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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적/정치적 단편들 : 이상(李箱)의 리얼리즘에 대하여
총서명 하이브리드총서 15
저자 윤인로
출판사 자음과모음
출판일 20150515
가격 ₩ 15,000
ISBN 9788957078495
페이지 280 p.
판형 140 X 215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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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묵시적 정치적 단편들]은 식민지 시대의 작가 이상(1910~1937)에 대한 새로운 읽기를 시도하면서 그의 문학에 드러나는 묵시적이고 정치적인 구상력을 비평하고 있다. 이상 문학에 대한 기존의 연구 관점, 즉 전기적 ㆍ 정신분석적 ㆍ 기호학적 ㆍ 비교문학적 ㆍ 일상사적 ㆍ 역사철학적 ㆍ 신체적 ㆍ 화폐적 ㆍ 회화적 ㆍ 수학적 관점으로서의 이상 문학 연구에는 틈과 공백이 존재해왔다. 저자 윤인로는 이상 문학을 발굴하고 그 위상을 정초했던 초기 이상 연구, 특히 전후세대의 이상 연구에서 보다 깊이 숙고되지 않고 누락되고 있는 지점이 있음을 밝히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 내재적 비평의 무기로서 이상 문학을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치열한 글쓰기를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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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도래중인 리얼-리즘
ㆍ 신을 모독한 자
ㆍ 정관 파기?어떤 모순론
ㆍ 미-래의 순례자

Ⅰ장
ㆍ 까마귀/신의 시점
ㆍ “숫자의 소멸”
ㆍ 광속의 인간
ㆍ 이른바 ‘순수한 중단’
ㆍ “모든중간들은지독히춥다”
ㆍ 기다린다는 것, “역단易斷”의 파라클리트
ㆍ “천량天亮이올때까지”?서광의 묵시론/정치론
ㆍ 절름발이와 마라노marrano

Ⅱ장
ㆍ 폭력의 설계자
ㆍ 좌표적 노모스
ㆍ “요凹렌즈”, 아토포스, “제4세”
ㆍ 메피스토펠레스, 악령 또는 사도
ㆍ 장래적인 것
ㆍ 두 개의 달, 혹은 ‘지구는 사악해’
ㆍ 미래주의 선언, “멸형滅形”의 시인들
ㆍ 니힐nihil의 치외법권?무성격적인 또는 무성적인
ㆍ 두 개의 제로?구원Erl?sung과 최종해결Endl?sung의 근친성
ㆍ 종말론적인, 너무나 자치적인

Ⅲ장
ㆍ 이상복음
ㆍ 총구에서 뛰쳐나오는 것
ㆍ 각혈하는 몸
ㆍ 피, “골편骨片”, 대속
ㆍ 바야흐로, “일제학살”
ㆍ 바야흐로, “최후의 종언”
ㆍ “가브리엘천사균天使菌”의 저울, 또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ㆍ “찢어진 사도”의 몸이 분만하는 것


Ⅳ장
ㆍ 불안이라는 것
ㆍ 다시, 「차생윤회此生輪廻」
ㆍ 바울과 이상
ㆍ 묵시의 사상으로서 권태
ㆍ “절대권태”와 신의 유신維新
ㆍ 이른바 ‘순간의 날끝’
ㆍ 가메이 가츠이치로의 지옥이냐, 고야마 이와오의 연옥이냐
ㆍ 무無를 끝내는 무

다른 서론: 마르크스의 그리스도?“기독의 화폐”와 모조-구원의 체제
ㆍ 맘몬Mammon의 국가인장
ㆍ 신성화폐에 관하여?‘성스러운 끈’ 또는 피라미드의 눈
ㆍ 외화된 그리스도
ㆍ 화폐와 그리스도의 유비?그 각각에 대한 마르크스의 세 가지 정의
ㆍ 빚schuld과 죄schuld?환속화된 연옥으로서의 신용체제
ㆍ ‘진정한 공동본질’의 힘

