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 이순자 유고 산문집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20509
가격
₩ 15,000
ISBN
9791160808476
페이지
255 p.
판형
135 X 200 mm
커버
Book
책 소개
나이 듦과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생의 마지막까지 희망하고, 사랑하고, 살아가기 위해 온몸으로 분투했던 이순자 작가. 연민과 사랑, 희망과 위트를 잃지 않으며 자기 존엄을 품위 있게 지켜낸 이야기를 담은 유고 산문집. 그의 노트북에 남긴 시와 산문, 소설에는 생의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살아오면서도 자신과 이웃의 상처를 따스한 시선으로 품어낸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순자 작가는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으며, 20여 년 넘게 호스피스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황혼 이혼 후 평생 하고 싶던 문학을 공부하고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작가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에세이와 소설, 시를 향한 창작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다. 자기는 물론 이웃과 소외된 자들 곁에서 가장 큰 용기를 냈던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현대사의 어두웠던 그림자와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목차
서문
어머니의 유고집을 펴내며 4
1부 결핍이 사랑이 될 때
은행나무 그루터기에 깨꽃 피었네 14
고통, 그 인간적인 것 21
무늬만 천사 26
나는 경계인이다 31
1970년대 명동성당 젊은이들 41
빗나간 오지랖 48
첫사랑 55
칼잡이 새댁 62
부부, 그 이름의 다정함 66
이별을 위한 만남 73
우리 막둥이 삼촌 79
나의 삶 나의 문학 85
2부 내 인생에 가장 큰 선물
순분할매 바람 났네 90
길 떠난 효심(孝心) 103
마지막 구걸 107
탁란(托卵) 111
선물 116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122
배려에 대해서 128
공정한 사회 133
아직은 누군가의 든든한 벽이고 싶다 139
3부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실버 취준생 분투기 146
4부 보도블럭 사이에 핀 민들레꽃처럼
돌봄 200
나가는 글 제 꿈으로 놀러 오세요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240
추천사 247
윤성희 소설가, 이다혜 [씨네21] 기자, 박연준 시인, 오지은 음악가
어머니의 유고집을 펴내며 4
1부 결핍이 사랑이 될 때
은행나무 그루터기에 깨꽃 피었네 14
고통, 그 인간적인 것 21
무늬만 천사 26
나는 경계인이다 31
1970년대 명동성당 젊은이들 41
빗나간 오지랖 48
첫사랑 55
칼잡이 새댁 62
부부, 그 이름의 다정함 66
이별을 위한 만남 73
우리 막둥이 삼촌 79
나의 삶 나의 문학 85
2부 내 인생에 가장 큰 선물
순분할매 바람 났네 90
길 떠난 효심(孝心) 103
마지막 구걸 107
탁란(托卵) 111
선물 116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122
배려에 대해서 128
공정한 사회 133
아직은 누군가의 든든한 벽이고 싶다 139
3부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실버 취준생 분투기 146
4부 보도블럭 사이에 핀 민들레꽃처럼
돌봄 200
나가는 글 제 꿈으로 놀러 오세요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240
추천사 247
윤성희 소설가, 이다혜 [씨네21] 기자, 박연준 시인, 오지은 음악가
본문발췌
P.5~7
장례를 치른 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출판사와 언론사에서 연락이 쏟아졌습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에 당선된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뒤늦게 SNS와 여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모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크고 작은 문학상을 타며 창작의 결실을 얻고, 시나리오 작업으로 더 큰 꿈을 꾸고 계시던 때에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계셨다면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향한 독자들의 관심에 가슴 벅차셨을 겁니다. 하지만 유가족으로서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대중의 주목이 두려웠습니다. 어머니의 삶을 담은 이야기가 자칫 조각조각 자극적으로 편집되고 왜곡될까 봐,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이용될까 봐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지요. 책 출간을 염원하셨지만, 당신 손으로 마무리하지 못한 글이기에 ‘어머니가 이 글을 출판하기를 원하셨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어머니 글의 힘은 솔직함과 사랑에서 오는 듯합니다. 어머니는 결핍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가난했으나 사랑을 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마음에 누구보다 솔직했기에 눈치를 보거나 세상의 굴레에 갇히지 않았지요. 당신의 경험과 생각, 때로는 소박하지만 당신에게는 절실한 것조차 타인에게 나누어주는 일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장 소외된 자였으나, 단순함과 따스함으로 세상의 견고한 아성을 비틀고 그 위에서 자유로이 뛰놀았지요.
