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쇼스타코비치 = Shostakovich : 시대와 음악 사이에서
원서명
Shostakovich: A Life Remembered
저자
번역자
원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30306
가격
₩ 55,000
ISBN
9791192836010
페이지
854 p.
판형
152 X 215 mm
커버
Book
책 소개
2006년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 기념하며 개정판이 출간된 [Shostakovich: A Life Remembered]를 번역한 책인데, 쇼스타코비치를 주제로 한 책 가운데서도 분량과 형식에서 독보적이다. 첼리스트이기도 한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 윌슨은 이 책을 위해 쇼스타코비치와 관계를 맺은 수많은 인물의 증언을 모았다. 그 과정에서 수십 건의 도서와 자료를 검토한 것은 물론이고, 필요한 경우 직접 관련된 인물들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확인받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쇼스타코비치를 주인공으로 하는, 그에 대해 수많은 사람이 증언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들의 기억과 평가, 증언 속에서 한 예술가의 인생이 모자이크처럼 펼쳐진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곡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음악까지 암보로 연주하는 천재였고, 작품 때문에 자신과 가족이 폭압적인 체제의 희생양이 될까 두려워하던 아웃사이더였다. 상대방을 도와주고도 그걸 알리려 하지 않는 사려 깊은 친구였으며,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스키를 타던 다정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모든 진실이 그렇듯 쇼스타코비치와 관련된 진실도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이 책에서 그러한 진실은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과 함께 무엇보다 입체적으로 되살아난다.
목차
2006년 개정판 서문
1.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
2. 젊은 작곡가, 자리를 잡다
3. 비판과 응답
4. 전쟁 시절: 소강기
5. 스탈린주의의 마지막 시기
6. 해빙기
7. 새로운 삶
8. 마지막 날들
감사의 말
부록: 첼로 협주곡 1번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1.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
2. 젊은 작곡가, 자리를 잡다
3. 비판과 응답
4. 전쟁 시절: 소강기
5. 스탈린주의의 마지막 시기
6. 해빙기
7. 새로운 삶
8. 마지막 날들
감사의 말
부록: 첼로 협주곡 1번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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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발췌
P.76~77
당시에 이미 젊은 세대 작곡가들 가운데 공인된 선두주자는 쇼스타코비치였다. 청각 화성학 시험을 봤을 때가 생각난다. 우리는 글라주노프의 연구실 문가에 모여 있었고 쇼스타코비치가 시험을 치러 들어갔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먼 조성으로 조바꿈되는 대목을 차분한 모데라토 템포로 연주하는 과제 정도를 감당할 수 있었다. 쇼스타코비치의 차례가 되었다. 그가 무엇을 연주해야 할지 설명을 듣는 동안 잠시 조용하더니, 닫힌 문 너머의 침묵을 깨고 갑자기 화성들이 프레스티시모의 속도로 폭포수처럼 이어졌다. 엄청난 속도에 우리는 믿기지 않는 듯 경탄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어 연구실에서 빠른 걸음으로 나와 신나게 한바탕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신한 분위기에서 시험을 치르고 나온 그는 긴장을 풀고 대단한 재치와 활발한 정신을 드러냈다. 우리는 그가 온갖 종류의 장난과 농담, 즉흥적인 패러디를 정신없이 풍성하게 쏟아내는 것을 보았다. _ ‘1.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 중에서
P.102
교향곡은 명백한 성공작이었다. 기대했던 대로 소년 작곡가의 등장은 청중을 열광시켰고, 그 여세를 몰아 피아노 리사이틀이 마련되었다.
그래서 미챠(쇼스타코비치의 애칭)는 연습을 해야 했다.
친절한 후원자가 배려하여 그가 한 클럽에 있는 멋진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연습하도록 했다. 그는 여기서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연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쇼스타코비치는 실제로는 연습을 아주 조금만 했다. 오히려 클럽에서 당구대를 발견하고는 그 ‘악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전에 한 번도 당구를 쳐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실력이 형편없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해본 뒤에 마침내 나는 공 두 개를 구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미챠는 하나를 넣었다. 내가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고 돌아왔을 때 그가 말했다. “당신이 나가 있는 동안 내가 쳐서 공 하나를 넣었어요.”