후기: 임재의 유물론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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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발췌
김기림에게 이상은 당대의 자본주의, 그 황금의 유혈적 질서 안에서 신의 사명mission으로 파송missio되어 있는 ‘천사’였으되, 끝내 날개가 부서진 천사였다. 파송의 절대적 사명과 그것의 필연적 실패의 동시성 속에서, 그 ‘아이러니’ 속에서 이상은 “‘절대絶對의 애정’을 찾어 마지않는 한 ‘퓨리탄Puritan, 청교도’”으로 “점점 더 비통한 순교자의 노기를 띠어간 것이다”. 그렇게 부서진 날개의 운동은 단 하나, 순교로 이어진다. 그러하되 이상이라는 천사의 그 순교란 ‘속이는 신’의 품 안에 안락?조화?합일로 안겨드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신을 직시하는 치켜뜬 두 눈으로 보존되는 시간이었다.
?「서론」(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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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체감했었던 식민지 근대의 일면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 한 구절은, ‘신에 대한 몹쓸 모독자’가 숨어들었던 그 잡지, 곧 『가톨?청년』에 실려 있었다. “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 수명을헐어서전당잡히나보다. 나는그냥문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여달렷다. 문을열려고않열리는문을열려고.” 수명을 헌다는 것은 삶/생명이 직접적으로 지배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허물어지는, 줄어드는 수명, 그렇게 생명을 지속적으로 저당잡음으로써 삶의 형태를 목숨 건 삶으로서만, 목숨뿐인 삶으로서만 허락하는 사회의 상태. 문 안의 문, 그 문 안의 또 다른 문. 얼마나 더 들어가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를 알 수 없는 겹겹의 문들 앞에서 버려지고 목 매달리는 삶. 그런 삶이 품고 있는 꿈이란 어떻게 되는가.
?「1장」(24~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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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그렇게 투시하며 걷는 까마귀/신이다. 그는 경성의 모더니티 속을 걷는, 혹은 그 위를 날고 있는 산보자이다. 그런데 그가 걷는 곳은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가 아니었다. 죽었다 깨도 그는 파리의 산보자일 수 없었다(그리고 그 사실조차가 이상의 엑스레이에 의해 투시된다). 그는 걷되 모조되거나 위조된 근대의 경성을 걷는 중이다. 걷되 ‘절름발이’로 걷는다. “아아이부부는부축할수없는절름바리가되어버린다무사한세상이병원이고꼭치료를기다리는무병無病이끗끗내잇다.”(1: 105) 절름거리는 신, 불구의 신은 말한다. 무사태평한 근대성이야말로 병원이라고, 치료되어야 할 질환을 가졌음에도 병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곧 근대의 인간들이라고.
?「1장」(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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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은 어디인가. 지독히 추운 그 중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나의 사고와 그 사고의 이면에 대한 또 다른 사고의 촉구 속에서, 하나의 표현과 그 표현의 배면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의 요청 속에서 사고와 표현의 잠재성을 발생시키고 발현시키는 장소. 거기가 바로 중간이다. 그 중간이 바로 아포리아의 장소이다. 그 중간에서만 하나의 제로?예컨대 도래중인 나에 의한 구원, 숫자의 소멸, 근대초극에의 의지?는 그 제로의 이면에 있는 또 하나의 제로?예컨대 일제학살, 진보된 우생학, 근대추구에 대한 의지?와 동시적이며 등질적인 것으로서 인지될 수 있다. 그 중간에서의 긴장이 무너질 때 하나의 제로는 그 이면에 있는 또 하나의 제로와 합치한다. 그때 사람과 사고가 동시에 학살의 대상으로 된다.
?「2장」(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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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근대의 추구와 동시에 근대의 초극을 감행해야 했던 모순의 무대 위에서 “양처럼 유순한 악마의 가면”을 쓰고 연기했다. 양처럼 유순한 탈정치적 표면의 문학 속에 실은 당대의 질서를 무화하려는 악령적 의지가 넘실거렸다는 자기변호. 그러하되 그 시절 그의 연기는 말 그대로 비극적인 것이었다고 해야 한다(오늘 이곳에서의 연기 또한 그때와 먼 거리에 있다고 할 수는 없으며, 그것이 비극적인 오늘 이상을 다시 읽는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구조의 파쇄, 전위, 형질전환을 기획하는 신성한 힘의 현현, 또는 그런 힘의 구성을 향한 이상의 거듭된 실패와 좌초. 그것이 이상이라는 비극의 배우가 선택한 연기의 방법과 태도를 결정짓는다. 그것은 달리 말해 “풋내기 최후의 연기”였다.
?「3장」(125~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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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윤인로
저자 윤인로는 문학평론가. 1978년 영천에서 나고 부산에서 컸다. 동아대에서 박사논문을 썼고 시간강사로 일했다. 2010년 창비신인평론상을 받았으며 비평지 『말과활』 『오늘의문예비평』에 편집위원으로 참여했고 무사시대학 객원연구원으로 있었다. 할 수 있는 한, ‘현대의 신정정치’라는 기획에 몰두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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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경계 간 글쓰기, 분과 간 학문하기’라는 구호 아래
‘통섭’의 학문하기가 한국의 환경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제15권 『묵시적/정치적 단편들』


