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사랑의 이해 : 이혁진 장편소설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190419
가격
₩ 15,000
ISBN
9788937439933
페이지
353 p.
판형
135 X 205 mm
커버
Book
책 소개
“두 사람은 어깨를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곧 휩쓸려 갈 해변의 모래 더미처럼.” 배경은 은행. 시간은 현재. 인물은 상수, 수영, 종현, 미경. 네 사람은 지금 사내연애 중이다. 종횡으로 거침없이 교환되는 눈빛과 감정들, 그리고 이어지는 연봉, 집안, 아파트, 자동차…… 누군가에겐 스펙이고 누군가에겐 열등감과 자격지심의 원천일 자본의 표상에 붙들린 채 교환되지 못하는 진심과 욕망들.
목차
사랑의 이해
작가의 말
작가의 말
본문발췌
“은행에서 일하면 돈맛을 모를 수가 없다. 얼마나 맵고 짠지, 또 달달하고 상큼한지. 창구에 앉아 있으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맡기러 온 사람과 꾸러 온 사람이 한눈에 꿰뚫려 보였다.”
“서툰 왈츠를 추는 한 쌍처럼, 미경이 물러서면 상수도 물러섰다. 미경이 망설이다 다시 다가서면 상수 역시 망설이다 다시 다가섰다. 서로 다정하게 바라보면서도 주위를 맴돌고 조금씩 엇갈렸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각자의 이유로 서로 발을 밟지는 않은 채 이어지고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는 춤을 추는 동안 시간은 흘렀고 심사 결과가 나왔다.”
“예쁘고 연약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변하는지, 그게 궁금한 거지. 시간이 지나면 이 목걸이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지 않을까.”
“끌리면 끌어와야지, 끌려가서는 안 됐다.”
“망설였다. 관계를 더 발전시킬지 말지. 수영이 텔러, 계약직 창구 직원이라는 것, 정확히는 모르지만 변두리 어느 대학교를 나온 듯한 것, 다 걸렸다. 일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그 두 가지가 상수 자신의 밑천이었기 때문에, 상수가 세상에서 지금까지 따낸 전리품이자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그 위력과 차별을 나날이 실감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행복에는 늘 거짓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기 마련인 듯했다. 아니, 어쩌면 거짓은 조명일지도 몰랐다. 행복이라는 마네킹을 비추는 밝고 좁은 조명.”
이야기를 써 나가면서 사랑이 다른 감정과 다르다면 결국 우리를 벌거벗게 만들기 때문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랑의 징후인 두려움과 떨림도, 보상인 환희와 자유로움도 그래서 생겨나는 것 아닐까, 하고.
같은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에곤 실레의 나체화처럼 벌거벗은 우리는 대체로 헐벗었고 뒤틀려 있기 마련이니까. 벌거벗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벌거벗은 상대방을 지켜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세심하게 맞추고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이 별것도 아닌 일을 왜그때는 못했을까?
미경은 웃었다. ˝괜찮아. 친구도 일부러 이렇게 펴기도 하고 구부리기도 할 수 있게 한 거거든. 걔 작업 테마야. 이렇게 100개를 만들어 100명에게 가면 10년 뒤, 20년 뒤 각각 어떤 모습일지, 예쁘고 연약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 어떻게 변하는지, 그게 궁금한 거지. 시간이 지나면 이 목걸이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다고.˝
수영은 짧은 탄성을 터뜨렸다. ˝멋져요, 정말 괜찮은 생 각인 거 같아요. 섬세하면서 담대하고, 요만한 걸 만들어 서 요렇게 걸어 놓고 애지중지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한테 내놓는 거잖아요. 세상에 던지는 거잖아요.˝
다들 개성, 특색, 자기만의 어떤 것이나 남들과는 다른, 하고 말들 했다. 하지만 상상하는 성공과 행복의 장면은 우스꽝스러울 만큼 엇비슷했다. 어차피 같은 목적지라면 왜 굳이 험한 길을 택하거나 그런 길을 택한 척 가식을떨어야 할까. 검증된, 효율적이고 안전한 궤도를 놔두고..
