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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로 살 뿐 1 : 원제 스님의 정면승부 세계 일주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01215
가격
₩ 15,000
ISBN
9791190382298
페이지
327 p.
판형
140 X 210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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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책 소개
"내 기필코 최선을 다하지 않으리라!"
세계 일주 1호 스님.
원제의 5대륙 45개국 세계 만행기
스스로를 점검하기 위해 떠난 2년간의 세계 만행. 선방 수좌 원제의 조금 특별한 수행기!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을 올리고, 하루 총 열 시간의 좌선 수행을 하고, 수행 사이사이에 밥을 먹고 빨래를 하고 밭일을 하는 선방 수좌의 삶. 여름, 겨울 안거(安居)에 들어가면 1년의 절반은 이렇게 동일한 삶의 패턴으로 지낸다. 그동안 제방 선원에서 20여 안거를 지낸 젊은 수좌 원제 스님.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규칙적인 삶을 좋아하는 그가 2012년 9월, 산문 밖을 나가 2년여 시간 동안 5대륙 45개국을 다니는 세계 일주를 완수했다. 그동안 해오던 수행을 세계 도처에서 점검해야겠다는 결의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한국 불교와 선 수행을 알리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고집스레 두루마기 승복을 입고, 낡은 삿갓을 쓰고, 손엔 염주를 쥔 채 세계를 누빈 원제 스님의 여행의 순간, 깨달음의 기록.
수행 농장을 일구는 사람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가방을 통째로 도둑맞고 나서야 자신의 집착과 아집을 알아채고, 특이한 옷차림인 자신에게 다가와 축원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불교경전을 읊어주며, 불교와 명상, 선에 관심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누구라도 미리 챙겨 간 한국 불교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며 한국의 선 수행 문화를 설명한 원제 스님.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살자’는 신조를 지닌 원제 스님의 좌충우돌 여행기는 때로는 헛헛한 웃음을, 때로는 깊은 깨달음을 전한다.
세계 일주 1호 스님.
원제의 5대륙 45개국 세계 만행기
스스로를 점검하기 위해 떠난 2년간의 세계 만행. 선방 수좌 원제의 조금 특별한 수행기!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을 올리고, 하루 총 열 시간의 좌선 수행을 하고, 수행 사이사이에 밥을 먹고 빨래를 하고 밭일을 하는 선방 수좌의 삶. 여름, 겨울 안거(安居)에 들어가면 1년의 절반은 이렇게 동일한 삶의 패턴으로 지낸다. 그동안 제방 선원에서 20여 안거를 지낸 젊은 수좌 원제 스님.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규칙적인 삶을 좋아하는 그가 2012년 9월, 산문 밖을 나가 2년여 시간 동안 5대륙 45개국을 다니는 세계 일주를 완수했다. 그동안 해오던 수행을 세계 도처에서 점검해야겠다는 결의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한국 불교와 선 수행을 알리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고집스레 두루마기 승복을 입고, 낡은 삿갓을 쓰고, 손엔 염주를 쥔 채 세계를 누빈 원제 스님의 여행의 순간, 깨달음의 기록.
수행 농장을 일구는 사람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가방을 통째로 도둑맞고 나서야 자신의 집착과 아집을 알아채고, 특이한 옷차림인 자신에게 다가와 축원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불교경전을 읊어주며, 불교와 명상, 선에 관심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누구라도 미리 챙겨 간 한국 불교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며 한국의 선 수행 문화를 설명한 원제 스님.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살자’는 신조를 지닌 원제 스님의 좌충우돌 여행기는 때로는 헛헛한 웃음을, 때로는 깊은 깨달음을 전한다.
목차
■ 서문
피츠로이에 일주문을 세우다
■ 여행을 시작하며
세계 일주 제1호 스님
카우치서핑_한국 해인사
네 명의 서퍼와 은애 씨_한국 해인사
1. 여행도 삶도, 꼭 의미가 필요할까요?
