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외딴방 : 신경숙 장편소설
총서명
문학동네 장편소설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010630
가격
₩ 14,500
ISBN
9788982812460
페이지
453 p.
판형
148 X 210 mm
판차
2판
커버
Book
책 소개
제11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자전적 장편소설.한 외로운 영혼의 진지한 행로를 따뜻하게 포용하고 있는 감동적인 노동소설이자뛰어난 성장소설.
목차
개정판 작가의 말
초판 작가의 말
1장
2장
3장
4장
해설·백낙청 <외딴방>이 묻는 것과 이룬 것
초판 작가의 말
1장
2장
3장
4장
해설·백낙청 <외딴방>이 묻는 것과 이룬 것
본문발췌
나는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으로선 도저히 가까이 가 볼 수 없는 삶이 언어 바깥에서 흐르고 있음을 절망스럽게 느끼곤 한다. 글을 쓸수록 문학이 옳은 것과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고통을 느낀다. 희망이 내 속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나 또한 희망에 대해 얘기할 수 있으면 나로서도 행복하겠다. 문학은 삶의 문제에 뿌리를 두게 되어 있고, 삶의 문제는 옳은 것과 희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옳지 않은 것과 불행에 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희망 없는 불행 속에 놓여 있어도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이질 않은가. 때로 이 인식이 나로 하여금 집도를 포기하게 한다. 결국 나는 하나의 점 대신 겹겹의 의미망을 선택한다. 할 수 있는껏 두껍게 다가가자고, 한겹한겹 풀어가며 그 속에서 무얼 보는가는 쓰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고, 그건 읽는 사람의 몫이라고, 열 사람이 읽으면 열 사람 모두를 각각 다른 상념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게 좋겠다고, 그만큼 삶은 다양한 거 아니냐고, 문학이 끼어들 수 없는 삶조차 있는 법 아니냐고.-67쪽
그렇게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여자들은 남자들을 실망시키고 세상의 남자들은 여자들을 실망시키게.-218쪽
…… 살아 있다는 것. 우리가 그 골목에서 간이숙박소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야. 일상에 매여 일 년을 통화 한번 못 한다고 해도 수첩 속에 오래된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 내 손을 뻗어 다른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설령 내가 언니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언니가 이 세상의 어느 공기 속에서 아침마다 눈을 뜨고 숨을 쉬며 악다구니를 쓰며 살아가고 있었다면…… 나는 내 열여섯에서 스물까지의 시간과 공간들을 피해오지 않았을 거야. 내가 기억한들, 언제까지나 기억한들…… 그런들……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지? 기억으로 뭘 변화시켜놓을 수 있어?-221쪽
모두들 성장하기 위해 태생지를 떠난다. 대학에 가기 위해 창도 우리가 함께 자란 마을을 떠난 모양이다. 그 마을에 창이 없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그 마을의 불들이 일제히 꺼진다.-347쪽
가슴속에 하지 못한 말들이 하늘로 올라가서 별이 된다고 한 사람은 누구였는지. 조그만 것들은 너무나 많이 모여 있으면 슬퍼 보인다. 자갈이나 모래나 쌀이나 조갑지들. 하늘의 별도 그렇구나. 자갈이나 모래나 쌀이나 조갑지와 다른 점은 저렇게 많은데도 하나하나 반짝반짝 제 빛을 낸다는 것이다.-394쪽
나도 모르게 개입해버린, 그녀의 죽음이 내게 남긴 상처는 나를 한없이 멍하게 했다. 아직까지도 내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녀의 흔적들. 나는 그녀 이후에 관계맺기에 엄청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쉽게 친해지나 더 깊이 친해지지 못하게 가로막는 그녀는 내 마음의 폐허였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 그 방문을 내가 잠갔노라고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그 관계는 나에게 뭘 선택할 여지도 없이 나도 이해 못 할 역할을 내게 시킬것만 같았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간직한 비밀이 내가 죽은 후에 알려질 때를. 알려지는 건 괜찮은데 왜곡되는 것은 두려웠다. 비밀이 왜곡되지 않으려면 발설하는 자의 삶보다 내 삶이 더 두껍거나 아니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 그러려면 아무하고도 관계를 맺지 않을 것, 원망과 사무침과 그림움에 시달리느라 십 년 동안 입을 다물었다.십 년 후에 사람에게가 아니라 글 속에다 그 방문의 열쇠를 내가 채웠노라고 써보았다.이제 그 위로 세월이 더 쌓여갔다. 오랫동안 말을 안하고 속으로만 궁글리다 보니 이제는 꿈결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2011.11.7)-402쪽
열아홉의 나, 명랑하게 말하려 하면 할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마음속과 반대의 표정을 짓는 것이 너무나 서먹하다.
