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구의 증명 : 최진영 소설
총서명
은행나무 시리즈 N° 7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30426
가격
₩ 12,000
ISBN
9791167372864
페이지
189 p.
판형
128 X 188 mm
판차
개정판
커버
Book
책 소개
2014년 론칭해 2016년까지 총 13권을 출간하고 잠시 멈춰 있던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가 새로운 명명과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배명훈 최진영 정세랑 안보윤 황현진 윤이형 문지혁 등 3~4백매 분량의 중편소설 시리즈로 한국문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던 ‘은행나무 노벨라’. 그 의미를 동력 삼아 현재 한국문학 장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작가들의 장편소설선 ‘시리즈 N°’으로 바통을 건네받아 이어간다. 이번 신작 3종(박문영, 장진영, 황모과)을 비롯해 구간 리커버(최진영 윤이형 황현진, 이하 순차적으로 리커버)를 동시에 출간하며 서이제 장희원 한정현 정용준 정지돈 등 각자의 개성과 상상력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최진영 소설 [구의 증명]은 사랑하는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겪게 되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 혹은 죽음의 의미를 되묻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최진영은 퇴색하지 않는 사랑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아름다운 문장과 감성적이며 애절한 감수성을 통해 젊고 아름다운 남녀의 열정적인 사랑과 냉정한 죽음에 대해 세련된 감성과 탁월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목차
구의 증명
작가의 말
작가의 말
본문발췌
희망 없는 세상에선 살 수 있었지만 너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가 않아서, 죽음은 너 없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정말 죽고싶지 않았어.
P.54
봄밤을 그렇게 통째로 날려버렸다. 서성이며 망설이며 돌아서며, 돋아난 꽃이 피고 밟히는 것을 보았다. 꽃향기를 지우는 장마가 시작되던 날, 담이 우리 집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꼭 지난밤의 나처럼 서 있었다. 문을 마주하고 선 담이 속으로 어떤 말을 하고 있을지 잘 알았기에, 다행스럽기도 서운하기도 했다.
P.169
‘안녕’하고 말했는데 ’안녕‘으로만 끝날까봐. 아니, 그 인사조차 돌려받지 못할까봐. 누구에게나 보여주는 겉치레 인사 말고, 너의 고유한 표정과 감정을 갖고 싶었다.
P.106
이유가 필요했는데,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게 과연 사랑일까.
P.107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구의 몸은 작고 말라서 아름다웠다. 우리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러니 분명 아름다운 순간도 있었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함께일 때 가능했다. 구에 대한 모든 것은 나도 알고 있어야 하며 내가 모르는 것은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는 욕심.
P.16
너를 보지 못하고 너를 생각하다 나는 죽었다. 너는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다. 내가 본 마지막 세상은 너여야 했다.(16쪽)
P.25
- 괴로움 없는 사랑은 없다.(25쪽)
P.35
- 나는 여기 있고 너도 여기 있는데, 나는 여기 없고 너도 여기 없다.(35쪽)
P.77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를 품은 느낌이었다.(77쪽)
P.131
- 나만 살아 있다.
나만 이 몸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131쪽)
P.177
희망 없는 세상에선 살 수 있었지만 너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가 않아서. 죽음은 너 없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177쪽)
P.23
이모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P.94
누나는 내가 참고 있는 것들을 물음표의꼬챙이로 거듭 낚았다.
P.173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P.54
봄밤을 그렇게 통째로 날려버렸다. 서성이며 망설이며 돌아서며, 돋아난 꽃이 피고 밟히는 것을 보았다. 꽃향기를 지우는 장마가 시작되던 날, 담이 우리 집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꼭 지난밤의 나처럼 서 있었다. 문을 마주하고 선 담이 속으로 어떤 말을 하고 있을지 잘 알았기에, 다행스럽기도 서운하기도 했다.
