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바람과 햇볕의 집 : 오십, 지리산을 펼쳐 집 한 권 썼습니다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21106
가격
₩ 18,000
ISBN
9791187694229
페이지
272 p.
판형
130 X 210 mm
커버
Book
책 소개
김토일 에세이. 보통 그렇게 생각한다. 서울을, 도시를 떠나 경치 좋고 한적한 지방에 내려가 새롭게 터를 잡고 정착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농사를 짓거나 공방 등의 자영업으로 생계를 꾸리고, 집 또한 그에 적합하게 낡은 농가를 얻어 수리하거나 널찍하게 새로 지어 살 거라고. 저자의 집 '삼연재'는, 그리고 그들의 일상은 전혀 다르다. 지리산 자락 화개. 국내뿐 아니라 가히 세계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꽃길과 물길이 펼쳐진 쌍계사 맞은편 언덕 안쪽. 그런 곳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너무도 예상 밖의 집인데 그것이 도리어 그림같이 어울린다. 집만 떼어내서 서울 한복판이나 저기 어디 비벌리힐즈에 가져다 놓아도 전혀 이질감 없이 어울릴 정말이지 ‘모던’한 집이다. 그 집에는 논밭은 물론 화분 하나만한 텃밭도 없지만, 말도 필요 없는 지리산의 풍광이 차고 넘친다. 부부는 그 지연 속에서 주변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살지만, 자기 스타일의 공부방을 운영하고 또 출퇴근을 하며 오롯이 자기주도적이고 여유로운 일상을 산다. 지리산 시골 골짜기에 ‘모던하우스’를 짓고 ‘모던라이프’를 살고 있는 것이다.
목차
INTRO 바람의 길과 햇볕의 각도까지 계산했습니다
시간은 황구렁이처럼 느리게 집을 지었다
지리산 花水木
독해되지 않는 봄을 건너서, 화개로
밥만 먹여주는 소리
이름에서 풍기는 피 냄새
말 같잖은 소리 1
말 같잖은 소리 2
시간은 황구렁이처럼 느리게 느리게 집을 지었다
혹등고래 한 마리와 허들 넘는 지렁이
지렁이 허들 넘기
몬산투 가는 길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삼촌, 물 처먹고 해!
그날, 알몸의 오이는 생수 속에서
혹등고래 한 마리
소리가 보이는, 풍경이 들리는
나는 조용히 쌀을 계량해 글로 집을 짓는다
달의 뒤편에서 울리는 종소리
잃어버린 반 걸음
또, 아내가 출근을 시작했다
아내의 도시락에 담는 것
나는, 조용히, 쌀을 계량해, 글로, 집을, 짓는다
갈치속젓을 곁들인 투움바 파스타
두 집 살림하는 아내
초호화 유람기
춤추는 산책, 스미는 걷기
무늬 혹은 옹이
벚꽃 지고 명자꽃 필 무렵
화개온천탕 청룡 조우기遭遇記
통증
100만 원은 그 속에 있다
이런 걸레 같은
기억 속에 켜지는 붉은 홍시
‘뽕’을 맞은 딱, 그 ‘짝’
무늬와 옹이
시간은 황구렁이처럼 느리게 집을 지었다
지리산 花水木
독해되지 않는 봄을 건너서, 화개로
밥만 먹여주는 소리
이름에서 풍기는 피 냄새
말 같잖은 소리 1
말 같잖은 소리 2
시간은 황구렁이처럼 느리게 느리게 집을 지었다
혹등고래 한 마리와 허들 넘는 지렁이
지렁이 허들 넘기
몬산투 가는 길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삼촌, 물 처먹고 해!
