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가해자들 : 정소현 소설
총서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031}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01001
가격
₩ 15,000
ISBN
9791190885362
페이지
151 p.
판형
104 X 182 mm
커버
Book
책 소개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서른한 번째 소설선. 2008년 「양장 제본서 전기」로 등단한 이후 치밀한 구성과 밀도 높은 문장 안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낸 작가의 이번 신작은 2020년 [현대문학] 1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것이다. 어느 날부터 아파트 1112호에 사는 여자에게 들려오는 소음, 항의하듯 끊임없이 울려대는 위층 집 인터폰 소리, 응징을 위한 소음이 불러온 아래층과의 갈등, 결국 소음 전쟁이 되어버린 아파트 단지……. ‘층간소음’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고통을 내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목차
가해자들 009
작품해설 138
작가의 말 151
작품해설 138
작가의 말 151
본문발췌
P.14
“아파트에서 소리 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집에만 있으니까 예민해지는 거라고. 종일 누워 놀지만 말고 나가서 운동을 좀 해봐. 이제 몸도 괜찮아졌잖아. 그러면 저런 소리 안 듣고 살 것 같은데?”
P.38
형님은 며느리에게 인색했다. 그 성격 좋고 성품 좋은 애한테 칭찬 한 번 한 적이 없고 만날 뒤에서 깔끔치 못하다, 덜렁거린다 타박만 했다. 게다가 뒤에서 윤서와 민서를 차별하는 것 같다며 도끼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환하게 웃던 며느리는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웃음과 생기를 잃고 어두워졌다. 그런 며느리에게 ‘나는 너 안 믿는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해댔으니 병이 나는 것이 당연했고, 옆에서 지켜본 애들도 형님을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P.69
“엄마가 오죽 괴로웠으면 그랬겠어요? 왜 엄마 입장에서 한 번도 생각을 안 하시는 거예요? 엄마 머리 위에서 울리는 게 위층 발소리뿐인 것 같으세요? 옛날에 엄마를 괴롭혔다는 위층 할머니네 소리까지 한꺼번에 몰려와서 머리를 밟아대는 것 같아 너무 괴롭대요.”
P.90~91
성빈이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달래야 할 것이 아니라 윗집을 공격하는 좋은 무기일 뿐이었다. 윗집과 내가 만들어내는 소음들은 성빈이를 불편하고 아프게 했다. (……)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을 우연히 보고 경악을 했다. 눈물범벅이 된 새빨간 성빈이의 얼굴에 대비되는 밝게 웃는 얼굴의 나. 성빈이와 나를 해친 것은 갑자기 나타난 위층 여자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었다. 더 망가지기 전에 나는 아무래도 이사를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P.112
나는 집에 혼자 남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엄마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외로움이 만들어낸 실체도 없는 소리가 엄마의 삶을 잡아먹었다. 나도 머지않아 그것에 먹힐 거다. 옆집 아줌마는 무슨 소리를 듣는 건지 엄마처럼 계속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P.137
사람들은 이 일이 누가 중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둘 중의 하나가 떠나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한 번 트인 귀는 막히지 않고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으며 상한 마음과 망가진 관계는 고치기 힘들다. 얼른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당신들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P.90
싸움의 가장 큰 피해자가 성빈이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여자와 싸우는 동안 나는 성빈이의 존재를 잠시 잊었다. 성빈이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달래야 할 것이 아니라 윗집을 공격하는좋은 무기일 뿐이었다. 윗집과 내가 만들어내는 소음들은 성빈이를 불편하고 아프게 했다. 그럴수록 성빈이는 더 크게 울었고 나는 그 울음이 윗집을 힘들게 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울음소리가 크게 전달되도록 소파에 올라서서 성빈이를 달랬다.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을 우연히 보고 경악을 했다. 눈물범벅이 된 새빨간 성빈이의 얼굴에 대비되는 밝게 웃는 얼굴의 나. 성빈이와 나를 해친 것은 갑자기 나타난 위층 여자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었다. 더 망가지기 전에 나는 아무래도 이사를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P.112
나는 집에 혼자 남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엄마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외로움이 만들어낸 실체도 없는 소리가 엄마의 삶을 잡아먹었다. 나도 머지않아 그것에 먹힐 거다. 옆집 아줌마는 무슨 소리를 듣는 건지 엄마처럼 계속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P.151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가해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이 무서워 그곳을 영영 떠났다.
- 작가의 말
“아파트에서 소리 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집에만 있으니까 예민해지는 거라고. 종일 누워 놀지만 말고 나가서 운동을 좀 해봐. 이제 몸도 괜찮아졌잖아. 그러면 저런 소리 안 듣고 살 것 같은데?”
