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일하다 마음을 다치다 : 갑질 고발과 힐링을 넘어, 일하는 사람들의 정신건강 이야기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20214
가격
₩ 17,000
ISBN
9791186036686
페이지
373 p.
판형
128 X 188 mm
커버
Book
책 소개
일터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업무상 정신질환과 산업재해를 추적, 연구해온 의료, 법률, 노동 전문가들이 극단적 사례나 질병과 치료에 집중됐던 그간의 방식에서 벗어나 원인과 일터에 주목해 구체적이고 쉬운 말로 노동자 정신건강을 다뤘다. 직무 스트레스의 모형과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 자살 통계 분석, 정신질환과 자살의 산업재해 보상 절차, 직장 내 정신건강 증진 활동 방안 등을 서술했다. 결국 노동자 정신건강은 일하기 좋은 일터를 만드는 데 달려 있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스트레스와 높은 자살률에 시달리면서도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에 관한 이야기를 꺼리고, 일 때문에 얻는 스트레스는 당연한 것이자 각자 극복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 감정노동, 갑질, 직장 내 괴롭힘이 사회 문제가 되고 이 때문에 정신질환과 자살도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관련 논의를 정책에 반영하고 노동환경을 바꾸려는 해결 노력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각각의 사태를 고발해 잠시 주목받거나 자체적인 ‘힐링’을 시도하는 것은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변화를 이끌어낼 토대를 고민했다. 개인이 이겨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고쳐야 할 대상이자 원인인 일터 문제로 정신건강에 접근한 이 책을 통해 일하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는 것뿐 아니라 직무 스트레스를 줄이고 정신적으로도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직장이 ‘안전한 일터’임을 확인할 수 있다.
목차
추천의 글 _백도명
시작하며: 우리의 일터와 마음의 안녕에 관한 이야기_최민
1장 일과 정신건강 _정지윤
1. 직무 스트레스의 여러 얼굴
2. 일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만드나
1) 직업성 긴장 모델
2) 노력-보상 불균형 모델
3) 조직정의 모델
3. 직무 스트레스 측정하기
4. 스트레스가 병이 되지 않도록: 개인적 중재와 조직적 중재
5.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직무 스트레스를 다루기
2장 정신질환의 이해 _정여진
1. 정신질환이란 무엇인가
2. 정신질환은 어떻게 생기나
3. 정신질환과 정신질환 치료 이해하기
1) 정신질환과 정신질환 치료에 관한 오해들
2) 좋은 치료 기관의 요건과 환자의 권리
4. ‘업무상 정신질병’으로 언급되는 주요 질환들
5. 독이 되는 일, 득이 되는 일
3장 자살의 이유는 알 수 없다지만 _류한소
1. 그 사회의 ‘문제’ 자살: 자살에 이름 붙이기
2. 그 일터의 ‘문제’ 자살: 끝내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3. 한국의 업무 관련 자살 현황
1) 통계청과 경찰청의 통계 들여다보기: 정신적·정신과적 문제
2) 산재 통계 들여다보기: 0.01%의 사람들
3) 심리부검자료 들여다보기: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서
4. 그는 어떤 일을 했나요?
4장 정신질병과 자살의 산업재해 보상 _박경환
1. 산업재해 승인을 받으면 보상받을 수 있는 것들
2. 정신질병 산업재해 신청에 필요한 것들
1) 요양급여 신청서 작성하기
2) 병원에 소견서 요청하기
3) 재해경위서 쓰기
3. 산업재해 신청 이후의 절차
1) 근로복지공단의 재해조사
2)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참석
3)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을 때
4) 불승인되었을 때 해야 할 일
4. 정신질병의 업무상 재해 판단 경향에 대한 개선점
5장 일하다 마음 다치지 않는 직장을 위해 _최민
1. 사업주의 의무, 노동자의 권리
2. 직장 내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접근
1) 순서대로, 체계적으로 접근
2) 1차, 2차, 3차 예방
3) 포괄적 접근
3.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과 함께 지내기
1) 정신질병에 대한 낙인과 공포 다루기
2)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대화하기
3) 병가 중인 노동자 지원하기
4) 성공적 직장 복귀
5) 일하면서 만성 질환 관리하기
6) 노동조합의 역할
4. 직장 내 자살 예방 프로그램
1) 징후 알아차리기
2) 위기의 순간에 대응하기
3) 사후 대응
5. 마음 다치지 않는 직장, 꿈같은 얘기일까?