시작의 108번 게이트_중국 티베트
티베트의 주도, 라싸_중국 티베트
스님, 산소 다 떨어졌는데요_중국 티베트
나 또한 풍경이 된다_중국 청두
청두에 사는 두 친구, 리와 밀리_중국 청두
애들은 애들의 일을 할 뿐_중국 구채구
삶이 뭐 거창한 건가요_중국 청두
피에르와 만나다_중국 샹그릴라
바쁜 중국에서 평온한 라오스로_라오스 루앙남타
차경과 현요_라오스 루앙프라방
철벽승 원제_라오스 방비엥
마음챙김 농장_태국 치앙마이
몽키 포레스트_인도네시아 발리
바보 도인_네팔 카트만두
두 번의 번지점프_네팔 카트만두
무심의 한가운데서_네팔 히말라야
나의 친구 피에르에게_인도 바라나시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듭니다_인도 카주라호
매너리즘 굴복기_인도 리시케시
달라이 라마를 뵙지 못한다 해도_인도 다람살라
배움보다 익힘_인도 판공초
당신의 안목은요?_인도 우다이푸르
예비출가자 마니쉬_인도 벵갈루루
목샤로 찾아오세요_인도 벵갈루루
재정비를 위해 한국으로_인도 뉴델리
2. 오늘 밤엔 오늘 밤의 꿈을, 내일 아침엔 또 내일의 햇살을
이미 충분하다_영국 런던
스톤헨지, 〈세계 불가사의 탐방〉의 시작_영국 솔즈베리
바람에 날아간 차경_영국 에든버러
브뤼셀의 화가 은애 씨_벨기에 브뤼셀
어쨌든 우리는 살아간다_프랑스 파리
포르투의 밤바람_포르투갈 포르투
아즈키와 모찌_스페인 마드리드
뿜_스페인 그라나다
과일주스와 원준_스페인 바르셀로나
바티칸에서 보내는 엽서_바티칸 시국
이아 마을의 소매치기_그리스 산토리니
삐딱함도 끈기가 필요하다_이탈리아 피사
아주 특별한 만남_이탈리아 밀라노
시간을 견디는 일_독일 뮌헨
프라하의 봄_체코 프라하
덴마크의 불교인 브라이언_덴마크 에스비에르
당신의 정부를 얼마나 신뢰하나요?_덴마크 에스비에르
두브로브니크의 도묘_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영원한 사랑_크로아티아 스플리트
■ 한 권의 책을 마치며
세계 일주와 사마귀_그리스 델포이
피츠로이에 일주문을 세우다
■ 여행을 시작하며
세계 일주 제1호 스님
카우치서핑_한국 해인사
네 명의 서퍼와 은애 씨_한국 해인사
1. 여행도 삶도, 꼭 의미가 필요할까요?
시작의 108번 게이트_중국 티베트
티베트의 주도, 라싸_중국 티베트
스님, 산소 다 떨어졌는데요_중국 티베트
나 또한 풍경이 된다_중국 청두
청두에 사는 두 친구, 리와 밀리_중국 청두
애들은 애들의 일을 할 뿐_중국 구채구
삶이 뭐 거창한 건가요_중국 청두
피에르와 만나다_중국 샹그릴라
바쁜 중국에서 평온한 라오스로_라오스 루앙남타
차경과 현요_라오스 루앙프라방
철벽승 원제_라오스 방비엥
마음챙김 농장_태국 치앙마이
몽키 포레스트_인도네시아 발리
바보 도인_네팔 카트만두
두 번의 번지점프_네팔 카트만두
무심의 한가운데서_네팔 히말라야
나의 친구 피에르에게_인도 바라나시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듭니다_인도 카주라호
매너리즘 굴복기_인도 리시케시
달라이 라마를 뵙지 못한다 해도_인도 다람살라
배움보다 익힘_인도 판공초
당신의 안목은요?_인도 우다이푸르
예비출가자 마니쉬_인도 벵갈루루
목샤로 찾아오세요_인도 벵갈루루
재정비를 위해 한국으로_인도 뉴델리
2. 오늘 밤엔 오늘 밤의 꿈을, 내일 아침엔 또 내일의 햇살을
이미 충분하다_영국 런던
스톤헨지, 〈세계 불가사의 탐방〉의 시작_영국 솔즈베리
바람에 날아간 차경_영국 에든버러
브뤼셀의 화가 은애 씨_벨기에 브뤼셀
어쨌든 우리는 살아간다_프랑스 파리
포르투의 밤바람_포르투갈 포르투
아즈키와 모찌_스페인 마드리드
뿜_스페인 그라나다
과일주스와 원준_스페인 바르셀로나
바티칸에서 보내는 엽서_바티칸 시국
이아 마을의 소매치기_그리스 산토리니
삐딱함도 끈기가 필요하다_이탈리아 피사
아주 특별한 만남_이탈리아 밀라노
시간을 견디는 일_독일 뮌헨
프라하의 봄_체코 프라하
덴마크의 불교인 브라이언_덴마크 에스비에르
당신의 정부를 얼마나 신뢰하나요?_덴마크 에스비에르
두브로브니크의 도묘_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영원한 사랑_크로아티아 스플리트
■ 한 권의 책을 마치며
세계 일주와 사마귀_그리스 델포이
본문발췌
안거 기간에는 당연히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안거 사이에 있는 봄과 가을에도 저는 여간해서는 절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제 말을 믿지 않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제 개인의 성향이나 생활 패턴이 어떠하건, 저는 2012년 9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25개월 동안 5대륙 45개국을 돌며 세계 일주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 불교에서 ‘세계 일주 1호 스님’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습니다. 세계 일주까지 한 스님이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 말을 사람들이 쉽게 신뢰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16쪽
준비물 중에 특별히 챙긴 것도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108 참회문과 성철 스님이 쓰신 불기자심(不欺自心) 명함판이었습니다. 108 참회는 승려가 되고 난 후부터 계속해온 하루의 일과였습니다. 여행 중에도 매일 108 참회를 하리라 결심한 데에는 노장님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노장님께서는 입적하시기 전인 구순의 연세에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같이 108 참회를 하셨습니다. 간혹 감기라도 걸려 몸이 좋지 않으실 때는 절을 한 번에 하기 힘드셔서 식은땀을 흘리시며 세 번에 나누어 하시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연로하신 스님께서 108 참회를 빠뜨리지 않고 하시는 모습에 시자로서 다소 걱정이 되어 좀 쉬엄쉬엄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노장님께서는 이 일관된 삶의 습관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노장님께서 그 언젠가 점심 공양을 드시고 산책을 나가시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원제야, 내가 있잖아… 어젯밤 12시 반에 잠깐 잠이 깼거든.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어제저녁에 108 참회를 안 했더라….”