―서문 〈어머니의 유고집을 펴내며〉 중에서
P.19~20
할아버지, 할머니 팔짱 끼고 새벽 산책을 나온 길. 평창강 줄기 따라 우뚝 솟은 삼각산 능선 위로 붉은 해, 불쑥 떴다. 가끔 팔랑팔랑 뛰어오는 내가 보인다는 할머니, 할아버지.
“안 와도 좋으니 아프디 말고 건강하게 잘 살그라. 니 119실려가구 가심이 얼매나 아프등이…….”
할머니가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남방 윗주머니에 찔러넣었다.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석 장이었다. ‘맛난 거 사서 먹고, 아프지 말라’며 등 두드리는 할머니. 오래 묵은 지폐에서 할머니 냄새가 났다. 명절에 다녀간 자녀들이 준 용돈이리라. 은행나무 같은 두 분 팔짱 끼고 가운데 서서,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1부 〈은행나무 그루터기에 깨꽃 피었네〉 중에서
P.21~22
주 4일을 병동에 갔다. 환우들은 하루하루 통증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는 쓸데없는 위로의 말보다 침묵하며 같이 아파해주는 것이 필요했다. 밝은 모습을 보이려 애썼고, 나의 심장병 투병기를 이야기하며 그들의 아픔에 공감을 표하고자 노력했다. 환우들은 이런 나를 좋아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발 마사지를 배웠다.
“아, 뭐야? 오늘은 마사지 없어요?”
불면의 밤을 보낸 환우들이 나를 보면 마사지하기 좋은 포즈를 취하고는 이렇게 물었고, 그럼 나는 “그럴 리가?”라고 맞대응하며 환우들과 편하게 지냈다. 마사지를 받은 환우는 곤히 잠들곤 했는데, 환우가 잠든 사이 보호자를 쉬게 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하루하루 통증과 사투를 벌이는 환우들을 보며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나를 버리려던 생각은 사치였다.
―1부 〈고통, 그 인간적인 것〉 중에서
P.87
우리는 한 주에 한 번 성당 입구에 있던 성모병원과 산업재해병원으로 자원봉사를 갔고, 한 달에 한 번은 성라자로마을로 울력 봉사를 다녔다. 산업재해병원에는 전신주 작업을 하다 감전되어 치료받는 한국전력 직원들이 많았다. 그중 한 분은 그 정도가 심각해 팔꿈치 위와 무릎 위를 절단했다. 20대의 나이로 그 지경이 되었으니 그분이 나쁜 생각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죽으려 해도 죽을 수가 없자 그분은 몸을 굴려 침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살을 방지하고자 의료진은 그분을 자주 침대에 묶어놓았다. 그분이 고통스러워하는 만큼, 그분을 돌보는 수녀님 또한 늘 마음 졸이며 걱정하셨다.
가브리엘라 자매와 병실을 방문한 어느 날이었다. 그분이 나를 불렀다.
“손톱 좀 깎아주실라우?”
나는 당황했다. 손발이 없는데 어찌 손톱을 깎을 수 있겠는가? 침착해야 했다. 가방에서 손톱깎이를 꺼냈다.
“손톱부터 깎아드릴까요, 발톱부터 깎아드릴까요?”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고 다가가자 그분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 머리부터 깎아야겠네.”
―1부 〈1970년대 명동성당 젊은이들〉 중에서(42~43쪽)
고단한 세상살이에 누구의 삶이 시가 아니며, 누구의 삶이 수필이 아니며, 누구의 삶이 소설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생김이 다 다르듯 삶의 형태도 다 다르다. 각기 다른 삶을 엿보는 게 문학이 아닐까. 이제 쉰 중반에 들어서며 내 안의 이야기를 풀어보겠다고 여기 이렇게 달려나가고 있다.
시 나와라, 뚝딱. 수필 나와라, 뚝딱. 소설 나와라, 뚝딱. 뚝딱, 뚝딱.