P.169
‘안녕’하고 말했는데 ’안녕‘으로만 끝날까봐. 아니, 그 인사조차 돌려받지 못할까봐. 누구에게나 보여주는 겉치레 인사 말고, 너의 고유한 표정과 감정을 갖고 싶었다.
P.106
이유가 필요했는데,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게 과연 사랑일까.
P.107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구의 몸은 작고 말라서 아름다웠다. 우리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러니 분명 아름다운 순간도 있었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함께일 때 가능했다. 구에 대한 모든 것은 나도 알고 있어야 하며 내가 모르는 것은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는 욕심.
P.16
너를 보지 못하고 너를 생각하다 나는 죽었다. 너는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다. 내가 본 마지막 세상은 너여야 했다.(16쪽)
P.25
- 괴로움 없는 사랑은 없다.(25쪽)
P.35
- 나는 여기 있고 너도 여기 있는데, 나는 여기 없고 너도 여기 없다.(35쪽)
P.77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를 품은 느낌이었다.(77쪽)
P.131
- 나만 살아 있다.
나만 이 몸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131쪽)
P.177
희망 없는 세상에선 살 수 있었지만 너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가 않아서. 죽음은 너 없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177쪽)
P.23
이모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P.94
누나는 내가 참고 있는 것들을 물음표의꼬챙이로 거듭 낚았다.
P.173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저자소개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내가 되는 꿈], 소설집 [팽이] [겨울방학]이 있다. 만해문학상, 백신애문학상,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 2023년 이상문학상, 2020년 만해문학상, 2020년 백신애문학상, 2014년 신동엽문학상, 2010년 한겨레문학상 인터뷰 : <이제야 언니에게> 출간, 최진영 작가 인터뷰- 2019.10.21
서평
* 은행나무 ‘노벨라’가 은행나무 ‘시리즈 N°’으로 새롭게 시작합니다.
2014년 론칭해 2016년까지 총 13권을 출간하고 잠시 멈춰 있던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가 새로운 명명과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다시 출간됩니다. 배명훈 최진영 정세랑 안보윤 황현진 윤이형 문지혁 등 3~4백매 분량의 중편소설 시리즈로 한국문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던 ‘은행나무 노벨라’. 그 의미를 동력 삼아 현재 한국문학 장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작가들의 장편소설선 ‘시리즈 N°’으로 바통을 건네받아 이어갑니다. 이번 신작 3종(박문영, 장진영, 황모과)을 비롯해 구간 리커버(최진영 윤이형 황현진, 이하 순차적으로 리커버)를 동시에 출간하며 서이제 장희원 한정현 정용준 정지돈 등 각자의 개성과 상상력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문학에서 발견하는 그 위태롭고 무한한 좌표들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도를 완성해갈 시도를 독자 여러분께서도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사랑 후 남겨진 것들에 관한 숭고할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
최진영 소설 [구의 증명]은 사랑하는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겪게 되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 혹은 죽음의 의미를 되묻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최진영은 퇴색하지 않는 사랑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아름다운 문장과 감성적이며 애절한 감수성을 통해 젊고 아름다운 남녀의 열정적인 사랑과 냉정한 죽음에 대해 세련된 감성과 탁월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상상을 가능케 하는 사랑
그런 사랑을 가능케 하는 상상
여자와 남자가 등장한다. 관형사 ‘한’이 아닌 대명사 ‘이’ 사람일 수밖에 없는 관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걸 운명이라 말할 수도 있겠고, 대수롭지 않게 연인이라고 잘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소설에서의 두 주인공 ‘구(남자)’와 ‘담(여자)’은 그 낱말의 범위에서 조금은 이탈해 보인다. 그들은 회문(回文)처럼 영원히 같이 붙어 원의 둘레를 순환할 수밖에 없는 관계. 타인이 만들어낸 우연과 엇갈림 등속을 겪지만 삶의 곡선 위에 놓인 두 개의 점은 궤도가 같기에 그들의 운명 또한 같을 수밖에 없어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 누구는 그런 관계를 지독하다 할지 모르고 또 누구는 완전한 사랑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비극은 이럴 때에 급작스럽게 그들 위에 놓인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거부될 수 없는 삶의 끝. 소설은 그런 비극 위에서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꺼져버린 사랑을 재확인하면서.