행복에는 늘 거짓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기 마련인 듯했다. 아니, 어쩌면 거짓은 조명일지도 몰랐다. 행복이라는마네킹을 비추는 밝고 좁은 조명.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도 외모로 칭찬이든 비하든 한두 마디씩은 지껄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한 마디도 여자의 얼굴이나 몸매를 평하지 않았다. 수영은 여자의 위세가 실감 났다. 여자의 시계나 가방보다 그 위세가 한번 가져 보고 싶었다. 이러쿵저러쿵 남 생긴 걸 두고 지껄이는 주둥이를 틀어막는 위세. 물론 그럴 수 없을 것이고 이번 생에서는 시계나 가방으로 만족하는 것이 고작이겠지만, 수영은 소주잔을 비우며 씁쓸히 웃었다.
아무리 날고기어 봤자 나처럼 유리 한 장이 바닥인 놈은 못 뛰어. 더높게 뛸수록 와장창 박살이 나니까. 굴러떨어지면 어디로굴러떨어질지 환히 보여서, 서 있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니까. 콘크리트 바닥인 애들은 달라. 걔네들한테는 뛰든 말든 하고 싶고 말고의 문제야. 뛰고 뛰다가 다싫어지면 관두고 딴 거 해도 돼.
술병이 모두 비었지만 창밖은 더욱 어둡고 고요하기만했다. 방 안에는 희미한 술냄새와 빗물 같은 눈물 냄새가 났다. 두 사람은 어깨를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곧 휩쓸려갈 해변의 모래 더미처럼.
P.33
같은 남자지만, 정말 남자들이란 어쩌면 이렇게 목적만 뚜렷하고 수단이라는 게 없을까?
P.83
줄 듯 줄듯할 수 있는 것은 지점장의 유력(有力) 때문이었고, 안 줄것을 알면서도 줄 듯 줄 듯할 때마다 입을 뻥긋거릴 수밖에 없는 것은 자신의 무력(無力) 때문이었다.
P.125
두 사람은 어깨를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곧 휩쓸려갈 해변의 모래 더미처럼.
P.133
결혼이, 함께 산다는 것이 단지 마음과 성격의 문제이기만 하면 되다니, 짜증이 나면서도 부러웠다.
P.148
행복에는 늘 거짓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기 마련인 듯했다. 아니, 어쩌면 거짓은 조명일지도 몰랐다. 행복이라는마네킹을 비추는 밝고 좁은 조명.
P.187
대놓고 부리는 것보다 겸손한 척 감출 때 사람들은 알아서 기기 마련이니까.
“서툰 왈츠를 추는 한 쌍처럼, 미경이 물러서면 상수도 물러섰다. 미경이 망설이다 다시 다가서면 상수 역시 망설이다 다시 다가섰다. 서로 다정하게 바라보면서도 주위를 맴돌고 조금씩 엇갈렸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각자의 이유로 서로 발을 밟지는 않은 채 이어지고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는 춤을 추는 동안 시간은 흘렀고 심사 결과가 나왔다.”
“예쁘고 연약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변하는지, 그게 궁금한 거지. 시간이 지나면 이 목걸이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지 않을까.”
“끌리면 끌어와야지, 끌려가서는 안 됐다.”
“망설였다. 관계를 더 발전시킬지 말지. 수영이 텔러, 계약직 창구 직원이라는 것, 정확히는 모르지만 변두리 어느 대학교를 나온 듯한 것, 다 걸렸다. 일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그 두 가지가 상수 자신의 밑천이었기 때문에, 상수가 세상에서 지금까지 따낸 전리품이자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그 위력과 차별을 나날이 실감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행복에는 늘 거짓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기 마련인 듯했다. 아니, 어쩌면 거짓은 조명일지도 몰랐다. 행복이라는 마네킹을 비추는 밝고 좁은 조명.”
