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이방인  [절판]
원서명
L'Etranger
총서명
세계문학전집 266
저자
번역자
원저자
출판사
출판일
20110325
가격
₩ 9,000
ISBN
9788937462665
페이지
270 p.
판형
132 X 225 mm
커버
Book
책 소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권.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1942년 <이방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카뮈는 젊은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낯선 인물과 독창적인 형식으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한순간도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 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겪으며 정신적인 공허를 경험한 당대 독자들에게 카뮈는,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마주하는 실존의 체험을 강렬하게 그린 작품이다. 김화영 교수가 원문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친근한 언어로 번역하였다.
목차
1부
2부
'이방인'에 대한 편지 - 알베르 카뮈
미국판 서문 - 알베르 카뮈
'이방인'을 다시 읽는다 - 로제 키요
작품 해설 - 김화영
작가 연보
2부
'이방인'에 대한 편지 - 알베르 카뮈
미국판 서문 - 알베르 카뮈
'이방인'을 다시 읽는다 - 로제 키요
작품 해설 - 김화영
작가 연보
본문발췌
그 어떤 영웅적인 태고를 취하지는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을 [이방인] 속에서 읽는다면 크게 틀린 것이 이니라고 할 수 있겠다. 여전히 좀 역설적인 뜻애서 한 것이지만, 나는 내 인물을 통해서,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를 그려 보려고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 미국판 서문에서.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
9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75 물론 나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
117 끝에 가서는, 변호사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거리로부터, 다른 방들과 법정들의 모든 공간을 거쳐서, 아이스크림 장수의 나팔 소리가 나의 귀에까지 울려온 것만이 기억에 남아 있을 따름이다. 나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닌 삶, 그러나 거기서 내가 지극히 빈약하나마 가장 끈질긴 기쁨을 맛보았던 삶에의 추억에 휩싸였다. 여름철의 냄새, 내가 좋아하던 거리, 어떤 저녁 하늘, 마리의 웃음과 옷차림. 그곳에서 내가 하고 있던 부질없는 그 모든 것이 목구멍에까지 치밀고 올라왔고, 나는 다만 어서 볼일이 끝나서 나의 감방으로 돌아가 잠잘 수 있기를 고대할 뿐이었다.
126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죽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131 나는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남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죄인이고,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 그 이상 더 나에게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133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136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213 (작품 해설)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 운명에 처해져 있는 것이다. 사형수는 죽음과 정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죽음은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어두운 배경이며 거울이다.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이 한정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이 소설의 참다운 주제는 삶의 찬가, 행복의 찬가다.
87
엄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110
나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139
여기서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는 대상은 윤리가 아니라 재판의 세계입니다.
141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213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삶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확신이 인간을 사형수로 만들어 놓는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 운명에 처해져 있는 것이다. 사형수는 죽음과 정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죽음은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어두운 배경이며 거울이다. 삶과 죽음은 표리관계를 맺고 있다.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삶은 의미가 없으므로 자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한정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끝에 가서는, 변호사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거리로부터, 다른 방들과 법정들의 모든 공간을 거쳐서, 아이스크림 장수의 나팔 소리가 나의 귀에까지 울려온 것만이 기억에 남아있을 따름이다. 나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닌 삶, 그러나 거기서 내가 지극히 빈약하게나마 가장 끈질긴 기쁨을 맛보았던 삶에의 추억에 휩싸였다. 여름철의 냄새, 내가 좋아하던 거리, 어떤 저녁하늘, 마리의 웃음과 옷차림. -p.117
방안에는 저녁때가 가까운 석양의 아름다운 햇빛이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 누워 있는 시체는 그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저녁에 회사에서 나와 부둣가를 천천히 걸어서 집에 돌아올 때는 매우 유쾌했다.하늘은 푸르고 마음은 즐거웠다.
나는 그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즐겁게 여겨졌다.
나는 인간이란 결코 생활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떤 생활이든 다 그것이 그것이며 이곳에 지내는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9p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9p.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124p.
사람이란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해서는 항상 과장된 생각을 품는 법이다. 그런데도 실상은 모든 것이 매우 간단하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34p.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부조리의 인간‘과 ‘부조리한 인간‘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와 같은인물입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반항하는 인간입니다. 스스로 이방인임을 느끼며 세계와 불화합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부조리의 인간에게 삶은 죽음에 달려있습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계를 원합니다. 하나의 생각으로 획일화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반면에 ‘부조리한 인간‘은 그 반대편에 있는 인물로 법정의 재판관, 신부, 뫼르소에게 죄를 묻는 주변인들입니다. `부조리한 인간‘은 세계와 타협하고 화해합니다. 세계와 싸우지 않아요.