그날, 알몸의 오이는 생수 속에서
혹등고래 한 마리
소리가 보이는, 풍경이 들리는
나는 조용히 쌀을 계량해 글로 집을 짓는다
달의 뒤편에서 울리는 종소리
잃어버린 반 걸음
또, 아내가 출근을 시작했다
아내의 도시락에 담는 것
나는, 조용히, 쌀을 계량해, 글로, 집을, 짓는다
갈치속젓을 곁들인 투움바 파스타
두 집 살림하는 아내
초호화 유람기
춤추는 산책, 스미는 걷기
무늬 혹은 옹이
벚꽃 지고 명자꽃 필 무렵
화개온천탕 청룡 조우기遭遇記
통증
100만 원은 그 속에 있다
이런 걸레 같은
기억 속에 켜지는 붉은 홍시
‘뽕’을 맞은 딱, 그 ‘짝’
무늬와 옹이
본문발췌
P.39
<이름에서 풍기는 피 냄새>
조그마한 식당을 하나 여는 거다. 밥집이라 쓰고 술집이라 불러도 무방한 19금 놀이터이면서 식당.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이라는 실없는 유행가를 안주 삼아 술 한 잔에 세월을 퉁칠 수 있는 곳. 산삼 깍두기, 불로초 골뱅이무침, 봉황 알찜을 주메뉴로 하고 재료가 없으면 김치말이 국수에 막걸리를 강매하는 식당. 간혹 술 취한 김에 지리산 어디 즈음에서 우화등선을 꿈꿔볼 수도 있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지극한 도道를 텃밭에서 기른 상추에 쌈 싸 먹을 수 있는 곳.
월화수목은 식재료 수급에 총력을 다하고 금토일만 영업하는 곳. ‘먹고살 만’의 임계치를 절대로 넘어서지 않는 그런 밥집을 하고 싶었다. 아내는 망하려고 지리산 산신령에게 치성을 드리는 계획이라고 일갈했다. 밥집 이름은 자연히 김토일 식당이 되었다.
P.125~128
<혹등고래 한 마리>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혹등고래 한 마리가 비로 가득한 허공을 날고 있는 것이었다. 이따금 날개 같은 긴 가슴지느러미를 휘저으며 물박수를 한다. 그러다가 산더미 같은 그 몸이 솟구쳐 오르더니 허공중에서 쏟아지듯 쓰러진다. 바다가, 아니 허공이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물인지 비인지 고래가 만든 포말 속으로 나는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간다.
거대한 혹등고래가 낸 물의 길을 따라, 꼬리지느러미를 따라 나는 내려간다. 조금씩 몸을 조여오는 압력을 느끼며 고래의 유영을 넋을 놓고 쳐다본다. 고래의 움직임은 시간을 두 배, 세 배로 늘린 듯 아주 느리게 물속을 미끄러져 날아다닌다. 물 표면을 투과한 햇빛이 고래의 몸에 햇무늬를 만드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짙푸른 심해로 장면이 바뀐다. 고래는 꼬리지느러미를 위아래로 흔들며 걷는 것 같기도 했고, 가슴지느러미를 활짝 펴고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휘파람 같은 길고 가는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다가오다가, 고래는 심해의 짙푸른 어둠을, 그 어둠 속에 박혀 있는 나를 꿀꺽 소리도 없이 한입에 삼킨다.
P.158
<잃어버린 반 걸음>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는데 찾을 수밖에, 해결할 수밖에, 만날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을 나는 인연이라 부른다. 특히 남녀 사이의 인연은 콩깍지를 동반하는데 사리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물의 형체마저 미화시키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다만 혹독한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평생을 콩깍지를 쓴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것과 인연이란 찾는 게 아니라 순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늘도 여전히 아내는 내 옆에 껌딱지처럼 착 달라붙어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며 일관되게 찾아다닌다.
아내여, 나도 가끔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려다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애타게 찾지는 말고 어쩌다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느닷없이 찾아주기 바란다.