이야기를 써 나가면서 사랑이 다른 감정과 다르다면 결국 우리를 벌거벗게 만들기 때문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랑의 징후인 두려움과 떨림도, 보상인 환희와 자유로움도 그래서 생겨나는 것 아닐까, 하고.
같은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에곤 실레의 나체화처럼 벌거벗은 우리는 대체로 헐벗었고 뒤틀려 있기 마련이니까. 벌거벗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벌거벗은 상대방을 지켜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세심하게 맞추고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이 별것도 아닌 일을 왜그때는 못했을까?
미경은 웃었다. ˝괜찮아. 친구도 일부러 이렇게 펴기도 하고 구부리기도 할 수 있게 한 거거든. 걔 작업 테마야. 이렇게 100개를 만들어 100명에게 가면 10년 뒤, 20년 뒤 각각 어떤 모습일지, 예쁘고 연약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 어떻게 변하는지, 그게 궁금한 거지. 시간이 지나면 이 목걸이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다고.˝
수영은 짧은 탄성을 터뜨렸다. ˝멋져요, 정말 괜찮은 생 각인 거 같아요. 섬세하면서 담대하고, 요만한 걸 만들어 서 요렇게 걸어 놓고 애지중지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한테 내놓는 거잖아요. 세상에 던지는 거잖아요.˝
다들 개성, 특색, 자기만의 어떤 것이나 남들과는 다른, 하고 말들 했다. 하지만 상상하는 성공과 행복의 장면은 우스꽝스러울 만큼 엇비슷했다. 어차피 같은 목적지라면 왜 굳이 험한 길을 택하거나 그런 길을 택한 척 가식을떨어야 할까. 검증된, 효율적이고 안전한 궤도를 놔두고..
행복에는 늘 거짓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기 마련인 듯했다. 아니, 어쩌면 거짓은 조명일지도 몰랐다. 행복이라는마네킹을 비추는 밝고 좁은 조명.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도 외모로 칭찬이든 비하든 한두 마디씩은 지껄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한 마디도 여자의 얼굴이나 몸매를 평하지 않았다. 수영은 여자의 위세가 실감 났다. 여자의 시계나 가방보다 그 위세가 한번 가져 보고 싶었다. 이러쿵저러쿵 남 생긴 걸 두고 지껄이는 주둥이를 틀어막는 위세. 물론 그럴 수 없을 것이고 이번 생에서는 시계나 가방으로 만족하는 것이 고작이겠지만, 수영은 소주잔을 비우며 씁쓸히 웃었다.
아무리 날고기어 봤자 나처럼 유리 한 장이 바닥인 놈은 못 뛰어. 더높게 뛸수록 와장창 박살이 나니까. 굴러떨어지면 어디로굴러떨어질지 환히 보여서, 서 있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니까. 콘크리트 바닥인 애들은 달라. 걔네들한테는 뛰든 말든 하고 싶고 말고의 문제야. 뛰고 뛰다가 다싫어지면 관두고 딴 거 해도 돼.
술병이 모두 비었지만 창밖은 더욱 어둡고 고요하기만했다. 방 안에는 희미한 술냄새와 빗물 같은 눈물 냄새가 났다. 두 사람은 어깨를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곧 휩쓸려갈 해변의 모래 더미처럼.
P.33
같은 남자지만, 정말 남자들이란 어쩌면 이렇게 목적만 뚜렷하고 수단이라는 게 없을까?
P.83
줄 듯 줄듯할 수 있는 것은 지점장의 유력(有力) 때문이었고, 안 줄것을 알면서도 줄 듯 줄 듯할 때마다 입을 뻥긋거릴 수밖에 없는 것은 자신의 무력(無力) 때문이었다.