―1부 〈나의 삶 나의 문학〉 중에서
이제 내 나이 예순아홉. 내년이면 일흔이 된다. 늘그막에 먹고살려고 학력과 이력을 속인 내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결혼 후 시어른들을 모시고 남매를 낳아 기르는 동안 한 번도 나 자신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그 벌을 60대 초반에 톡톡히 치렀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온갖 일 다 겪으면서 그 고초가 나의 몫이라 여겼다. 명절이면 100명의 손님을 치렀고, 시동생 결혼식 음식도 시할머니 상을 당했을 때도 집에서 300명 손님을 혼자 치렀다. 심지어 시외삼촌 상을 당했을 때도 그 집 딸과 며느리는 방 안에 앉아 울기만 해 그 많은 손님 수발을 혼자 드느라 상이 나던 날 쓰러졌다. 그 시절에는 관혼상제를 다 집에서 했다. 하다못해 친척들 돌, 백일, 약혼식, 결혼식까지. 시댁은 물론 시할머니의 친정, 시어머니의 친정 일까지 불려 다녔다. 그곳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내 인생이었다. 그리고 그 일들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
―3부 〈실버 취준생 분투기〉 중에서
장례를 치른 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출판사와 언론사에서 연락이 쏟아졌습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에 당선된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뒤늦게 SNS와 여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모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크고 작은 문학상을 타며 창작의 결실을 얻고, 시나리오 작업으로 더 큰 꿈을 꾸고 계시던 때에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계셨다면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향한 독자들의 관심에 가슴 벅차셨을 겁니다. 하지만 유가족으로서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대중의 주목이 두려웠습니다. 어머니의 삶을 담은 이야기가 자칫 조각조각 자극적으로 편집되고 왜곡될까 봐,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이용될까 봐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지요. 책 출간을 염원하셨지만, 당신 손으로 마무리하지 못한 글이기에 ‘어머니가 이 글을 출판하기를 원하셨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어머니 글의 힘은 솔직함과 사랑에서 오는 듯합니다. 어머니는 결핍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가난했으나 사랑을 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마음에 누구보다 솔직했기에 눈치를 보거나 세상의 굴레에 갇히지 않았지요. 당신의 경험과 생각, 때로는 소박하지만 당신에게는 절실한 것조차 타인에게 나누어주는 일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장 소외된 자였으나, 단순함과 따스함으로 세상의 견고한 아성을 비틀고 그 위에서 자유로이 뛰놀았지요.
―서문 〈어머니의 유고집을 펴내며〉 중에서
P.19~20
할아버지, 할머니 팔짱 끼고 새벽 산책을 나온 길. 평창강 줄기 따라 우뚝 솟은 삼각산 능선 위로 붉은 해, 불쑥 떴다. 가끔 팔랑팔랑 뛰어오는 내가 보인다는 할머니, 할아버지.
“안 와도 좋으니 아프디 말고 건강하게 잘 살그라. 니 119실려가구 가심이 얼매나 아프등이…….”
할머니가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남방 윗주머니에 찔러넣었다.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석 장이었다. ‘맛난 거 사서 먹고, 아프지 말라’며 등 두드리는 할머니. 오래 묵은 지폐에서 할머니 냄새가 났다. 명절에 다녀간 자녀들이 준 용돈이리라. 은행나무 같은 두 분 팔짱 끼고 가운데 서서,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1부 〈은행나무 그루터기에 깨꽃 피었네〉 중에서
P.21~22
주 4일을 병동에 갔다. 환우들은 하루하루 통증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는 쓸데없는 위로의 말보다 침묵하며 같이 아파해주는 것이 필요했다. 밝은 모습을 보이려 애썼고, 나의 심장병 투병기를 이야기하며 그들의 아픔에 공감을 표하고자 노력했다. 환우들은 이런 나를 좋아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발 마사지를 배웠다.
“아, 뭐야? 오늘은 마사지 없어요?”
불면의 밤을 보낸 환우들이 나를 보면 마사지하기 좋은 포즈를 취하고는 이렇게 물었고, 그럼 나는 “그럴 리가?”라고 맞대응하며 환우들과 편하게 지냈다. 마사지를 받은 환우는 곤히 잠들곤 했는데, 환우가 잠든 사이 보호자를 쉬게 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하루하루 통증과 사투를 벌이는 환우들을 보며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나를 버리려던 생각은 사치였다.
