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이방인
원서명
L'Etranger
총서명
세계문학전집{266}
저자
번역자
원저자
출판사
출판일
20110325
가격
₩ 9,000
ISBN
9788937462665
페이지
270 p.
판형
148 X 210 mm
커버
Book
책 소개
1942년 [이방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젊은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낯선 인물과 독창적인 형식으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한순간도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 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겪으며 정신적인 공허를 경험한 당대 독자들에게 카뮈는,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마주하는 실존의 체험을 강렬하게 그린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 사이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민음사에서는 불문학 최고의 번역자 김화영 교수가 이십 여년 만에 원문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오늘의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한 언어로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한 원고를 ‘세계문학전집’ 266번으로 출간함으로써 [이방인]이 독자들에게 보다 깊은 감동을 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
프랑스 파리 갈리마르 출판사의 통계에 따르면 [이방인]은 지금까지 프랑스에서만 모두 733만여 부가 판매되었으며 연 평균 판매 부수는 19만 부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갈리마르 출판사 설립 이래 백여 년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이방인]은 현재 전 세계에서 무려 백한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방인]은 작품 그 자체로 보나 20세기 서사 형식의 역사에 있어서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작품으로 출판 당시부터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이 짧은 소설을 “건전지의 발명”과 맞먹는 사건이라고 압축했다. 가에탕 피콩은 “지극히 현대적인 감수성을 완ㅂ?에 가까운 고전적인 형식으로 끌어올렸다.”라고 격찬했고 에마뉘엘 무니에는 “뼛속까지 고전적인, 다시 말해서 의도적이고 정돈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를 지향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거의 청교도적인 이 작가는 내면에 분열의 아픔과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1945년에 이미 사르트르는 이런 모든 평가를 종합하는 동시에 이 작품의 가치를 꿰뚫어보며 다음과 같은 예언적인 말을 남겼다.
"카뮈의 어둡고도 순수한 작품 속에서 미래의 프랑스 문학의 주된 특징들을 식별해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고전적인 문학을 약속한다. 그 문학은 아무런 환상도 주지 않지만 인간성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고, 가혹하지만 불필요한 폭력은 배제하는, 열정적이지만 절제된 문학이다.”
민음사에서는 불문학 최고의 번역자 김화영 교수가 이십 여년 만에 원문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오늘의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한 언어로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한 원고를 ‘세계문학전집’ 266번으로 출간함으로써 [이방인]이 독자들에게 보다 깊은 감동을 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
프랑스 파리 갈리마르 출판사의 통계에 따르면 [이방인]은 지금까지 프랑스에서만 모두 733만여 부가 판매되었으며 연 평균 판매 부수는 19만 부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갈리마르 출판사 설립 이래 백여 년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이방인]은 현재 전 세계에서 무려 백한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방인]은 작품 그 자체로 보나 20세기 서사 형식의 역사에 있어서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작품으로 출판 당시부터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이 짧은 소설을 “건전지의 발명”과 맞먹는 사건이라고 압축했다. 가에탕 피콩은 “지극히 현대적인 감수성을 완ㅂ?에 가까운 고전적인 형식으로 끌어올렸다.”라고 격찬했고 에마뉘엘 무니에는 “뼛속까지 고전적인, 다시 말해서 의도적이고 정돈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를 지향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거의 청교도적인 이 작가는 내면에 분열의 아픔과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1945년에 이미 사르트르는 이런 모든 평가를 종합하는 동시에 이 작품의 가치를 꿰뚫어보며 다음과 같은 예언적인 말을 남겼다.
"카뮈의 어둡고도 순수한 작품 속에서 미래의 프랑스 문학의 주된 특징들을 식별해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고전적인 문학을 약속한다. 그 문학은 아무런 환상도 주지 않지만 인간성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고, 가혹하지만 불필요한 폭력은 배제하는, 열정적이지만 절제된 문학이다.”
