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190417
가격
₩ 13,500
ISBN
9788954655972
페이지
214 p.
판형
130 X 200 mm
커버
Book
책 소개
“이 책을 쓰는 데 내 모든 여행의 경험이 필요했다”
여행-일상-여행의 고리를 잇는 아홉 개의 매혹적인 이야기
김영하 신작 산문 『여행의 이유』 출간!
『여행의 이유』는 작가 김영하가 처음 여행을 했던 순간부터 최근의 여행까지, 오랜 시간 여행을 하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아홉 가지의 이야기로 풀어낸 산문이다. 앉은 자리에서 모든 정보에 접속 가능한 현대에 이르러서도 오버투어리즘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여행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여행을 하는가. 일상의 장소를 벗어나 생생하고 색다른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 여러 가지 일들로 번잡해진 머리를 비우고 먼 곳에서 홀로 휴식을 취하고픈 마음은 우리를 ‘여행하는 인간(호모 비아토르)’으로 만든다. 여행에 대한 작가 김영하만의 섬세한 시선과 지적인 위트가 담긴 『여행의 이유』는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호모 비아토르인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목차
추방과 멀미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오직 현재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노바디의 여행
여행으로 돌아가다
작가의 말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오직 현재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노바디의 여행
여행으로 돌아가다
작가의 말
본문발췌
요즘은 함께 사는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예전엔 ‘애완동물’이라고 했다. 사전은 ‘애완愛玩’을 ‘동물이나 물품 따위를 좋아하여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김’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반려伴侶’는 동반자를 의미한다. 반伴자는 짝을 뜻하고 려侶는 벗을 뜻한다. 지금은 반려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관계는 사람마다 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길 것이고, 누군가는 생의 동반자로 여길 것이다. 나는 두 단어 다 쓰지 않는 편이다. 애완은 조금 경박하게 느껴지고, 반려는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 가족이 처음 기른 개는 셰퍼드로 이름은 꾀돌이였다. 아버지가 전방 대대장 시절 애지중지하던 꾀돌이는 대대장 지프가 관사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위병소에 접근하기만 해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마중을 나갈 정도로 영리했다. 그러던 꾀돌이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부대는 비상이 걸렸고 며칠에 걸친 대대적인 수색에도 종적이 묘연했다. 아버지는 크게 상심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제대를 하고 서울의 한 은행에 취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부대에서 사병으로 복무했다는 이가 우리집을 찾아왔다.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아버지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뭘 팔러 왔겠지.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장교도 아닌 사병 출신이 아버지를 찾아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왕년의 대대장과 사병은 양주를 나누어 마셨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손님이 드디어 용건을 꺼냈다.
“대대장님, 죄송합니다. 꾀돌이는 11중대에서 잡아먹었습니다.”
오랜 미스터리가 풀리고 있었다.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말렸지만 그때는 다들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언젠가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찾으실 줄 몰랐습니다.”
서울로 올라와서부터는 내내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셰퍼드 같은 대형견은 다시 키우기 어려웠다. 대신 우리 가족은 새미라는 이름의 말티즈 암컷을 길렀다. 애초에 개를 키우자고 한 것은 동생이었지만 아버지가 제일 예뻐했다. 새미는 딱 한 번 새끼를 보았는데, 출산 때는 내가 탯줄을 잘랐다. 우리는 이슬이라는 암컷만 남기고 다른 강아지들은 주변에 분양해주었다. 몇 년 후, 암에 걸려 일어서지도 못하던 새미를 아버지와 내가 동물병원에 데려갔는데, 아버지는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난 못 들어가겠다.”
내가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오자 병원 밖에서 기다리던 아버지는 새미가 잘 갔느냐고 물었다.
“참 못할 짓이다. 이제 이런 일, 더는 못할 것 같다.”
새미가 죽은 후 이슬이는 꽤 오래 살았다. 이슬이까지 떠난 후, 아버지는 집이 너무 휑하다며 누군가 동물병원에 버리고 간 강아지를 입양했다. 이번에도 말티즈였다. 녀석을 들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등졌다.