[대담] 일 때문에 불행한 사람들에게
후주
시작하며: 우리의 일터와 마음의 안녕에 관한 이야기_최민
1장 일과 정신건강 _정지윤
1. 직무 스트레스의 여러 얼굴
2. 일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만드나
1) 직업성 긴장 모델
2) 노력-보상 불균형 모델
3) 조직정의 모델
3. 직무 스트레스 측정하기
4. 스트레스가 병이 되지 않도록: 개인적 중재와 조직적 중재
5.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직무 스트레스를 다루기
2장 정신질환의 이해 _정여진
1. 정신질환이란 무엇인가
2. 정신질환은 어떻게 생기나
3. 정신질환과 정신질환 치료 이해하기
1) 정신질환과 정신질환 치료에 관한 오해들
2) 좋은 치료 기관의 요건과 환자의 권리
4. ‘업무상 정신질병’으로 언급되는 주요 질환들
5. 독이 되는 일, 득이 되는 일
3장 자살의 이유는 알 수 없다지만 _류한소
1. 그 사회의 ‘문제’ 자살: 자살에 이름 붙이기
2. 그 일터의 ‘문제’ 자살: 끝내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3. 한국의 업무 관련 자살 현황
1) 통계청과 경찰청의 통계 들여다보기: 정신적·정신과적 문제
2) 산재 통계 들여다보기: 0.01%의 사람들
3) 심리부검자료 들여다보기: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서
4. 그는 어떤 일을 했나요?
4장 정신질병과 자살의 산업재해 보상 _박경환
1. 산업재해 승인을 받으면 보상받을 수 있는 것들
2. 정신질병 산업재해 신청에 필요한 것들
1) 요양급여 신청서 작성하기
2) 병원에 소견서 요청하기
3) 재해경위서 쓰기
3. 산업재해 신청 이후의 절차
1) 근로복지공단의 재해조사
2)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참석
3)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을 때
4) 불승인되었을 때 해야 할 일
4. 정신질병의 업무상 재해 판단 경향에 대한 개선점
5장 일하다 마음 다치지 않는 직장을 위해 _최민
1. 사업주의 의무, 노동자의 권리
2. 직장 내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접근
1) 순서대로, 체계적으로 접근
2) 1차, 2차, 3차 예방
3) 포괄적 접근
3.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과 함께 지내기
1) 정신질병에 대한 낙인과 공포 다루기
2)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대화하기
3) 병가 중인 노동자 지원하기
4) 성공적 직장 복귀
5) 일하면서 만성 질환 관리하기
6) 노동조합의 역할
4. 직장 내 자살 예방 프로그램
1) 징후 알아차리기
2) 위기의 순간에 대응하기
3) 사후 대응
5. 마음 다치지 않는 직장, 꿈같은 얘기일까?
[대담] 일 때문에 불행한 사람들에게
후주
본문발췌
P.80
일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를 느끼게 됩니다.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적절한 중재가 없다면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 다양한 정신질환 발병의 위험이 높아지며,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소진은 때로 전신 피로, 근육통, 두통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건강 악화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일하는 사람의 스트레스는 수없이 다양합니다. 과로, 직장 내 괴롭힘, 성차별, 공정하지 않은 조직 체계, 고용의 불안정성 등 직무 스트레스의 요소가 여러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것을 조정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과로하지 않기 위해 적절한 시간 동안 적정한 양의 업무 조정이 필요하고,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괴롭힘을 정의하고 예방할 힘이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차별을 비롯해 공정하지 않은 조직 체계를 개선하려면 성별 권력이 직장 내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바로잡기 위한 제도를 구상해야 합니다.