P.38
형님은 며느리에게 인색했다. 그 성격 좋고 성품 좋은 애한테 칭찬 한 번 한 적이 없고 만날 뒤에서 깔끔치 못하다, 덜렁거린다 타박만 했다. 게다가 뒤에서 윤서와 민서를 차별하는 것 같다며 도끼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환하게 웃던 며느리는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웃음과 생기를 잃고 어두워졌다. 그런 며느리에게 ‘나는 너 안 믿는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해댔으니 병이 나는 것이 당연했고, 옆에서 지켜본 애들도 형님을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P.69
“엄마가 오죽 괴로웠으면 그랬겠어요? 왜 엄마 입장에서 한 번도 생각을 안 하시는 거예요? 엄마 머리 위에서 울리는 게 위층 발소리뿐인 것 같으세요? 옛날에 엄마를 괴롭혔다는 위층 할머니네 소리까지 한꺼번에 몰려와서 머리를 밟아대는 것 같아 너무 괴롭대요.”
P.90~91
성빈이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달래야 할 것이 아니라 윗집을 공격하는 좋은 무기일 뿐이었다. 윗집과 내가 만들어내는 소음들은 성빈이를 불편하고 아프게 했다. (……)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을 우연히 보고 경악을 했다. 눈물범벅이 된 새빨간 성빈이의 얼굴에 대비되는 밝게 웃는 얼굴의 나. 성빈이와 나를 해친 것은 갑자기 나타난 위층 여자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었다. 더 망가지기 전에 나는 아무래도 이사를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P.112
나는 집에 혼자 남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엄마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외로움이 만들어낸 실체도 없는 소리가 엄마의 삶을 잡아먹었다. 나도 머지않아 그것에 먹힐 거다. 옆집 아줌마는 무슨 소리를 듣는 건지 엄마처럼 계속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P.137
사람들은 이 일이 누가 중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둘 중의 하나가 떠나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한 번 트인 귀는 막히지 않고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으며 상한 마음과 망가진 관계는 고치기 힘들다. 얼른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당신들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P.90
싸움의 가장 큰 피해자가 성빈이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여자와 싸우는 동안 나는 성빈이의 존재를 잠시 잊었다. 성빈이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달래야 할 것이 아니라 윗집을 공격하는좋은 무기일 뿐이었다. 윗집과 내가 만들어내는 소음들은 성빈이를 불편하고 아프게 했다. 그럴수록 성빈이는 더 크게 울었고 나는 그 울음이 윗집을 힘들게 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울음소리가 크게 전달되도록 소파에 올라서서 성빈이를 달랬다.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을 우연히 보고 경악을 했다. 눈물범벅이 된 새빨간 성빈이의 얼굴에 대비되는 밝게 웃는 얼굴의 나. 성빈이와 나를 해친 것은 갑자기 나타난 위층 여자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었다. 더 망가지기 전에 나는 아무래도 이사를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P.112
나는 집에 혼자 남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엄마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외로움이 만들어낸 실체도 없는 소리가 엄마의 삶을 잡아먹었다. 나도 머지않아 그것에 먹힐 거다. 옆집 아줌마는 무슨 소리를 듣는 건지 엄마처럼 계속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P.151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가해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이 무서워 그곳을 영영 떠났다.
- 작가의 말
저자소개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양장 제본서 전기」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실수하는 인간](개정판 [너를 닮은 사람]), [품위 있는 삶], 중편 소설 [가해자들] 등이 있다. 젊은작가상, 김준성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 2022년 현대문학상, 2019년 한국일보문학상, 2013년 김준성문학상(21세기문학상, 이수문학상),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서평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서른한 번째 책 출간!
이 책에 대하여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서른한 번째 소설선, 정소현의 [가해자들]이 출간되었다. 2008년 「양장 제본서 전기」로 등단 이후 밀도 높은 문장과 구성으로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해낸 작가의 이번 신작은 2020년 [현대문학] 1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것이다. ‘층간소음’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고통을 내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고통인가?
당신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비정상적인 부모 아래 상처 입고 자라난 아이를 통해 가족이라는 불운의 근원을 들여다본 첫 단편집 [실수하는 인간]. 폭발 사고로 친구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화자 등 다양한 죽음 앞에서 삶을 둘러싼 현실 세계를 생생하게 목도하는 인물들을 그린 소설집 [품위 있는 삶]. 등단 이후 꾸준히 삶의 어둡고 적나라한 민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친숙한 소재들에 기발한 상상력을 입혀 사회와 인간의 문제를 통찰력 있게 풀어왔던 정소현이 신작 [가해자들]을 내놓았다. 현대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층간소음’이라는 키워드 아래, 이웃 주민들이 가진 각자의 아픔과 고통들이 아파트 단지를 넘어 현실 세계까지 점점 확장되고 있다.