―1부 〈고통, 그 인간적인 것〉 중에서
P.87
우리는 한 주에 한 번 성당 입구에 있던 성모병원과 산업재해병원으로 자원봉사를 갔고, 한 달에 한 번은 성라자로마을로 울력 봉사를 다녔다. 산업재해병원에는 전신주 작업을 하다 감전되어 치료받는 한국전력 직원들이 많았다. 그중 한 분은 그 정도가 심각해 팔꿈치 위와 무릎 위를 절단했다. 20대의 나이로 그 지경이 되었으니 그분이 나쁜 생각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죽으려 해도 죽을 수가 없자 그분은 몸을 굴려 침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살을 방지하고자 의료진은 그분을 자주 침대에 묶어놓았다. 그분이 고통스러워하는 만큼, 그분을 돌보는 수녀님 또한 늘 마음 졸이며 걱정하셨다.
가브리엘라 자매와 병실을 방문한 어느 날이었다. 그분이 나를 불렀다.
“손톱 좀 깎아주실라우?”
나는 당황했다. 손발이 없는데 어찌 손톱을 깎을 수 있겠는가? 침착해야 했다. 가방에서 손톱깎이를 꺼냈다.
“손톱부터 깎아드릴까요, 발톱부터 깎아드릴까요?”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고 다가가자 그분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 머리부터 깎아야겠네.”
―1부 〈1970년대 명동성당 젊은이들〉 중에서(42~43쪽)
고단한 세상살이에 누구의 삶이 시가 아니며, 누구의 삶이 수필이 아니며, 누구의 삶이 소설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생김이 다 다르듯 삶의 형태도 다 다르다. 각기 다른 삶을 엿보는 게 문학이 아닐까. 이제 쉰 중반에 들어서며 내 안의 이야기를 풀어보겠다고 여기 이렇게 달려나가고 있다.
시 나와라, 뚝딱. 수필 나와라, 뚝딱. 소설 나와라, 뚝딱. 뚝딱, 뚝딱.
―1부 〈나의 삶 나의 문학〉 중에서
이제 내 나이 예순아홉. 내년이면 일흔이 된다. 늘그막에 먹고살려고 학력과 이력을 속인 내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결혼 후 시어른들을 모시고 남매를 낳아 기르는 동안 한 번도 나 자신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그 벌을 60대 초반에 톡톡히 치렀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온갖 일 다 겪으면서 그 고초가 나의 몫이라 여겼다. 명절이면 100명의 손님을 치렀고, 시동생 결혼식 음식도 시할머니 상을 당했을 때도 집에서 300명 손님을 혼자 치렀다. 심지어 시외삼촌 상을 당했을 때도 그 집 딸과 며느리는 방 안에 앉아 울기만 해 그 많은 손님 수발을 혼자 드느라 상이 나던 날 쓰러졌다. 그 시절에는 관혼상제를 다 집에서 했다. 하다못해 친척들 돌, 백일, 약혼식, 결혼식까지. 시댁은 물론 시할머니의 친정, 시어머니의 친정 일까지 불려 다녔다. 그곳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내 인생이었다. 그리고 그 일들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
―3부 〈실버 취준생 분투기〉 중에서
저자소개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으며, 20여 년 넘게 호스피스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황혼 이혼 후 평생 하고 싶던 문학을 공부하고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작가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에세이와 소설, 시를 향한 창작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다.
서평
윤성희 소설가, 박연준 시인, 이다혜 작가, 오지은 음악가 추천!
일흔을 이른 나이로 여기며 치열히 살아간 한 여성의 기록
〈실버 취준생 분투기〉 작가 이순자의 유고 산문집 출간!
“그는 ‘가능성’과 ‘도전’이 젊은 사람에게만 속한 단어가 아님을,
세상엔 더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함을 증명했다.”