P.88~89
일터에 산재한 요인들을 미리 파악하고 이런 요인들이 노동자들에게 미칠 건강상의 영향을 예측하는 일, 그리고 노동자를 위험에서 보호하는 것이 사업주의 의무입니다. 정신건강의 영역에서 개인의 취약성이 모든 발병의 원인이라고 치부하는 접근은 이런 사업주의 책임을 아주 작은 것으로 축소하고 맙니다. 노동자 개인이 얼마나 취약성을 지닌 존재인지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므로 그가 노동과정에서 마주칠 수 있는 정신건강의 위험 요인이 무엇인지, 지금 겪고 있는 정신건강상의 위협이 무엇인지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구조적 개입이 효율적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의 건강이 ‘일터에서의 시간’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P.111
‘나약하기 때문에 정신질환을 얻었다’, ‘직장에서의 일이 아니었어도 병에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정신적인 병이라고 하여 환경적인 요인들을 무시하고 개인에게 모든 탓을 돌리는 것은 부당합니다. 설령 취약성이 있다 해도 주변에서 어떻게 배려하느냐에 따라 예방하거나 관리하면서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몸이 약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감기에 더 쉽게 걸린다는 이유로 비난해선 안 되며, ‘몸이 약한 사람’이 일하다 다치거나 병을 얻었을 때 이를 그의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해서도 안 됩니다. 이는 ‘마음이 약한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P.115~116
치료를 받아도 취업에 불이익이 따르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정신질환자는 ‘일상생활에 중대한 제약이 있는’ 경우에 한합니다. 경증 정신질환이 있지만, 일상생활을 충분히 해내는 사람은 ‘정신질환자’가 아닙니다. 설령 법적인 ‘정신질환자’라도 정신질환자의 취업을 공식적으로 제한하는 직종은 일부에 한합니다. 심지어 그러한 경우에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소견이 뒷받침된다면 고용에 절대 차별할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한 오해 중 하나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치료받은 사실을 직장에서 알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과거에 골절로 수술했는지를 회사에서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정신과 의무기록도 본인 외에는 아무도 열람할 수 없습니다.
P.167
무엇보다 노동자, 특히 사회적 약자의 자살을 보도하는 기사에는 이런 말이 관용구처럼 나옵니다. “끝내 ~를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무엇이든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보아 이를 이겨내지 못한 사람이 심리적 부담을 얻어 마침내 취한 이례적이고 극단적인 사건으로 자살을 묘사하는 방식입니다. 노동자 자살 관련 보도에서 해당 표현이 많이 쓰이는 이유는 아마도 이 말이 일터에서의 정신건강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관점을 반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P.192
그 사람이 했던 일은 그의 삶과 죽음에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며 보내고,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부양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고, 존중과 인정을 받으며,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획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함으로써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착취와 폭력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즉, 일은 우리의 삶을 나아가게 하는 힘이면서도 삶을 중단시킬 수 있는 파괴력이 있는, 어느 방향으로든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산업재해 보상의 요건이 되는 자살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일하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죽음은 일차적으로 그의 일터가 가진 문제점을 보여줍니다.
P.219
상담하러 오는 분들이 자주 하는 질문으로 ‘발병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 같은데, 산업재해 신청이 가능할까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인의 실수로 인해 회사에 피해가 발생했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질병이 발병했을 때, 이 역시 산업재해로 볼 수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원칙적으로 개인의 과실이 있어도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 실수 등 개인의 잘못에 기인해 촉발된 정신질병도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노동자의 과실을 이유로 보상을 제한하지 않는 ‘무과실책임’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P.245~246
한국 사회에서 정신질병 및 이로 인한 자살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여전해 쉽사리 산업재해 신청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신질병 및 자살의 업무 관련성 판단 기준의 변화는 당사자인 재해자와 유가족을 비롯한 현장의 노력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재해자나 유가족의 적극적인 산업재해 신청이 중요합니다. 업무를 이유로 발생한 정신질병이나 자살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고 업무, 회사, 사회의 문제로서 정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도록 용기를 내기 바랍니다.