지금부턴 이렇게 마음속과는 달리 반대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울고 싶은데 웃고, 성이 나는데 화 안 났다고 하고, 오래 전에 왔는데 아까 왔다고 하면서.
손을 움직여 쌀 속에 섞인 뉘를 골라내는 일에 몰두하면서 사실은 마으속에 일렁이는 깊은 고독을 위로받아왔다는 것을.
명랑하게 말하려 하면 할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망므속과 반대의 표정을 짓는 것이 너무나 서먹하다. 지금부턴 이렇게 마음속과는 달리 반대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울고 싶은데 웃고, 성이 나는데 화 안 났다고 하고, 오래 전에 왔는데 아까 왔다고 하면서.
큰오빠가 충무에서 돈을 부쳐온다. 나의 큰오빠. 그는 마치 나를 돌봐주려고 이 세상에 온 사람처럼 편지에 쓰고 있다.
그는, 같은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바흐는 천박하거나 일싲거인 감정, 순간적인 분노와 거리가 멀었으며, 가까웠던 사람들이 멀어져가도 아무런 욕도 하지 않았다, 고.
P.222
그랬었다. 나는 꿈이 필요했었다. 내가 학교에 가기 위해서, 큰오빠의 가발을 담담하게 빗질하기 위해서, 공장 굴뚝의 연기를 참아낼 수 있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소설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그렇게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여자들은 남자들을 실망시키고 세상의 남자들은 여자들을 실망시키게.-218쪽
…… 살아 있다는 것. 우리가 그 골목에서 간이숙박소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야. 일상에 매여 일 년을 통화 한번 못 한다고 해도 수첩 속에 오래된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 내 손을 뻗어 다른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설령 내가 언니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언니가 이 세상의 어느 공기 속에서 아침마다 눈을 뜨고 숨을 쉬며 악다구니를 쓰며 살아가고 있었다면…… 나는 내 열여섯에서 스물까지의 시간과 공간들을 피해오지 않았을 거야. 내가 기억한들, 언제까지나 기억한들…… 그런들……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지? 기억으로 뭘 변화시켜놓을 수 있어?-221쪽
모두들 성장하기 위해 태생지를 떠난다. 대학에 가기 위해 창도 우리가 함께 자란 마을을 떠난 모양이다. 그 마을에 창이 없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그 마을의 불들이 일제히 꺼진다.-347쪽
가슴속에 하지 못한 말들이 하늘로 올라가서 별이 된다고 한 사람은 누구였는지. 조그만 것들은 너무나 많이 모여 있으면 슬퍼 보인다. 자갈이나 모래나 쌀이나 조갑지들. 하늘의 별도 그렇구나. 자갈이나 모래나 쌀이나 조갑지와 다른 점은 저렇게 많은데도 하나하나 반짝반짝 제 빛을 낸다는 것이다.-394쪽
나도 모르게 개입해버린, 그녀의 죽음이 내게 남긴 상처는 나를 한없이 멍하게 했다. 아직까지도 내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녀의 흔적들. 나는 그녀 이후에 관계맺기에 엄청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쉽게 친해지나 더 깊이 친해지지 못하게 가로막는 그녀는 내 마음의 폐허였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 그 방문을 내가 잠갔노라고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그 관계는 나에게 뭘 선택할 여지도 없이 나도 이해 못 할 역할을 내게 시킬것만 같았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간직한 비밀이 내가 죽은 후에 알려질 때를. 알려지는 건 괜찮은데 왜곡되는 것은 두려웠다. 비밀이 왜곡되지 않으려면 발설하는 자의 삶보다 내 삶이 더 두껍거나 아니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 그러려면 아무하고도 관계를 맺지 않을 것, 원망과 사무침과 그림움에 시달리느라 십 년 동안 입을 다물었다.십 년 후에 사람에게가 아니라 글 속에다 그 방문의 열쇠를 내가 채웠노라고 써보았다.이제 그 위로 세월이 더 쌓여갔다. 오랫동안 말을 안하고 속으로만 궁글리다 보니 이제는 꿈결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2011.11.7)-402쪽
열아홉의 나, 명랑하게 말하려 하면 할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마음속과 반대의 표정을 짓는 것이 너무나 서먹하다.