―시인 박연준의 추천사 중
나이 듦과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생의 마지막까지 희망하고, 사랑하고, 살아가기 위해 온몸으로 분투했던 이순자 작가. 연민과 사랑, 희망과 위트를 잃지 않으며 자기 존엄을 품위 있게 지켜낸 이야기를 담은 유고 산문집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와 유고 시집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지난해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한 <실버 취준생 분투기>로 많은 독자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결혼 생활을 시작해 황혼 이혼 후 62세에 취업전선에 나선 경험을 담았다. 청각장애로 글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기를 갈망해왔으나, 안타깝게도 수상 후 영면했다. 그의 노트북에 남긴 시와 산문, 소설에는 생의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살아오면서도 자신과 이웃의 상처를 따스한 시선으로 품어낸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그의 목소리가 더 많은 이에게 가닿게 하고자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비롯한 작가의 글을 모아 유고 산문집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와 유고 시집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를 출간한다.
고통 앞에서는 용기를 냈고,
이웃과 소외된 자들의 곁에 섰으며,
백지 앞에서는 가장 솔직했던 작가의 마지막 이야기.
“이순자 작가가 글로 옮긴 삶의 몇 국면이
내가 외할머니, 어머니의 삶을 통해 익히 알던 것과 닮아 있었다.”
―[씨네21] 기자 이다혜의 추천사 중.
이순자 작가는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으며, 20여 년 넘게 호스피스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황혼 이혼 후 평생 하고 싶던 문학을 공부하고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작가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에세이와 소설, 시를 향한 창작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 유고 산문집에서 그는 모두가 가난하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몰래 사준 신앙촌 카스텔라를 윗도리 앞섶에 숨기고 언니들이 하교할 때까지 기다리던 기억(〈무늬만 천사〉)부터 감각신경성 난청으로 타인과 소통하기 어려웠던 장면들(〈나는 경계인이다〉), 1970년대 명동성당에서 운동권 학생들과 시위하던 날들과 성모병원과 산업재해병원으로 자원봉사를 가고(〈1970년대 명동성당 젊은이들〉), 당시 성수동에 있던 시티즌 주식회사에서 노조 설립에 앞장섰다가 형사에게 끌려갔던 일(〈빗나간 오지랖〉)을 끄집어낸다. 자기는 물론 이웃과 소외된 자들 곁에서 가장 큰 용기를 냈던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현대사의 어두웠던 그림자와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유가족 기억 속의 저자는 “결핍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가난했으나 사랑을 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때론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서일까. 이웃과 소외된 자들은 작가 앞에서만큼은 “마음 깊이 감춰놓은 삶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그가 만난 가족과 이웃의 고통과 상처는 작가 마음속에 깊이 들어갔다가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모 없이 자란 삼촌의 너른 가슴, 열입곱에 시집와 남편을 잃고 ‘씨받이(대리모)’를 해야 했으나 생의 의지와 사랑을 잃지 않은 평창 할머니(〈순분할매 바람났네〉), 가슴으로 낳아 기른 아이들의 부모를 대신하는 언니의 삶(〈탁란〉), 젊은 시절 도움받은 기억으로 불구가 된 한 여성의 곁을 지키는 한 남자의 모습(〈돌봄〉)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가슴 깊이 담아둔 자신과 우리 이웃의 이야기, 사람과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 들은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방향키가 되어줄 것이다.
“사방 벽 길이가 다른 원룸에서 다리미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삶이 글이 된 작가 이순자가 세상에 남기는 목소리,
차별과 혐오의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생존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끝내 사람을 향한 공감과 이해, 배려와 사랑의 태도를 놓지 않았다. 아현동 재래시장의 어느 한 가건물에서 수건을 개면서도 함께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여성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을 전하고, 백화점 청소일을 하면서도 동료들이 겪는 고난한 노동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며, 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로 독거노인과 장애인을 돌볼 때는 환자와 보호자의 뒤틀어진 행태를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도 그들이 겪은 삶의 고난과 사회적 제도의 한계를 함께 짚어냈다(〈실버 취준생 분투기〉).