이 소설은 아파트 층간소음에서 시작한다. 혹자는 층간소음을 이웃끼리 서로 이해하고 참으면 될 일이라 쉽게 이야기하지만 천장과 바닥과 벽을 공유하는 공동주택의 경우, 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단순한 소음으로 시작한 문제는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고 심각한 갈등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평화로워 보이던 아파트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주민들은 일제히 1111호 여자를 용의자로 확신하고, 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 말한다. 힘들게 재혼가정을 꾸린 1111호 여자는 순조롭게 안정적인 가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듯 보였으나 절대적인 신뢰를 할 수 없다 끊임없이 말하는 시어머니의 날선 이야기에 결국 마음의 병이 깊어만 간다. 게다 시어머니와 절친한 사이이던 1211호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음은 몸과 마음이 지친 여자를 더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소리에 집착하게 된 1111호 여자는 이웃들과 계속 불화를 일으키고 결국에는 시어머니와 남편, 아들까지 모두 떠나보내고, 결국에는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주던 딸마저도 잃게 된다.
1112호 여자는 오래 거주한 자신의 집에서 언제부터인가 미세한 소음을 감지하고, 그 소리가 1111호에서 들려오는 것이란 걸 알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집을 위협하는 소리가 아닌 것을 알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결국 그 화살은 서로를 겨냥하게 되고 1112호는 평온하던 일상을 잃고 그녀의 삶은 의도치 않게 파국으로 치닫는다.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벽을 사이에 둔 주거 공간 속에서 현대인들의 고독한 외침이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 층간소음으로 발전된 세계에서 가해자이며 피해자인 여러 화자들이 정신적으로 파멸되어가는 섬뜩한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증상-원인에 대해, 만약 타당한 대책을 제시함으로써 공존이라는 ‘목표’를 이룬다고 가정한다면, 문제는 해결되고 고통은 종결될 것인가. (……) 이 소설은 그보다 먼저, 모든 구성원들이 일정한 의무와 책임 속에서 서로 이해와 배려를 공정하게 주고받기로 합의하고 또 실천한다면 각자의 고통은 실로 사라질 것인가를 더 오래 생각한 것 같다. (……) 윤리적 책임으로 완수될 법한 해결책에는 공정과 균형이 필요하지만 공정과 균형으로 고통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고통은 편파적이고 고통은 부당한 것이다.
-백지은(문학평론가)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월간 <핀 소설>, 그 서른한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여섯 명이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매월 내놓는 월간 핀이기도 하다. 매월 25일 발간할 예정인 후속 편들은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한국 출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일종의 ‘샐러리북’ 개념이다.
001부터 006은 1971년에서 1973년 사이 출생하고, 1990년 후반부터 2000년 사이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의 든든한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렸고, 007부터 012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출생하고, 2000년대 중후반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013부터 018은 지금의 한국 문학의 발전을 이끈 중추적인 역할을 한 1950년대 중후반부터 1960년대 사이 출생 작가,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등단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려졌으며, 019부터 024까지는 새로운 한국 문학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패기 있는 1980년대생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진행되었다.
세대별로 진행되던 핀 소설은 025~030에 들어서서는 장르소설이라는 특징 아래 묶여 출간되었고, 031~036은 절정의 문학을 꽃피우고 있는 1970년대 중후반 출생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현대문학 × 아티스트 박민준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재구성된 독창적인 소설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소설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소설과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박민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동 대학원 회화과 졸업, 동경예술대학교 대학원 재료기법학과 연구생 과정 수료. 서울시립미술관, 갤러리현대 등 국내외 다수의 기관 및 장소에서 전시. [라포르 서커스]를 집필한 소설가로서도 활동 중. 자신이 상상해낸 새로운 이야기에 신화적 이미지 혹은 역사적 일화를 얹음으로써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그러나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은’ 독창적인 화면을 연출 중.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서른한 번째 책 출간!
이 책에 대하여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서른한 번째 소설선, 정소현의 [가해자들]이 출간되었다. 2008년 「양장 제본서 전기」로 등단 이후 밀도 높은 문장과 구성으로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해낸 작가의 이번 신작은 2020년 [현대문학] 1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것이다. ‘층간소음’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고통을 내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고통인가?