목차
1부
2부
[이방인]에 대한 편지 - 알베르 카뮈
미국판 서문 - 알베르 카뮈
[이방인]을 다시 읽는다 - 로제 키요
작품해설 - 김화영
작가연보
2부
[이방인]에 대한 편지 - 알베르 카뮈
미국판 서문 - 알베르 카뮈
[이방인]을 다시 읽는다 - 로제 키요
작품해설 - 김화영
작가연보
본문발췌
그 어떤 영웅적인 태고를 취하지는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을 [이방인] 속에서 읽는다면 크게 틀린 것이 이니라고 할 수 있겠다. 여전히 좀 역설적인 뜻애서 한 것이지만, 나는 내 인물을 통해서,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를 그려 보려고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 미국판 서문에서.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
9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75 물론 나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
117 끝에 가서는, 변호사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거리로부터, 다른 방들과 법정들의 모든 공간을 거쳐서, 아이스크림 장수의 나팔 소리가 나의 귀에까지 울려온 것만이 기억에 남아 있을 따름이다. 나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닌 삶, 그러나 거기서 내가 지극히 빈약하나마 가장 끈질긴 기쁨을 맛보았던 삶에의 추억에 휩싸였다. 여름철의 냄새, 내가 좋아하던 거리, 어떤 저녁 하늘, 마리의 웃음과 옷차림. 그곳에서 내가 하고 있던 부질없는 그 모든 것이 목구멍에까지 치밀고 올라왔고, 나는 다만 어서 볼일이 끝나서 나의 감방으로 돌아가 잠잘 수 있기를 고대할 뿐이었다.
126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죽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131 나는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남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죄인이고,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 그 이상 더 나에게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133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136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213 (작품 해설)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 운명에 처해져 있는 것이다. 사형수는 죽음과 정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죽음은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어두운 배경이며 거울이다.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이 한정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이 소설의 참다운 주제는 삶의 찬가, 행복의 찬가다.
87
엄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110
나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139
여기서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는 대상은 윤리가 아니라 재판의 세계입니다.
141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213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삶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확신이 인간을 사형수로 만들어 놓는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 운명에 처해져 있는 것이다. 사형수는 죽음과 정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죽음은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어두운 배경이며 거울이다. 삶과 죽음은 표리관계를 맺고 있다.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삶은 의미가 없으므로 자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한정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끝에 가서는, 변호사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거리로부터, 다른 방들과 법정들의 모든 공간을 거쳐서, 아이스크림 장수의 나팔 소리가 나의 귀에까지 울려온 것만이 기억에 남아있을 따름이다. 나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닌 삶, 그러나 거기서 내가 지극히 빈약하게나마 가장 끈질긴 기쁨을 맛보았던 삶에의 추억에 휩싸였다. 여름철의 냄새, 내가 좋아하던 거리, 어떤 저녁하늘, 마리의 웃음과 옷차림. -p.117
방안에는 저녁때가 가까운 석양의 아름다운 햇빛이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 누워 있는 시체는 그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저녁에 회사에서 나와 부둣가를 천천히 걸어서 집에 돌아올 때는 매우 유쾌했다.하늘은 푸르고 마음은 즐거웠다.
나는 그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즐겁게 여겨졌다.
나는 인간이란 결코 생활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떤 생활이든 다 그것이 그것이며 이곳에 지내는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9p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9p.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124p.
사람이란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해서는 항상 과장된 생각을 품는 법이다. 그런데도 실상은 모든 것이 매우 간단하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34p.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부조리의 인간‘과 ‘부조리한 인간‘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와 같은인물입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반항하는 인간입니다. 스스로 이방인임을 느끼며 세계와 불화합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부조리의 인간에게 삶은 죽음에 달려있습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계를 원합니다. 하나의 생각으로 획일화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반면에 ‘부조리한 인간‘은 그 반대편에 있는 인물로 법정의 재판관, 신부, 뫼르소에게 죄를 묻는 주변인들입니다. `부조리한 인간‘은 세계와 타협하고 화해합니다. 세계와 싸우지 않아요.
ㅡ 《질문하는 소설들》중 이방인편
중요한 것은 카뮈는 이 세계에서 부조리를 해결하라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알다시피, 부조리는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도 부조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부조리는 숙명입니다. 카뮈는 부조리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에 반항하는인간 뫼르소를 창조해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부조리에 맞설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했습니다. 그렇지만 뫼르소가 보여주듯이 부조리에 반항한 결과는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반항하는 인간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고,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카뮈는 낙담하지 않습니다. 카뮈는 ˝진실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진실은 가만히 있어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힘으로 골을 파서 진실의 물줄기를 만드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ㅡ《질문하는 소설들》 중에서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
9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75 물론 나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
117 끝에 가서는, 변호사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거리로부터, 다른 방들과 법정들의 모든 공간을 거쳐서, 아이스크림 장수의 나팔 소리가 나의 귀에까지 울려온 것만이 기억에 남아 있을 따름이다. 나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닌 삶, 그러나 거기서 내가 지극히 빈약하나마 가장 끈질긴 기쁨을 맛보았던 삶에의 추억에 휩싸였다. 여름철의 냄새, 내가 좋아하던 거리, 어떤 저녁 하늘, 마리의 웃음과 옷차림. 그곳에서 내가 하고 있던 부질없는 그 모든 것이 목구멍에까지 치밀고 올라왔고, 나는 다만 어서 볼일이 끝나서 나의 감방으로 돌아가 잠잘 수 있기를 고대할 뿐이었다.