P.173~176
<나는, 조용히, 쌀을 계량해, 글로, 집을, 짓는다>
밥을 안쳐놓고 아직도 꿈과 생시 어디 즈음에서 헤매고 있는 몸을 책상 앞에 앉힌다. 노트북을 켠다. 어제 다 마무리 짓지 못한 잡문을 읽어본다. 멍하니 노트북이 나를 읽어 내리는 사이, 밥통의 알림이 들린다.
쿠쿠가 고화력으로 맛있는 백미의 취사를 시작한단다.
비문이나 오문 그리고 더듬거림 없는 깔끔한 낭독이다. 잠시 후에 밥통은 뜸들이기에 들어갈 것이고, 아직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 내 잡스러운 글은 뜸만 들이다 끝날지도 모른다. 나도 고슬고슬한 문장을 갖고 싶다. 이마트나 홈플러스에서 장을 보듯 잘 지어진 문장들을 인터넷으로 자주 주문한다. 장바구니에 가득한 책들을 덜었다가 다시 담았다가를 반복한다. 어차피 내 문장이 아니잖나. 내 문장은 내가 지어 먹어야지.
[…] 조미료 따위, 안 쓰기로 한다. 그러나 없으면 맛이 나나, 맛이. 나는 천연조미료를 많이 가지고 있으나 활용할 줄을 모른다. ‘처럼’을 채를 칠까, ‘같이’를 나박 썰까. 이 문장은 부사가 너무 많아 칼칼하고, 저 문장은 형용사를 지나치게 뿌려 느끼한데. 아, 또 이 단락은 너무 길어져 오버 쿡 돼버렸군! 이러다 언제 이 잡문을 마무리 짓.는.다?
P.215~216
<벚꽃 지고 명자꽃 필 무렵>
늦봄, 얼마나 철저하게 비워야 허虛와 공空을 겹쳐 쓸 수 있을까. 그 허공중에 떼로 핀 찔레꽃들이 흔들린다. 살랑살랑 바람을 타면서 허와 공에 연분홍으로 환칠을 해댄다. 환칠 속으로 노란 나비 한 마리 날아간다. 찔레향보다 얇은 날개가 바람에 쓸리다가 다시 제 갈 길로 방향을 잡는다. 찔레향 속으로 사라진다.
이내 바람은 굵어져서 감나무 이파리에서 차르락차르락 소리로 일어난다. 오디가 익어가기 시작하는 뽕나무 이파리들이 박수를 친다. 허공의 한 어깨가 들썩인다. 어깨를 타고 올라온 바람이 풍경의 머리채를 쥐고 흔든다. 쏴아아 쏴아, 흩날린다.
P.219~220
사방이 삥 둘러 산이고 산 너머에 산이라서 산에 기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이곳에서 사람이나 나무나 새들은 모두 초록이 본적이다. 사람들은 초록 피를 우려 마시는 차 나무를 키우고 초록의 즙액을 받아 마시는 매실을 따고, 초록의 영토에서 산을 이고 지고 계절의 푸른 피를 빨아 마시며 살아간다. 봄의 끝자리에서 그 피는 좀 더 짙어져 이 본적지에서 지천으로 꿀럭거린다. 사람이나 나무나 새들은 하나같이 이곳에 핏줄에 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피를 돌려서 사람은 명줄을 잇고, 나무는 열매를 매달고, 새들은 열매를 쪼아 먹고 나무를 옮겨 심어 초록을 퍼뜨린다.
<이름에서 풍기는 피 냄새>
조그마한 식당을 하나 여는 거다. 밥집이라 쓰고 술집이라 불러도 무방한 19금 놀이터이면서 식당.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이라는 실없는 유행가를 안주 삼아 술 한 잔에 세월을 퉁칠 수 있는 곳. 산삼 깍두기, 불로초 골뱅이무침, 봉황 알찜을 주메뉴로 하고 재료가 없으면 김치말이 국수에 막걸리를 강매하는 식당. 간혹 술 취한 김에 지리산 어디 즈음에서 우화등선을 꿈꿔볼 수도 있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지극한 도道를 텃밭에서 기른 상추에 쌈 싸 먹을 수 있는 곳.
