하는 실험이다.
_〈과학의 시간〉, 38쪽
몇 번째 봄부터 라일락 향을 맡을 수 없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늘 톡 쏘듯이 느껴지던 아세트산의 냄새가 무뎌졌던, 특유의 독한 냄새를 풍기던 시약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던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흔히 냄새를 잘 못 맡는다고 하면 신경계통의 이상을 의심한다. 인터넷만 뒤져봐도 후각의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알츠하이머, 당뇨병, 고혈압, 파킨슨병 같은 질환을 의심하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라고 권한다. 박사학위 논문 준비를 앞두곤 신경계 질환보다, 실험실 환경과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생기는 현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곧 괜찮아지겠지. 한 달 정도 지나면, 아니 세 달 정도 지나면 후각이 다시 돌아오겠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무뎌진 후각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후각과 학위를 맞바꾸곤 나는 내 청춘의 실험실을 떠났다.
_〈라일락 그리고 기억〉, 62-63쪽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실험 기법을 익혀야 한다. 처음엔 세포를 키우는 법, 두 번째는 플라스크 안에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법, 세 번째는 세포 안에 바이러스가 잘 자라고 있는지를 형광물질을 붙여서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법, 그리고 가장 고난도의 실험인 바이러스 용액에 얼마나 많은 바이러스가 있는지 측정하는 플라크 어세이plaque assay가 있다. 플라크plaque는 바이러스 하나가 만들어내는 세포 파괴 영역을 말한다. 즉, 플라크 1개는 바이러스 1개로 정의하고 일정 바이러스 용액을 희석해 세포에 감염시켰을 경우 나타나는 플라크 숫자를 세어서 거꾸로 바이러스 양을 정량한다. 이 마지막 고난도의 실험을 가르치면서 L 선배는 이야기했다.
“이거 한 번에 성공하는 사람은 신의 손이야.”
_〈신의 손〉, 86쪽
닥터 B,
미국 바이러스학회 홈페이지의 공고를 보고 포닥에 지원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제가 아직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습니다. 논문이 게재 승인 나게 된다면 내년 2월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해보고 싶은 연구는 백신 개발에 앞서서 비슷한 질환을 일으키는 다양한 바이러스들 간의 간섭현상에 대한 것입니다. 저의 실험 기술과 발표자료를 담은 이력서를 첨부합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_〈지난주에 면허 땄어요〉, 120쪽
하루는 행정을 맡고 있는 비서가 심각하게 나를 불렀다.
“너, 일 많이 한다고 월급 더 안 줘. 그거 알고 있는 거지?”
하루 종일 실험실에 있다 보면 아침에 ‘헬로우’ 한 마디만 하고 집에 갈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샤이 걸shy girl’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 말수도 없고, 온종일 실험실에만 처박혀 있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무시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_〈샤이 걸〉, 129쪽
언제까지 피펫팅을 할 수 있을까? 실험 과학자로 늙어서 허리가 꼬부라지고, 흰머리가 나도 피펫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은 점점 빛을 잃어간다. 10년 후면 나도 수술을 해야 할까? 아니면 실험을 하지 않는 다른 직책으로 옮겨야 할까? 멋있게 실험실을 지키고 싶다는 꿈이 바래져가는 만큼 이제는 종종 기계에 일을 맡긴다. 기계보다 3배 빠른 내 손의 속도가 오히려 실험 과학자로서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_〈산업재해〉, 159쪽
86년생 포닥뿐만 아닌 다른 포닥이 왔을 때를 생각해보면 나와의 세대 차이도 분명히 있었다. 최신 기술은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따라가지만 뭐랄까? 학교를 떠나 처음으로 만나는 사회라는 공간에서 2~3년의 정해진 시간 동안 자신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통통 튀는 그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움과 또 한편으로는 질투심이 일었다.
‘나도 저랬을까?’ 생각해보면… 어쩌면 나는 더했을지 모른다. 앳돼 보이는 동양 여자가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도 인정받기 위해서 내가 아는 것을 전부 쏟아냈을 테니 말이다.
세대를 이해하는 건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나의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자 나의 미래를 예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야 세대 차가 나는 이들에게 어떤 것을 맡기고 어떤 부분을 자유롭게 놔줘야 하는지 좀 보이는 것 같다.
_〈86년생 포닥이 들어오다〉, 169쪽
인터넷을 뒤져서 저녁마다 아이 둘을 부엌 아일랜드로 불러댔다. 각양각색의 초콜릿으로 확산 실험을 하면 ‘와! 멋있다!’라는 말을 외치곤 손가락을 담가 이쁘게 확산되던 색깔들을 똥색으로 만들어 버렸다. 베이킹 소다와 식초로 화산을 만들고 콜라와 멘토스로 뒷마당에서 2리터짜리 대형 콜라 로켓을 쏘아 올리고, 어릴 적 만들던 고무 동력기를 다시 만들어 아이들과 뒷마당에서 누가 오래 날리나 시합도 했다. 액체 괴물을 만드는 실험을 하면 부엌 바닥과 카펫에 온통 흘려서 준비하고 노는 시간보다 치우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고, 더 갖고 놀고 싶다는 걸 어지를까 봐 몰래 숨겨놓기도 했지만 아이들과의 과학놀이는 계속됐다.
