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가운을 벗은 의사들 : 우리가 모르는 곳까지 날아갔던 새들이 있었다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20410
가격
₩ 21,000
ISBN
9791189346331
페이지
323 p.
판형
140 X 210 mm
커버
Book
책 소개
클레망소, 안톤 체호프, 서머싯 몸, 체 게바라, 몬테소리, 쑨원, 코넌 도일, 서재필, 올리버 색스... 역사나 문학작품 속에서 이 이름들을 한번쯤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정치가, 작가, 혁명가, 교육자, 음악가이기 이전에 의사였고, 개인의 열망과 시대의 부름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역사를 쓴 사람들이다. 이 인물들이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또 다른 꿈을 펼칠 때, 의학과 의업에서 갈고닦은 지식과 경험을 다른 분야와 융합하여, 더 넓고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나가는 모습에 주목했다. 이들을 ‘가운을 벗은 의사들’이라고 표현했으나, 그것은 이들이 의사라는 역할보다 다른 업적들로 더 잘 알려져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운을 벗고 자신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갔으나, 이들에겐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용기 있게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그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의학이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므로, 그 근간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자리한다. 따라서 이들의 의학적 지식과 경험은 그들이 다른 길을 걸을 때도 현실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의학자만의 남다른 족적을 남겼다.
목차
서문 우리가 모르는 곳까지 날아갔던 새들이 있었다 … 7
조르주 클레망소 … 23
안톤 체호프 … 41
주세페 시노폴리 … 55
서머싯 몸 … 71
살바도르 아옌데 … 85
모리 오가이 … 101
체 게바라 … 117
게오르크 뷔히너 … 135
프란츠 파농 … 151
마리아 몬테소리 … 167
미하일 불가코프 … 183
알베르트 슈바이처 … 199
아르투어 슈니츨러 … 217
쑨원 … 233
아서 코넌 도일 … 249
서재필 … 265
조너선 밀러 … 281
올리버 색스 … 297
참고 서적 및 자료 … 313
도판 목록 … 320
조르주 클레망소 … 23
안톤 체호프 … 41
주세페 시노폴리 … 55
서머싯 몸 … 71
살바도르 아옌데 … 85
모리 오가이 … 101
체 게바라 … 117
게오르크 뷔히너 … 135
프란츠 파농 … 151
마리아 몬테소리 … 167
미하일 불가코프 … 183
알베르트 슈바이처 … 199
아르투어 슈니츨러 … 217
쑨원 … 233
아서 코넌 도일 … 249
서재필 … 265
조너선 밀러 … 281
올리버 색스 … 297
참고 서적 및 자료 … 313
도판 목록 … 320
본문발췌
P.11
사람의 인생에서 다른 요소들이 길을 결정 짓기도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다들 같은 의사 선생님이지만, 각자의 가치관이 있고 나름의 목표가 있고 저마다 다른 분야에서 꿈을 품고 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모두가 같은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라고 해서, 전부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P.12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있었다. 점점 나는 세상 모두가 쫓는 목표에는 회의가 들고, 다들 하려는 일에는 관심이 줄어들었다. 대신에 사람들이 하려고 하지 않지만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여 두 번째로 가운을 벗고, 작은 레코드 가게를 열었다.
P.14
세상이 변하듯 사람도 변한다. 개인의 의식뿐 아니라, 사회의 환경과 인간의 관계도 바뀌어간다. 한 개인도 하고 싶은 일이 새로 생기거나 해야 할 다른 역할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성장하는 존재다. 18세라는 아직 어리고 성숙하지 못한 시기에 한 소년이 내렸던 직업적 결정이 평생을 가야 하는가? 그 시기의 세상에 대한 시각이나 가치관이 나이가 들어서도 변화하지 않고 계속 간다면, 도리어 그것이 더 신기한 일이다.