월화수목은 식재료 수급에 총력을 다하고 금토일만 영업하는 곳. ‘먹고살 만’의 임계치를 절대로 넘어서지 않는 그런 밥집을 하고 싶었다. 아내는 망하려고 지리산 산신령에게 치성을 드리는 계획이라고 일갈했다. 밥집 이름은 자연히 김토일 식당이 되었다.
P.125~128
<혹등고래 한 마리>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혹등고래 한 마리가 비로 가득한 허공을 날고 있는 것이었다. 이따금 날개 같은 긴 가슴지느러미를 휘저으며 물박수를 한다. 그러다가 산더미 같은 그 몸이 솟구쳐 오르더니 허공중에서 쏟아지듯 쓰러진다. 바다가, 아니 허공이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물인지 비인지 고래가 만든 포말 속으로 나는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간다.
거대한 혹등고래가 낸 물의 길을 따라, 꼬리지느러미를 따라 나는 내려간다. 조금씩 몸을 조여오는 압력을 느끼며 고래의 유영을 넋을 놓고 쳐다본다. 고래의 움직임은 시간을 두 배, 세 배로 늘린 듯 아주 느리게 물속을 미끄러져 날아다닌다. 물 표면을 투과한 햇빛이 고래의 몸에 햇무늬를 만드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짙푸른 심해로 장면이 바뀐다. 고래는 꼬리지느러미를 위아래로 흔들며 걷는 것 같기도 했고, 가슴지느러미를 활짝 펴고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휘파람 같은 길고 가는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다가오다가, 고래는 심해의 짙푸른 어둠을, 그 어둠 속에 박혀 있는 나를 꿀꺽 소리도 없이 한입에 삼킨다.
P.158
<잃어버린 반 걸음>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는데 찾을 수밖에, 해결할 수밖에, 만날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을 나는 인연이라 부른다. 특히 남녀 사이의 인연은 콩깍지를 동반하는데 사리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물의 형체마저 미화시키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다만 혹독한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평생을 콩깍지를 쓴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것과 인연이란 찾는 게 아니라 순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늘도 여전히 아내는 내 옆에 껌딱지처럼 착 달라붙어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며 일관되게 찾아다닌다.
아내여, 나도 가끔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려다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애타게 찾지는 말고 어쩌다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느닷없이 찾아주기 바란다.
P.173~176
<나는, 조용히, 쌀을 계량해, 글로, 집을, 짓는다>
밥을 안쳐놓고 아직도 꿈과 생시 어디 즈음에서 헤매고 있는 몸을 책상 앞에 앉힌다. 노트북을 켠다. 어제 다 마무리 짓지 못한 잡문을 읽어본다. 멍하니 노트북이 나를 읽어 내리는 사이, 밥통의 알림이 들린다.
쿠쿠가 고화력으로 맛있는 백미의 취사를 시작한단다.
비문이나 오문 그리고 더듬거림 없는 깔끔한 낭독이다. 잠시 후에 밥통은 뜸들이기에 들어갈 것이고, 아직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 내 잡스러운 글은 뜸만 들이다 끝날지도 모른다. 나도 고슬고슬한 문장을 갖고 싶다. 이마트나 홈플러스에서 장을 보듯 잘 지어진 문장들을 인터넷으로 자주 주문한다. 장바구니에 가득한 책들을 덜었다가 다시 담았다가를 반복한다. 어차피 내 문장이 아니잖나. 내 문장은 내가 지어 먹어야지.
[…] 조미료 따위, 안 쓰기로 한다. 그러나 없으면 맛이 나나, 맛이. 나는 천연조미료를 많이 가지고 있으나 활용할 줄을 모른다. ‘처럼’을 채를 칠까, ‘같이’를 나박 썰까. 이 문장은 부사가 너무 많아 칼칼하고, 저 문장은 형용사를 지나치게 뿌려 느끼한데. 아, 또 이 단락은 너무 길어져 오버 쿡 돼버렸군! 이러다 언제 이 잡문을 마무리 짓.는.다?