126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죽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131 나는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남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죄인이고,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 그 이상 더 나에게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133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136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213 (작품 해설)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 운명에 처해져 있는 것이다. 사형수는 죽음과 정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죽음은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어두운 배경이며 거울이다.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이 한정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이 소설의 참다운 주제는 삶의 찬가, 행복의 찬가다.
87
엄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110
나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139
여기서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는 대상은 윤리가 아니라 재판의 세계입니다.
141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213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삶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확신이 인간을 사형수로 만들어 놓는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 운명에 처해져 있는 것이다. 사형수는 죽음과 정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죽음은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어두운 배경이며 거울이다. 삶과 죽음은 표리관계를 맺고 있다.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삶은 의미가 없으므로 자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한정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끝에 가서는, 변호사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거리로부터, 다른 방들과 법정들의 모든 공간을 거쳐서, 아이스크림 장수의 나팔 소리가 나의 귀에까지 울려온 것만이 기억에 남아있을 따름이다. 나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닌 삶, 그러나 거기서 내가 지극히 빈약하게나마 가장 끈질긴 기쁨을 맛보았던 삶에의 추억에 휩싸였다. 여름철의 냄새, 내가 좋아하던 거리, 어떤 저녁하늘, 마리의 웃음과 옷차림. -p.117
방안에는 저녁때가 가까운 석양의 아름다운 햇빛이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 누워 있는 시체는 그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저녁에 회사에서 나와 부둣가를 천천히 걸어서 집에 돌아올 때는 매우 유쾌했다.하늘은 푸르고 마음은 즐거웠다.
나는 그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즐겁게 여겨졌다.
나는 인간이란 결코 생활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떤 생활이든 다 그것이 그것이며 이곳에 지내는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9p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9p.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124p.
사람이란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해서는 항상 과장된 생각을 품는 법이다. 그런데도 실상은 모든 것이 매우 간단하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34p.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부조리의 인간‘과 ‘부조리한 인간‘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와 같은인물입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반항하는 인간입니다. 스스로 이방인임을 느끼며 세계와 불화합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부조리의 인간에게 삶은 죽음에 달려있습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계를 원합니다. 하나의 생각으로 획일화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반면에 ‘부조리한 인간‘은 그 반대편에 있는 인물로 법정의 재판관, 신부, 뫼르소에게 죄를 묻는 주변인들입니다. `부조리한 인간‘은 세계와 타협하고 화해합니다. 세계와 싸우지 않아요.
ㅡ 《질문하는 소설들》중 이방인편
중요한 것은 카뮈는 이 세계에서 부조리를 해결하라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알다시피, 부조리는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도 부조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부조리는 숙명입니다. 카뮈는 부조리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에 반항하는인간 뫼르소를 창조해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부조리에 맞설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했습니다. 그렇지만 뫼르소가 보여주듯이 부조리에 반항한 결과는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반항하는 인간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고,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카뮈는 낙담하지 않습니다. 카뮈는 ˝진실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진실은 가만히 있어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힘으로 골을 파서 진실의 물줄기를 만드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ㅡ《질문하는 소설들》 중에서
저자소개
1913년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루이 제르맹을 만나 큰 영향을 받았으며, 알제 대학 철학과에서는 평생의 스승이 된 장 그르니에를 만난다. 폐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 신문기자가 된다. 산문 『안과 겉』(1937) 『결혼』(1939)을 출간하고 1942년 문제작 『이방인』 『시시포스의 신화』를 출간하여 인간존재의 부조리성과 그에 대한 반항의식인 ‘부조리의 철학’을 표현한다. 희곡 『오해』(1944) 『칼리굴라』(1945)에서도 부조리한 인간조건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어내는 일의 어려움을 역설한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대독 지하운동에 참가하여 『전투』의 편집장으로서 활동하다 1947년 사임한다. 이때부터 장뽈 싸르트르를 알게 된다. 까뮈는 프랑스적 사고에 대한 강의를 하기 위해 미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페스트』(1947) 출간으로 대성공을 거두어 이듬해 비평가상을 수상한다. 한때 몸담았던 좌익에 대한 비판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킨 『반항하는 인간』(1951)을 출간하고, 다음 해에는 싸르트르와 결별에 이른다. 1956년 『전락』을 출간한 뒤, 1957년 “명석한 진지성을 지니고 우리 시대 인간 의식의 문제들에 빛을 비춰준” 공로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60년 1월 빠리 근교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외 작품에 『행복한 죽음』 『작가수첩』 『독일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계엄령』 『정의의 사람들』 『시사평론』 『여름』 『사형제도의 재고』 『적지와 왕국』 등이 있다.