“잘했네.” 그러고는 우리는 게임을 계속했다. _ ‘2. 젊은 작곡가, 자리를 잡다’ 중에서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 운명의 장난으로 쇼스타코비치와 나는 그라노프스키 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우리는 공무원 라비노비치가 ‘인민을 위해’ 마련한 매머드급 음악회 이야기를 나누었다. 쇼스타코비치는 그날 불안한 마음에 홀 바깥의 ‘푸른색’ 로비를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 ‘프란쵸스카’가 끝나고 박수가 나오기 시작할 때, 세상에서 가장 상냥하고 친절한 남자,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즐겨 읽은 아무개 작가가 로비로 달려 나왔다. 그는 감사의 눈물을 글썽이며 쇼스타코비치의 목을 껴안고 소리쳤다고 한다. “미챠, 나는 자네가 선율이 아름다운 음악을 쓸 수 있을 줄 알았어!” 쇼스타코비치는 그가 이렇게 우정과 한결같은 마음을 내보인 데 감동하여 “차마 차이콥스키의 음악이라고는 말하지 못했어요” 하고 내게 웃으며 털어놓았다. _ ‘3. 비판과 응답’ 중에서
P.250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쇼스타코비치)는 나의 발달을 챙겼다. 가끔은 내가 충분히 작곡하지 않는다며 나무라기도 했다. 당시 나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힘들게 살았으므로 작곡에 전념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1946년 갑자기 음악원 수업료를 면제받았다. 2년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나는 어찌 된 일인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얼마 뒤에는 궁금증을 접었다.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참 뒤에 내 발레곡 <전야>가 레닌그라드 말리 극장에서 초연했을 때 음악원 원장 파벨 세레브랴코프가 내게 축하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쇼스타코비치가 자네의 교육을 지원한 게 헛수고는 아니었네!” 나는 깜짝 놀랐다. 그제야 세레브랴코프는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가 자신의 선행을 비밀로 해두라고 부탁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후회했다. _ ‘5. 스탈린주의의 마지막 시기’ 중에서
P.513~514
쇼스타코비치가 1960년 당에 입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망가졌다는 사실이, 우리의 체제가 천재를 망가뜨렸다는 사실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다들 의아해했습니다. 왜 하필 정치적 기류가 다소 누그러졌을 때, 마침내 자신의 고결함을 지키는 것이 가능해 보이는 시대가 되었을 때, 쇼스타코비치가 공식적인 아첨에 넘어갔을까? 무슨 강요가 있었을까? 그 사건으로 나는 사람이 허기를 견디고 정치적 탄압에 저항할 수는 있어도 ‘당근’의 유혹에는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당근’에 넘어갔던 겁니다!
그가 살았던 상황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잔인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이해합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시련들을 이겨냈지만, 긴장을 늦출 수 있게 되자 약점에 굴복했던 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고통의 화신이라고, 우리 시대의 비극과 공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이해합니다. _ ‘6. 해빙기’ 중에서
P.737
딱 한 번 쇼스타코비치가 자기 음악에 푹 빠진 것을 보았다. 현악 4중주 3번 리허설 때였다. 그는 할 말이 있으면 연주를 중단시키겠다고 미리 말해두었다. 그러고는 안락의자에 앉아 악보를 펼쳤다. 그러나 각 악장이 끝날 때마다 손을 내저으며 계속 연주하라고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연주했다. 연주를 마쳤을 때 그는 상처 입은 새처럼 조용히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쇼스타코비치의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내적으로는 여린 사람이었지만 그의 외면적인 태도는 항상 엄격하고 객관적이었다. 연주에서 실수가 있으면, 특히 음악 형식과 관련되는 실수는 놓치지 않고 지적했다. _ ‘8. 마지막 날들’ 중에서
당시에 이미 젊은 세대 작곡가들 가운데 공인된 선두주자는 쇼스타코비치였다. 청각 화성학 시험을 봤을 때가 생각난다. 우리는 글라주노프의 연구실 문가에 모여 있었고 쇼스타코비치가 시험을 치러 들어갔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먼 조성으로 조바꿈되는 대목을 차분한 모데라토 템포로 연주하는 과제 정도를 감당할 수 있었다. 쇼스타코비치의 차례가 되었다. 그가 무엇을 연주해야 할지 설명을 듣는 동안 잠시 조용하더니, 닫힌 문 너머의 침묵을 깨고 갑자기 화성들이 프레스티시모의 속도로 폭포수처럼 이어졌다. 엄청난 속도에 우리는 믿기지 않는 듯 경탄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어 연구실에서 빠른 걸음으로 나와 신나게 한바탕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신한 분위기에서 시험을 치르고 나온 그는 긴장을 풀고 대단한 재치와 활발한 정신을 드러냈다. 우리는 그가 온갖 종류의 장난과 농담, 즉흥적인 패러디를 정신없이 풍성하게 쏟아내는 것을 보았다. _ ‘1.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 중에서
P.102
교향곡은 명백한 성공작이었다. 기대했던 대로 소년 작곡가의 등장은 청중을 열광시켰고, 그 여세를 몰아 피아노 리사이틀이 마련되었다.