P.215~216
<벚꽃 지고 명자꽃 필 무렵>
늦봄, 얼마나 철저하게 비워야 허虛와 공空을 겹쳐 쓸 수 있을까. 그 허공중에 떼로 핀 찔레꽃들이 흔들린다. 살랑살랑 바람을 타면서 허와 공에 연분홍으로 환칠을 해댄다. 환칠 속으로 노란 나비 한 마리 날아간다. 찔레향보다 얇은 날개가 바람에 쓸리다가 다시 제 갈 길로 방향을 잡는다. 찔레향 속으로 사라진다.
이내 바람은 굵어져서 감나무 이파리에서 차르락차르락 소리로 일어난다. 오디가 익어가기 시작하는 뽕나무 이파리들이 박수를 친다. 허공의 한 어깨가 들썩인다. 어깨를 타고 올라온 바람이 풍경의 머리채를 쥐고 흔든다. 쏴아아 쏴아, 흩날린다.
P.219~220
사방이 삥 둘러 산이고 산 너머에 산이라서 산에 기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이곳에서 사람이나 나무나 새들은 모두 초록이 본적이다. 사람들은 초록 피를 우려 마시는 차 나무를 키우고 초록의 즙액을 받아 마시는 매실을 따고, 초록의 영토에서 산을 이고 지고 계절의 푸른 피를 빨아 마시며 살아간다. 봄의 끝자리에서 그 피는 좀 더 짙어져 이 본적지에서 지천으로 꿀럭거린다. 사람이나 나무나 새들은 하나같이 이곳에 핏줄에 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피를 돌려서 사람은 명줄을 잇고, 나무는 열매를 매달고, 새들은 열매를 쪼아 먹고 나무를 옮겨 심어 초록을 퍼뜨린다.
저자소개
2014년 5월, 무작정 경남 하동의 화개로 스며들었다. 그전, 서울의 생활은 밥벌이에서 자유롭지 못한 뭇 직장인과 다를 바 없었다. 문득, 지겨웠다. 전반전이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별다른 작전타임 없이 이곳 화개에서 생의 후반전 휘슬을 울렸다. 서울에서 하던 제 버릇으로 아이들을 위해 ‘꿈지락’이라는 공부방을 열었다. 공부방은 두 사람 먹고살기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 틈에 어쭙잖은 문장과 느낌표와 쉼표와 마침표들을 채워 넣었다. 나에게는 이렇다 할 이력이 없다. 있어도 없다. 전반전에 제대로 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화개 생활이 만들어준 그 여유 공간에 문장들을 채워 넣을 작정이다. ‘바람과 햇볕의 집’을 바탕으로 부디 득점이 쌓이기를 바란다.
서평
“그 준비와 계획을 설계도면은 밀리미터 단위의 수치로 꼼꼼하게 담고 있었다.”
“계절마다 빛이 들고 나는 각도와 시간까지 계산했다. 거기에 맞춰 창의 크기와 높낮이를 살피고 거실의 구조를 결정했다.”
시골 언덕에 지은 ‘모던하우스’
보통 그렇게 생각한다. 서울을, 도시를 떠나 경치 좋고 한적한 지방에 내려가 새롭게 터를 잡고 정착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농사를 짓거나 공방 등의 자영업으로 생계를 꾸리고, 집 또한 그에 적합하게 낡은 농가를 얻어 수리하거나 널찍하게 새로 지어 살 거라고.
저자의 집 <삼연재>는, 그리고 그들의 일상은 전혀 다르다.