P.251~252
일하다 마음을 다치지 않는 직장을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노동자가 임금을 받고 약속된 노동시간 동안 노동력을 제공하며 사업주가 지시한 일을 하기로 했다고 해서 일하는 동안 자신의 안전이나 인격, 권리를 모두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어떤 직장은 이렇게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끔찍한 노동환경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사업주는 일을 시키는 대신, 최소한 노동자가 그 일을 하는 동안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래야 노동자는 일을 마친 후 자기 생활을 하고 다음 날 다시 노동할 힘이 남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이용해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려면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약속입니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은 사업주에게는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의무이고, 노동자에게는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권리라는 뜻입니다.
P.324
당연히 작은 사업장에서도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노동자들은 적절한 보호와 옹호를 받아야 하고, 영세한 사업장도 여러 직무 스트레스를 평가하고 우선순위를 매겨 하나씩 해결해나갈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영세한 회사나 가게에서 자체적으로 이런 노력을 기울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에서도 오히려 환경이 그나마 낫고, 스트레스에 대처할 자원도 가진 노동자가 더 많은 보호나 지원을 받는 불평등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불평등을 줄이려면 노동자 정신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이 사업장 안에서만이 아니라 지역 단위로, 업종 단위로, 공적인 기관에 의해 더 많이 시도되어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를 느끼게 됩니다.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적절한 중재가 없다면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 다양한 정신질환 발병의 위험이 높아지며,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소진은 때로 전신 피로, 근육통, 두통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건강 악화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일하는 사람의 스트레스는 수없이 다양합니다. 과로, 직장 내 괴롭힘, 성차별, 공정하지 않은 조직 체계, 고용의 불안정성 등 직무 스트레스의 요소가 여러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것을 조정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과로하지 않기 위해 적절한 시간 동안 적정한 양의 업무 조정이 필요하고,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괴롭힘을 정의하고 예방할 힘이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차별을 비롯해 공정하지 않은 조직 체계를 개선하려면 성별 권력이 직장 내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바로잡기 위한 제도를 구상해야 합니다.
P.88~89
일터에 산재한 요인들을 미리 파악하고 이런 요인들이 노동자들에게 미칠 건강상의 영향을 예측하는 일, 그리고 노동자를 위험에서 보호하는 것이 사업주의 의무입니다. 정신건강의 영역에서 개인의 취약성이 모든 발병의 원인이라고 치부하는 접근은 이런 사업주의 책임을 아주 작은 것으로 축소하고 맙니다. 노동자 개인이 얼마나 취약성을 지닌 존재인지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므로 그가 노동과정에서 마주칠 수 있는 정신건강의 위험 요인이 무엇인지, 지금 겪고 있는 정신건강상의 위협이 무엇인지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구조적 개입이 효율적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의 건강이 ‘일터에서의 시간’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P.111
‘나약하기 때문에 정신질환을 얻었다’, ‘직장에서의 일이 아니었어도 병에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정신적인 병이라고 하여 환경적인 요인들을 무시하고 개인에게 모든 탓을 돌리는 것은 부당합니다. 설령 취약성이 있다 해도 주변에서 어떻게 배려하느냐에 따라 예방하거나 관리하면서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몸이 약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감기에 더 쉽게 걸린다는 이유로 비난해선 안 되며, ‘몸이 약한 사람’이 일하다 다치거나 병을 얻었을 때 이를 그의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해서도 안 됩니다. 이는 ‘마음이 약한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P.115~116
치료를 받아도 취업에 불이익이 따르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정신질환자는 ‘일상생활에 중대한 제약이 있는’ 경우에 한합니다. 경증 정신질환이 있지만, 일상생활을 충분히 해내는 사람은 ‘정신질환자’가 아닙니다. 설령 법적인 ‘정신질환자’라도 정신질환자의 취업을 공식적으로 제한하는 직종은 일부에 한합니다. 심지어 그러한 경우에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소견이 뒷받침된다면 고용에 절대 차별할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한 오해 중 하나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치료받은 사실을 직장에서 알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과거에 골절로 수술했는지를 회사에서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정신과 의무기록도 본인 외에는 아무도 열람할 수 없습니다.