“네, 깜빡하실 수도 있으시지요.”
“그래서 말이야… 했어.”
“네”
“108 참회 말이야. 밤에 일어나 했어.” -20쪽
등산길에 비해 하산길은 이를 데 없이 수월했습니다. 몸이 편해지니 마음에 다소 여유가 생겼는지, 계곡물 흐르는 소리도 들리고 바위틈에서 자라는 꽃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스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의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걸어가시며 나머지 일정 모두를 스스로의 힘으로 완주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제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과연 칠순을 넘기고도 저렇게 당당히 걸어갈 수 있을까 말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의 순간, 정신이 번쩍 듭니다. 아, 안 돼, 나는 말 타기로 했지! 속지 말자 원제야, 마음 약해지면 안 돼. 어리석은 질문은 그만두자. 나약한 질문이 멈춰지면 말 타는 것이 곧장 답입니다. -64쪽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자연의 풍광도 좋고, 다양한 체험도 좋지만, 사람 사이의 만남이 역시나 가장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스님인 저에게 있어서 불교는 그 모든 만남과 소통의 시작이며 중심입니다. 불교 신자나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불교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들으며 제 경험을 들려주는 일이 제가 하는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88쪽
죽음 그 자체는 어찌 보면 무서운 일이 아닙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과 상상이 두려운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 죽음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또 죽음으로 온전하게 들어갈 수만 있다면, 죽음 또한 삶의 흐름처럼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마치 죽음을 받아들이며 지금 나른하게 풀려가는 몸처럼 말이지요. 그래서인지 모릅니다. 마차푸차레를 바라보며 마시던 종이 잔 속의 커피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147쪽
지난밤에 쏟아진 폭우 때문에 흙탕물로 변해버린 강물이 더욱 거세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흙탕물을 보다 불현듯 한 생각이 떠올랐을 뿐입니다.
‘꼭 여행일 필요는 없잖아. 삶이 이렇게 큰데 말이야….’
저는 2년 계획으로 세계 일주를 하는 중이었고, 이것은 분명히 여행이었습니다. 시간과 돈을 들여 하는 여행에서는 나름대로 얻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새로운 자극이든, 색다른 경험이든, 외국인 친구든, 자신의 발전이든,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그 무언가를 기대하고 얻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얻지 못하거나 경험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삶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어느 특정한 기간의 여행에는 나름의 목적과 성취라는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삶이라는 전체의 시간과 공간은 그 어떤 목적과 성취 없이도 저 흙탕물처럼 아무렇지 않게 흘러갈 수 있었습니다. 관점이 서서히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여행이 아니라 삶으로 말입니다. -168쪽
세상이 바뀌길 원한다면 내가 먼저 바뀌어야만 하고, 세상이 안정되길 원한다면 내가 먼저 안정이 되어야 합니다. 인류 역사의 위대한 성현들은 하나같이 나의 변화라는 과정을 뼈아프게 치러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한 과정 뒤에 그 성현들의 역할과 본분이 각자가 처한 사회나 문화라는 인연에 따라 자연스럽게 익어가며 변화를 일구어냈습니다. 나의 변화라는 수순을 경시하고 곧장 자신의 생각대로 사회를 바꾸려는 열망은 아무래도 성급합니다. 깊은 안목이 그 모든 변화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므로, 안목을 심화하기 위한 수행의 시간은 필수적입니다. 그나마 앞서 수행의 길을 가고 있는 제가 해준 설명에 마니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주었습니다. -190쪽
생각해보니 아직까지 그 누구도 게임에 등장한 불가사의들에 대한 실제 탐방기를 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비단 한국에서의 상황만은 아닐 듯싶었습니다. 그 누가 문명이라는 게임에서 발상해 게임에 나오는 불가사의들을 실제로 탐방해가며 역사적 기록과 시대적 의미, 현실적 상황 등을 비교하고 고증하는 글을 써볼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다가 저의 구체적인 경험과 느낌 그리고 주변 시설의 정보까지 아울러서 하나의 글을 완성해본다면 이는 전무후무한 작업이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이는 세계 일주를 하는 저에게만 허락되는 유일한 기회일 수도 있었습니다. ‘세계 불가사의 탐방’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214쪽