지리산 자락 화개. 국내뿐 아니라 가히 세계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꽃길과 물길이 펼쳐진 쌍계사 맞은편 언덕 안쪽. 그런 곳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너무도 예상 밖의 집인데 그것이 도리어 그림같이 어울린다. 집만 떼어내서 서울 한복판이나 저기 어디 비벌리힐즈에 가져다 놓아도 전혀 이질감 없이 어울릴 정말이지 ‘모던’한 집이다.
그 집에는 논밭은 물론 화분 하나만한 텃밭도 없지만, 말도 필요 없는 지리산의 풍광이 차고 넘친다. 부부는 그 지연 속에서 주변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살지만, 자기 스타일의 공부방을 운영하고 또 출퇴근을 하며 오롯이 자기주도적이고 여유로운 일상을 산다.
지리산 시골 골짜기에 ‘모던하우스’를 짓고 ‘모던라이프’를 살고 있는 것이다.
바람과 햇볕까지 계산한 집
돈 없이 짓는 집이라 저자 본인이 설계부터 시공까지 직접 시행했다. 그럴 경우 보통은 의도치 않게 오버하기가 쉬운데, 저자의 집은 주변을 헤치지 않게 담백하고 심플하면서도 너무 근사해 감탄사를 터뜨리게 만든다.
집을 짓겠다고 마음먹고 구할 수 있는 모든 책을 다 뒤져보았지만 어디서도 원하는 도움을 찾을 수 없던 저자는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설계프로그램을 앞에 두고 집을 짓고 허물고를 수십번 수백번 반복했다.
창을 하나 그릴 때도 동지와 하지의 햇볕의 깊이를 계산하고, 계절에 따른 바람의 길을 고려해 그 크기와 위치를 잡았다. 그뿐이랴. 심플한 외관에 동화되어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는 대청, 기분 좋게 어수선하고 적당히 깔끔한 마당, 그 자체로 그림이 된 통서재, 구름다리인데 바위 같은 실내계단, 동선을 두 배로 확보했지만 숨겨진 부엌, 지리산을 보며 반신욕을 즐길 수 있는 욕실, 온돌에 지질 수 있는 아내방, 창고가 넓은 침대가 되는 2층 서재방 등등. 마당의 돌 하나도 다 계획하고 계산했는데, 또 그 모든 것이 예쁘고 멋지다.
그 독특한 아름다움과 감동적인 정교함을 인정받아 202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국토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글로 지은 집
이 모든 계획과 과정이 책에 담겼다. 서울을 떠나 화개로 내려와 맨몸으로 정착을 시작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집을 짓고 사는, 일상이 된 화개살이를 기록했다.
책 또한 집을 짓듯이 썼다. 아니, 글을 쓰듯이 집을 지었다는 게 맞겠다. 설계프로그램으로 수십번 수백번 집을 짓고 허물었던 것처럼,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수십번 수백번 고르고 다듬었다. 단 한 문장도 시가 아닌 문장이 없다. 감각적이고 톡톡 튀는 요즘 에세이에 조금 식상해진 독자들에게 오랜만에 천천히 곱씹으며 아껴 읽고 싶은 책이 되어줄 것이다. 시로 지은 에세이까.
사진은 또 어떤가. 그림 같은 집과 그런 집을 둘러싼 주변 풍광이 근사하니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러도 다 작품이 되는데, 저자는 거기에 시인의 마음을 더했다. 그래서 어떤 사진은 수묵화 같고, 수채화 같고, 유화 같고, 정물화 같고, 추상화 같고…….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눈길을 잡아두는 사진과 마음을 멈칫하게 만드는 문장을 만나게 될 것이다.
“계절마다 빛이 들고 나는 각도와 시간까지 계산했다. 거기에 맞춰 창의 크기와 높낮이를 살피고 거실의 구조를 결정했다.”
시골 언덕에 지은 ‘모던하우스’
보통 그렇게 생각한다. 서울을, 도시를 떠나 경치 좋고 한적한 지방에 내려가 새롭게 터를 잡고 정착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농사를 짓거나 공방 등의 자영업으로 생계를 꾸리고, 집 또한 그에 적합하게 낡은 농가를 얻어 수리하거나 널찍하게 새로 지어 살 거라고.