그래서 미챠(쇼스타코비치의 애칭)는 연습을 해야 했다.
친절한 후원자가 배려하여 그가 한 클럽에 있는 멋진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연습하도록 했다. 그는 여기서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연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쇼스타코비치는 실제로는 연습을 아주 조금만 했다. 오히려 클럽에서 당구대를 발견하고는 그 ‘악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전에 한 번도 당구를 쳐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실력이 형편없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해본 뒤에 마침내 나는 공 두 개를 구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미챠는 하나를 넣었다. 내가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고 돌아왔을 때 그가 말했다. “당신이 나가 있는 동안 내가 쳐서 공 하나를 넣었어요.”
“잘했네.” 그러고는 우리는 게임을 계속했다. _ ‘2. 젊은 작곡가, 자리를 잡다’ 중에서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 운명의 장난으로 쇼스타코비치와 나는 그라노프스키 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우리는 공무원 라비노비치가 ‘인민을 위해’ 마련한 매머드급 음악회 이야기를 나누었다. 쇼스타코비치는 그날 불안한 마음에 홀 바깥의 ‘푸른색’ 로비를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 ‘프란쵸스카’가 끝나고 박수가 나오기 시작할 때, 세상에서 가장 상냥하고 친절한 남자,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즐겨 읽은 아무개 작가가 로비로 달려 나왔다. 그는 감사의 눈물을 글썽이며 쇼스타코비치의 목을 껴안고 소리쳤다고 한다. “미챠, 나는 자네가 선율이 아름다운 음악을 쓸 수 있을 줄 알았어!” 쇼스타코비치는 그가 이렇게 우정과 한결같은 마음을 내보인 데 감동하여 “차마 차이콥스키의 음악이라고는 말하지 못했어요” 하고 내게 웃으며 털어놓았다. _ ‘3. 비판과 응답’ 중에서
P.250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쇼스타코비치)는 나의 발달을 챙겼다. 가끔은 내가 충분히 작곡하지 않는다며 나무라기도 했다. 당시 나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힘들게 살았으므로 작곡에 전념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1946년 갑자기 음악원 수업료를 면제받았다. 2년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나는 어찌 된 일인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얼마 뒤에는 궁금증을 접었다.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참 뒤에 내 발레곡 <전야>가 레닌그라드 말리 극장에서 초연했을 때 음악원 원장 파벨 세레브랴코프가 내게 축하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쇼스타코비치가 자네의 교육을 지원한 게 헛수고는 아니었네!” 나는 깜짝 놀랐다. 그제야 세레브랴코프는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가 자신의 선행을 비밀로 해두라고 부탁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후회했다. _ ‘5. 스탈린주의의 마지막 시기’ 중에서
P.513~514
쇼스타코비치가 1960년 당에 입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망가졌다는 사실이, 우리의 체제가 천재를 망가뜨렸다는 사실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다들 의아해했습니다. 왜 하필 정치적 기류가 다소 누그러졌을 때, 마침내 자신의 고결함을 지키는 것이 가능해 보이는 시대가 되었을 때, 쇼스타코비치가 공식적인 아첨에 넘어갔을까? 무슨 강요가 있었을까? 그 사건으로 나는 사람이 허기를 견디고 정치적 탄압에 저항할 수는 있어도 ‘당근’의 유혹에는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당근’에 넘어갔던 겁니다!