P.167
무엇보다 노동자, 특히 사회적 약자의 자살을 보도하는 기사에는 이런 말이 관용구처럼 나옵니다. “끝내 ~를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무엇이든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보아 이를 이겨내지 못한 사람이 심리적 부담을 얻어 마침내 취한 이례적이고 극단적인 사건으로 자살을 묘사하는 방식입니다. 노동자 자살 관련 보도에서 해당 표현이 많이 쓰이는 이유는 아마도 이 말이 일터에서의 정신건강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관점을 반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P.192
그 사람이 했던 일은 그의 삶과 죽음에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며 보내고,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부양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고, 존중과 인정을 받으며,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획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함으로써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착취와 폭력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즉, 일은 우리의 삶을 나아가게 하는 힘이면서도 삶을 중단시킬 수 있는 파괴력이 있는, 어느 방향으로든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산업재해 보상의 요건이 되는 자살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일하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죽음은 일차적으로 그의 일터가 가진 문제점을 보여줍니다.
P.219
상담하러 오는 분들이 자주 하는 질문으로 ‘발병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 같은데, 산업재해 신청이 가능할까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인의 실수로 인해 회사에 피해가 발생했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질병이 발병했을 때, 이 역시 산업재해로 볼 수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원칙적으로 개인의 과실이 있어도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 실수 등 개인의 잘못에 기인해 촉발된 정신질병도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노동자의 과실을 이유로 보상을 제한하지 않는 ‘무과실책임’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P.245~246
한국 사회에서 정신질병 및 이로 인한 자살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여전해 쉽사리 산업재해 신청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신질병 및 자살의 업무 관련성 판단 기준의 변화는 당사자인 재해자와 유가족을 비롯한 현장의 노력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재해자나 유가족의 적극적인 산업재해 신청이 중요합니다. 업무를 이유로 발생한 정신질병이나 자살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고 업무, 회사, 사회의 문제로서 정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도록 용기를 내기 바랍니다.
P.251~252
일하다 마음을 다치지 않는 직장을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노동자가 임금을 받고 약속된 노동시간 동안 노동력을 제공하며 사업주가 지시한 일을 하기로 했다고 해서 일하는 동안 자신의 안전이나 인격, 권리를 모두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어떤 직장은 이렇게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끔찍한 노동환경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사업주는 일을 시키는 대신, 최소한 노동자가 그 일을 하는 동안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래야 노동자는 일을 마친 후 자기 생활을 하고 다음 날 다시 노동할 힘이 남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이용해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려면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약속입니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은 사업주에게는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의무이고, 노동자에게는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권리라는 뜻입니다.
P.324
당연히 작은 사업장에서도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노동자들은 적절한 보호와 옹호를 받아야 하고, 영세한 사업장도 여러 직무 스트레스를 평가하고 우선순위를 매겨 하나씩 해결해나갈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영세한 회사나 가게에서 자체적으로 이런 노력을 기울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에서도 오히려 환경이 그나마 낫고, 스트레스에 대처할 자원도 가진 노동자가 더 많은 보호나 지원을 받는 불평등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불평등을 줄이려면 노동자 정신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이 사업장 안에서만이 아니라 지역 단위로, 업종 단위로, 공적인 기관에 의해 더 많이 시도되어야 합니다.
저자소개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03년 출범했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일하는 것을 넘어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안녕한 일터를 목표로 노동자의 건강권과 인권을 이야기한다. 현장 참여와 연구, 일하는 사람이 주체가 되는 교육, 연대 활동을 실천하며 노동안전보건운동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kilsh.or.kr
서평
“마음의 병도 산재가 되나요?”
이제 일하는 사람의 정신건강을 이야기하자
이 책은 직무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직장 내 정신건강 문제를 각자 해결할 문제로 억누르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한다. 정확하게는 일하며 마음 다치는 문제에 관해 개인의 ‘멘탈’을 바라보는 시선을 일터의 문제로 돌리자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해도 일에 따른 신체의 부담이 사고나 질병을 불러올 수 있고 이를 예방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일하며 생기는 정신적 부담이 몸과 마음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사회 문제가 되는지에 관해선 관심이 부족하다. 이 책은 일터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줄여 정신질환과 자살을 막아야 한다는 데에 초점을 맞춰 일터 정신건강 문제를 분석하고 예방법을 모색한다.