결혼한 뒤에 나도 길냥이 두 마리를 집에 들였다. 방울이는 아홉 살에 죽었다. 깐돌이는 아직 건강하지만 열다섯 살을 넘겼으니 오래지 않아 방울이 뒤를 따를 것이다.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라고 생각하면 너무 애?다. 무슨 반려들이 이토록 자주, 먼저 떠나는가.
나에게 녀석들은 반려가 아니라 여행자에 가깝다. 새미와 이슬이도, 방울이와 깐돌이도 잠시 우리집에 왔다가 떠났거나 떠날 것이다.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을 함께 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귀국하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꽤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다. 여행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그러니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쓸 기회가 많았지만 여행은 그렇지를 못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정말 많은 것들이 기억 깊은 곳에서 딸려 올라왔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이 책에 도움을 준 고마운 이름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여행에서 내가 만난 모든 이들, 돈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간에, 재워주고 먹여주고 태워준 무수한 타인들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은 있다. 바로 긴 여행길에서 나를 참아준 동행들이다. 가끔은 별것 아닌 일로 다투기도 하고, 날선 말로 감정을 다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느낌을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었던 이들, 이들이 없었더라면 여행은 그저 지루한 고역에 불과했을 것이다. 눈을 감으면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지구에서의 남은 여정이 모두 의미 있고 복되기를 기원해본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 가족이 처음 기른 개는 셰퍼드로 이름은 꾀돌이였다. 아버지가 전방 대대장 시절 애지중지하던 꾀돌이는 대대장 지프가 관사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위병소에 접근하기만 해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마중을 나갈 정도로 영리했다. 그러던 꾀돌이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부대는 비상이 걸렸고 며칠에 걸친 대대적인 수색에도 종적이 묘연했다. 아버지는 크게 상심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제대를 하고 서울의 한 은행에 취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부대에서 사병으로 복무했다는 이가 우리집을 찾아왔다.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아버지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뭘 팔러 왔겠지.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장교도 아닌 사병 출신이 아버지를 찾아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왕년의 대대장과 사병은 양주를 나누어 마셨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손님이 드디어 용건을 꺼냈다.
“대대장님, 죄송합니다. 꾀돌이는 11중대에서 잡아먹었습니다.”
오랜 미스터리가 풀리고 있었다.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말렸지만 그때는 다들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언젠가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찾으실 줄 몰랐습니다.”
서울로 올라와서부터는 내내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셰퍼드 같은 대형견은 다시 키우기 어려웠다. 대신 우리 가족은 새미라는 이름의 말티즈 암컷을 길렀다. 애초에 개를 키우자고 한 것은 동생이었지만 아버지가 제일 예뻐했다. 새미는 딱 한 번 새끼를 보았는데, 출산 때는 내가 탯줄을 잘랐다. 우리는 이슬이라는 암컷만 남기고 다른 강아지들은 주변에 분양해주었다. 몇 년 후, 암에 걸려 일어서지도 못하던 새미를 아버지와 내가 동물병원에 데려갔는데, 아버지는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난 못 들어가겠다.”
내가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오자 병원 밖에서 기다리던 아버지는 새미가 잘 갔느냐고 물었다.
“참 못할 짓이다. 이제 이런 일, 더는 못할 것 같다.”
새미가 죽은 후 이슬이는 꽤 오래 살았다. 이슬이까지 떠난 후, 아버지는 집이 너무 휑하다며 누군가 동물병원에 버리고 간 강아지를 입양했다. 이번에도 말티즈였다. 녀석을 들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등졌다.
결혼한 뒤에 나도 길냥이 두 마리를 집에 들였다. 방울이는 아홉 살에 죽었다. 깐돌이는 아직 건강하지만 열다섯 살을 넘겼으니 오래지 않아 방울이 뒤를 따를 것이다.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라고 생각하면 너무 애?다. 무슨 반려들이 이토록 자주, 먼저 떠나는가.