그가 살았던 상황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잔인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이해합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시련들을 이겨냈지만, 긴장을 늦출 수 있게 되자 약점에 굴복했던 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고통의 화신이라고, 우리 시대의 비극과 공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이해합니다. _ ‘6. 해빙기’ 중에서
P.737
딱 한 번 쇼스타코비치가 자기 음악에 푹 빠진 것을 보았다. 현악 4중주 3번 리허설 때였다. 그는 할 말이 있으면 연주를 중단시키겠다고 미리 말해두었다. 그러고는 안락의자에 앉아 악보를 펼쳤다. 그러나 각 악장이 끝날 때마다 손을 내저으며 계속 연주하라고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연주했다. 연주를 마쳤을 때 그는 상처 입은 새처럼 조용히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쇼스타코비치의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내적으로는 여린 사람이었지만 그의 외면적인 태도는 항상 엄격하고 객관적이었다. 연주에서 실수가 있으면, 특히 음악 형식과 관련되는 실수는 놓치지 않고 지적했다. _ ‘8. 마지막 날들’ 중에서
저자소개
런던 태생으로 외교관 아버지를 둔 덕분에 영국, 중국, 미국을 돌며 학교를 다녔고, 1964년부터 1971년까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로부터 첼로를 배웠다. 영국과 유럽에서 여러 앙상블과 연주하며 연주자로서 교사로서 활동을 병행했고, 러시아를 주제로 라디오 방송과 콘서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러시아어에 유창했고 본인이 음악가이기도 했던 윌슨은 쇼스타코비치와 관련해 출판된 증언들을 선별하고 작곡가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끌어내 이 책을 썼다. 음악과 연주가에 대한 책도 썼는데,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의 전기, 2007년에는 로스트로포비치에 대한 책 Mstislav Rostropovich: Cellist, Teacher, Legen를 출간했다.
역자소개
서울대학교 미학과와 음악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음악과 과학, 문학 분야를 넘나드는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고전적 양식][클래식의 발견] [콜럼바인][데이비드 보위의 삶을 바꾼 100권의 책][리얼리티 버블][우연이 만든 세계][이야기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서평
천재적인 작곡가, 나약한 지식인, 사려 깊은 친구, 다정한 아버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가장 입체적으로 그려내다
유년에서 노년까지, 인간적인 면모부터 음악에 감춰둔 비밀까지,
쇼스타코비치를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을 엮은 방대한 전기
교차하는 증언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진실의 다양한 얼굴,
한 인간과 시대, 예술을 관통하는 방대한 전기
쇼스타코비치는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를 조금 더 아는 음악 애호가는 그가 스탈린 치하에서 받았던 곤욕을 떠올릴 것이다. 그의 음악은 지금도 살아 있을 때처럼 널리 사랑받고 있고, 그의 비극적이면서도 기구한 삶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연된다. 그 덕분에 국내에서도 쇼스타코비치와 관련된 여러 서적이 출간되었다. [쇼스타코비치: 시대와 음악 사이에서]는 2006년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 기념하며 개정판이 출간된 Shostakovich: A Life Remembered를 번역한 책인데, 쇼스타코비치를 주제로 한 책 가운데서도 분량과 형식에서 독보적이다. 첼리스트이기도 한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 윌슨은 이 책을 위해 쇼스타코비치와 관계를 맺은 수많은 인물의 증언을 모았다. 그 과정에서 수십 건의 도서와 자료를 검토한 것은 물론이고, 필요한 경우 직접 관련된 인물들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확인받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쇼스타코비치를 주인공으로 하는, 그에 대해 수많은 사람이 증언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들의 기억과 평가, 증언 속에서 한 예술가의 인생이 모자이크처럼 펼쳐진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곡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음악까지 암보로 연주하는 천재였고, 작품 때문에 자신과 가족이 폭압적인 체제의 희생양이 될까 두려워하던 아웃사이더였다. 상대방을 도와주고도 그걸 알리려 하지 않는 사려 깊은 친구였으며,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스키를 타던 다정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모든 진실이 그렇듯 쇼스타코비치와 관련된 진실도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이 책에서 그러한 진실은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과 함께 무엇보다 입체적으로 되살아난다.