역자소개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42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안목과 유려한 문체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으며,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3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정치한 문장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탁월한 평론을 선보인 전 방위 문학인으로,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바 있다.
저서로는 『지중해, 내 푸른 영혼』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 『프로베르여 안녕』 『예술의 성』 『프랑스문학 산책』 『공간에 관한 노트』 『바람을 담는 집』 『소설의 꽃과 뿌리』 『발자크와 플로베르』 『행복의 충격』 『미당 서정주 시선집』 『예감』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흔적』 『알제리 기행』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알베르 카뮈 전집(전20권)』『알베르 카뮈를 찾아서』 『프랑스 현대시사』 『섬』 『청춘시절』 『프랑스 현대비평의 이해』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 『노란 곱추』 『침묵』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팔월의 일요일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짧은 글 긴 침묵』 『마담 보바리』 『예찬』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최초의 인간』 『물거울』 『걷기예찬』 『뒷모습』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 『이별잦은 시절』 등이 있다.
저서로는 『지중해, 내 푸른 영혼』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 『프로베르여 안녕』 『예술의 성』 『프랑스문학 산책』 『공간에 관한 노트』 『바람을 담는 집』 『소설의 꽃과 뿌리』 『발자크와 플로베르』 『행복의 충격』 『미당 서정주 시선집』 『예감』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흔적』 『알제리 기행』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알베르 카뮈 전집(전20권)』『알베르 카뮈를 찾아서』 『프랑스 현대시사』 『섬』 『청춘시절』 『프랑스 현대비평의 이해』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 『노란 곱추』 『침묵』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팔월의 일요일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짧은 글 긴 침묵』 『마담 보바리』 『예찬』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최초의 인간』 『물거울』 『걷기예찬』 『뒷모습』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 『이별잦은 시절』 등이 있다.
서평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
1942년 [이방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젊은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낯선 인물과 독창적인 형식으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한순간도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 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겪으며 정신적인 공허를 경험한 당대 독자들에게 카뮈는,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마주하는 실존의 체험을 강렬하게 그린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 사이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민음사에서는 불문학 최고의 번역자 김화영 교수가 이십 여년 만에 원문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오늘의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한 언어로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한 원고를 ‘세계문학전집’ 266번으로 출간함으로써 [이방인]이 독자들에게 보다 깊은 감동을 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신화의 반열에 오른 고전
프랑스 파리 갈리마르 출판사의 통계에 따르면 [이방인]은 지금까지 프랑스에서만 모두 733만여 부가 판매되었으며 연 평균 판매 부수는 19만 부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갈리마르 출판사 설립 이래 백여 년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이방인]은 현재 전 세계에서 무려 백한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방인]은 작품 그 자체로 보나 20세기 서사 형식의 역사에 있어서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작품으로 출판 당시부터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이 짧은 소설을 “건전지의 발명”과 맞먹는 사건이라고 압축했다. 가에탕 피콩은 “지극히 현대적인 감수성을 완벽에 가까운 고전적인 형식으로 끌어올렸다.”라고 격찬했고 에마뉘엘 무니에는 “뼛속까지 고전적인, 다시 말해서 의도적이고 정돈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를 지향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거의 청교도적인 이 작가는 내면에 분열의 아픔과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1945년에 이미 사르트르는 이런 모든 평가를 종합하는 동시에 이 작품의 가치를 꿰뚫어보며 다음과 같은 예언적인 말을 남겼다.
