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셔터를 올리며 : 나를 키운 작은 가게들에게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30228
가격
₩ 16,800
ISBN
9791130642154
페이지
316 p.
판형
135 X 195 mm
커버
Book
책 소개
부모님이 가게 대신 넥타이를 매고 회사로 출근하는 직장인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한 남자. 굴레였을까, 섭리였을까. 시간이 흘러 그 역시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되었다. 부모님과 같은 모양새로 카운터에 앉아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나며, 그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자식들을 키웠는지, 작은 가게에 앉아 아빠는 어떤 꿈을 그렸는지, 누군가에게 공손히 고개 숙이며 어떤 다짐을 했을지, 부모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짐작해본다. [셔터를 올리며]는 현직 편의점 점주이자 에세이스트인 봉달호가 그동안 부모 또는 자신이 운영해온 가게들을 통해 인생과 시대를 돌아보는 자영업 연대기다. 평범해 보이는 가게에도 누군가의 인생이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음을, 밥벌이의 고단함과 삶의 모든 희로애락이 그 안에 온전히 녹아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한 가족이 셔터 뒤에서 흘린 눈물과 땀방울의 흔적이, 저마다의 삶의 터전에서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응원과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껴입은 얇은 옷처럼
01. 막걸리 트럭 앞자리 — 기억에 대하여
정자교슈퍼 (?~1980)
02. 초인종이 있는 집 — 욕망에 대하여
나주농약사 (1981~1983)
03. 바람이 지나는 길목 — 비상에 대하여
소망분식 1 (1986~1987)
04. 라면과 최루탄 — 시대에 대하여
소망분식 2 (1986~1987)
05. 이 끝과 저 끝 — 태도에 대하여
포도밭갈빗집 (1992~1993)
06. 장사의 기본 — 비밀에 대하여
동진오리탕 (1993~1996)
07. 각자의 길 — 이별에 대하여
소주장학생 (2000)
08. 렉서스와 졸업장 — 운명에 대하여
명성숯불갈비 (2003~2013)
09.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 용기에 대하여
하하호호 (2006)
10.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사랑에 대하여
해방편의점 (2013~∞)
에필로그 셔터를 내리며
01. 막걸리 트럭 앞자리 — 기억에 대하여
정자교슈퍼 (?~1980)
02. 초인종이 있는 집 — 욕망에 대하여
나주농약사 (1981~1983)
03. 바람이 지나는 길목 — 비상에 대하여
소망분식 1 (1986~1987)
04. 라면과 최루탄 — 시대에 대하여
소망분식 2 (1986~1987)
05. 이 끝과 저 끝 — 태도에 대하여
포도밭갈빗집 (1992~1993)
06. 장사의 기본 — 비밀에 대하여
동진오리탕 (1993~1996)
07. 각자의 길 — 이별에 대하여
소주장학생 (2000)
08. 렉서스와 졸업장 — 운명에 대하여
명성숯불갈비 (2003~2013)
09.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 용기에 대하여
하하호호 (2006)
10.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사랑에 대하여
해방편의점 (2013~∞)
에필로그 셔터를 내리며
본문발췌
P.25
그 시절 슈퍼에선 막걸리를 주전자로 팔았다. 양조장에서 큰 드럼통 같은 것에 막걸리를 담아 마을 점빵에 넘기면, 막걸리를 마시고 싶은 사람은 주전자 들고 점빵에 가서 원하는 만큼 술을 받았다. 그래서 막걸리는 ‘산다’고 표현하지 않고 ‘받는다’고 했다. “막걸리 좀 받아 오니라.” 집안 어르신이 명하면, 주전자 들고 점빵으로 뛰어가는 역할은 그 집 아이들이 맡았다. (중략) 막걸리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다가 무겁기도 하고 호기심이 일기도 하여 주전자 주둥이에 입 대고 홀짝홀짝 마셨다가 집에 도착할 즈음엔 얼근하게 취해 딸꾹거렸다는 음주 조기교육의 일화는 우리 세대에 흔하다.