지금부턴 이렇게 마음속과는 달리 반대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울고 싶은데 웃고, 성이 나는데 화 안 났다고 하고, 오래 전에 왔는데 아까 왔다고 하면서.
손을 움직여 쌀 속에 섞인 뉘를 골라내는 일에 몰두하면서 사실은 마으속에 일렁이는 깊은 고독을 위로받아왔다는 것을.
명랑하게 말하려 하면 할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망므속과 반대의 표정을 짓는 것이 너무나 서먹하다. 지금부턴 이렇게 마음속과는 달리 반대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울고 싶은데 웃고, 성이 나는데 화 안 났다고 하고, 오래 전에 왔는데 아까 왔다고 하면서.
큰오빠가 충무에서 돈을 부쳐온다. 나의 큰오빠. 그는 마치 나를 돌봐주려고 이 세상에 온 사람처럼 편지에 쓰고 있다.
그는, 같은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바흐는 천박하거나 일싲거인 감정, 순간적인 분노와 거리가 멀었으며, 가까웠던 사람들이 멀어져가도 아무런 욕도 하지 않았다, 고.
P.222
그랬었다. 나는 꿈이 필요했었다. 내가 학교에 가기 위해서, 큰오빠의 가발을 담담하게 빗질하기 위해서, 공장 굴뚝의 연기를 참아낼 수 있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소설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저자소개
신경숙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5년 중편 「겨울 우화」로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강물이 될 때까지』, 『풍금이 있던 자리』, 『오래 전 집을 떠날 때』, 『딸기밭』, 장편소설 『깊은 슬픔』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짧은소설집 『J이야기』를 펴냈다. 1993년 한국일보문학상과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1995년 현대문학상, 1996년 만해문학상, 1997년 동인문학상, 2000년 21세기문학상, 2001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5년 중편 「겨울 우화」로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강물이 될 때까지』, 『풍금이 있던 자리』, 『오래 전 집을 떠날 때』, 『딸기밭』, 장편소설 『깊은 슬픔』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짧은소설집 『J이야기』를 펴냈다. 1993년 한국일보문학상과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1995년 현대문학상, 1996년 만해문학상, 1997년 동인문학상, 2000년 21세기문학상, 2001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서평
[외딴방]의 문학적 의미와 가치는 다양한 각도에서 성찰될 수 있겠지만 우선 작가 개인의 이력과 관련하여 이 작품이 '신경숙 문학의 또다른 시원'을 밝혀주는 중요한 이정표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시선을 모은다.
[외딴방] 이전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신경숙 문학의 밑자리는 거센 도시화와 산업화의 밀물에 밀려 점차 쇠락과 소멸의 길을 걷고 있는 농촌 공동체의 다사롭고 넉넉한 품이었다.(그것의 가장 극명한 표현이 첫 장편 '깊은 슬픔'에 나오는 이슬어지라는 환상적 아름다움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유년 시절의 체험과 긴밀하게 맞물린 그 공간은 대도시의 번잡하고 이기적인 삶의 방식과 대비되어 한편으로 아련한 향수와 동경을, 다른 한편으로 애절한 정서적 울림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신경숙의 언어의 연금술에 도취된 나머지 그녀의 농촌체험과 성년의 도시체험 사이에 어떤 단절 혹은 공백이 가로놓여 있다는 점을,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고유의 체험이 은밀히 숨겨져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외딴방]이 우리 앞에 선을 보이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신경숙이 그토록 드러내놓길 꺼렸왔던, 그러나 언젠가는 기필코 말해야만 했던 유년과 성년 사이의 공백기간, 열여섯에서 스무 살까지의 그 시간의 빈터 속으로 입장할 수 있게 되었다.
[외딴방]을 통해서야 우리는 신경숙 문학의 또다른 시원, 그 아프고 잔인했던 시절,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문학에의 꿈을 키워나가던 소녀 신경숙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작가의 자폐적 기질,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동경, 삶의 속절없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요히 수납하는 태도 등이 어디서 발원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우리는 이 작품을 펼쳐들어야 한다.