길바닥에 죽어 있는 구의 옆에 앉아 말을 건네는 담의 낮은 목소리에는 비통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텅 빈 고독이 스며 있다. 또 초점을 잃은 시선은 현실이 아닌 비현실의 풍경을 바라보는 듯하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먹는다. 죽은 자의 신체의 일부를 조금씩 먹기 시작한다. 파격인가. 먹는다는 결과보다는 왜 먹을 수밖에 없는가, 라는 원인에 주목한다. 지금 그녀에게 현재는 죽음이다. 그러니 더더욱 과거에 집중할 수밖에. 죽은 자들은 심장이 멈추고 얼마 동안 청각이 살아 있다고 했던가. 그녀가 죽은 남자에게 속삭인다. 사람이란 뭘까, 나는 흉악범인가 혹은 싸이코인가 아니면 마귀, 야만인, 식인종? 나는 누구인가. 그 어떤 범주에도 자신을 완전히 집어넣을 수 없다고 죽은 자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단지, 너를, 당신을 먹을 뿐이다.
소설은 현재를 말하고 있으나 이미 연인의 죽음으로 시간은 정지되었고, 화자인 그녀가 독백하는 모든 것은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한 지난 시간이 지금의 그녀 머릿속의 전부다. 소설은 천천히 그와 그녀의 과거로 돌아간다. 먹으면서 과거 속에 머문다. 그를 먹는 것은 그의 시간을 먹는 것이고 그들의 과거를 통째로 삼키는 일일 것이다. 제의. 죽은 자에게 남아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예의. 그녀는 그를 먹음으로써 제의한다. 비극이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비극 그것은 어떤 본질에 가 닿아 있는 무엇이다. 그럼으로 그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이 제의를 믿을 수밖에 없다. 고로 완전히 자신의 몸속에 그를 씹어 넘긴다. 그래야만 그는 죽지 않고 그녀 안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사랑이라고 부를 수밖에.
이 지독함 또한 사랑이리라. 누군가의 삶 한가운데 그런 사랑이 놓인다. 삶의 원심력이 그들을 튕겨내지 못한다. 그들은 중심 한가운데 오롯이 있다. 비극적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어쩌면 우리 곁에 있고 보통의 사랑을 하고 보통의 삶을 살아갈법한 구와 담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특별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많이 봐왔고 많이 경험했던 바로 그 사랑에 다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현실에서 생명이 꺼지고 그후의 우리들의 표정을 상상한다. 우리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상실에 대해. 남겨진다는 것에 대해.