영혼이 짓밟힌 어두운 시대, 그 속에서 방황한 예술가의 삶
쇼스타코비치는 음악에 관한 한 신동이자 천재였다. 그는 열세 살에 처음 작곡을 한 것으로 보이고, 열아홉 살에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했다. 피아노에도 재능을 보였는데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습도 제대로 하지 않고 연주 무대에 올라서 핀잔을 받는다. 20대 초중반에 작곡한 여러 교향곡과 고골을 각색한 오페라인 <코>로 이미 명성을 쌓은 쇼스타코비치는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발표하며 대중적으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훗날 가장 높이 평가받는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과 교향곡 4번은 정권에 의해 형식주의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고 요주의 인물이 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복무하지 않은 죄를 물은 것이다.
스탈린 정권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쇼스타코비치를 핍박하는데, 그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제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된 그를 체제 선전을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정권의 이중적인 행태 때문에 삶의 고비마다 위기를 겪기도 하고, 이득을 보기도 한다. 2차 대전 시기에는 선전 도구로 활용된 덕분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본인과 가족의 안정을 보장받았지만, 형식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어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에게 비난당하는 고초를 겪는다.
스탈린이 사라진 이후에도 처지는 비슷했다. 흐루쇼프 정권의 강압에 못 이겨 그는 공산당에 입당하는데, 이 때문에 사회적인 지위는 확보했지만 본인이 원치 않은 일들에 동원되어야 했고, 때로는 체제의 앞잡이로서 동료를 비난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태생적으로 정치 활동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시대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의 삶을 염두에 두고 그의 음악을 들으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만약 그가 시대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다면,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음악을 썼을까? 이 책의 후반부에서 그는 이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당의 지침’이 없었다면 내가 달라졌을까 물었소? 당연히 달라졌을 거요. 내가 교향곡 4번을 작곡했을 때 추구하던 노선은 내 작품에서 더 선명하고 날카롭게 부각되었을 거요. 나는 화려함을 더 많이 드러내고 더 많이 냉소적으로 굴었을 거요. 내 생각을 감추려하기보다 공개적으로 드러냈을 거요. 그러니까 더 순수한 음악을 썼을 거요. … 그러나 내가 쓴 음악이 부끄럽지는 않소. 나의 모든 곡을 다 사랑하오. 절뚝거리는 아이라도 부모에게는 늘 사랑스러운 법이라지 않소.”_ 708쪽, “8. 마지막 날들” 중에서
작품 속에 감춰둔 천재의 메시지, 음악 속에서 자유를 얻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인생은 [프라우다]에 게재된 사설 “음악이 아니라 혼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그 사설 이후로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성향을 감추고 당이 원하는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음악 속에 예술가로서의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한편으로는 사생활과 관련된 모티프들도 음악 속에 은밀하게 녹여내는데, 쇼스타코비치의 절친한 친구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사사받은 엘리자베스 윌슨은 쇼스타코비치 음악 속에 감춰진 비밀들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예컨대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4중주 5번을 우스트볼스카야의 1949년작 클라리넷 3중주와 연결해 분석하는 대목은 흥미진진하다. 우스트볼스카야는 쇼스타코비치의 제자이자 친구로서 사적으로 매우 친밀한 관계였다고 전해진다. 우스트볼스카야에게 했다는 발언, “나는 재능이지만 당신은 경이요”에서 쇼스타코비치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엿볼 수 있다. 윌슨은 곡의 구성과 주제를 실제 일어났던 일과 교차 분석하면서 쇼스타코비치가 음악 속에 남긴 메시지를 밝혀내려 한다. 이미 이런 분석은 쇼스타코비치를 좋아하고 그의 음악을 즐겨듣던 독자들에게 음악을 감상하는 새로운 재미를 줄 것이다.