당신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비정상적인 부모 아래 상처 입고 자라난 아이를 통해 가족이라는 불운의 근원을 들여다본 첫 단편집 [실수하는 인간]. 폭발 사고로 친구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화자 등 다양한 죽음 앞에서 삶을 둘러싼 현실 세계를 생생하게 목도하는 인물들을 그린 소설집 [품위 있는 삶]. 등단 이후 꾸준히 삶의 어둡고 적나라한 민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친숙한 소재들에 기발한 상상력을 입혀 사회와 인간의 문제를 통찰력 있게 풀어왔던 정소현이 신작 [가해자들]을 내놓았다. 현대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층간소음’이라는 키워드 아래, 이웃 주민들이 가진 각자의 아픔과 고통들이 아파트 단지를 넘어 현실 세계까지 점점 확장되고 있다.
이 소설은 아파트 층간소음에서 시작한다. 혹자는 층간소음을 이웃끼리 서로 이해하고 참으면 될 일이라 쉽게 이야기하지만 천장과 바닥과 벽을 공유하는 공동주택의 경우, 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단순한 소음으로 시작한 문제는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고 심각한 갈등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평화로워 보이던 아파트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주민들은 일제히 1111호 여자를 용의자로 확신하고, 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 말한다. 힘들게 재혼가정을 꾸린 1111호 여자는 순조롭게 안정적인 가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듯 보였으나 절대적인 신뢰를 할 수 없다 끊임없이 말하는 시어머니의 날선 이야기에 결국 마음의 병이 깊어만 간다. 게다 시어머니와 절친한 사이이던 1211호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음은 몸과 마음이 지친 여자를 더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소리에 집착하게 된 1111호 여자는 이웃들과 계속 불화를 일으키고 결국에는 시어머니와 남편, 아들까지 모두 떠나보내고, 결국에는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주던 딸마저도 잃게 된다.
1112호 여자는 오래 거주한 자신의 집에서 언제부터인가 미세한 소음을 감지하고, 그 소리가 1111호에서 들려오는 것이란 걸 알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집을 위협하는 소리가 아닌 것을 알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결국 그 화살은 서로를 겨냥하게 되고 1112호는 평온하던 일상을 잃고 그녀의 삶은 의도치 않게 파국으로 치닫는다.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벽을 사이에 둔 주거 공간 속에서 현대인들의 고독한 외침이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 층간소음으로 발전된 세계에서 가해자이며 피해자인 여러 화자들이 정신적으로 파멸되어가는 섬뜩한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증상-원인에 대해, 만약 타당한 대책을 제시함으로써 공존이라는 ‘목표’를 이룬다고 가정한다면, 문제는 해결되고 고통은 종결될 것인가. (……) 이 소설은 그보다 먼저, 모든 구성원들이 일정한 의무와 책임 속에서 서로 이해와 배려를 공정하게 주고받기로 합의하고 또 실천한다면 각자의 고통은 실로 사라질 것인가를 더 오래 생각한 것 같다. (……) 윤리적 책임으로 완수될 법한 해결책에는 공정과 균형이 필요하지만 공정과 균형으로 고통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고통은 편파적이고 고통은 부당한 것이다.
-백지은(문학평론가)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월간 <핀 소설>, 그 서른한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여섯 명이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매월 내놓는 월간 핀이기도 하다. 매월 25일 발간할 예정인 후속 편들은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한국 출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일종의 ‘샐러리북’ 개념이다.
001부터 006은 1971년에서 1973년 사이 출생하고, 1990년 후반부터 2000년 사이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의 든든한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렸고, 007부터 012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출생하고, 2000년대 중후반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013부터 018은 지금의 한국 문학의 발전을 이끈 중추적인 역할을 한 1950년대 중후반부터 1960년대 사이 출생 작가,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등단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려졌으며, 019부터 024까지는 새로운 한국 문학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패기 있는 1980년대생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진행되었다.
세대별로 진행되던 핀 소설은 025~030에 들어서서는 장르소설이라는 특징 아래 묶여 출간되었고, 031~036은 절정의 문학을 꽃피우고 있는 1970년대 중후반 출생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현대문학 × 아티스트 박민준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재구성된 독창적인 소설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소설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소설과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박민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동 대학원 회화과 졸업, 동경예술대학교 대학원 재료기법학과 연구생 과정 수료. 서울시립미술관, 갤러리현대 등 국내외 다수의 기관 및 장소에서 전시. [라포르 서커스]를 집필한 소설가로서도 활동 중. 자신이 상상해낸 새로운 이야기에 신화적 이미지 혹은 역사적 일화를 얹음으로써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그러나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은’ 독창적인 화면을 연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