ㅡ 《질문하는 소설들》중 이방인편
중요한 것은 카뮈는 이 세계에서 부조리를 해결하라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알다시피, 부조리는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도 부조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부조리는 숙명입니다. 카뮈는 부조리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에 반항하는인간 뫼르소를 창조해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부조리에 맞설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했습니다. 그렇지만 뫼르소가 보여주듯이 부조리에 반항한 결과는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반항하는 인간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고,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카뮈는 낙담하지 않습니다. 카뮈는 ˝진실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진실은 가만히 있어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힘으로 골을 파서 진실의 물줄기를 만드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ㅡ《질문하는 소설들》 중에서
P.9
[첫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P.32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P.51
나는 그렇기는 하지만 결국 이러나저러나 내게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이 생활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람이란 결코 생활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지 다 그게 그거고, 또 이곳에서의 내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사람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의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진 않았다. 학생 때에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그러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던 것이다.
P.75
나는, 원래 육체적 욕구에 밀려 감정은 뒷전이 되는 그런 천성이라고,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있던 날, 나는 매우 피곤하고 졸렸다. 그렇기 때문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죽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P.79
비록 하느님을 외면하는 사람일지라도, 하느님을 믿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신념이었고, 만약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심해야 한다면 그의 삶은 무의미해지고 말리라는 것이었다. ‘당신은 나의 삶이 무의미해지기를 바랍니까?‘하고 그는 외쳤다. 내가 볼 때 그것은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P.124
단두대를 향해 올라간다든가 하늘로 승천한다는 쪽으로 상상력이 뻗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점에 있어서까지도 기계장치가 모든 것을 짓눌러 버리는 것이었다. 그저 좀 수치심을 느끼면서, 대단히 저오학하게, 목숨을 슬그머니 끊어지는 것이다.
P.132
사제가 ‘당신은 그럼 아무 희망도 없이, 죽으면 완전히 없어져버린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까?‘하고 말했을 때, 그 목소리 또한 떨리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중략) ‘그래, 그렇게도 이 땅을 사랑합니까?‘하고 사제는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
9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75 물론 나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
117 끝에 가서는, 변호사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거리로부터, 다른 방들과 법정들의 모든 공간을 거쳐서, 아이스크림 장수의 나팔 소리가 나의 귀에까지 울려온 것만이 기억에 남아 있을 따름이다. 나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닌 삶, 그러나 거기서 내가 지극히 빈약하나마 가장 끈질긴 기쁨을 맛보았던 삶에의 추억에 휩싸였다. 여름철의 냄새, 내가 좋아하던 거리, 어떤 저녁 하늘, 마리의 웃음과 옷차림. 그곳에서 내가 하고 있던 부질없는 그 모든 것이 목구멍에까지 치밀고 올라왔고, 나는 다만 어서 볼일이 끝나서 나의 감방으로 돌아가 잠잘 수 있기를 고대할 뿐이었다.
126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죽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131 나는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남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죄인이고,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 그 이상 더 나에게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133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136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213 (작품 해설)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 운명에 처해져 있는 것이다. 사형수는 죽음과 정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죽음은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어두운 배경이며 거울이다.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이 한정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이 소설의 참다운 주제는 삶의 찬가, 행복의 찬가다.
87
엄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110
나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139
여기서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는 대상은 윤리가 아니라 재판의 세계입니다.
141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213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삶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확신이 인간을 사형수로 만들어 놓는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 운명에 처해져 있는 것이다. 사형수는 죽음과 정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죽음은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어두운 배경이며 거울이다. 삶과 죽음은 표리관계를 맺고 있다.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삶은 의미가 없으므로 자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한정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끝에 가서는, 변호사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거리로부터, 다른 방들과 법정들의 모든 공간을 거쳐서, 아이스크림 장수의 나팔 소리가 나의 귀에까지 울려온 것만이 기억에 남아있을 따름이다. 나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닌 삶, 그러나 거기서 내가 지극히 빈약하게나마 가장 끈질긴 기쁨을 맛보았던 삶에의 추억에 휩싸였다. 여름철의 냄새, 내가 좋아하던 거리, 어떤 저녁하늘, 마리의 웃음과 옷차림. -p.117
방안에는 저녁때가 가까운 석양의 아름다운 햇빛이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 누워 있는 시체는 그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저녁에 회사에서 나와 부둣가를 천천히 걸어서 집에 돌아올 때는 매우 유쾌했다.하늘은 푸르고 마음은 즐거웠다.
나는 그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즐겁게 여겨졌다.