저자의 집 <삼연재>는, 그리고 그들의 일상은 전혀 다르다.
지리산 자락 화개. 국내뿐 아니라 가히 세계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꽃길과 물길이 펼쳐진 쌍계사 맞은편 언덕 안쪽. 그런 곳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너무도 예상 밖의 집인데 그것이 도리어 그림같이 어울린다. 집만 떼어내서 서울 한복판이나 저기 어디 비벌리힐즈에 가져다 놓아도 전혀 이질감 없이 어울릴 정말이지 ‘모던’한 집이다.
그 집에는 논밭은 물론 화분 하나만한 텃밭도 없지만, 말도 필요 없는 지리산의 풍광이 차고 넘친다. 부부는 그 지연 속에서 주변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살지만, 자기 스타일의 공부방을 운영하고 또 출퇴근을 하며 오롯이 자기주도적이고 여유로운 일상을 산다.
지리산 시골 골짜기에 ‘모던하우스’를 짓고 ‘모던라이프’를 살고 있는 것이다.
바람과 햇볕까지 계산한 집
돈 없이 짓는 집이라 저자 본인이 설계부터 시공까지 직접 시행했다. 그럴 경우 보통은 의도치 않게 오버하기가 쉬운데, 저자의 집은 주변을 헤치지 않게 담백하고 심플하면서도 너무 근사해 감탄사를 터뜨리게 만든다.
집을 짓겠다고 마음먹고 구할 수 있는 모든 책을 다 뒤져보았지만 어디서도 원하는 도움을 찾을 수 없던 저자는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설계프로그램을 앞에 두고 집을 짓고 허물고를 수십번 수백번 반복했다.
창을 하나 그릴 때도 동지와 하지의 햇볕의 깊이를 계산하고, 계절에 따른 바람의 길을 고려해 그 크기와 위치를 잡았다. 그뿐이랴. 심플한 외관에 동화되어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는 대청, 기분 좋게 어수선하고 적당히 깔끔한 마당, 그 자체로 그림이 된 통서재, 구름다리인데 바위 같은 실내계단, 동선을 두 배로 확보했지만 숨겨진 부엌, 지리산을 보며 반신욕을 즐길 수 있는 욕실, 온돌에 지질 수 있는 아내방, 창고가 넓은 침대가 되는 2층 서재방 등등. 마당의 돌 하나도 다 계획하고 계산했는데, 또 그 모든 것이 예쁘고 멋지다.
그 독특한 아름다움과 감동적인 정교함을 인정받아 202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국토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글로 지은 집
이 모든 계획과 과정이 책에 담겼다. 서울을 떠나 화개로 내려와 맨몸으로 정착을 시작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집을 짓고 사는, 일상이 된 화개살이를 기록했다.
책 또한 집을 짓듯이 썼다. 아니, 글을 쓰듯이 집을 지었다는 게 맞겠다. 설계프로그램으로 수십번 수백번 집을 짓고 허물었던 것처럼,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수십번 수백번 고르고 다듬었다. 단 한 문장도 시가 아닌 문장이 없다. 감각적이고 톡톡 튀는 요즘 에세이에 조금 식상해진 독자들에게 오랜만에 천천히 곱씹으며 아껴 읽고 싶은 책이 되어줄 것이다. 시로 지은 에세이까.
사진은 또 어떤가. 그림 같은 집과 그런 집을 둘러싼 주변 풍광이 근사하니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러도 다 작품이 되는데, 저자는 거기에 시인의 마음을 더했다. 그래서 어떤 사진은 수묵화 같고, 수채화 같고, 유화 같고, 정물화 같고, 추상화 같고…….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눈길을 잡아두는 사진과 마음을 멈칫하게 만드는 문장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