예순아홉,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저자는 “기초생활이 해결되니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라며,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라는 문장으로 창작의 결의를 다졌다. 그러나 수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면했다. 유고원고는 그가 살아오면서 가슴에 깊이 담아둔 자신과 우리 이웃의 이야기, 사람과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으로 가득했다. 그는 떠났지만, 경제적, 사회적 약자로서,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인으로서 녹록지 않은 삶에서도 끊임없이 희망하고, 사랑하고, 살아가고자 분투했던 그의 시간이 글에 남아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책이라는 옷을 입고 세상에 나와 더 많은 이에게 가닿고자 한다.
윤성희, 박연준, 이다혜, 오지은 추천!
삶이 글이 된 작가 이순자가 세상에 남기는 처음이자 마지막 유고집!
윤성희 소설가, 박연준 시인, 이다혜 기자, 오지은 음악가는 이 책을 먼저 읽고 추천글을 통해 그 감동을 나눠주었다. “이렇게 고순 냄새 풍기고 가삐리면 어떻게 하냐”라며 세상에 없는 작가에게 인사를 건넨 윤성희 소설가는 “이 책을 읽고 매일 다른 할머니가 되었다”는 소회를 전했다. 더불어 빈 그릇과도 같은 이 책에 담긴 “수십 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기를 권한다. 박연준 시인은 “정직하고 성실한 문장”이 “젠체하는 법 없이 빛난다”라며, 이 책이 “‘가능성’과 ‘도전’이 젊은 사람에게만 속한 단어가 아님을, ‘세상엔 더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함을 증명했다”라고 전했다. SNS에서 이 글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며 이순자 작가가 글로 소통하는 그 순간을 누구보다 애틋한 마음으로 지켜봤을 이다혜 기자는 “당신이 이 책을 읽다 눈물짓는다면 그건 당신이 아는 또 다른 어떤 삶 때문인지도 모른다”라고 이야기했다. 오지은 음악가는 이 책을 통해 “이순자 작가의 인생,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는 사랑의 온도를 글로 느”꼈다고 했다. 이들의 추천글과 함께 독자들이 이순자 작가의 내밀하고 진솔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일흔을 이른 나이로 여기며 치열히 살아간 한 여성의 기록
〈실버 취준생 분투기〉 작가 이순자의 유고 산문집 출간!
“그는 ‘가능성’과 ‘도전’이 젊은 사람에게만 속한 단어가 아님을,
세상엔 더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함을 증명했다.”
―시인 박연준의 추천사 중
나이 듦과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생의 마지막까지 희망하고, 사랑하고, 살아가기 위해 온몸으로 분투했던 이순자 작가. 연민과 사랑, 희망과 위트를 잃지 않으며 자기 존엄을 품위 있게 지켜낸 이야기를 담은 유고 산문집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와 유고 시집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지난해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한 <실버 취준생 분투기>로 많은 독자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결혼 생활을 시작해 황혼 이혼 후 62세에 취업전선에 나선 경험을 담았다. 청각장애로 글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기를 갈망해왔으나, 안타깝게도 수상 후 영면했다. 그의 노트북에 남긴 시와 산문, 소설에는 생의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살아오면서도 자신과 이웃의 상처를 따스한 시선으로 품어낸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그의 목소리가 더 많은 이에게 가닿게 하고자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비롯한 작가의 글을 모아 유고 산문집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와 유고 시집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를 출간한다.
고통 앞에서는 용기를 냈고,
이웃과 소외된 자들의 곁에 섰으며,
백지 앞에서는 가장 솔직했던 작가의 마지막 이야기.
“이순자 작가가 글로 옮긴 삶의 몇 국면이
내가 외할머니, 어머니의 삶을 통해 익히 알던 것과 닮아 있었다.”
―[씨네21] 기자 이다혜의 추천사 중.