나에게 녀석들은 반려가 아니라 여행자에 가깝다. 새미와 이슬이도, 방울이와 깐돌이도 잠시 우리집에 왔다가 떠났거나 떠날 것이다.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을 함께 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귀국하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꽤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다. 여행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그러니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쓸 기회가 많았지만 여행은 그렇지를 못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정말 많은 것들이 기억 깊은 곳에서 딸려 올라왔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이 책에 도움을 준 고마운 이름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여행에서 내가 만난 모든 이들, 돈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간에, 재워주고 먹여주고 태워준 무수한 타인들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은 있다. 바로 긴 여행길에서 나를 참아준 동행들이다. 가끔은 별것 아닌 일로 다투기도 하고, 날선 말로 감정을 다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느낌을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었던 이들, 이들이 없었더라면 여행은 그저 지루한 고역에 불과했을 것이다. 눈을 감으면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지구에서의 남은 여정이 모두 의미 있고 복되기를 기원해본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소개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집 『오직 두 사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 산문집 삼부작 『보다』 『말하다』 『읽다』 등이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 문학동네작가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등 해외 각국에서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고 있다.
서평
요즘은 함께 사는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예전엔 ‘애완동물’이라고 했다. 사전은 ‘애완愛玩’을 ‘동물이나 물품 따위를 좋아하여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김’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반려伴侶’는 동반자를 의미한다. 반伴자는 짝을 뜻하고 려侶는 벗을 뜻한다. 지금은 반려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관계는 사람마다 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길 것이고, 누군가는 생의 동반자로 여길 것이다. 나는 두 단어 다 쓰지 않는 편이다. 애완은 조금 경박하게 느껴지고, 반려는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 가족이 처음 기른 개는 셰퍼드로 이름은 꾀돌이였다. 아버지가 전방 대대장 시절 애지중지하던 꾀돌이는 대대장 지프가 관사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위병소에 접근하기만 해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마중을 나갈 정도로 영리했다. 그러던 꾀돌이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부대는 비상이 걸렸고 며칠에 걸친 대대적인 수색에도 종적이 묘연했다. 아버지는 크게 상심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제대를 하고 서울의 한 은행에 취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부대에서 사병으로 복무했다는 이가 우리집을 찾아왔다.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아버지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뭘 팔러 왔겠지.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장교도 아닌 사병 출신이 아버지를 찾아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왕년의 대대장과 사병은 양주를 나누어 마셨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손님이 드디어 용건을 꺼냈다.
“대대장님, 죄송합니다. 꾀돌이는 11중대에서 잡아먹었습니다.”
오랜 미스터리가 풀리고 있었다.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말렸지만 그때는 다들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언젠가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찾으실 줄 몰랐습니다.”
서울로 올라와서부터는 내내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셰퍼드 같은 대형견은 다시 키우기 어려웠다. 대신 우리 가족은 새미라는 이름의 말티즈 암컷을 길렀다. 애초에 개를 키우자고 한 것은 동생이었지만 아버지가 제일 예뻐했다. 새미는 딱 한 번 새끼를 보았는데, 출산 때는 내가 탯줄을 잘랐다. 우리는 이슬이라는 암컷만 남기고 다른 강아지들은 주변에 분양해주었다. 몇 년 후, 암에 걸려 일어서지도 못하던 새미를 아버지와 내가 동물병원에 데려갔는데, 아버지는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난 못 들어가겠다.”
내가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오자 병원 밖에서 기다리던 아버지는 새미가 잘 갔느냐고 물었다.
“참 못할 짓이다. 이제 이런 일, 더는 못할 것 같다.”
새미가 죽은 후 이슬이는 꽤 오래 살았다. 이슬이까지 떠난 후, 아버지는 집이 너무 휑하다며 누군가 동물병원에 버리고 간 강아지를 입양했다. 이번에도 말티즈였다. 녀석을 들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등졌다.
결혼한 뒤에 나도 길냥이 두 마리를 집에 들였다. 방울이는 아홉 살에 죽었다. 깐돌이는 아직 건강하지만 열다섯 살을 넘겼으니 오래지 않아 방울이 뒤를 따를 것이다.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라고 생각하면 너무 애닲다. 무슨 반려들이 이토록 자주, 먼저 떠나는가.