십대 중반부터 작곡을 시작한 그는 사실상 임종을 앞둔 순간까지 작업을 계속했다. 그건 생계를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창작열을 불태우는 방법이기도 했다. 때로 작곡은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는 자기만의 싸움이었으며, 친구에게 보내는 다정한 선물이기도 했다. 자신의 음악이 초연되는 현장에서는 항상 안절부절못했으며,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반응이 좋지 않으면 좌절하고, 좋은 반응을 얻으면 감격하는 인간적인 모습도 보였다. 소프라노 갈리나 비시넵스카야의 증언은 음악이 쇼스타코비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짐작케 한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그는 개의치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은 사라지고 오로지 자신의 음악만 남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어떤 말보다 생생하게 말할 터였다. 그는 자신의 예술이 유일한 삶이었으며, 그 안에 누구도 들이지 않았다. 예술은 그의 신전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면 그는 가면을 벗고 자신의 모습이 되었다. _715쪽, “마지막 날들” 중에서
집요함으로 위대한 예술가의 일생을 재구성하다
이 책은 엄청난 분량의 주석과 참고문헌을 달고 있다. 본문을 읽을 때는 분량의 방대함에 놀라지만, 주석을 읽을 때면 저자인 엘리자베스 윌슨의 집요함과 꼼꼼함에도 감탄하게 될 것이다. 윌슨은 쇼스타코비치와 관련된 수많은 문헌과 자료, 인터뷰를 토대로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재구성한다. 가능한 경우에는 책을 집필할 당시 살아 있던 당사자와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따왔다. 그리고 집필한 내용을 인터뷰 당사자에게 보내 원고 내용을 확인받았다. 가끔 증언에 오류의 가능성이 있거나 그와 상반되는 견해가 있을 때도 꼼꼼하게 그 내용을 기록했다. 또 인터뷰를 했지만 관련된 내용이 아닐 때는 생략했다는 언급을 볼 때, 실제로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취재한 분량은 이 책의 몇 배가 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들인 결과물인 것이다.
읽다 보면 이 책이 쇼스타코비치의 일생을 담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대해서도 매우 밀도 높은 이해와 분석을 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가 음악에 관해 깊게 이해하고 있는 전문 음악인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윌슨의 본업은 작가라기보다는 음악가, 연주자에 가깝다. 책에서도 수십 번 언급되는, 쇼스타코비치의 절친한 친구 가운데 하나인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엘리자베스 윌슨의 스승이다(윌슨은 이 책 이후 로스트로포비치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또한 윌슨은 쇼스타코비치가 살아 있을 당시 그가 참석한 연주회에 가서 음악을 직접 들어본, 그러니까 어릴 적부터 쇼스타코비치의 팬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사실을 한 가지 덧붙이자면 윌슨은 작년에 타계한 유명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의 첫 번째 부인이기도 했다.
클래식 분야를 전문적으로 작업하며, 쇼스타코비치를 다룬 책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를 번역하기도 한 장호연 번역가의 번역도 안정감을 더한다. 깔끔하고 정돈된 번역은 쇼스타코비치가 살았던 시대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클래식 분야의 전문가인 만큼 쇼스타코비치 음악이 품고 있는 맥락도 섬세하게 살려냈다.
방대한 분량과 꼼꼼한 자료 정리, 다양한 인물과의 관계 등을 보았을 때 쇼스타코비치나 클래식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관련된 내용이 확인하고 싶을 때마다 펼쳐보는 용도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보석처럼 숨어 있는, 예술가의 삶과 작품이 하나가 되는 빛나는 순간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가장 입체적으로 그려내다
유년에서 노년까지, 인간적인 면모부터 음악에 감춰둔 비밀까지,
쇼스타코비치를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을 엮은 방대한 전기
교차하는 증언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진실의 다양한 얼굴,
한 인간과 시대, 예술을 관통하는 방대한 전기
쇼스타코비치는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를 조금 더 아는 음악 애호가는 그가 스탈린 치하에서 받았던 곤욕을 떠올릴 것이다. 그의 음악은 지금도 살아 있을 때처럼 널리 사랑받고 있고, 그의 비극적이면서도 기구한 삶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연된다. 그 덕분에 국내에서도 쇼스타코비치와 관련된 여러 서적이 출간되었다. [쇼스타코비치: 시대와 음악 사이에서]는 2006년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 기념하며 개정판이 출간된 Shostakovich: A Life Remembered를 번역한 책인데, 쇼스타코비치를 주제로 한 책 가운데서도 분량과 형식에서 독보적이다. 첼리스트이기도 한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 윌슨은 이 책을 위해 쇼스타코비치와 관계를 맺은 수많은 인물의 증언을 모았다. 그 과정에서 수십 건의 도서와 자료를 검토한 것은 물론이고, 필요한 경우 직접 관련된 인물들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확인받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쇼스타코비치를 주인공으로 하는, 그에 대해 수많은 사람이 증언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들의 기억과 평가, 증언 속에서 한 예술가의 인생이 모자이크처럼 펼쳐진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곡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음악까지 암보로 연주하는 천재였고, 작품 때문에 자신과 가족이 폭압적인 체제의 희생양이 될까 두려워하던 아웃사이더였다. 상대방을 도와주고도 그걸 알리려 하지 않는 사려 깊은 친구였으며,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스키를 타던 다정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모든 진실이 그렇듯 쇼스타코비치와 관련된 진실도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이 책에서 그러한 진실은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과 함께 무엇보다 입체적으로 되살아난다.