직장 갑질, 감정노동, 직장 내 괴롭힘, 불합리한 인사, 수직적인 직장문화 등 노동자가 일하며 마음을 다치게 되는 요인은 많다. 극단적인 갑질이나 괴롭힘이 알려져 이슈가 되고 자극적인 보도로 주목받기도 하지만, 이는 일터에서 저강도로 쌓이고 있는 스트레스, ‘조용한 폭력’을 은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욱이 갑질과 괴롭힘에 대한 전형적인 접근은 업무와 관련된 정신건강 문제를 콜센터 노동자나 경비 노동자와 같이 특정 직종, 특정 업무로 제한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책은 극단적 사례가 아닌 일상적인 직무 스트레스, 겉으로 드러난 사건 말고 구조를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직장 내 정신건강 문제의 해법으로 널리 쓰이는 ‘힐링 프로그램’의 한계도 지적된다. 일터에 명백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대로 두고 개인의 ‘안식과 대처’에 집중하는 상담은 직무 스트레스와 직장 내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다루는 태도이며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 ‘의료화’ 문제, 즉 진단명을 붙이고 치료에 집중하는 경향도 경계 대상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인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증후군’을 ‘번아웃’으로 분류하면서 직무 스트레스가 아닌 진단 기준과 극복 방법에 관심이 쏠리는 현상이 그 사례다. 이에 업무상 이유로 인한 정신질환과 자살뿐 아니라 직무 스트레스 그 자체, 그리고 이것이 벌어지는 직장, 진단받고 치료받을 정도가 아니더라도 삶을 메마르게 만드는 것들, 우리의 몸과 마음 상태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의도다.
스트레스와 정신질환을 부르는 ‘조용한 폭력’
일 때문에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들
2018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남성 73.3%, 여성 69.8%가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지난 1년 사이 자살 충동을 느낀 적 있는 5.1%의 사람 중 9.4%가 직장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구체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으며 잘 드러나지도 않는 사회심리적 위험은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한다. 노동시간이 길수록, 비정규직일수록, 야간이나 주말에 근무할수록 우울증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제시된다. 1장에서는 직무 스트레스의 여러 모델과 각각의 사례를 소개하고 조직의 상황과 배경 등에서 스트레스원을 지목한다. 직무 스트레스의 측정 방법과 중재 방식, 유해 요인도 서술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요인들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 개입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에 미칠 건강상 영향을 예측하고 노동자를 위험에서 보호하는 것이 사업주의 의무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신질환과 그 치료에 관한 오해를 짚어보고 업무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정신질환의 양상과 사례도 살폈다.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정신질환을 앓은 사람의 비율(2018년 국가 정신건강 현황)은 국민 네 명 가운데 한 명 꼴인 25.4%에 달한다. 2장에서는 정신질환이 왜 생기는지, 다른 질병과 다른 특징은 무엇인지와 함께 ‘나약하기 때문에 정신질환이 생긴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취업에 지장이 있다’, ‘정신과 약은 중독을 유발한다’와 같은 오해를 바로잡았다. 어떤 기관에서 어떻게 치료받아야 할지에 관한 조언도 유용하다. 우울장애, 불안장애, 적응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급성 스트레스 등 업무를 이유로 발생할 수 있는 정신질환에 무엇이 있는지도 점검했다.