나에게 녀석들은 반려가 아니라 여행자에 가깝다. 새미와 이슬이도, 방울이와 깐돌이도 잠시 우리집에 왔다가 떠났거나 떠날 것이다.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을 함께 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귀국하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꽤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다. 여행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그러니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쓸 기회가 많았지만 여행은 그렇지를 못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정말 많은 것들이 기억 깊은 곳에서 딸려 올라왔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이 책에 도움을 준 고마운 이름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여행에서 내가 만난 모든 이들, 돈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간에, 재워주고 먹여주고 태워준 무수한 타인들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은 있다. 바로 긴 여행길에서 나를 참아준 동행들이다. 가끔은 별것 아닌 일로 다투기도 하고, 날선 말로 감정을 다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느낌을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었던 이들, 이들이 없었더라면 여행은 그저 지루한 고역에 불과했을 것이다. 눈을 감으면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지구에서의 남은 여정이 모두 의미 있고 복되기를 기원해본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 가족이 처음 기른 개는 셰퍼드로 이름은 꾀돌이였다. 아버지가 전방 대대장 시절 애지중지하던 꾀돌이는 대대장 지프가 관사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위병소에 접근하기만 해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마중을 나갈 정도로 영리했다. 그러던 꾀돌이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부대는 비상이 걸렸고 며칠에 걸친 대대적인 수색에도 종적이 묘연했다. 아버지는 크게 상심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제대를 하고 서울의 한 은행에 취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부대에서 사병으로 복무했다는 이가 우리집을 찾아왔다.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아버지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뭘 팔러 왔겠지.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장교도 아닌 사병 출신이 아버지를 찾아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왕년의 대대장과 사병은 양주를 나누어 마셨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손님이 드디어 용건을 꺼냈다.
“대대장님, 죄송합니다. 꾀돌이는 11중대에서 잡아먹었습니다.”
오랜 미스터리가 풀리고 있었다.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말렸지만 그때는 다들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언젠가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찾으실 줄 몰랐습니다.”
서울로 올라와서부터는 내내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셰퍼드 같은 대형견은 다시 키우기 어려웠다. 대신 우리 가족은 새미라는 이름의 말티즈 암컷을 길렀다. 애초에 개를 키우자고 한 것은 동생이었지만 아버지가 제일 예뻐했다. 새미는 딱 한 번 새끼를 보았는데, 출산 때는 내가 탯줄을 잘랐다. 우리는 이슬이라는 암컷만 남기고 다른 강아지들은 주변에 분양해주었다. 몇 년 후, 암에 걸려 일어서지도 못하던 새미를 아버지와 내가 동물병원에 데려갔는데, 아버지는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난 못 들어가겠다.”
내가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오자 병원 밖에서 기다리던 아버지는 새미가 잘 갔느냐고 물었다.
“참 못할 짓이다. 이제 이런 일, 더는 못할 것 같다.”
새미가 죽은 후 이슬이는 꽤 오래 살았다. 이슬이까지 떠난 후, 아버지는 집이 너무 휑하다며 누군가 동물병원에 버리고 간 강아지를 입양했다. 이번에도 말티즈였다. 녀석을 들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등졌다.
결혼한 뒤에 나도 길냥이 두 마리를 집에 들였다. 방울이는 아홉 살에 죽었다. 깐돌이는 아직 건강하지만 열다섯 살을 넘겼으니 오래지 않아 방울이 뒤를 따를 것이다.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라고 생각하면 너무 애닲다. 무슨 반려들이 이토록 자주, 먼저 떠나는가.
나에게 녀석들은 반려가 아니라 여행자에 가깝다. 새미와 이슬이도, 방울이와 깐돌이도 잠시 우리집에 왔다가 떠났거나 떠날 것이다.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을 함께 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귀국하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꽤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다. 여행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그러니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쓸 기회가 많았지만 여행은 그렇지를 못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정말 많은 것들이 기억 깊은 곳에서 딸려 올라왔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이 책에 도움을 준 고마운 이름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여행에서 내가 만난 모든 이들, 돈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간에, 재워주고 먹여주고 태워준 무수한 타인들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은 있다. 바로 긴 여행길에서 나를 참아준 동행들이다. 가끔은 별것 아닌 일로 다투기도 하고, 날선 말로 감정을 다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느낌을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었던 이들, 이들이 없었더라면 여행은 그저 지루한 고역에 불과했을 것이다. 눈을 감으면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지구에서의 남은 여정이 모두 의미 있고 복되기를 기원해본다.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