영혼이 짓밟힌 어두운 시대, 그 속에서 방황한 예술가의 삶
쇼스타코비치는 음악에 관한 한 신동이자 천재였다. 그는 열세 살에 처음 작곡을 한 것으로 보이고, 열아홉 살에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했다. 피아노에도 재능을 보였는데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습도 제대로 하지 않고 연주 무대에 올라서 핀잔을 받는다. 20대 초중반에 작곡한 여러 교향곡과 고골을 각색한 오페라인 <코>로 이미 명성을 쌓은 쇼스타코비치는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발표하며 대중적으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훗날 가장 높이 평가받는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과 교향곡 4번은 정권에 의해 형식주의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고 요주의 인물이 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복무하지 않은 죄를 물은 것이다.
스탈린 정권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쇼스타코비치를 핍박하는데, 그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제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된 그를 체제 선전을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정권의 이중적인 행태 때문에 삶의 고비마다 위기를 겪기도 하고, 이득을 보기도 한다. 2차 대전 시기에는 선전 도구로 활용된 덕분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본인과 가족의 안정을 보장받았지만, 형식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어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에게 비난당하는 고초를 겪는다.
스탈린이 사라진 이후에도 처지는 비슷했다. 흐루쇼프 정권의 강압에 못 이겨 그는 공산당에 입당하는데, 이 때문에 사회적인 지위는 확보했지만 본인이 원치 않은 일들에 동원되어야 했고, 때로는 체제의 앞잡이로서 동료를 비난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태생적으로 정치 활동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시대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의 삶을 염두에 두고 그의 음악을 들으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만약 그가 시대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다면,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음악을 썼을까? 이 책의 후반부에서 그는 이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당의 지침’이 없었다면 내가 달라졌을까 물었소? 당연히 달라졌을 거요. 내가 교향곡 4번을 작곡했을 때 추구하던 노선은 내 작품에서 더 선명하고 날카롭게 부각되었을 거요. 나는 화려함을 더 많이 드러내고 더 많이 냉소적으로 굴었을 거요. 내 생각을 감추려하기보다 공개적으로 드러냈을 거요. 그러니까 더 순수한 음악을 썼을 거요. … 그러나 내가 쓴 음악이 부끄럽지는 않소. 나의 모든 곡을 다 사랑하오. 절뚝거리는 아이라도 부모에게는 늘 사랑스러운 법이라지 않소.”_ 708쪽, “8. 마지막 날들” 중에서
작품 속에 감춰둔 천재의 메시지, 음악 속에서 자유를 얻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인생은 [프라우다]에 게재된 사설 “음악이 아니라 혼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그 사설 이후로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성향을 감추고 당이 원하는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음악 속에 예술가로서의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한편으로는 사생활과 관련된 모티프들도 음악 속에 은밀하게 녹여내는데, 쇼스타코비치의 절친한 친구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사사받은 엘리자베스 윌슨은 쇼스타코비치 음악 속에 감춰진 비밀들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예컨대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4중주 5번을 우스트볼스카야의 1949년작 클라리넷 3중주와 연결해 분석하는 대목은 흥미진진하다. 우스트볼스카야는 쇼스타코비치의 제자이자 친구로서 사적으로 매우 친밀한 관계였다고 전해진다. 우스트볼스카야에게 했다는 발언, “나는 재능이지만 당신은 경이요”에서 쇼스타코비치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엿볼 수 있다. 윌슨은 곡의 구성과 주제를 실제 일어났던 일과 교차 분석하면서 쇼스타코비치가 음악 속에 남긴 메시지를 밝혀내려 한다. 이미 이런 분석은 쇼스타코비치를 좋아하고 그의 음악을 즐겨듣던 독자들에게 음악을 감상하는 새로운 재미를 줄 것이다.