P.60
1980년대에 먹고사는 문제로 고충을 겪었다는 사람은 그리 만나보지 못했다. 자영업자의 자식들은 더욱 그랬다. (중략) 세상이 아직 극단으로 고착되지 않았고, 기회의 사다리가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그랬다.
“그때는 뭐, 농약 냄새 폴폴 풍기는 데서 살아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이 눈에 보이니께 살아가는 재미가 있었제.”
P.94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엄마는 전천후 만능이었고 강철이었다. 평소 엄마는 좀 무뚝뚝한데, 장사꾼으로서 엄마는 또 달랐다. 쾌활하고 나긋나긋한 사람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가게에 딸린 방에는 세상을 포기한 아빠가 누워 있어 한숨짓다가도, 방문을 열고 가게에 나서면 표정이 확 달라졌다.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는 중국의 변검 같달까.
P.113~114
그즈음 2층 은행 누나는 십 원짜리 한 닢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대학생 형과 동생도 함께 자리를 비우는 날이 많았다. 항상 꽃향기가 은은하던 1층 곁방에서 최루탄 냄새가 느껴졌다. 1층에 사는 삼 남매 아빠는 택시 운전기사였는데, 하루는 그 집 둘째가 자랑스레 말했다. “우리 아빠도 데모하러 나갔다 오셨다!” 그해 6월, 우리는 새 역사를 만들었다.
P.146
아빠가 밖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몰라도, 손대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빈한한 살림이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아빠는 밖에 나가면 한 달에 한 번이나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식당에 나가 일했다. 광주에서 유명한 어느 돈가스 집에서 설거지를 했는데, 손님이 남긴 음식을 매일 들고 왔다. 그것은 다음 날 내 도시락 반찬통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야, 너희 집 돈가스 진짜 맛있다!” 친구들은 떠들썩 젓가락을 들이밀었고, 나는 무덤덤하게 반찬통을 양보했다.
P.148~149
포도밭갈빗집 시절 아빠의 눈빛은 그야말로 집요하기만 했다. 그해 여름방학, 당고개역까지 승합차를 몰고 마중 나온 아빠의 눈빛을 보고 잠깐 놀란 적이 있다. 예전과 달리 번뜩이는 무엇이 느껴졌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여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처절한 각오의 눈빛 아니었을까 싶다.
P.158
“그 자리에서 다른 것을 해볼라고도 했제. 태릉에서 배운 갈비를 해볼까, 그때 한참 유행이던 대패삼겹살을 해볼까, 고기 무한리필을 해볼까…… 근디 유행 타는 업종은 안 하는 것이 좋은 법이여, 알제? 족발집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디…… 근디 그 자리는 딱 보니까 그냥 오리탕집을 할 자리드란 말이여. 장사는 말이여, 자리의 힘을 이길 수 없는 법이여. 이 자리는 꼭 ‘이것’을 해야 할 자리. 그것이 기본이란 말이여, 알제?”
P.172~173
“아버지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요?”
“행복?”
행복이라는 말을 태어나 처음 들어본 사람처럼 아버지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 자식이 글을 쓰드만 시인이 다 됐네.”
잠깐 침묵이 흘렀다.
“행복이라……”
아버지가 운을 띄웠다.
“너희들이랑 있을 때는 언제나 행복했지.”
“아니 그러니까, ‘언제’ ‘가장’ 행복했었냐고요.”
취조하듯 따졌다.
“언제라니? ‘언제나’라니까.”
P.200~201
부모가 회사원인 자녀는 밖에서의 부모를 알고 싶어 하지만 부모가 자영업자인 자녀는 조금 다르다. 자식 입장에서 부모가 자영업을 한다는 것은 밖에서의 부모와 안에서의 부모를 언제나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친구는 그것이 부러웠던 것인데,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여백에 대한 부러움이 있었다. 관계에도 일정한 거리가 필요한 법이고, 지나치게 가까운 일상은 때로 피로감을 부른다.