생성중인 소설, 현재진행형의 글쓰기의 한 전범
이 작품의 메타픽션적인 구성 방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말을 할 수 있다.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작품의 전면에 등장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이 작가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기법에 매력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내적 필연성 때문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 필연성은 다른 말로 작가의 진정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작가는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취한 채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야기에 개입해 들어가서 그 의미를 반추하고 그것의 필연성과 정당성에 질문을 던진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작가의 머릿속에서 완료된 상태로 있다가 지면 위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글쓰기에 의해 계속 다른 의미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즉 그녀의 이번 소설은 생성중인 소설, 현재진행형의 글쓰기의 한 전범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글쓰기는 이 작품에 강한 밀도와 구체성을 부여해주는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하여 우리는 이 작품에서 한 작가의 불우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평면적인 고백이나 미화된 과거 한 시절의 추억담이 아니라 운명의 호출 앞에서 존재증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허여된 유일한 방식인 글쓰기를 통해 온힘을 다해 싸우는 한 영혼의 초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외딴방]에서도 작가는 사위어가는 노을처럼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들의 슬프고도 적요한 운명을 단정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그것은 시간의 심연 속으로의 여행인 동시에 들끓는 감정을 냉각된 문체로 옮겨놓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녀는 기억의 퇴적층 속에 파묻힌 과거의 편린들을 하나하나 재발굴하고 거기에 아름다운 시적 후광을 부여한다.
[외딴방] 이전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신경숙 문학의 밑자리는 거센 도시화와 산업화의 밀물에 밀려 점차 쇠락과 소멸의 길을 걷고 있는 농촌 공동체의 다사롭고 넉넉한 품이었다.(그것의 가장 극명한 표현이 첫 장편 '깊은 슬픔'에 나오는 이슬어지라는 환상적 아름다움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유년 시절의 체험과 긴밀하게 맞물린 그 공간은 대도시의 번잡하고 이기적인 삶의 방식과 대비되어 한편으로 아련한 향수와 동경을, 다른 한편으로 애절한 정서적 울림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신경숙의 언어의 연금술에 도취된 나머지 그녀의 농촌체험과 성년의 도시체험 사이에 어떤 단절 혹은 공백이 가로놓여 있다는 점을,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고유의 체험이 은밀히 숨겨져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외딴방]이 우리 앞에 선을 보이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신경숙이 그토록 드러내놓길 꺼렸왔던, 그러나 언젠가는 기필코 말해야만 했던 유년과 성년 사이의 공백기간, 열여섯에서 스무 살까지의 그 시간의 빈터 속으로 입장할 수 있게 되었다.
[외딴방]을 통해서야 우리는 신경숙 문학의 또다른 시원, 그 아프고 잔인했던 시절,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문학에의 꿈을 키워나가던 소녀 신경숙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작가의 자폐적 기질,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동경, 삶의 속절없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요히 수납하는 태도 등이 어디서 발원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우리는 이 작품을 펼쳐들어야 한다.
생성중인 소설, 현재진행형의 글쓰기의 한 전범
이 작품의 메타픽션적인 구성 방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말을 할 수 있다.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작품의 전면에 등장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이 작가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기법에 매력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내적 필연성 때문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 필연성은 다른 말로 작가의 진정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작가는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취한 채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야기에 개입해 들어가서 그 의미를 반추하고 그것의 필연성과 정당성에 질문을 던진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작가의 머릿속에서 완료된 상태로 있다가 지면 위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글쓰기에 의해 계속 다른 의미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즉 그녀의 이번 소설은 생성중인 소설, 현재진행형의 글쓰기의 한 전범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글쓰기는 이 작품에 강한 밀도와 구체성을 부여해주는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하여 우리는 이 작품에서 한 작가의 불우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평면적인 고백이나 미화된 과거 한 시절의 추억담이 아니라 운명의 호출 앞에서 존재증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허여된 유일한 방식인 글쓰기를 통해 온힘을 다해 싸우는 한 영혼의 초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외딴방]에서도 작가는 사위어가는 노을처럼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들의 슬프고도 적요한 운명을 단정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그것은 시간의 심연 속으로의 여행인 동시에 들끓는 감정을 냉각된 문체로 옮겨놓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녀는 기억의 퇴적층 속에 파묻힌 과거의 편린들을 하나하나 재발굴하고 거기에 아름다운 시적 후광을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