한국의 자살 사망률(2020년 사망원인 통계)은 인구 10만 명당 25.7명인 1만3,195명으로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3장에서는 자살 관련 통계 분석을 통해 배경을 유추하고 노동자의 자살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관점을 논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자살 통계, 자살 현황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사회적 변화와 정부의 예방 대책, 현재의 자살 원인 분류 방식의 한계, 노동자 자살 사례와 기업 및 언론이 이를 다루는 방식을 폭넓게 다뤘다. 아울러 통계청 및 경찰청 통계, 자살과 정신질환의 산업재해 통계, 심리부검자료 점검은 일과 관련한 자살이 예상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바꿔야 할 것은 ‘유리 멘탈’이 아니라 우리의 일터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는, 안전한 노동을 위해
업무상 정신질환의 산업재해 신청 절차와 판례, 직장 내 정신건강 증진 방안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요양급여 신청서, 유족급여 신청서, 재해경위서 등 산업재해 신청 관련 서류 작성법부터 정신질환 진단명에 따른 위험 요인들과 업무 관련성을 증명하는 방법까지 상세히 소개한다. 정신질환이나 자살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판례와 산재 신청 이후의 절차 등도 일터에서 정신질환을 얻어 산업재해 신청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다. 4장에선 일반적 스트레스 수준이라며 산재를 불승인해온 근로복지공단의 판단 경향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정신질환의 업무 관련성은 재해자의 조건을 기준으로, 즉 개인적 감수성을 고려해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하는 동안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은 노동자의 권리이자 사업주의 의무다. 사업주의 다양한 의무를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은 보건조치와 위반 시 벌칙이 담겼지만, 노동자 정신건강을 분명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와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조항이 담기면서 변화가 감지된다. 마지막 장에선 즉시 실천할 수 있는 직장 내 정신건강 증진 방법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위험 요인에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평가도구를 사용해 실태를 점검하며, 우선순위에 따라 개선대책을 수립해 실행하는 것이다. 3차에 걸친 예방과 포괄적 접근 방법, 직무 스트레스를 주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자살 예방 프로그램도 실렸다. 직장 내에서 정신건강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그를 지원할지도 상세히 알려준다. 부록으로 직장 내 정신건강 문제에 대처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의 대담을 실어, 실제 현장에서 나타나는 정신건강 위험 요인과 문제점, 인식 개선 과제와 기업 및 노동조합의 역할 등 이후 개선 방향 모색에 참고가 되도록 했다.
이제 일하는 사람의 정신건강을 이야기하자
이 책은 직무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직장 내 정신건강 문제를 각자 해결할 문제로 억누르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한다. 정확하게는 일하며 마음 다치는 문제에 관해 개인의 ‘멘탈’을 바라보는 시선을 일터의 문제로 돌리자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해도 일에 따른 신체의 부담이 사고나 질병을 불러올 수 있고 이를 예방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일하며 생기는 정신적 부담이 몸과 마음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사회 문제가 되는지에 관해선 관심이 부족하다. 이 책은 일터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줄여 정신질환과 자살을 막아야 한다는 데에 초점을 맞춰 일터 정신건강 문제를 분석하고 예방법을 모색한다.
직장 갑질, 감정노동, 직장 내 괴롭힘, 불합리한 인사, 수직적인 직장문화 등 노동자가 일하며 마음을 다치게 되는 요인은 많다. 극단적인 갑질이나 괴롭힘이 알려져 이슈가 되고 자극적인 보도로 주목받기도 하지만, 이는 일터에서 저강도로 쌓이고 있는 스트레스, ‘조용한 폭력’을 은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욱이 갑질과 괴롭힘에 대한 전형적인 접근은 업무와 관련된 정신건강 문제를 콜센터 노동자나 경비 노동자와 같이 특정 직종, 특정 업무로 제한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책은 극단적 사례가 아닌 일상적인 직무 스트레스, 겉으로 드러난 사건 말고 구조를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직장 내 정신건강 문제의 해법으로 널리 쓰이는 ‘힐링 프로그램’의 한계도 지적된다. 일터에 명백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대로 두고 개인의 ‘안식과 대처’에 집중하는 상담은 직무 스트레스와 직장 내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다루는 태도이며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 ‘의료화’ 문제, 즉 진단명을 붙이고 치료에 집중하는 경향도 경계 대상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인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증후군’을 ‘번아웃’으로 분류하면서 직무 스트레스가 아닌 진단 기준과 극복 방법에 관심이 쏠리는 현상이 그 사례다. 이에 업무상 이유로 인한 정신질환과 자살뿐 아니라 직무 스트레스 그 자체, 그리고 이것이 벌어지는 직장, 진단받고 치료받을 정도가 아니더라도 삶을 메마르게 만드는 것들, 우리의 몸과 마음 상태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의도다.