P.308
가게에 앉아, 가게에 있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를 키운 작은 가게들의 풍경을 찬찬히 되돌아본다. 편의점을 오가는 숱한 손님들의 얼굴에도 각자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들의 이야기 또한 상상해 보곤 한다. 섣불리 지나칠 수 있는 얼굴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 시절 슈퍼에선 막걸리를 주전자로 팔았다. 양조장에서 큰 드럼통 같은 것에 막걸리를 담아 마을 점빵에 넘기면, 막걸리를 마시고 싶은 사람은 주전자 들고 점빵에 가서 원하는 만큼 술을 받았다. 그래서 막걸리는 ‘산다’고 표현하지 않고 ‘받는다’고 했다. “막걸리 좀 받아 오니라.” 집안 어르신이 명하면, 주전자 들고 점빵으로 뛰어가는 역할은 그 집 아이들이 맡았다. (중략) 막걸리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다가 무겁기도 하고 호기심이 일기도 하여 주전자 주둥이에 입 대고 홀짝홀짝 마셨다가 집에 도착할 즈음엔 얼근하게 취해 딸꾹거렸다는 음주 조기교육의 일화는 우리 세대에 흔하다.
P.60
1980년대에 먹고사는 문제로 고충을 겪었다는 사람은 그리 만나보지 못했다. 자영업자의 자식들은 더욱 그랬다. (중략) 세상이 아직 극단으로 고착되지 않았고, 기회의 사다리가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그랬다.
“그때는 뭐, 농약 냄새 폴폴 풍기는 데서 살아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이 눈에 보이니께 살아가는 재미가 있었제.”
P.94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엄마는 전천후 만능이었고 강철이었다. 평소 엄마는 좀 무뚝뚝한데, 장사꾼으로서 엄마는 또 달랐다. 쾌활하고 나긋나긋한 사람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가게에 딸린 방에는 세상을 포기한 아빠가 누워 있어 한숨짓다가도, 방문을 열고 가게에 나서면 표정이 확 달라졌다.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는 중국의 변검 같달까.
P.113~114
그즈음 2층 은행 누나는 십 원짜리 한 닢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대학생 형과 동생도 함께 자리를 비우는 날이 많았다. 항상 꽃향기가 은은하던 1층 곁방에서 최루탄 냄새가 느껴졌다. 1층에 사는 삼 남매 아빠는 택시 운전기사였는데, 하루는 그 집 둘째가 자랑스레 말했다. “우리 아빠도 데모하러 나갔다 오셨다!” 그해 6월, 우리는 새 역사를 만들었다.
P.146
아빠가 밖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몰라도, 손대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빈한한 살림이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아빠는 밖에 나가면 한 달에 한 번이나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식당에 나가 일했다. 광주에서 유명한 어느 돈가스 집에서 설거지를 했는데, 손님이 남긴 음식을 매일 들고 왔다. 그것은 다음 날 내 도시락 반찬통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야, 너희 집 돈가스 진짜 맛있다!” 친구들은 떠들썩 젓가락을 들이밀었고, 나는 무덤덤하게 반찬통을 양보했다.
P.148~149
포도밭갈빗집 시절 아빠의 눈빛은 그야말로 집요하기만 했다. 그해 여름방학, 당고개역까지 승합차를 몰고 마중 나온 아빠의 눈빛을 보고 잠깐 놀란 적이 있다. 예전과 달리 번뜩이는 무엇이 느껴졌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여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처절한 각오의 눈빛 아니었을까 싶다.