이순자 작가는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으며, 20여 년 넘게 호스피스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황혼 이혼 후 평생 하고 싶던 문학을 공부하고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작가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에세이와 소설, 시를 향한 창작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 유고 산문집에서 그는 모두가 가난하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몰래 사준 신앙촌 카스텔라를 윗도리 앞섶에 숨기고 언니들이 하교할 때까지 기다리던 기억(〈무늬만 천사〉)부터 감각신경성 난청으로 타인과 소통하기 어려웠던 장면들(〈나는 경계인이다〉), 1970년대 명동성당에서 운동권 학생들과 시위하던 날들과 성모병원과 산업재해병원으로 자원봉사를 가고(〈1970년대 명동성당 젊은이들〉), 당시 성수동에 있던 시티즌 주식회사에서 노조 설립에 앞장섰다가 형사에게 끌려갔던 일(〈빗나간 오지랖〉)을 끄집어낸다. 자기는 물론 이웃과 소외된 자들 곁에서 가장 큰 용기를 냈던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현대사의 어두웠던 그림자와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유가족 기억 속의 저자는 “결핍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가난했으나 사랑을 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때론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서일까. 이웃과 소외된 자들은 작가 앞에서만큼은 “마음 깊이 감춰놓은 삶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그가 만난 가족과 이웃의 고통과 상처는 작가 마음속에 깊이 들어갔다가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모 없이 자란 삼촌의 너른 가슴, 열입곱에 시집와 남편을 잃고 ‘씨받이(대리모)’를 해야 했으나 생의 의지와 사랑을 잃지 않은 평창 할머니(〈순분할매 바람났네〉), 가슴으로 낳아 기른 아이들의 부모를 대신하는 언니의 삶(〈탁란〉), 젊은 시절 도움받은 기억으로 불구가 된 한 여성의 곁을 지키는 한 남자의 모습(〈돌봄〉)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가슴 깊이 담아둔 자신과 우리 이웃의 이야기, 사람과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 들은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방향키가 되어줄 것이다.
“사방 벽 길이가 다른 원룸에서 다리미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삶이 글이 된 작가 이순자가 세상에 남기는 목소리,
차별과 혐오의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생존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끝내 사람을 향한 공감과 이해, 배려와 사랑의 태도를 놓지 않았다. 아현동 재래시장의 어느 한 가건물에서 수건을 개면서도 함께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여성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을 전하고, 백화점 청소일을 하면서도 동료들이 겪는 고난한 노동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며, 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로 독거노인과 장애인을 돌볼 때는 환자와 보호자의 뒤틀어진 행태를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도 그들이 겪은 삶의 고난과 사회적 제도의 한계를 함께 짚어냈다(〈실버 취준생 분투기〉).
예순아홉,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저자는 “기초생활이 해결되니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라며,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라는 문장으로 창작의 결의를 다졌다. 그러나 수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면했다. 유고원고는 그가 살아오면서 가슴에 깊이 담아둔 자신과 우리 이웃의 이야기, 사람과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으로 가득했다. 그는 떠났지만, 경제적, 사회적 약자로서,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인으로서 녹록지 않은 삶에서도 끊임없이 희망하고, 사랑하고, 살아가고자 분투했던 그의 시간이 글에 남아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책이라는 옷을 입고 세상에 나와 더 많은 이에게 가닿고자 한다.
윤성희, 박연준, 이다혜, 오지은 추천!
삶이 글이 된 작가 이순자가 세상에 남기는 처음이자 마지막 유고집!
윤성희 소설가, 박연준 시인, 이다혜 기자, 오지은 음악가는 이 책을 먼저 읽고 추천글을 통해 그 감동을 나눠주었다. “이렇게 고순 냄새 풍기고 가삐리면 어떻게 하냐”라며 세상에 없는 작가에게 인사를 건넨 윤성희 소설가는 “이 책을 읽고 매일 다른 할머니가 되었다”는 소회를 전했다. 더불어 빈 그릇과도 같은 이 책에 담긴 “수십 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기를 권한다. 박연준 시인은 “정직하고 성실한 문장”이 “젠체하는 법 없이 빛난다”라며, 이 책이 “‘가능성’과 ‘도전’이 젊은 사람에게만 속한 단어가 아님을, ‘세상엔 더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함을 증명했다”라고 전했다. SNS에서 이 글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며 이순자 작가가 글로 소통하는 그 순간을 누구보다 애틋한 마음으로 지켜봤을 이다혜 기자는 “당신이 이 책을 읽다 눈물짓는다면 그건 당신이 아는 또 다른 어떤 삶 때문인지도 모른다”라고 이야기했다. 오지은 음악가는 이 책을 통해 “이순자 작가의 인생,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는 사랑의 온도를 글로 느”꼈다고 했다. 이들의 추천글과 함께 독자들이 이순자 작가의 내밀하고 진솔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