2014년 론칭해 2016년까지 총 13권을 출간하고 잠시 멈춰 있던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가 새로운 명명과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다시 출간됩니다. 배명훈 최진영 정세랑 안보윤 황현진 윤이형 문지혁 등 3~4백매 분량의 중편소설 시리즈로 한국문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던 ‘은행나무 노벨라’. 그 의미를 동력 삼아 현재 한국문학 장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작가들의 장편소설선 ‘시리즈 N°’으로 바통을 건네받아 이어갑니다. 이번 신작 3종(박문영, 장진영, 황모과)을 비롯해 구간 리커버(최진영 윤이형 황현진, 이하 순차적으로 리커버)를 동시에 출간하며 서이제 장희원 한정현 정용준 정지돈 등 각자의 개성과 상상력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문학에서 발견하는 그 위태롭고 무한한 좌표들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도를 완성해갈 시도를 독자 여러분께서도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사랑 후 남겨진 것들에 관한 숭고할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
최진영 소설 [구의 증명]은 사랑하는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겪게 되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 혹은 죽음의 의미를 되묻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최진영은 퇴색하지 않는 사랑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아름다운 문장과 감성적이며 애절한 감수성을 통해 젊고 아름다운 남녀의 열정적인 사랑과 냉정한 죽음에 대해 세련된 감성과 탁월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상상을 가능케 하는 사랑
그런 사랑을 가능케 하는 상상
여자와 남자가 등장한다. 관형사 ‘한’이 아닌 대명사 ‘이’ 사람일 수밖에 없는 관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걸 운명이라 말할 수도 있겠고, 대수롭지 않게 연인이라고 잘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소설에서의 두 주인공 ‘구(남자)’와 ‘담(여자)’은 그 낱말의 범위에서 조금은 이탈해 보인다. 그들은 회문(回文)처럼 영원히 같이 붙어 원의 둘레를 순환할 수밖에 없는 관계. 타인이 만들어낸 우연과 엇갈림 등속을 겪지만 삶의 곡선 위에 놓인 두 개의 점은 궤도가 같기에 그들의 운명 또한 같을 수밖에 없어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 누구는 그런 관계를 지독하다 할지 모르고 또 누구는 완전한 사랑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비극은 이럴 때에 급작스럽게 그들 위에 놓인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거부될 수 없는 삶의 끝. 소설은 그런 비극 위에서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꺼져버린 사랑을 재확인하면서.
길바닥에 죽어 있는 구의 옆에 앉아 말을 건네는 담의 낮은 목소리에는 비통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텅 빈 고독이 스며 있다. 또 초점을 잃은 시선은 현실이 아닌 비현실의 풍경을 바라보는 듯하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먹는다. 죽은 자의 신체의 일부를 조금씩 먹기 시작한다. 파격인가. 먹는다는 결과보다는 왜 먹을 수밖에 없는가, 라는 원인에 주목한다. 지금 그녀에게 현재는 죽음이다. 그러니 더더욱 과거에 집중할 수밖에. 죽은 자들은 심장이 멈추고 얼마 동안 청각이 살아 있다고 했던가. 그녀가 죽은 남자에게 속삭인다. 사람이란 뭘까, 나는 흉악범인가 혹은 싸이코인가 아니면 마귀, 야만인, 식인종? 나는 누구인가. 그 어떤 범주에도 자신을 완전히 집어넣을 수 없다고 죽은 자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단지, 너를, 당신을 먹을 뿐이다.
소설은 현재를 말하고 있으나 이미 연인의 죽음으로 시간은 정지되었고, 화자인 그녀가 독백하는 모든 것은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한 지난 시간이 지금의 그녀 머릿속의 전부다. 소설은 천천히 그와 그녀의 과거로 돌아간다. 먹으면서 과거 속에 머문다. 그를 먹는 것은 그의 시간을 먹는 것이고 그들의 과거를 통째로 삼키는 일일 것이다. 제의. 죽은 자에게 남아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예의. 그녀는 그를 먹음으로써 제의한다. 비극이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비극 그것은 어떤 본질에 가 닿아 있는 무엇이다. 그럼으로 그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이 제의를 믿을 수밖에 없다. 고로 완전히 자신의 몸속에 그를 씹어 넘긴다. 그래야만 그는 죽지 않고 그녀 안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사랑이라고 부를 수밖에.
이 지독함 또한 사랑이리라. 누군가의 삶 한가운데 그런 사랑이 놓인다. 삶의 원심력이 그들을 튕겨내지 못한다. 그들은 중심 한가운데 오롯이 있다. 비극적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어쩌면 우리 곁에 있고 보통의 사랑을 하고 보통의 삶을 살아갈법한 구와 담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특별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많이 봐왔고 많이 경험했던 바로 그 사랑에 다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현실에서 생명이 꺼지고 그후의 우리들의 표정을 상상한다. 우리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상실에 대해. 남겨진다는 것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