P.125
두 사람은 어깨를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곧 휩쓸려갈 해변의 모래 더미처럼.
P.133
결혼이, 함께 산다는 것이 단지 마음과 성격의 문제이기만 하면 되다니, 짜증이 나면서도 부러웠다.
P.148
행복에는 늘 거짓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기 마련인 듯했다. 아니, 어쩌면 거짓은 조명일지도 몰랐다. 행복이라는마네킹을 비추는 밝고 좁은 조명.
P.187
대놓고 부리는 것보다 겸손한 척 감출 때 사람들은 알아서 기기 마련이니까.
저자소개
이혁진_2016년 장편소설 『누운 배』로 21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몰락한 조선업을 배경으로 회사라는 조직의 모순과 부조리를 핍진하게 묘사한 『누운 배』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섬세하게 포착한 사실주의적 작품으로 호평받았다.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GQ》, 조선소 등 다양한 곳에서 일했다. 지금은 소설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서평
“두 사람은 어깨를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곧 휩쓸려 갈 해변의 모래 더미처럼.”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 이혁진 연애소설
은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남녀의
언쿨하고 발칙한, 속물적이고 사실적인
사내 연애의 모든 것
이해(理解)와 이해(利害) 사이
2016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이혁진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사랑의 이해]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상수, 수영, 종현, 미경. 네 사람은 지금 사내연애 중이다. 종횡으로 거침없이 교환되는 눈빛과 감정들. 그리고 이어지는 연봉, 집안, 아파트, 자동차……. 누군가에겐 스펙이고 누군가에겐 자격지심의 원천일 자본의 표상에 붙들린 채 교환되지 못하는 진심과 욕망들. 이해(理解)하고 싶지만 이해(利害) 안에 갇힌 네 청춘의 사랑은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고 갈 데 없이 헤맨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자 작가의 데뷔작 [누운 배]가 회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회사라는 조직의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내는 작품이었다면 [사랑의 이해]는 회사로 표상되는 계급의 형상이 우리 인생 곳곳을, 무엇보다 사랑의 영역을 어떻게 구획 짓고 사랑의 행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소묘한다. 서로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관계이고 싶지만 누구보다 가장 치밀하게 서로의 이해관계를 따져 보게 되는 아이러니. 냉정과 열정은 영원히 불화하는 사랑의 이원론일까.
2019년, 사랑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
또는 이별할 때 우리가 침묵하는 것들
또 한 편의 사회파 소설로 한국 사회의 숨겨진 병폐가 드러나길 기대했던 독자들에게 이번 작품은 다소 의외라 할 만하다. 청춘 남녀의 연애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애야말로 감정과 자본, 이미지와 실체,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총탄 없는 전쟁터다. 연애할 때 인간은 어느 때보다 헐벗은 모습이 된다. 위선과 가식은 옷을 벗고 집착과 회한은 들러붙은 채 떨어지지 않는다.
회사 조직의 부조리를 묘사하는 냉정한 시선은 사랑하는 남녀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소설의 표면은 방황하는 연인들의 연애담이지만 그 이면은 설렘과 환희를 비롯해 자격지심, 열등감, 자존심, 질투, 시기심 등 사랑을 둘러싼 감정들, 즉 사랑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과 이별할 때 우리가 침묵하는 것들에 대한 재발견으로 가득하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연애의 생애 안에서 숨기고 싶지만 숨져지지 않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기란 조금도 어렵지 않다. [사랑의 이해]는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에 대한 가장 보통의 사랑론이다.
사랑도 환전이 되나요?