_〈우리 엄마 과학자거든!〉, 213쪽
‘레퍼런스.’ 나는 이 단어가 맘에 든다.
사실 실험실의 사수는 후배들의 롤모델이 될 수 없다. 당장 자신의 앞길도 정해지지 않은 채, 실험을 좀 더 많이 해봤고, 논문을 좀 더 많이 출판했고, 학회를 더 참가했다고 해서 후배들의 반짝이는 별이 될 수는 없다. 대학원에 들어간 지 19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내 앞의 사수도 내 뒤의 후배도 그 어느 누구 하나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은 없다. 생명과학을 전공한 수많은 사람들이 걷는 정형화된 코스를 걷더라도 사람마다 걷는 길의 깊이와 넓이는 다 다르다. 그저 후배들의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 중에 ‘기억할 만한 레퍼런스’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 아닐까?
_〈레퍼런스〉, 234쪽
나이 마흔에 주책없이 꿈을 또 꿔본다. 젊다고 생각하는 시기인 30대를 지났고, 기성 세대에겐 아직 철이 없어 보이는 딱 중간에 낀 세대가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앞에 있고, 희망에 찬 무모한 도전보단 될성부른 준비된 도전을 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추억을 디딤돌 삼아 설레는 미래를 준비해봄 직한 나이가 되었다. 비록 유방 조영술을 하듯 조심스레 한발 한발 두들겨보며 나아가야 하는 길이지만, 좀 더디 걷는 길일지라도 꿈이라도 즐겁게 꾸어보련다.
_〈마흔의 꿈〉, 263쪽
저자소개
미생물학 박사, 감염/면역학을 전공해 미국에서백신 연구를 하고 있다.
서평
“바이러스-백신을 연구합니다”
여성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하는 즐거움
바이러스-백신을 연구하는 문성실
과학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도전으로 가득한 삶
바이러스-백신을 연구하는 미생물학자 문성실의 과학에세이 [사이언스 고즈 온─바이러스와 싸우는 엄마 과학자]가 독자들을 찾는다. 순수 국내파 과학자로 한국에서 온갖 어려움을 뚫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으로 건너 가 백신을 연구하고 있는 이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롤모델보다 레퍼런스’가 되고 싶다는 문성실은 특유의 긍정성과 도전 정신으로 우리에게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도 관심 분야에 매진하면 최일선 연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함으로써 그 희망을 무던히 구체화하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할 것이다. 연구 분야,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팬데믹에 대한 논평뿐 아니라 대학원 내의 복잡한 인간관계, 영어의 어려움, 이민자로서의 고충, 결혼생활과 육아에서 오는 고통과 환희 등 자신의 삶을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성으로 무장함과 동시에 감정에 파문을 일으키는, 글쓰는 여성 과학자의 출현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다.
백신 연구자가 전하는 코로나19 최전선의 이야기
누구를 위해 과학을 할 것인가
바이러스 연구, 백신 개발 일선에 있는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적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과학자들의 오만함을 무너뜨렸다.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호기심 반, 가만있을 수는 없다는 사명감 반으로 쓰기 시작했던 글들은 지난 1년간 죽어가는 수많은 이들을 보며 느꼈던 자괴감을 떨쳐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비장한 사명감마저 느껴지는 서문에서 우리는 문성실의 직업의식을 엿볼 수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의 수많은 경험으로 얻은 지구력, 치열한 탐구정신을 바탕으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며 뚝심 있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모습은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뒤이어 문성실은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편견에 대해 말한다. 과학하는 길은 화려하지 않으며 과학은 신기술을 뚝딱 개발해내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고 과학자의 일은 수많은 실험을 통해 겨우 그래프에 점 하나 찍는 소소하고도 지난한 일들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과학을 계속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저자는 또한 코로나 시국에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의료진 외에도 진단 시약 생산 기업과 각종 실험실에서 검체 채취, 세포 배양 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는 연구자들의 노력 등도 조명하며 우리 모두가 팬데믹 극복을 위해 작지만 소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외국인, 엄마, 여성
세 가지 정체성으로 과학자를 말하다
문성실의 세 가지 정체성(외국인, 엄마, 여성)을 통해 우리는 과학자의 삶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다. 박사학위 취득 직후 넘어간 미국에서 저자가 겪은 차별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많은 아시아 이민자, 유학생의 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으며, 인종차별로 얼룩진 현 시국에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려는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육아의 고충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부분에서는 육아와 가사,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이렇듯 문성실은 과학자의 삶도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듯 사람 냄새 나는 일화들을 전할 뿐 아니라 여전히 젠더 평등으로 나아갈 길이 먼 현실을 개탄한다. 학계 내에서 여성에 대한 처우 개선, 출산과 육아에도 연구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책 마련을 촉구하는 글들을 통해 우리는 이성적이기만 할 것 같은 학계의 이면, 유리천장의 그림자를 살펴볼 수 있으며 이는 자연스레 사회 내 젠더 평등의 현주소를 떠올리게 한다.