십대 중반부터 작곡을 시작한 그는 사실상 임종을 앞둔 순간까지 작업을 계속했다. 그건 생계를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창작열을 불태우는 방법이기도 했다. 때로 작곡은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는 자기만의 싸움이었으며, 친구에게 보내는 다정한 선물이기도 했다. 자신의 음악이 초연되는 현장에서는 항상 안절부절못했으며,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반응이 좋지 않으면 좌절하고, 좋은 반응을 얻으면 감격하는 인간적인 모습도 보였다. 소프라노 갈리나 비시넵스카야의 증언은 음악이 쇼스타코비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짐작케 한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그는 개의치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은 사라지고 오로지 자신의 음악만 남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어떤 말보다 생생하게 말할 터였다. 그는 자신의 예술이 유일한 삶이었으며, 그 안에 누구도 들이지 않았다. 예술은 그의 신전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면 그는 가면을 벗고 자신의 모습이 되었다. _715쪽, “마지막 날들” 중에서
집요함으로 위대한 예술가의 일생을 재구성하다
이 책은 엄청난 분량의 주석과 참고문헌을 달고 있다. 본문을 읽을 때는 분량의 방대함에 놀라지만, 주석을 읽을 때면 저자인 엘리자베스 윌슨의 집요함과 꼼꼼함에도 감탄하게 될 것이다. 윌슨은 쇼스타코비치와 관련된 수많은 문헌과 자료, 인터뷰를 토대로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재구성한다. 가능한 경우에는 책을 집필할 당시 살아 있던 당사자와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따왔다. 그리고 집필한 내용을 인터뷰 당사자에게 보내 원고 내용을 확인받았다. 가끔 증언에 오류의 가능성이 있거나 그와 상반되는 견해가 있을 때도 꼼꼼하게 그 내용을 기록했다. 또 인터뷰를 했지만 관련된 내용이 아닐 때는 생략했다는 언급을 볼 때, 실제로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취재한 분량은 이 책의 몇 배가 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들인 결과물인 것이다.
읽다 보면 이 책이 쇼스타코비치의 일생을 담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대해서도 매우 밀도 높은 이해와 분석을 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가 음악에 관해 깊게 이해하고 있는 전문 음악인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윌슨의 본업은 작가라기보다는 음악가, 연주자에 가깝다. 책에서도 수십 번 언급되는, 쇼스타코비치의 절친한 친구 가운데 하나인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엘리자베스 윌슨의 스승이다(윌슨은 이 책 이후 로스트로포비치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또한 윌슨은 쇼스타코비치가 살아 있을 당시 그가 참석한 연주회에 가서 음악을 직접 들어본, 그러니까 어릴 적부터 쇼스타코비치의 팬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사실을 한 가지 덧붙이자면 윌슨은 작년에 타계한 유명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의 첫 번째 부인이기도 했다.
클래식 분야를 전문적으로 작업하며, 쇼스타코비치를 다룬 책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를 번역하기도 한 장호연 번역가의 번역도 안정감을 더한다. 깔끔하고 정돈된 번역은 쇼스타코비치가 살았던 시대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클래식 분야의 전문가인 만큼 쇼스타코비치 음악이 품고 있는 맥락도 섬세하게 살려냈다.
방대한 분량과 꼼꼼한 자료 정리, 다양한 인물과의 관계 등을 보았을 때 쇼스타코비치나 클래식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관련된 내용이 확인하고 싶을 때마다 펼쳐보는 용도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보석처럼 숨어 있는, 예술가의 삶과 작품이 하나가 되는 빛나는 순간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