세계 일주를 하면서 저는 줄곧 두루마기를 입고 삿갓을 쓰고 다녔습니다. 많은 짐을 메고 걸어가야 할 때나, 스쿠터를 타고 운전할 때, 험한 산을 오를 때, 해변에서 수영할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두루마기와 삿갓이었습니다. 제가 고집스럽게 두루마기와 삿갓 복장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눈에 띄는 이 복장이 저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223쪽
준비물 중에 특별히 챙긴 것도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108 참회문과 성철 스님이 쓰신 불기자심(不欺自心) 명함판이었습니다. 108 참회는 승려가 되고 난 후부터 계속해온 하루의 일과였습니다. 여행 중에도 매일 108 참회를 하리라 결심한 데에는 노장님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노장님께서는 입적하시기 전인 구순의 연세에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같이 108 참회를 하셨습니다. 간혹 감기라도 걸려 몸이 좋지 않으실 때는 절을 한 번에 하기 힘드셔서 식은땀을 흘리시며 세 번에 나누어 하시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연로하신 스님께서 108 참회를 빠뜨리지 않고 하시는 모습에 시자로서 다소 걱정이 되어 좀 쉬엄쉬엄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노장님께서는 이 일관된 삶의 습관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노장님께서 그 언젠가 점심 공양을 드시고 산책을 나가시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원제야, 내가 있잖아… 어젯밤 12시 반에 잠깐 잠이 깼거든.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어제저녁에 108 참회를 안 했더라….”
“네, 깜빡하실 수도 있으시지요.”
“그래서 말이야… 했어.”
“네”
“108 참회 말이야. 밤에 일어나 했어.” -20쪽
등산길에 비해 하산길은 이를 데 없이 수월했습니다. 몸이 편해지니 마음에 다소 여유가 생겼는지, 계곡물 흐르는 소리도 들리고 바위틈에서 자라는 꽃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스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의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걸어가시며 나머지 일정 모두를 스스로의 힘으로 완주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제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과연 칠순을 넘기고도 저렇게 당당히 걸어갈 수 있을까 말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의 순간, 정신이 번쩍 듭니다. 아, 안 돼, 나는 말 타기로 했지! 속지 말자 원제야, 마음 약해지면 안 돼. 어리석은 질문은 그만두자. 나약한 질문이 멈춰지면 말 타는 것이 곧장 답입니다. -64쪽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자연의 풍광도 좋고, 다양한 체험도 좋지만, 사람 사이의 만남이 역시나 가장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스님인 저에게 있어서 불교는 그 모든 만남과 소통의 시작이며 중심입니다. 불교 신자나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불교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들으며 제 경험을 들려주는 일이 제가 하는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88쪽
죽음 그 자체는 어찌 보면 무서운 일이 아닙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과 상상이 두려운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 죽음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또 죽음으로 온전하게 들어갈 수만 있다면, 죽음 또한 삶의 흐름처럼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마치 죽음을 받아들이며 지금 나른하게 풀려가는 몸처럼 말이지요. 그래서인지 모릅니다. 마차푸차레를 바라보며 마시던 종이 잔 속의 커피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147쪽
지난밤에 쏟아진 폭우 때문에 흙탕물로 변해버린 강물이 더욱 거세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흙탕물을 보다 불현듯 한 생각이 떠올랐을 뿐입니다.
‘꼭 여행일 필요는 없잖아. 삶이 이렇게 큰데 말이야….’