나는 인간이란 결코 생활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떤 생활이든 다 그것이 그것이며 이곳에 지내는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9p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9p.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124p.
사람이란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해서는 항상 과장된 생각을 품는 법이다. 그런데도 실상은 모든 것이 매우 간단하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34p.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부조리의 인간‘과 ‘부조리한 인간‘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와 같은인물입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반항하는 인간입니다. 스스로 이방인임을 느끼며 세계와 불화합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부조리의 인간에게 삶은 죽음에 달려있습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계를 원합니다. 하나의 생각으로 획일화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반면에 ‘부조리한 인간‘은 그 반대편에 있는 인물로 법정의 재판관, 신부, 뫼르소에게 죄를 묻는 주변인들입니다. `부조리한 인간‘은 세계와 타협하고 화해합니다. 세계와 싸우지 않아요.
ㅡ 《질문하는 소설들》중 이방인편
중요한 것은 카뮈는 이 세계에서 부조리를 해결하라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알다시피, 부조리는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도 부조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부조리는 숙명입니다. 카뮈는 부조리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에 반항하는인간 뫼르소를 창조해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부조리에 맞설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했습니다. 그렇지만 뫼르소가 보여주듯이 부조리에 반항한 결과는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반항하는 인간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고,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카뮈는 낙담하지 않습니다. 카뮈는 ˝진실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진실은 가만히 있어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힘으로 골을 파서 진실의 물줄기를 만드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ㅡ《질문하는 소설들》 중에서
P.9
[첫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P.32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P.51
나는 그렇기는 하지만 결국 이러나저러나 내게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이 생활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람이란 결코 생활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지 다 그게 그거고, 또 이곳에서의 내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사람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의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진 않았다. 학생 때에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그러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던 것이다.
P.75
나는, 원래 육체적 욕구에 밀려 감정은 뒷전이 되는 그런 천성이라고,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있던 날, 나는 매우 피곤하고 졸렸다. 그렇기 때문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죽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P.79
비록 하느님을 외면하는 사람일지라도, 하느님을 믿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신념이었고, 만약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심해야 한다면 그의 삶은 무의미해지고 말리라는 것이었다. ‘당신은 나의 삶이 무의미해지기를 바랍니까?‘하고 그는 외쳤다. 내가 볼 때 그것은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P.124
단두대를 향해 올라간다든가 하늘로 승천한다는 쪽으로 상상력이 뻗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점에 있어서까지도 기계장치가 모든 것을 짓눌러 버리는 것이었다. 그저 좀 수치심을 느끼면서, 대단히 저오학하게, 목숨을 슬그머니 끊어지는 것이다.
P.132
사제가 ‘당신은 그럼 아무 희망도 없이, 죽으면 완전히 없어져버린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까?‘하고 말했을 때, 그 목소리 또한 떨리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중략) ‘그래, 그렇게도 이 땅을 사랑합니까?‘하고 사제는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저자소개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했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오해>와 <칼리굴라>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오해>와 <칼리굴라>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역자소개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알베르 카뮈론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십여 년간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같은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바람을 담는 집]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 [문학 상상력의 연구]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 [발자크와 플로베르] [행복의 충격] [한국 문학의 사생활] [여름의 묘약] [김화영의 번역수첩] 등이 있고, 알베르 카뮈 전집(전20권),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어린 왕자] [섬] [마담 보바리]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실비 제르맹의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밤의 책], 그리고 모디아노의 [잃어버린 거리] [신혼여행]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청춘 시절] [팔월의 일요일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서평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
1942년 [이방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젊은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낯선 인물과 독창적인 형식으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한순간도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 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겪으며 정신적인 공허를 경험한 당대 독자들에게 카뮈는,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마주하는 실존의 체험을 강렬하게 그린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 사이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민음사에서는 불문학 최고의 번역자 김화영 교수가 이십 여년 만에 원문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오늘의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한 언어로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한 원고를 ‘세계문학전집’ 266번으로 출간함으로써 [이방인]이 독자들에게 보다 깊은 감동을 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신화의 반열에 오른 고전
프랑스 파리 갈리마르 출판사의 통계에 따르면 [이방인]은 지금까지 프랑스에서만 모두 733만여 부가 판매되었으며 연 평균 판매 부수는 19만 부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갈리마르 출판사 설립 이래 백여 년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이방인]은 현재 전 세계에서 무려 백한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방인]은 작품 그 자체로 보나 20세기 서사 형식의 역사에 있어서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작품으로 출판 당시부터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이 짧은 소설을 “건전지의 발명”과 맞먹는 사건이라고 압축했다. 가에탕 피콩은 “지극히 현대적인 감수성을 완벽에 가까운 고전적인 형식으로 끌어올렸다.”라고 격찬했고 에마뉘엘 무니에는 “뼛속까지 고전적인, 다시 말해서 의도적이고 정돈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를 지향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거의 청교도적인 이 작가는 내면에 분열의 아픔과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1945년에 이미 사르트르는 이런 모든 평가를 종합하는 동시에 이 작품의 가치를 꿰뚫어보며 다음과 같은 예언적인 말을 남겼다.