계간 문예지 《자음과모음》을 통해 연재된 원고를 대상으로 펴내기 시작, 현재는 젊은 인문학자들의 옥고를 선별해 만들고 있는 자음과모음 대표 인문서 ‘하이브리드 총서’. 국내 학자들의 야심찬 학문적 실험과 매력적인 글쓰기가 한데 어우러진 하이브리드 총서의 15번째 책 『묵시적/정치적 단편들』이 출간되었다. ‘이상(李箱)의 리얼리즘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식민지 시대의 작가 이상(1910~1937)에 대한 새로운 읽기를 시도하면서 그의 문학에 드러나는 묵시적이고 정치적인 구상력을 비평하고 있다.

신의 힘과 사회적 삶의 관련을 확인하는
이상 문학의 리얼리즘을 통해
종지적 힘과 비판의 관계, 그 모순의 상황을 톺아보다


『묵시적/정치적 단편들: 이상(李箱)의 리얼리즘에 대하여』는 작가 이상의 문학과 신성성(神聖性)의 관계, 묵시적 사고와 정치적 비판력의 관계를 다룬다. 이상 문학에 대한 기존의 연구 관점, 즉 전기적 ㆍ 정신분석적 ㆍ 기호학적 ㆍ 비교문학적 ㆍ 일상사적 ㆍ 역사철학적 ㆍ 신체적 ㆍ 화폐적 ㆍ 회화적 ㆍ 수학적 관점으로서의 이상 문학 연구에는 틈과 공백이 존재해왔다. 저자 윤인로는 이상 문학을 발굴하고 그 위상을 정초했던 초기 이상 연구, 특히 전후세대의 이상 연구에서 보다 깊이 숙고되지 않고 누락되고 있는 지점이 있음을 밝히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 내재적 비평의 무기로서 이상 문학을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치열한 글쓰기를 이어나간다.
익히 잘 알려져 있듯 이상은 우리에게 난해한 작가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식민지 시대 당시의 삶을 관리하던 통치체제에 대한 반응으로 읽을 때 구체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저자가 파악한 이상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상은 ‘15년전쟁’(1931~1945)의 먹구름이 끼던 당시, 병참기지로 재편성되어가던 식민지 근대의 작동을 그 밑바닥 원리의 수준에서 직관하고 표현했다. 하나의 신성국가적 질서 속에 합성된 것으로 당대의 삶을 인식한 이상은 정의를 외면하는 신, 통치체제를 옹립하던 신과 그런 신이 건설한 질서의 끝장에 대해 사고하고 표현했다.
‘모순은 진리의 형태 중 하나’라고 말하는 이상이 그 모순을 표현하는 과정은, 쉽게 읽히지 않지만 분명 읽어낼 수 있다. 그런 모순의 상황을 비평의 언어로 포착하려는 이 책 또한 쉽게 읽히지 않지만 분명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저자가 어려운 글쓰기를 지향해서도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의 관련성을 무시해서도 아니다. 이상의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식민지 근대의 작동원리를 조감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신성한 후광과 환영들에 의해 삶의 실제적 관계들이 영구적으로 합성되는 상태, 모조-구원의 가체험 상태를 삶의 유일한 형태로 강제하는 힘을 폭력적으로 개시/계시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저자는 마르크스의 한 구절을 인용해 ‘유일하게 유물론적인’ 것으로 표현한다.
‘불세출의 그리스도’ ‘도래중인 나’ ‘가브리엘천사’ 등의 시어로 스스로의 자의식을 가상실효적으로 형상화하고, 당시의 통치체제를 신에 의해 수호되고 있던 하나의 신성국가적 질서로 인지했던 이상과 그의 문학,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리얼리즘’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이 시대를 진단하는 윤인로의 사고가 빛을 발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종교적 환영들이 주는 희망과 치환된 환상들이 만든 안락을 통해 삶의 실제적 관계들이 어떻게 분리/매개되고 있는지를 톺아보는 물음을 던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저자 윤인로의 입론이다. 그는 현존하는 것을 파편으로 만들지만 파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파편을 통해 이어지는 길을 위해, 유물론적 파루시아(parusia, 임재)의 힘을 거듭 복기해야 할 이유에 몰두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의 모더니스트 이상에 대한 새로운 읽기
당시의 삶을 관리하던 통치체제에 대한 응전