P.16
실제로 역사상 수많은 의사들이 배출되었겠지만, 그들이 평생 온전하게 의업에만 종사하다가 일생을 마친 것은 아니었다. 의학을 공부하거나 의업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넓고 다른 세상에서 또 다른 가치를 창조하고 보람을 찾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요즘 말하는 통섭의 선구자들이다. 의학에 다른 분야를 융합하여 더 새롭고 더 큰 일을 이룬 사람들이다.
P.17
그들은 의학을 공부하거나 의업에 종사하다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여 그 길을 걸었다. 그들은 그간 자신이 갈고 닦은 지식과 경험으로 그 분야만 공부했던 사람들과는 차별화될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한 사람들이었다.
P.18
어쨌거나 길고 긴 인생에서, 그리고 한 번뿐인 생애에서 사람이 평생 오직 한 가지의 일만 바라보고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정말 넓은 곳이며, 자신이 할 일은 자신이 만들기 나름이다.
더불어 직업이란 것이 삶에서 중요하기는 하지만, 직업이란 사람의 인생 전체를 규정할 수는 없다. 대학이나 전공이나 직업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나 과정인 것이지, 결코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의사라는 직업을 통하여 자신의 목표를 이룬다면 의사는 멋진 직업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꿈을 속박하는 것이 되어버린다면, 좋다는 직업도 재고할 수 있다.
그야말로 직업은 인생에서 하나의 옷일 뿐이다. 옷은 벗을 수 있고, 바꾸어 입을 수 있다.
P.19~20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쓰다 보니, 하나하나가 인생이 아니라 차라리 역사였다. 작업을 하면서 그들의 사상과 행동에 경외심을 갖기고 했고, 그들이 걸은 좁은 길에 함께했었을 고단함과 외로움을 생각하며 눈물도 훔쳤다.
무엇보다도 가슴 깊이 깨달은 것은 그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는 자신의 길을 택하는 용기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그 길을 가는 데에 남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는 점이다. 용기와 사랑, 이 두 가지가 그들을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가게 했고, 그들의 길을 승리로 인도했다. 인간을 고치기 위한 공부를 한 의사라면 세상도 고칠 수 있다.
P.31
드레퓌스 사건은 국수주의와 인종주의로 빚어진, 프랑스의 양심과 정의에 최대의 위기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역전에는 흔히 졸라가 최대의 공로자로 일컬어지지만, 그 뒤에 클레망소 같은 식견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 있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었다. 졸라가 무대 위의 주연배우였다면, 클레망소는 무대 뒤의 총감독 같은 존재였다.
P.38
클레망소는 대외적으로 전쟁 영웅이었지만, 국내적으로는 군주제와 교회의 전횡과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에 저항했던 정의와 자유의 투사였다. 그는 무기 대신 웅변과 펜으로 싸웠다. 그는 예술을 사랑하고 문학을 중시하며, 항상 독서하고 평생 글을 쓰고, 어디서나 신문과 잡지를 발행했다. 그는 38년간이나 독신으로 살았지만, 세상의 많은 곳을 여행하고, 어디서나 환대받았다. 실로 부러운 인생이 아닌가.
P.46
이 책은 소상하고 날카롭고 감동적이다.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학문을 이용했고, 자신의 지성뿐 아니라 피를 통하는 육체를 모두 사용하여, 세상에서 버림받고 모두가 무관심했던 땅 사할린의 실정과 가능성을 이토록 깊이 있게 써낸 책은 없었던 한명의 의학도로서 사할린으로 떠난 체호프는 이 여행에서 돌아와, 진정으로 균형 잡히고 세상을 넓게 보는 현자가 되었다.
P.66
시노폴리의 지휘자로서의 음악적 해석을 평가하기는 복잡한데, 그대로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개성적이며 극단적인 지휘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를 변호하자면 그가 작품의 배경에 대해서는 역사학과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하며, 인물의 심리에 대해서는 정신의학과 뇌과학적 측면에서 깊은 지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즉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해 있던 전통적이고 방만한 해석과 매너리즘에 일침을 가한 셈이다.