“카뮈의 어둡고도 순수한 작품 속에서 미래의 프랑스 문학의 주된 특징들을 식별해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고전적인 문학을 약속한다. 그 문학은 아무런 환상도 주지 않지만 인간성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고, 가혹하지만 불필요한 폭력은 배제하는, 열정적이지만 절제된 문학이다.”
삶과 죽음, 부조리한 세상
―영웅이기를 거부하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순교자 뫼르소
알제에서 선박 중개인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는 젊은 청년 뫼르소는 어느 날 마랭고의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가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다. 그는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다시 만나 유쾌한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즐기며 사랑을 나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뫼르소는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 레몽과 친해진다. 레몽은 변심한 애인을 괴롭히려는 계획을 세우고, 뫼르소는 레몽의 뜻에 이끌려 이 계획에 동참한다. 며칠 후 뫼르소는 레몽과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그 아랍인들 중에는 레몽 옛 애인의 오빠가 있다. 싸움이 벌어져 레몽이 다치고 소동이 마무리되지만 뫼르소는 답답함을 느끼며 시원한 샘 가로 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레몽을 찔렀던 아랍인을 만난 뫼르소는 그가 꺼내는 칼의 강렬한 빛에 자극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품에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교육을 받았지만 신분 상승 욕구나 야심이 없고 생활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주위에 ‘무관심한’ 뫼르소는 우발적 살인 이후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진실을 왜곡해 자신을 도우려는 변호사도, 하느님을 통해 뫼르소를 감화하려는 재판관도, 구원을 위해 그를 찾아온 사제도, 그 누구도 뫼르소를 진정 이해하지 못하고 뫼르소 역시 주위 세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뫼르소는 자기 자신의 사건에서 소외되고 만다. “어처구니없게만 여겨지는 죽음에 대한 거부, 자기 스스로의 밖으로 쫓겨난 듯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낯섦, 그리고 이 세계의 불투명한 어둠, 부조리는 송두리째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타인에 의해 내려진 사형 선고를 받으며 뫼르소는 마지막 유혹, 신앙과 구원의 유혹을 떨치고 자신의 죽음과 정면으로 대면하게 된다.
한국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의 전면 개정판
프랑스 내에서도 최고의 고전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방인]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1953년이었으며 정가는 700환이었다. 당시 전후의 물질적 정신적 폐허 속에서 ‘실존주의’ 철학과 함께 상륙한 이 짤막한 소설은 한국 독자들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 앞에 세웠다.
1999년 우리나라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김화영 교수는 작품 해설을 통해 “열다섯 살 때 영문 모르고 처음 읽”은 이 소설이 “줄곧 운명처럼 나의 삶을 동반해” 왔다고 밝혔다. 이십여 년 전 처음 번역했던 [이방인]을 이번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수록하며 김화영 교수는 작품을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구별한 “엄마”와 “어머니”의 표현을 원문에 따라 예외 없이 일치시켜 화자의 심정을 보다 적절히 전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유간접화법의 어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으며 “잘못된 번역, 어색한 표현을 바로잡았”다. 또한 “구투가 되어 버린 수사를 오늘날 언어 관습에 맞추”는 동시에 “이방인 특유의 문체”를 고스란히 간직하였다.