저는 2년 계획으로 세계 일주를 하는 중이었고, 이것은 분명히 여행이었습니다. 시간과 돈을 들여 하는 여행에서는 나름대로 얻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새로운 자극이든, 색다른 경험이든, 외국인 친구든, 자신의 발전이든,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그 무언가를 기대하고 얻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얻지 못하거나 경험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삶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어느 특정한 기간의 여행에는 나름의 목적과 성취라는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삶이라는 전체의 시간과 공간은 그 어떤 목적과 성취 없이도 저 흙탕물처럼 아무렇지 않게 흘러갈 수 있었습니다. 관점이 서서히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여행이 아니라 삶으로 말입니다. -168쪽
세상이 바뀌길 원한다면 내가 먼저 바뀌어야만 하고, 세상이 안정되길 원한다면 내가 먼저 안정이 되어야 합니다. 인류 역사의 위대한 성현들은 하나같이 나의 변화라는 과정을 뼈아프게 치러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한 과정 뒤에 그 성현들의 역할과 본분이 각자가 처한 사회나 문화라는 인연에 따라 자연스럽게 익어가며 변화를 일구어냈습니다. 나의 변화라는 수순을 경시하고 곧장 자신의 생각대로 사회를 바꾸려는 열망은 아무래도 성급합니다. 깊은 안목이 그 모든 변화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므로, 안목을 심화하기 위한 수행의 시간은 필수적입니다. 그나마 앞서 수행의 길을 가고 있는 제가 해준 설명에 마니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주었습니다. -190쪽
생각해보니 아직까지 그 누구도 게임에 등장한 불가사의들에 대한 실제 탐방기를 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비단 한국에서의 상황만은 아닐 듯싶었습니다. 그 누가 문명이라는 게임에서 발상해 게임에 나오는 불가사의들을 실제로 탐방해가며 역사적 기록과 시대적 의미, 현실적 상황 등을 비교하고 고증하는 글을 써볼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다가 저의 구체적인 경험과 느낌 그리고 주변 시설의 정보까지 아울러서 하나의 글을 완성해본다면 이는 전무후무한 작업이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이는 세계 일주를 하는 저에게만 허락되는 유일한 기회일 수도 있었습니다. ‘세계 불가사의 탐방’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214쪽
세계 일주를 하면서 저는 줄곧 두루마기를 입고 삿갓을 쓰고 다녔습니다. 많은 짐을 메고 걸어가야 할 때나, 스쿠터를 타고 운전할 때, 험한 산을 오를 때, 해변에서 수영할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두루마기와 삿갓이었습니다. 제가 고집스럽게 두루마기와 삿갓 복장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눈에 띄는 이 복장이 저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223쪽
저자소개
“삶이란 게 뭐 거창한 건가요, 그저 자연스러운 인연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사는 거지요.”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살자, 최선을 다하지 말자,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행복하자는 신조로 살고 있다. 어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공부가 머무는 것 같아 2012년 9월부터 2년간 티베트 카일라스를 시작으로 5대륙 45개국 세계 일주를 했다. 세계 일주 기록을 책으로 엮자는 요청이 많았지만 그 의미를 규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직 그 의미와 영향을 찾는 과정이고, 앞으로의 삶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확인될 것이라 믿고 있다. 삶의 경험들이 수천수만이어도 자기만의 안목으로 통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멋진 삶이라고 생각한다.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을 전공하며 수행하던 중 ‘여기에 뭔가가 있다’, ‘이 사람(부처님)은 진짜를 말하고 있다’라는 확신으로 출가를 결심했다. 2006년 해인사로 출가, 도림법전 스님의 제자로 스님이 되었다. 지금은 김천 수도암에서 정진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가 있다.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살자, 최선을 다하지 말자,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행복하자는 신조로 살고 있다. 어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공부가 머무는 것 같아 2012년 9월부터 2년간 티베트 카일라스를 시작으로 5대륙 45개국 세계 일주를 했다. 세계 일주 기록을 책으로 엮자는 요청이 많았지만 그 의미를 규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직 그 의미와 영향을 찾는 과정이고, 앞으로의 삶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확인될 것이라 믿고 있다. 삶의 경험들이 수천수만이어도 자기만의 안목으로 통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멋진 삶이라고 생각한다.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을 전공하며 수행하던 중 ‘여기에 뭔가가 있다’, ‘이 사람(부처님)은 진짜를 말하고 있다’라는 확신으로 출가를 결심했다. 2006년 해인사로 출가, 도림법전 스님의 제자로 스님이 되었다. 지금은 김천 수도암에서 정진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가 있다.
서평
“매일매일이 정면승부입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정면승부입니다.”
스스로를 점검하기 위해 떠난 2년간의 세계 만행
선방 수좌 원제의 조금 특별한 수행기
절에서의 삶은 무척이나 단순하다. 수행 정진 기간인 여름, 겨울 안거(安居)에 들어가면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을 올리고, 하루 총 열 시간의 좌선 수행을 한다. 수행 사이사이의 시간에 밥을 먹고 빨래를 하고 밭일을 한다. 1년의 절반은 이렇게 동일한 삶의 패턴으로 지낸다. 선원에서 살아가는 일반 수행자들의 삶이다.
그동안 제방 선원에서 20여 안거를 지낸 젊은 수좌 원제 스님. 1년에 여섯 달씩 꼬박 10년이 넘는 시간이다. 원제 스님은 이런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규칙적인 삶을 좋아한다. 절 밖으로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가 2012년 9월, 산문 밖을 나가 2년여 시간 동안 5대륙 45개국을 다니는 세계 일주를 완수했다. 원제 스님은 이를 두고 스스로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아이러니’라고 말한다.