P.158
“그 자리에서 다른 것을 해볼라고도 했제. 태릉에서 배운 갈비를 해볼까, 그때 한참 유행이던 대패삼겹살을 해볼까, 고기 무한리필을 해볼까…… 근디 유행 타는 업종은 안 하는 것이 좋은 법이여, 알제? 족발집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디…… 근디 그 자리는 딱 보니까 그냥 오리탕집을 할 자리드란 말이여. 장사는 말이여, 자리의 힘을 이길 수 없는 법이여. 이 자리는 꼭 ‘이것’을 해야 할 자리. 그것이 기본이란 말이여, 알제?”
P.172~173
“아버지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요?”
“행복?”
행복이라는 말을 태어나 처음 들어본 사람처럼 아버지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 자식이 글을 쓰드만 시인이 다 됐네.”
잠깐 침묵이 흘렀다.
“행복이라……”
아버지가 운을 띄웠다.
“너희들이랑 있을 때는 언제나 행복했지.”
“아니 그러니까, ‘언제’ ‘가장’ 행복했었냐고요.”
취조하듯 따졌다.
“언제라니? ‘언제나’라니까.”
P.200~201
부모가 회사원인 자녀는 밖에서의 부모를 알고 싶어 하지만 부모가 자영업자인 자녀는 조금 다르다. 자식 입장에서 부모가 자영업을 한다는 것은 밖에서의 부모와 안에서의 부모를 언제나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친구는 그것이 부러웠던 것인데,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여백에 대한 부러움이 있었다. 관계에도 일정한 거리가 필요한 법이고, 지나치게 가까운 일상은 때로 피로감을 부른다.
P.308
가게에 앉아, 가게에 있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를 키운 작은 가게들의 풍경을 찬찬히 되돌아본다. 편의점을 오가는 숱한 손님들의 얼굴에도 각자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들의 이야기 또한 상상해 보곤 한다. 섣불리 지나칠 수 있는 얼굴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저자소개
편의점주, 에세이스트.
‘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둥으로 단연 ‘가게’를 꼽는다. 현재 자영업자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부모님과 내가 운영하거나 지나온 가게를 헤아려보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그런 숱한 가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셈이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영수증 뒷면, 라면 박스 귀퉁이, 휴대폰 메모장 등에 틈틈이 썼던 글들이 책으로 묶여 나오며 작가가 되었다. 이젠 편의점 점주라는 직업보다 ‘작가’라는 호칭으로 더 알려졌다.
[매일 갑니다, 편의점], [오늘도 지킵니다, 편의점], [삼각김밥: 힘들 땐 참치 마요] 등의 책을 썼고 [조선일보], [국민일보] 등 여러 매체에 칼럼과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둥으로 단연 ‘가게’를 꼽는다. 현재 자영업자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부모님과 내가 운영하거나 지나온 가게를 헤아려보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그런 숱한 가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셈이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영수증 뒷면, 라면 박스 귀퉁이, 휴대폰 메모장 등에 틈틈이 썼던 글들이 책으로 묶여 나오며 작가가 되었다. 이젠 편의점 점주라는 직업보다 ‘작가’라는 호칭으로 더 알려졌다.
[매일 갑니다, 편의점], [오늘도 지킵니다, 편의점], [삼각김밥: 힘들 땐 참치 마요] 등의 책을 썼고 [조선일보], [국민일보] 등 여러 매체에 칼럼과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서평
자영업은 판타지의 무대가 아니다!
현직 편의점 점주×작가 봉달호의 소금기 가득한 장사 연대기
하루 14시간 편의점에서 일하며 틈틈이 쓴 글로 책을 내기 시작해 이제는 엄연한 에세이스트이자 칼럼니스트로 자리매김한 봉달호 작가. 편의점에서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고 생생하게 풀어내면서 자영업 에세이의 새 지평을 연 그가, 이번엔 일상을 넘어 ‘삶’이란 기나긴 무대 위에서 가게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구멍가게, 농약사, 분식점, 갈빗집 등 오래전부터 여러 가게를 전전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며 커온 저자는, 이제 어느덧 자신의 가게를 십수 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지나온 가게들을 헤아려보면 열 손가락도 모자랄 정도이니 이 분야에서만큼은 견줄 만한 상대를 찾기 어렵다. 이 책은 현직 자영업자 봉달호가 어릴 적 부모님이 운영한 시골 점빵부터 현재 자신의 편의점까지 흘러온 장사의 연대기를 돌아보면서, ‘가게’라는 곳에 깃든 인생과 가족과 시대를 추억하는 자영업 에세이다.