은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남녀의 언쿨하고 발칙한, 속물적이고 사실적인 사내 연애! 은행이란 공간은 말없이 존재하는 배경인 동시에 모든 말들의 배경이기도 하다. 교환가치를 바탕으로 선택이 이뤄지고 선택이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은행은 자본주의의 꽃이자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상징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랑도 환전이 되냐’는 농담 섞인 표현은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만 원한 건 아니었”던 주인공들이 보이는 물질과 사랑의 관계에 대한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 준다. [사랑의 이해]는 사랑의 감정을 비추는 조명인 동시에 사랑하는 우리 자신을 되비추는 하나의 거울이다. 들추고 비추고 되비추며 사랑의 지형도가 바뀌듯 사랑의 조건도 바뀌어 간다. [사랑의 이해]는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에 대한 가장 ‘물질적인’ 사랑론이다.
곧 휩쓸려 갈 해변의 모래 더미처럼.”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 이혁진 연애소설
은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남녀의
언쿨하고 발칙한, 속물적이고 사실적인
사내 연애의 모든 것
이해(理解)와 이해(利害) 사이
2016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이혁진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사랑의 이해]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상수, 수영, 종현, 미경. 네 사람은 지금 사내연애 중이다. 종횡으로 거침없이 교환되는 눈빛과 감정들. 그리고 이어지는 연봉, 집안, 아파트, 자동차……. 누군가에겐 스펙이고 누군가에겐 자격지심의 원천일 자본의 표상에 붙들린 채 교환되지 못하는 진심과 욕망들. 이해(理解)하고 싶지만 이해(利害) 안에 갇힌 네 청춘의 사랑은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고 갈 데 없이 헤맨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자 작가의 데뷔작 [누운 배]가 회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회사라는 조직의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내는 작품이었다면 [사랑의 이해]는 회사로 표상되는 계급의 형상이 우리 인생 곳곳을, 무엇보다 사랑의 영역을 어떻게 구획 짓고 사랑의 행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소묘한다. 서로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관계이고 싶지만 누구보다 가장 치밀하게 서로의 이해관계를 따져 보게 되는 아이러니. 냉정과 열정은 영원히 불화하는 사랑의 이원론일까.
2019년, 사랑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
또는 이별할 때 우리가 침묵하는 것들
또 한 편의 사회파 소설로 한국 사회의 숨겨진 병폐가 드러나길 기대했던 독자들에게 이번 작품은 다소 의외라 할 만하다. 청춘 남녀의 연애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애야말로 감정과 자본, 이미지와 실체,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총탄 없는 전쟁터다. 연애할 때 인간은 어느 때보다 헐벗은 모습이 된다. 위선과 가식은 옷을 벗고 집착과 회한은 들러붙은 채 떨어지지 않는다.
회사 조직의 부조리를 묘사하는 냉정한 시선은 사랑하는 남녀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소설의 표면은 방황하는 연인들의 연애담이지만 그 이면은 설렘과 환희를 비롯해 자격지심, 열등감, 자존심, 질투, 시기심 등 사랑을 둘러싼 감정들, 즉 사랑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과 이별할 때 우리가 침묵하는 것들에 대한 재발견으로 가득하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연애의 생애 안에서 숨기고 싶지만 숨져지지 않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기란 조금도 어렵지 않다. [사랑의 이해]는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에 대한 가장 보통의 사랑론이다.
사랑도 환전이 되나요?
은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남녀의 언쿨하고 발칙한, 속물적이고 사실적인 사내 연애! 은행이란 공간은 말없이 존재하는 배경인 동시에 모든 말들의 배경이기도 하다. 교환가치를 바탕으로 선택이 이뤄지고 선택이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은행은 자본주의의 꽃이자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상징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랑도 환전이 되냐’는 농담 섞인 표현은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만 원한 건 아니었”던 주인공들이 보이는 물질과 사랑의 관계에 대한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 준다. [사랑의 이해]는 사랑의 감정을 비추는 조명인 동시에 사랑하는 우리 자신을 되비추는 하나의 거울이다. 들추고 비추고 되비추며 사랑의 지형도가 바뀌듯 사랑의 조건도 바뀌어 간다. [사랑의 이해]는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에 대한 가장 ‘물질적인’ 사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