“카뮈의 어둡고도 순수한 작품 속에서 미래의 프랑스 문학의 주된 특징들을 식별해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고전적인 문학을 약속한다. 그 문학은 아무런 환상도 주지 않지만 인간성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고, 가혹하지만 불필요한 폭력은 배제하는, 열정적이지만 절제된 문학이다.”
삶과 죽음, 부조리한 세상
―영웅이기를 거부하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순교자 뫼르소
알제에서 선박 중개인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는 젊은 청년 뫼르소는 어느 날 마랭고의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가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다. 그는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다시 만나 유쾌한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즐기며 사랑을 나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뫼르소는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 레몽과 친해진다. 레몽은 변심한 애인을 괴롭히려는 계획을 세우고, 뫼르소는 레몽의 뜻에 이끌려 이 계획에 동참한다. 며칠 후 뫼르소는 레몽과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그 아랍인들 중에는 레몽 옛 애인의 오빠가 있다. 싸움이 벌어져 레몽이 다치고 소동이 마무리되지만 뫼르소는 답답함을 느끼며 시원한 샘 가로 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레몽을 찔렀던 아랍인을 만난 뫼르소는 그가 꺼내는 칼의 강렬한 빛에 자극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품에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교육을 받았지만 신분 상승 욕구나 야심이 없고 생활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주위에 ‘무관심한’ 뫼르소는 우발적 살인 이후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진실을 왜곡해 자신을 도우려는 변호사도, 하느님을 통해 뫼르소를 감화하려는 재판관도, 구원을 위해 그를 찾아온 사제도, 그 누구도 뫼르소를 진정 이해하지 못하고 뫼르소 역시 주위 세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뫼르소는 자기 자신의 사건에서 소외되고 만다. “어처구니없게만 여겨지는 죽음에 대한 거부, 자기 스스로의 밖으로 쫓겨난 듯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낯섦, 그리고 이 세계의 불투명한 어둠, 부조리는 송두리째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타인에 의해 내려진 사형 선고를 받으며 뫼르소는 마지막 유혹, 신앙과 구원의 유혹을 떨치고 자신의 죽음과 정면으로 대면하게 된다.
한국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의 전면 개정판
프랑스 내에서도 최고의 고전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방인]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1953년이었으며 정가는 700환이었다. 당시 전후의 물질적 정신적 폐허 속에서 ‘실존주의’ 철학과 함께 상륙한 이 짤막한 소설은 한국 독자들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 앞에 세웠다.
1999년 우리나라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김화영 교수는 작품 해설을 통해 “열다섯 살 때 영문 모르고 처음 읽”은 이 소설이 “줄곧 운명처럼 나의 삶을 동반해” 왔다고 밝혔다. 이십여 년 전 처음 번역했던 [이방인]을 이번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수록하며 김화영 교수는 작품을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구별한 “엄마”와 “어머니”의 표현을 원문에 따라 예외 없이 일치시켜 화자의 심정을 보다 적절히 전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유간접화법의 어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으며 “잘못된 번역, 어색한 표현을 바로잡았”다. 또한 “구투가 되어 버린 수사를 오늘날 언어 관습에 맞추”는 동시에 “이방인 특유의 문체”를 고스란히 간직하였다.
수십 년 동안 강단에서 이 소설을 학생들과 함께 다시 읽고 가르쳤으며, 이제 새 번역을 내면서 “마치 처음 대하는 독자가 된 듯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는 김화영 교수의 “새로운 번역”은 오늘날 [이방인]을 처음 읽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이미 한번 만났던 독자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
1942년 [이방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젊은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낯선 인물과 독창적인 형식으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한순간도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 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겪으며 정신적인 공허를 경험한 당대 독자들에게 카뮈는,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마주하는 실존의 체험을 강렬하게 그린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 사이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민음사에서는 불문학 최고의 번역자 김화영 교수가 이십 여년 만에 원문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오늘의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한 언어로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한 원고를 ‘세계문학전집’ 266번으로 출간함으로써 [이방인]이 독자들에게 보다 깊은 감동을 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신화의 반열에 오른 고전
프랑스 파리 갈리마르 출판사의 통계에 따르면 [이방인]은 지금까지 프랑스에서만 모두 733만여 부가 판매되었으며 연 평균 판매 부수는 19만 부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갈리마르 출판사 설립 이래 백여 년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이방인]은 현재 전 세계에서 무려 백한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방인]은 작품 그 자체로 보나 20세기 서사 형식의 역사에 있어서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작품으로 출판 당시부터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이 짧은 소설을 “건전지의 발명”과 맞먹는 사건이라고 압축했다. 가에탕 피콩은 “지극히 현대적인 감수성을 완벽에 가까운 고전적인 형식으로 끌어올렸다.”라고 격찬했고 에마뉘엘 무니에는 “뼛속까지 고전적인, 다시 말해서 의도적이고 정돈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를 지향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거의 청교도적인 이 작가는 내면에 분열의 아픔과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1945년에 이미 사르트르는 이런 모든 평가를 종합하는 동시에 이 작품의 가치를 꿰뚫어보며 다음과 같은 예언적인 말을 남겼다.