커다란 배낭에 침낭과 모기장, 가사와 승복, 카메라와 노트북, 트레킹화와 샌들, 비상약과 자물쇠를 넣었다. 108 참회문과 성철 스님이 쓰신 ‘불기자심(不欺自心)’ 명함판도 챙겼다. 절 밖에서도 매일 108 참회문을 하겠다는 결심의 준비물, 세계 각지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건넬 성철 스님의 경구였던 것이다. 그렇게 27킬로그램 무게의 가방을 메고 산문 밖을 나섰다. 수행이 진척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걷는 듯한 답답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동안 해오던 수행을 세계 도처에서 점검해야겠다는 결의가 뒤따랐다.
“이 책은 세계 일주의 기록입니다. 또한 눈앞의 허공을 도량 삼아 살아가는 원제라는 한 수행자의 조금은 특별한 수행기이자,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책 속에서
“이제,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두루마기 승복, 낡은 삿갓, 흑요석 염주와 함께한 길 위의 시간
승려의 여행은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까. 원제 스님은 여행 기간 동안 고집스레 삿갓을 쓰고 두루마기 승복을 입고 손에는 염주를 들었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이기에 좋은 숙소, 음식은 애당초 거리가 멀었고, 여행하는 도시의 현지인 집에 머물 수 있는 카우치서핑(Couch Surfing, 잠잘 만한 ‘소파couch’를 ‘옮겨 다니는 일surfing’을 뜻하는 여행자 네트워크)을 통해 식비와 숙박비를 절약했다. 비용 절감도 중요했지만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한국 불교를 알리고 선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원제 스님만의 여행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카우치서핑에는 프로필에 소개된 내용을 단어로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는데, 이 기능은 여행하는 도시의 호스트를 찾을 때 무척이나 유용했습니다. 저는 좋은 집을 가지고 더 안락한 조건을 제공하는 호스트보다는, 불교와 명상, 선(禪)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과의 만남을 우선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검색으로 사용한 단어는 Buddhism이나 Meditation, Zen 등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카우치서핑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재능 기부인데, 저는 선 수행이 제 전문 분야였기에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만나려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불교와 수행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고루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한국에서 찾아온 진짜 선승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고, 저로서는 세계 도처에 있는 불교 수행자를 만나 직접 대화를 나누며 교류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티베트 카일라스를 시작으로 한 스님의 만행은 중국, 네팔, 인도를 거쳐 유럽, 남미, 미국으로 이어졌다. 여행의 길목에서 그는 선 수행을 실천하는 중국인, 출가를 준비하는 인도인,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관음선종 센터를 운영하는 이스라엘인을 만났다. 불교와 명상, 선에 관심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누구라도 스님은 미리 챙겨 간 한국 불교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함께 보며 한국의 선 수행 문화를 설명하고 안내했다. 수행 농장을 일구는 사람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외국인들을 위한 법문을 펼치고, 영국의 한 교회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예배를 보았다.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살자’, ‘우리 삶은 변화와 흐름의 연속’이라는 원제 스님의 삶의 신조는 여행길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멍 때리는 판다를 보며 우리 인생사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원숭이와 장난을 치다 수행의 이치를 점검하며, 도둑에게 가방을 통째로 도난당하고 나서야 자신의 집착과 아집을 알아챈 원제 스님의 기록들은 때로는 헛헛한 웃음을, 때로는 깊은 깨달음을 전한다.
삶과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고행의 순간도 있었고, 햇살이 약해지는 오후 4시 즈음 근처의 사원으로 가 불상 앞에서 매일의 일과인 108 참회를 하며 평화에 몸과 마음을 누이는 순간도 있었다. 극심한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간도 있었고, 특이한 옷차림인 자신에게 다가와 축원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반야심경]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읊어주는 시간도 있었다.
돌이켜보니 모든 순간순간이 수행이었고, 모든 이들이 살아 있는 스승이었다.
“제가 세계 일주를 하며 꼭 즐겁고 긍정적인 경험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좋든 안 좋든 그 수많은 상황을 접하며 낱낱의 경험들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비움으로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경험을 치러냄이 모두 훌륭한 수행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저는 세계 일주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 일주를 하던 당시에는 그런 여러 경험의 수행을 치러내느라 바빠서, 또 그렇게 비움으로 제대로 돌이킬 만한 사색의 여유가 없어서, 도리어 그것이 수행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던 듯합니다. 그때도 연습 중이었고, 지금도 연습 중입니다.” -책 속에서
나 자신의 혁명을 위해 떠난 원제 스님의 길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습니다”
수행자가 결행한 세계 일주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희소하고도 의미 있는 간접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에 원제 스님은 2012년 9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25개월간의 경험을 블로그와 월간 [해인]에 연재했다. 그 여행기를 책으로 엮자는 요청이 많았지만 원제 스님은 여행의 의미를 규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
아직도 그 의미와 영향을 찾는 과정이고, 앞으로의 삶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확인될 것이라 믿고 있다.