2021년경부터 출판계에서 유행한 편의점, 서점, 백화점, 도서관, 목욕탕, 사진관과 같은 따스한 공간들과 달리, 자영업자 봉달호가 [셔터를 올리며]에서 그리는 가게는 무작정 아름답기만 한 판타지 속 그곳의 모습이 아니다. 여기에는 책상 앞에 앉은 소설가가 건네는 환상적인 위로 대신에, 실제 삶의 현장에 뚝뚝 떨어지는 땀과 눈물, 기쁨과 애환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장사의 치열함 속에서 닦지도 않은 손으로 펜을 붙드는 사람만이 써낼 수 있는, 곧 ‘진짜 삶의 터전이 담긴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은 기억의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린 저자의 고유한 경험을 빌려, 자신의 힘으로 벌어먹고 살아온 우리 이웃들의 웃음과 눈물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거칠고 무심한 파도를 몇 번이고 보낼 때마다
우리 가족은 ‘가게’라는 뗏목을 타고 물결을 견뎠다
저자의 기억 속 가장 오래된 사건은 1980년 5월, 어머니가 구멍가게를 운영했던 정자교 동네에서 광주로 향하는 시민군의 모습을 본 일이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나라 전체가 손님맞이로 들썩였을 때는 부모님이 운영하던 농약사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뭘 해도 되는’ 시대의 파도 위에 잘 올라탄 덕분에 가게에 딸린 작은 상하방에서 번듯한 양옥집으로 이사를 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가계가 크게 휘청였다. 의료보험이 변변치 않아 집안에 누가 크게 아프기라도 하면 가계가 훌렁 무너지던 시대였다. 1987년, 대학가 식당은 최루탄 연기로 가득 찼고 아픈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홀로 운영하던 분식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생들이 시위에 나서고 경찰이 진압을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셔터 내리는 소리가 울렸다. 다시 일어선 아버지가 연 가게가 줄줄이 부흥하는가 싶더니, 곧이어 운영하던 채석장은 1997년 IMF로 부도를 맞았다.
인생에서 행운은 단막극으로, 불행은 연속극으로 찾아온다 했던가. 봉달호의 인생에서도, 부단히 살아온 삶에 대한 보상처럼 작은 행운이 주어지는 듯싶다가 불행은 곧바로 머리를 불쑥 내밀곤 했다. 저자만이 겪은 이야기가 아니다. 자영업자 자신 또는 자영업자의 가족들은 늘 그랬다. 시대는 개인에게 거친 파도를 무심히 보내곤 했고, 그때마다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가게’라는 보잘것없는 뗏목을 탄 채로 파도에 올라타기도 하고 휩쓸리기도 하면서 그 물결을 건너야 했다. [셔터를 올리며]에서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한 가족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롤러코스터 같은 개인의 인생사가 한국의 현대사와 어떻게 마주하는지를 생생히 지켜볼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특별한 개인 또는 고생 많았던 한 가족의 경험담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1980년대 이후 세기말의 한국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면서, 자신이 지나온 삶을 자연스레 불러오게 될 것이다.