“카뮈의 어둡고도 순수한 작품 속에서 미래의 프랑스 문학의 주된 특징들을 식별해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고전적인 문학을 약속한다. 그 문학은 아무런 환상도 주지 않지만 인간성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고, 가혹하지만 불필요한 폭력은 배제하는, 열정적이지만 절제된 문학이다.”
삶과 죽음, 부조리한 세상
―영웅이기를 거부하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순교자 뫼르소
알제에서 선박 중개인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는 젊은 청년 뫼르소는 어느 날 마랭고의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가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다. 그는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다시 만나 유쾌한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즐기며 사랑을 나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뫼르소는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 레몽과 친해진다. 레몽은 변심한 애인을 괴롭히려는 계획을 세우고, 뫼르소는 레몽의 뜻에 이끌려 이 계획에 동참한다. 며칠 후 뫼르소는 레몽과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그 아랍인들 중에는 레몽 옛 애인의 오빠가 있다. 싸움이 벌어져 레몽이 다치고 소동이 마무리되지만 뫼르소는 답답함을 느끼며 시원한 샘 가로 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레몽을 찔렀던 아랍인을 만난 뫼르소는 그가 꺼내는 칼의 강렬한 빛에 자극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품에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교육을 받았지만 신분 상승 욕구나 야심이 없고 생활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주위에 ‘무관심한’ 뫼르소는 우발적 살인 이후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진실을 왜곡해 자신을 도우려는 변호사도, 하느님을 통해 뫼르소를 감화하려는 재판관도, 구원을 위해 그를 찾아온 사제도, 그 누구도 뫼르소를 진정 이해하지 못하고 뫼르소 역시 주위 세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뫼르소는 자기 자신의 사건에서 소외되고 만다. “어처구니없게만 여겨지는 죽음에 대한 거부, 자기 스스로의 밖으로 쫓겨난 듯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낯섦, 그리고 이 세계의 불투명한 어둠, 부조리는 송두리째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타인에 의해 내려진 사형 선고를 받으며 뫼르소는 마지막 유혹, 신앙과 구원의 유혹을 떨치고 자신의 죽음과 정면으로 대면하게 된다.
한국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의 전면 개정판
프랑스 내에서도 최고의 고전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방인]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1953년이었으며 정가는 700환이었다. 당시 전후의 물질적 정신적 폐허 속에서 ‘실존주의’ 철학과 함께 상륙한 이 짤막한 소설은 한국 독자들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 앞에 세웠다.
1999년 우리나라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김화영 교수는 작품 해설을 통해 “열다섯 살 때 영문 모르고 처음 읽”은 이 소설이 “줄곧 운명처럼 나의 삶을 동반해” 왔다고 밝혔다. 이십여 년 전 처음 번역했던 [이방인]을 이번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수록하며 김화영 교수는 작품을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구별한 “엄마”와 “어머니”의 표현을 원문에 따라 예외 없이 일치시켜 화자의 심정을 보다 적절히 전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유간접화법의 어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으며 “잘못된 번역, 어색한 표현을 바로잡았”다. 또한 “구투가 되어 버린 수사를 오늘날 언어 관습에 맞추”는 동시에 “이방인 특유의 문체”를 고스란히 간직하였다.
수십 년 동안 강단에서 이 소설을 학생들과 함께 다시 읽고 가르쳤으며, 이제 새 번역을 내면서 “마치 처음 대하는 독자가 된 듯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는 김화영 교수의 “새로운 번역”은 오늘날 [이방인]을 처음 읽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이미 한번 만났던 독자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