이 책은 서론과 보론을 합쳐 전체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임재의 리얼-리즘’이라는 한 구절로 압축할 수 있는 서론에서는 김기림으로부터 시작되는 초기 이상 연구를 근거로 이상 문학의 묵시적/정치적 속성에 대한 비평의 기초를 마련한다.
1장에서는 끝남 혹은 끝냄에 대한 이상 문학의 의지와 표현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 및 그것들 간의 관련을 설명한다. 「진단 0:1」과 「오감도 4호」, 「선에관한각서」에서 드러나는, 근대적 삶의 체제를 투시하고 진단하는 신의 관점, 질주정에 대한 안티테제, 근대의 끝에 대해 이야기한다.
2장에서는 이상 문학에 드러나는 역사신학적 속성에 대해 설명한다. 근대의 법권역nomos이 전면적으로 파열하는 상황을 지시하는 이상의 시어로 ‘제4세第四世’를 들고, 그것이 ‘불원간不遠間’ ‘미구未久에’ ‘금시今時에’ ‘바야흐로’ ‘별안간all of a sudden’ 등의 시간감에 정초되고 있는 삶의 체제에 맞닿은 것임을 논증했다. 그것들은 이상이 말하는 새로운 주체성, 이른바 ‘도래중인 나’의 역사신학적 사고를 응축하는 키워드들이다.
3장에서는 이상이 자신의 아픈 몸을 사고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묵시적이고 정치적인 시어들을 분석한다. 이상에게 자신의 몸은, 구획된 질서에 완전히 구속되지 않는 경계와 잔여로서 발생하는 것이었고, 그런 한에서 그 몸은 주어진 의미체계의 작동에 있어 매번의 불연속적 시공간으로 인지되는 것이었다.
4장에서는 불안, 공포, 권태와 같은 이상 문학의 근본정조 속에서 표현된 종지적 정치력에 대해 서술한다. 이상은 신의 조물, 신의 질서로 근대를 인지했고, 그런 신에 대한 살해의 의지를 ‘악에의 충동’이라는 한 구절로 표현한다. 악에의 충동은 신적 질서에 대한 탄핵이며, 생명을 직접적인 통치의 대상으로 합성하는 당대의 체제에 대한 ‘최후적 마멸’의 고지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고야마 이와오 등 교토학파 우파의 ‘세계사’론과 비교 가능한 것이었다.
‘다른 서론’이라는 이름으로 작성된 이 책의 마지막 장 ‘마르크스의 그리스도’에서는 이상이 말하는 ‘기독의 화폐’(「二人」 연작시)와 소설 「지주회시」에서 표현되고 있는 화폐론을 마르크스의 화폐론 및 그리스도론과 상호 비교하고 있다.

책속으로 추가

도시를 자신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이상은 성천의 야색, 그 칠흑 같은 밤의 적막 속에서 공포를 느낀다. 그는 그 귀기어린 공포, 광대한 암흑 속에서 스스로를 티끌같이 여기면서도 동시에 야망에 불타고, 불안과 우울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동시에 환희와 열락 속에 있다. 불안과 환희는 언뜻 대립되는 느낌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불안은 이상이 말하는 ‘악에의 충동’ 속에서 환희와 결합한다.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악에의 충동이란 무엇이며, 그 충동에 이끌려 상호작용하는 불안과 환희, 불안의 환희란 무엇인가. 하나의 체제가 승인하고 합의한 ‘도덕의 기념비’를 깨고 부수며 선악의 금제와 경계를 지워버리는 악惡, 이상의 악. 그것은 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신을 살해하는 것이 악이며, 악에의 충동이다. 그것은 삶의 고통을 묵인하고 방조하는 신에 대한 심판, 살신殺神의 의지, 새로운 신성의 발현과 다른 말이 아니다. 바로 그 심판, 의지, 발현에의 감각 속에서 이상은 스스로를 ‘건강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며, 그 건강한 몸으로 신의 무력함을 단언할 수 있었다.
?「4장」(172쪽)

그 밑돌 위에서의 사적 생산, 사물화된 생산은 마르크스에게 사화死化된 생산이자 죽임의 생산이었다. 화폐의 매개성, 화폐라는 매개력,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그 현실적인 신의 권능이 죽음과 죽임의 생산을 살아 있는 생산으로, 외화된 자기를 본래적인 자기로, 상실한 자기를 애초부터 상실한 적 없는 자기로, 낯선 자기를 친밀한 자기로, 찢긴 자기를 매끈한 자기로, 꺾인 존엄을 기립한 존엄으로 환치한다. 화폐의 매개력은 살아 있는 삶의 생산적 존엄에, 그 존엄의 향유를 위한 의지적 시간들에 ‘죄’를 부과하고, 그 죗값으로 출구 없는 연옥에 삶을 위리안치시킨다.
?「다른 서론」(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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