스트레스와 정신질환을 부르는 ‘조용한 폭력’
일 때문에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들
2018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남성 73.3%, 여성 69.8%가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지난 1년 사이 자살 충동을 느낀 적 있는 5.1%의 사람 중 9.4%가 직장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구체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으며 잘 드러나지도 않는 사회심리적 위험은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한다. 노동시간이 길수록, 비정규직일수록, 야간이나 주말에 근무할수록 우울증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제시된다. 1장에서는 직무 스트레스의 여러 모델과 각각의 사례를 소개하고 조직의 상황과 배경 등에서 스트레스원을 지목한다. 직무 스트레스의 측정 방법과 중재 방식, 유해 요인도 서술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요인들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 개입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에 미칠 건강상 영향을 예측하고 노동자를 위험에서 보호하는 것이 사업주의 의무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신질환과 그 치료에 관한 오해를 짚어보고 업무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정신질환의 양상과 사례도 살폈다.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정신질환을 앓은 사람의 비율(2018년 국가 정신건강 현황)은 국민 네 명 가운데 한 명 꼴인 25.4%에 달한다. 2장에서는 정신질환이 왜 생기는지, 다른 질병과 다른 특징은 무엇인지와 함께 ‘나약하기 때문에 정신질환이 생긴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취업에 지장이 있다’, ‘정신과 약은 중독을 유발한다’와 같은 오해를 바로잡았다. 어떤 기관에서 어떻게 치료받아야 할지에 관한 조언도 유용하다. 우울장애, 불안장애, 적응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급성 스트레스 등 업무를 이유로 발생할 수 있는 정신질환에 무엇이 있는지도 점검했다.
한국의 자살 사망률(2020년 사망원인 통계)은 인구 10만 명당 25.7명인 1만3,195명으로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3장에서는 자살 관련 통계 분석을 통해 배경을 유추하고 노동자의 자살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관점을 논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자살 통계, 자살 현황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사회적 변화와 정부의 예방 대책, 현재의 자살 원인 분류 방식의 한계, 노동자 자살 사례와 기업 및 언론이 이를 다루는 방식을 폭넓게 다뤘다. 아울러 통계청 및 경찰청 통계, 자살과 정신질환의 산업재해 통계, 심리부검자료 점검은 일과 관련한 자살이 예상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바꿔야 할 것은 ‘유리 멘탈’이 아니라 우리의 일터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는, 안전한 노동을 위해
업무상 정신질환의 산업재해 신청 절차와 판례, 직장 내 정신건강 증진 방안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요양급여 신청서, 유족급여 신청서, 재해경위서 등 산업재해 신청 관련 서류 작성법부터 정신질환 진단명에 따른 위험 요인들과 업무 관련성을 증명하는 방법까지 상세히 소개한다. 정신질환이나 자살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판례와 산재 신청 이후의 절차 등도 일터에서 정신질환을 얻어 산업재해 신청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다. 4장에선 일반적 스트레스 수준이라며 산재를 불승인해온 근로복지공단의 판단 경향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정신질환의 업무 관련성은 재해자의 조건을 기준으로, 즉 개인적 감수성을 고려해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하는 동안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은 노동자의 권리이자 사업주의 의무다. 사업주의 다양한 의무를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은 보건조치와 위반 시 벌칙이 담겼지만, 노동자 정신건강을 분명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와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조항이 담기면서 변화가 감지된다. 마지막 장에선 즉시 실천할 수 있는 직장 내 정신건강 증진 방법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위험 요인에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평가도구를 사용해 실태를 점검하며, 우선순위에 따라 개선대책을 수립해 실행하는 것이다. 3차에 걸친 예방과 포괄적 접근 방법, 직무 스트레스를 주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자살 예방 프로그램도 실렸다. 직장 내에서 정신건강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그를 지원할지도 상세히 알려준다. 부록으로 직장 내 정신건강 문제에 대처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의 대담을 실어, 실제 현장에서 나타나는 정신건강 위험 요인과 문제점, 인식 개선 과제와 기업 및 노동조합의 역할 등 이후 개선 방향 모색에 참고가 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