“저는 확신합니다. 수행을 통한 고요하고도 근원적인 혁명이야말로, ‘나’에 대한 실체화와 과도한 중심성을 전복시키고, 활달히 열린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새롭게 보는 안목을 살려내는 진정한 의미의 혁명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기에 저에게 진정한 혁명이란 바깥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바뀌고 시선이 바뀌면, 바깥의 사람들과 세상이 모두 자연스럽게 뒤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일이 이미 벌어진 뒤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세계 일주를 하며 저는 저 자신과 시선이 바뀌는 조용한 수행 혁명을 부단히 해가고 있었습니다. 세계 일주 역시 수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수행이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 눈앞의 삶으로 틈틈이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책 속에서
수년이 지나 여행의 기록들을 다시 작성한 원제 스님은 ‘마치 만다라를 완성하는 듯한’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티베트 스님들이 몇 달에 걸쳐 인내와 수행의 정신을 바탕으로 형형색색 가는 모래로 조성하는 만다라. 이 장엄하면서도 경외로운 불공(佛供)을 스님들은 무심한 빗자루질로 쓱쓱 쓸어 담는 것으로 의식을 마친다. 별 볼 일 없는 한 줌의 모래로 변하는 만다라처럼, 원제 스님은 ‘흐르는 강물에 한 줌 모래를 흩뿌리는 심경으로’ 이 책을 통해 세계 일주의 진정한 여정을 마무리한다.
절에서 살아가는 수행승으로서,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스님은 자신의 경험의 기록들이 ‘나만의 혁명’을 꿈꾸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여지없이 정면승부입니다.”
스스로를 점검하기 위해 떠난 2년간의 세계 만행
선방 수좌 원제의 조금 특별한 수행기
절에서의 삶은 무척이나 단순하다. 수행 정진 기간인 여름, 겨울 안거(安居)에 들어가면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을 올리고, 하루 총 열 시간의 좌선 수행을 한다. 수행 사이사이의 시간에 밥을 먹고 빨래를 하고 밭일을 한다. 1년의 절반은 이렇게 동일한 삶의 패턴으로 지낸다. 선원에서 살아가는 일반 수행자들의 삶이다.
그동안 제방 선원에서 20여 안거를 지낸 젊은 수좌 원제 스님. 1년에 여섯 달씩 꼬박 10년이 넘는 시간이다. 원제 스님은 이런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규칙적인 삶을 좋아한다. 절 밖으로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가 2012년 9월, 산문 밖을 나가 2년여 시간 동안 5대륙 45개국을 다니는 세계 일주를 완수했다. 원제 스님은 이를 두고 스스로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아이러니’라고 말한다.
커다란 배낭에 침낭과 모기장, 가사와 승복, 카메라와 노트북, 트레킹화와 샌들, 비상약과 자물쇠를 넣었다. 108 참회문과 성철 스님이 쓰신 ‘불기자심(不欺自心)’ 명함판도 챙겼다. 절 밖에서도 매일 108 참회문을 하겠다는 결심의 준비물, 세계 각지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건넬 성철 스님의 경구였던 것이다. 그렇게 27킬로그램 무게의 가방을 메고 산문 밖을 나섰다. 수행이 진척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걷는 듯한 답답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동안 해오던 수행을 세계 도처에서 점검해야겠다는 결의가 뒤따랐다.