세상에 그냥 있는 가게는 없다
무심코 지나치던 가게에서 발견하는 뜨거운 삶의 이야기
누구보다 일찍 새벽을 깨우고 나와, 모두가 잠들 무렵 셔터를 내리고 집으로 향한다. 정해진 휴식 시간도 휴일도 없는 삶. 손님이 언제 올지 몰라 카운터에 앉아 대충 끼니를 때우고, 몸이 바스러질 듯 아픈 날에도 눈물을 머금고 자리를 지킨다. 손님의 무리한 요구도 쉽게 무시할 수 없고, 근심이 가득한 날에도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맞아야 한다. 매일이 전쟁 같고 녹록잖은 장사꾼의 하루다.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위해, 또 누군가는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밥벌이의 고단함을 견디고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자영업자에게 ‘가게’란 단순히 밥벌이의 장소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곳이자, 일상과 일생을 함께하는 곳이다. 그러니 저기 평범히 서 있는 가게에도, 알고 보면 몇 사람의 인생이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는 셈이다.
“거리에 있는 숱한 가게를 볼 때마다, 더욱이 식당을 볼 때마다, 나는 저곳이 그냥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을까 상상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국밥 한 그릇 허투루 먹을 수 없게 된다. 부모님은 내게 그런 것을 가르쳐주셨다. 한마디 말도 없이 가르쳐주셨다.”_176쪽
[셔터를 올리며]에는 작은 가게에 담긴 치열하고 뜨거운 삶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봉달호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절대 판타지적으로 소비되거나 더 이상 쉽게 지나치고 소외돼서는 안 되는 자영업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사는 세계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 이 책을 덮고 나면 그동안 무심코 지나치던 타인의 가게에서도 누군가의 인생을 조금은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밥벌이란 무엇인지, 가족은 무엇인지, 삶이라는 게 도대체 무언지. 이 이야기의 끝에서 모두가 저마다의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현직 편의점 점주×작가 봉달호의 소금기 가득한 장사 연대기
하루 14시간 편의점에서 일하며 틈틈이 쓴 글로 책을 내기 시작해 이제는 엄연한 에세이스트이자 칼럼니스트로 자리매김한 봉달호 작가. 편의점에서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고 생생하게 풀어내면서 자영업 에세이의 새 지평을 연 그가, 이번엔 일상을 넘어 ‘삶’이란 기나긴 무대 위에서 가게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구멍가게, 농약사, 분식점, 갈빗집 등 오래전부터 여러 가게를 전전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며 커온 저자는, 이제 어느덧 자신의 가게를 십수 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지나온 가게들을 헤아려보면 열 손가락도 모자랄 정도이니 이 분야에서만큼은 견줄 만한 상대를 찾기 어렵다. 이 책은 현직 자영업자 봉달호가 어릴 적 부모님이 운영한 시골 점빵부터 현재 자신의 편의점까지 흘러온 장사의 연대기를 돌아보면서, ‘가게’라는 곳에 깃든 인생과 가족과 시대를 추억하는 자영업 에세이다.
2021년경부터 출판계에서 유행한 편의점, 서점, 백화점, 도서관, 목욕탕, 사진관과 같은 따스한 공간들과 달리, 자영업자 봉달호가 [셔터를 올리며]에서 그리는 가게는 무작정 아름답기만 한 판타지 속 그곳의 모습이 아니다. 여기에는 책상 앞에 앉은 소설가가 건네는 환상적인 위로 대신에, 실제 삶의 현장에 뚝뚝 떨어지는 땀과 눈물, 기쁨과 애환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장사의 치열함 속에서 닦지도 않은 손으로 펜을 붙드는 사람만이 써낼 수 있는, 곧 ‘진짜 삶의 터전이 담긴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은 기억의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린 저자의 고유한 경험을 빌려, 자신의 힘으로 벌어먹고 살아온 우리 이웃들의 웃음과 눈물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거칠고 무심한 파도를 몇 번이고 보낼 때마다
우리 가족은 ‘가게’라는 뗏목을 타고 물결을 견뎠다
저자의 기억 속 가장 오래된 사건은 1980년 5월, 어머니가 구멍가게를 운영했던 정자교 동네에서 광주로 향하는 시민군의 모습을 본 일이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나라 전체가 손님맞이로 들썩였을 때는 부모님이 운영하던 농약사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뭘 해도 되는’ 시대의 파도 위에 잘 올라탄 덕분에 가게에 딸린 작은 상하방에서 번듯한 양옥집으로 이사를 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가계가 크게 휘청였다. 의료보험이 변변치 않아 집안에 누가 크게 아프기라도 하면 가계가 훌렁 무너지던 시대였다. 1987년, 대학가 식당은 최루탄 연기로 가득 찼고 아픈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홀로 운영하던 분식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생들이 시위에 나서고 경찰이 진압을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셔터 내리는 소리가 울렸다. 다시 일어선 아버지가 연 가게가 줄줄이 부흥하는가 싶더니, 곧이어 운영하던 채석장은 1997년 IMF로 부도를 맞았다.