알마의 사이언스 걸스 시리즈
[사이언스 고즈 온]은 알마 사이언스 걸스 시리즈로 , [랩걸], [로켓 걸스], [아토믹 걸스], [유리우주]에 이어 여성-과학-서사라는 키워드로 직조해낸 책이다. 알마는 과학 분야의 여성이 주체가 되며 그들이 자신의 연구와 삶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들을 지속적으로 펴내고 있다.
여성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하는 즐거움
바이러스-백신을 연구하는 문성실
과학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도전으로 가득한 삶
바이러스-백신을 연구하는 미생물학자 문성실의 과학에세이 [사이언스 고즈 온─바이러스와 싸우는 엄마 과학자]가 독자들을 찾는다. 순수 국내파 과학자로 한국에서 온갖 어려움을 뚫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으로 건너 가 백신을 연구하고 있는 이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롤모델보다 레퍼런스’가 되고 싶다는 문성실은 특유의 긍정성과 도전 정신으로 우리에게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도 관심 분야에 매진하면 최일선 연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함으로써 그 희망을 무던히 구체화하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할 것이다. 연구 분야,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팬데믹에 대한 논평뿐 아니라 대학원 내의 복잡한 인간관계, 영어의 어려움, 이민자로서의 고충, 결혼생활과 육아에서 오는 고통과 환희 등 자신의 삶을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성으로 무장함과 동시에 감정에 파문을 일으키는, 글쓰는 여성 과학자의 출현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다.
백신 연구자가 전하는 코로나19 최전선의 이야기
누구를 위해 과학을 할 것인가
바이러스 연구, 백신 개발 일선에 있는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적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과학자들의 오만함을 무너뜨렸다.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호기심 반, 가만있을 수는 없다는 사명감 반으로 쓰기 시작했던 글들은 지난 1년간 죽어가는 수많은 이들을 보며 느꼈던 자괴감을 떨쳐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비장한 사명감마저 느껴지는 서문에서 우리는 문성실의 직업의식을 엿볼 수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의 수많은 경험으로 얻은 지구력, 치열한 탐구정신을 바탕으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며 뚝심 있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모습은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뒤이어 문성실은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편견에 대해 말한다. 과학하는 길은 화려하지 않으며 과학은 신기술을 뚝딱 개발해내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고 과학자의 일은 수많은 실험을 통해 겨우 그래프에 점 하나 찍는 소소하고도 지난한 일들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과학을 계속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저자는 또한 코로나 시국에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의료진 외에도 진단 시약 생산 기업과 각종 실험실에서 검체 채취, 세포 배양 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는 연구자들의 노력 등도 조명하며 우리 모두가 팬데믹 극복을 위해 작지만 소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외국인, 엄마, 여성
세 가지 정체성으로 과학자를 말하다
문성실의 세 가지 정체성(외국인, 엄마, 여성)을 통해 우리는 과학자의 삶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다. 박사학위 취득 직후 넘어간 미국에서 저자가 겪은 차별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많은 아시아 이민자, 유학생의 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으며, 인종차별로 얼룩진 현 시국에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려는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육아의 고충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부분에서는 육아와 가사,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이렇듯 문성실은 과학자의 삶도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듯 사람 냄새 나는 일화들을 전할 뿐 아니라 여전히 젠더 평등으로 나아갈 길이 먼 현실을 개탄한다. 학계 내에서 여성에 대한 처우 개선, 출산과 육아에도 연구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책 마련을 촉구하는 글들을 통해 우리는 이성적이기만 할 것 같은 학계의 이면, 유리천장의 그림자를 살펴볼 수 있으며 이는 자연스레 사회 내 젠더 평등의 현주소를 떠올리게 한다.
알마의 사이언스 걸스 시리즈
[사이언스 고즈 온]은 알마 사이언스 걸스 시리즈로 , [랩걸], [로켓 걸스], [아토믹 걸스], [유리우주]에 이어 여성-과학-서사라는 키워드로 직조해낸 책이다. 알마는 과학 분야의 여성이 주체가 되며 그들이 자신의 연구와 삶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들을 지속적으로 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