“이 책은 세계 일주의 기록입니다. 또한 눈앞의 허공을 도량 삼아 살아가는 원제라는 한 수행자의 조금은 특별한 수행기이자,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책 속에서
“이제,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두루마기 승복, 낡은 삿갓, 흑요석 염주와 함께한 길 위의 시간
승려의 여행은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까. 원제 스님은 여행 기간 동안 고집스레 삿갓을 쓰고 두루마기 승복을 입고 손에는 염주를 들었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이기에 좋은 숙소, 음식은 애당초 거리가 멀었고, 여행하는 도시의 현지인 집에 머물 수 있는 카우치서핑(Couch Surfing, 잠잘 만한 ‘소파couch’를 ‘옮겨 다니는 일surfing’을 뜻하는 여행자 네트워크)을 통해 식비와 숙박비를 절약했다. 비용 절감도 중요했지만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한국 불교를 알리고 선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원제 스님만의 여행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카우치서핑에는 프로필에 소개된 내용을 단어로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는데, 이 기능은 여행하는 도시의 호스트를 찾을 때 무척이나 유용했습니다. 저는 좋은 집을 가지고 더 안락한 조건을 제공하는 호스트보다는, 불교와 명상, 선(禪)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과의 만남을 우선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검색으로 사용한 단어는 Buddhism이나 Meditation, Zen 등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카우치서핑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재능 기부인데, 저는 선 수행이 제 전문 분야였기에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만나려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불교와 수행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고루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한국에서 찾아온 진짜 선승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고, 저로서는 세계 도처에 있는 불교 수행자를 만나 직접 대화를 나누며 교류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티베트 카일라스를 시작으로 한 스님의 만행은 중국, 네팔, 인도를 거쳐 유럽, 남미, 미국으로 이어졌다. 여행의 길목에서 그는 선 수행을 실천하는 중국인, 출가를 준비하는 인도인,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관음선종 센터를 운영하는 이스라엘인을 만났다. 불교와 명상, 선에 관심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누구라도 스님은 미리 챙겨 간 한국 불교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함께 보며 한국의 선 수행 문화를 설명하고 안내했다. 수행 농장을 일구는 사람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외국인들을 위한 법문을 펼치고, 영국의 한 교회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예배를 보았다.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살자’, ‘우리 삶은 변화와 흐름의 연속’이라는 원제 스님의 삶의 신조는 여행길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멍 때리는 판다를 보며 우리 인생사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원숭이와 장난을 치다 수행의 이치를 점검하며, 도둑에게 가방을 통째로 도난당하고 나서야 자신의 집착과 아집을 알아챈 원제 스님의 기록들은 때로는 헛헛한 웃음을, 때로는 깊은 깨달음을 전한다.
삶과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고행의 순간도 있었고, 햇살이 약해지는 오후 4시 즈음 근처의 사원으로 가 불상 앞에서 매일의 일과인 108 참회를 하며 평화에 몸과 마음을 누이는 순간도 있었다. 극심한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간도 있었고, 특이한 옷차림인 자신에게 다가와 축원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반야심경]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읊어주는 시간도 있었다.
돌이켜보니 모든 순간순간이 수행이었고, 모든 이들이 살아 있는 스승이었다.
“제가 세계 일주를 하며 꼭 즐겁고 긍정적인 경험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좋든 안 좋든 그 수많은 상황을 접하며 낱낱의 경험들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비움으로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경험을 치러냄이 모두 훌륭한 수행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저는 세계 일주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 일주를 하던 당시에는 그런 여러 경험의 수행을 치러내느라 바빠서, 또 그렇게 비움으로 제대로 돌이킬 만한 사색의 여유가 없어서, 도리어 그것이 수행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던 듯합니다. 그때도 연습 중이었고, 지금도 연습 중입니다.” -책 속에서
나 자신의 혁명을 위해 떠난 원제 스님의 길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습니다”
수행자가 결행한 세계 일주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희소하고도 의미 있는 간접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에 원제 스님은 2012년 9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25개월간의 경험을 블로그와 월간 [해인]에 연재했다. 그 여행기를 책으로 엮자는 요청이 많았지만 원제 스님은 여행의 의미를 규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
아직도 그 의미와 영향을 찾는 과정이고, 앞으로의 삶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확인될 것이라 믿고 있다.
“저는 확신합니다. 수행을 통한 고요하고도 근원적인 혁명이야말로, ‘나’에 대한 실체화와 과도한 중심성을 전복시키고, 활달히 열린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새롭게 보는 안목을 살려내는 진정한 의미의 혁명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기에 저에게 진정한 혁명이란 바깥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바뀌고 시선이 바뀌면, 바깥의 사람들과 세상이 모두 자연스럽게 뒤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일이 이미 벌어진 뒤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세계 일주를 하며 저는 저 자신과 시선이 바뀌는 조용한 수행 혁명을 부단히 해가고 있었습니다. 세계 일주 역시 수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수행이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 눈앞의 삶으로 틈틈이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책 속에서
수년이 지나 여행의 기록들을 다시 작성한 원제 스님은 ‘마치 만다라를 완성하는 듯한’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티베트 스님들이 몇 달에 걸쳐 인내와 수행의 정신을 바탕으로 형형색색 가는 모래로 조성하는 만다라. 이 장엄하면서도 경외로운 불공(佛供)을 스님들은 무심한 빗자루질로 쓱쓱 쓸어 담는 것으로 의식을 마친다. 별 볼 일 없는 한 줌의 모래로 변하는 만다라처럼, 원제 스님은 ‘흐르는 강물에 한 줌 모래를 흩뿌리는 심경으로’ 이 책을 통해 세계 일주의 진정한 여정을 마무리한다.
절에서 살아가는 수행승으로서,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스님은 자신의 경험의 기록들이 ‘나만의 혁명’을 꿈꾸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