인생에서 행운은 단막극으로, 불행은 연속극으로 찾아온다 했던가. 봉달호의 인생에서도, 부단히 살아온 삶에 대한 보상처럼 작은 행운이 주어지는 듯싶다가 불행은 곧바로 머리를 불쑥 내밀곤 했다. 저자만이 겪은 이야기가 아니다. 자영업자 자신 또는 자영업자의 가족들은 늘 그랬다. 시대는 개인에게 거친 파도를 무심히 보내곤 했고, 그때마다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가게’라는 보잘것없는 뗏목을 탄 채로 파도에 올라타기도 하고 휩쓸리기도 하면서 그 물결을 건너야 했다. [셔터를 올리며]에서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한 가족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롤러코스터 같은 개인의 인생사가 한국의 현대사와 어떻게 마주하는지를 생생히 지켜볼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특별한 개인 또는 고생 많았던 한 가족의 경험담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1980년대 이후 세기말의 한국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면서, 자신이 지나온 삶을 자연스레 불러오게 될 것이다.
세상에 그냥 있는 가게는 없다
무심코 지나치던 가게에서 발견하는 뜨거운 삶의 이야기
누구보다 일찍 새벽을 깨우고 나와, 모두가 잠들 무렵 셔터를 내리고 집으로 향한다. 정해진 휴식 시간도 휴일도 없는 삶. 손님이 언제 올지 몰라 카운터에 앉아 대충 끼니를 때우고, 몸이 바스러질 듯 아픈 날에도 눈물을 머금고 자리를 지킨다. 손님의 무리한 요구도 쉽게 무시할 수 없고, 근심이 가득한 날에도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맞아야 한다. 매일이 전쟁 같고 녹록잖은 장사꾼의 하루다.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위해, 또 누군가는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밥벌이의 고단함을 견디고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자영업자에게 ‘가게’란 단순히 밥벌이의 장소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곳이자, 일상과 일생을 함께하는 곳이다. 그러니 저기 평범히 서 있는 가게에도, 알고 보면 몇 사람의 인생이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는 셈이다.
“거리에 있는 숱한 가게를 볼 때마다, 더욱이 식당을 볼 때마다, 나는 저곳이 그냥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을까 상상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국밥 한 그릇 허투루 먹을 수 없게 된다. 부모님은 내게 그런 것을 가르쳐주셨다. 한마디 말도 없이 가르쳐주셨다.”_176쪽
[셔터를 올리며]에는 작은 가게에 담긴 치열하고 뜨거운 삶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봉달호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절대 판타지적으로 소비되거나 더 이상 쉽게 지나치고 소외돼서는 안 되는 자영업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사는 세계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 이 책을 덮고 나면 그동안 무심코 지나치던 타인의 가게에서도 누군가의 인생을 조금은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밥벌이란 무엇인지, 가족은 무엇인지, 삶이라는 게 도대체 무언지. 이 이야기의 끝에서 모두가 저마다의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