수십 년 동안 강단에서 이 소설을 학생들과 함께 다시 읽고 가르쳤으며, 이제 새 번역을 내면서 “마치 처음 대하는 독자가 된 듯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는 김화영 교수의 “새로운 번역”은 오늘날 [이방인]을 처음 읽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이미 한번 만났던 독자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
1942년 [이방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젊은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낯선 인물과 독창적인 형식으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한순간도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 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겪으며 정신적인 공허를 경험한 당대 독자들에게 카뮈는,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마주하는 실존의 체험을 강렬하게 그린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 사이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민음사에서는 불문학 최고의 번역자 김화영 교수가 이십 여년 만에 원문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오늘의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한 언어로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한 원고를 ‘세계문학전집’ 266번으로 출간함으로써 [이방인]이 독자들에게 보다 깊은 감동을 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신화의 반열에 오른 고전
프랑스 파리 갈리마르 출판사의 통계에 따르면 [이방인]은 지금까지 프랑스에서만 모두 733만여 부가 판매되었으며 연 평균 판매 부수는 19만 부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갈리마르 출판사 설립 이래 백여 년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이방인]은 현재 전 세계에서 무려 백한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방인]은 작품 그 자체로 보나 20세기 서사 형식의 역사에 있어서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작품으로 출판 당시부터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이 짧은 소설을 “건전지의 발명”과 맞먹는 사건이라고 압축했다. 가에탕 피콩은 “지극히 현대적인 감수성을 완벽에 가까운 고전적인 형식으로 끌어올렸다.”라고 격찬했고 에마뉘엘 무니에는 “뼛속까지 고전적인, 다시 말해서 의도적이고 정돈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를 지향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거의 청교도적인 이 작가는 내면에 분열의 아픔과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1945년에 이미 사르트르는 이런 모든 평가를 종합하는 동시에 이 작품의 가치를 꿰뚫어보며 다음과 같은 예언적인 말을 남겼다.
“카뮈의 어둡고도 순수한 작품 속에서 미래의 프랑스 문학의 주된 특징들을 식별해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고전적인 문학을 약속한다. 그 문학은 아무런 환상도 주지 않지만 인간성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고, 가혹하지만 불필요한 폭력은 배제하는, 열정적이지만 절제된 문학이다.”
삶과 죽음, 부조리한 세상
―영웅이기를 거부하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순교자 뫼르소
알제에서 선박 중개인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는 젊은 청년 뫼르소는 어느 날 마랭고의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가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다. 그는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다시 만나 유쾌한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즐기며 사랑을 나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뫼르소는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 레몽과 친해진다. 레몽은 변심한 애인을 괴롭히려는 계획을 세우고, 뫼르소는 레몽의 뜻에 이끌려 이 계획에 동참한다. 며칠 후 뫼르소는 레몽과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그 아랍인들 중에는 레몽 옛 애인의 오빠가 있다. 싸움이 벌어져 레몽이 다치고 소동이 마무리되지만 뫼르소는 답답함을 느끼며 시원한 샘 가로 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레몽을 찔렀던 아랍인을 만난 뫼르소는 그가 꺼내는 칼의 강렬한 빛에 자극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품에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교육을 받았지만 신분 상승 욕구나 야심이 없고 생활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주위에 ‘무관심한’ 뫼르소는 우발적 살인 이후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진실을 왜곡해 자신을 도우려는 변호사도, 하느님을 통해 뫼르소를 감화하려는 재판관도, 구원을 위해 그를 찾아온 사제도, 그 누구도 뫼르소를 진정 이해하지 못하고 뫼르소 역시 주위 세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뫼르소는 자기 자신의 사건에서 소외되고 만다. “어처구니없게만 여겨지는 죽음에 대한 거부, 자기 스스로의 밖으로 쫓겨난 듯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낯섦, 그리고 이 세계의 불투명한 어둠, 부조리는 송두리째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타인에 의해 내려진 사형 선고를 받으며 뫼르소는 마지막 유혹, 신앙과 구원의 유혹을 떨치고 자신의 죽음과 정면으로 대면하게 된다.
한국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의 전면 개정판
프랑스 내에서도 최고의 고전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방인]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1953년이었으며 정가는 700환이었다. 당시 전후의 물질적 정신적 폐허 속에서 ‘실존주의’ 철학과 함께 상륙한 이 짤막한 소설은 한국 독자들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 앞에 세웠다.
1999년 우리나라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김화영 교수는 작품 해설을 통해 “열다섯 살 때 영문 모르고 처음 읽”은 이 소설이 “줄곧 운명처럼 나의 삶을 동반해” 왔다고 밝혔다. 이십여 년 전 처음 번역했던 [이방인]을 이번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수록하며 김화영 교수는 작품을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구별한 “엄마”와 “어머니”의 표현을 원문에 따라 예외 없이 일치시켜 화자의 심정을 보다 적절히 전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유간접화법의 어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으며 “잘못된 번역, 어색한 표현을 바로잡았”다. 또한 “구투가 되어 버린 수사를 오늘날 언어 관습에 맞추”는 동시에 “이방인 특유의 문체”를 고스란히 간직하였다.
수십 년 동안 강단에서 이 소설을 학생들과 함께 다시 읽고 가르쳤으며, 이제 새 번역을 내면서 “마치 처음 대하는 독자가 된 듯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는 김화영 교수의 “새로운 번역”은 오늘날 [이방인]을 처음 읽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이미 한번 만났던 독자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