P.74
몸은 대대로 변호사였던 영국 상류층에서 태어나 의사가 되었지만, 그는 평생 작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도 전쟁이 터지면 의사로서 의무부대 요원으로 참전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또한 당시 세상에 만연한 질병과 가난과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신에 대한 회의를 지니고 살면서도, 영국 정보부의 비밀 첩보원이 되어 국가를 위한 스파이 활동도 하는, 모순적이고 이중적면서도 모험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몸은 세상의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재능 넘치고 당대에 가장 인기가 높았던 소설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몸은 평생 그런 세속적 명예에 안주하지는 않았다.
P.92
칠레, 아니 라틴아메리카를 통틀어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사회당 정부를 수립한 최초의 대통령인 아옌데가 의사라는 사실은 그의 명성에 비해서는 잘 조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지녔던 정책적 방향이나 사회적 관심의 토대는 의사라는 전문성과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 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항이다.
그는 포연이 가득한 대통령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나라도 지키지 못하고 정책들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가졌던 국민, 특히 빈곤층을 사랑하는 마음과 정치적인 상징성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되어가는 지금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인생은 실패가 아니다. 그는 대통령으로 서는 실패했지만, 도리어 의사로서는 자신의 정책으로서 성공한 것이 아닐까? 2008년 한 칠레 신문의 조사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칠레인’으로 칠레 국민들은 살바도르 아옌데를 선정했다.
P.116
평생을 의사이자 군인으로서, 군의관이자 소설가로서, 의학자이자 문학자로서, 소설가이자 또한 번역가, 평론가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마치 파우스트나 괴테 또는 갈릴레이나 다빈치에 비견할 만한 왕성한 지적 활동을 벌였던 모리 오가이. 사후에 나온 ‘모리 오가이 전집’은 무려 53권이다. 그는 젊은 날 의사로서 익혔던 지식과 지위를 통해서 더 높고 더 크게 날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P.120
그리하여 체 게바라는 반항의 상징이 되었다. 분연하게 일어나고 용기를 낼 수 있는 행동하는 지성인의 이미지가 되었다. 열사도 혁명가도 용기 있는 자도 사라진, 이토록 순하게 길들여진 사람들만이 살고 있는 양떼목장과 같은 지상에서 우리는 그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티셔츠 하나를 입더라도 그 정신을 알고 입어야 할 것이다. 이 땅에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언 50년이 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 인간을 그리워한다.
P.142~143
뷔히너는 철저하게 사회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역사상 많은 천재들이 좁은 연구실이나 혼자만의 서재에 갇혀 사회와 단절되거나 독선적인 성향을 가지는 데에 반해서, 뷔히너의 모든 행동은 사회적인 것이었으며 소외된 자를 향한 것이었고 결국 남을 위하고 궁극적으로 다 함께 가려고 한 것이었다.
더불어 뷔히너의 문학 작품들도 모두 세상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보여준다. 그는 작품에서나 실생활에서나 자신의 행복보다 다른 이들을 행복으로 이끄는 일에서 보람을 찾았다. 그의 의학적 연구도 인간을 연구하고 인류의 질병을 치료하고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강의와 실습 준비에도 최선을 다했고, 항상 기대에 부풀어서 학생들을 맞았다.
P.154
인종차별의 문제를 유럽인이 아닌 흑인이 흑인의 입장에 서 처음으로 제시하고, 피식민국가의 문제를 피식민국가의 국민으로서 처음 공론화한 사람의 한 명이 파농이다. 그는 흑인으로 태어났지만 프랑스 본토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학박사 학위와 정신과 의사 자격을 취득한 프랑스 사람이자 프랑스 의사였다.
그는 프랑스에서 의사 자격을 갖춘 다음에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로 가서 알제리의 현실을 보고 알제리를 위해 자신을 바친다. 그는 알제리 독립을 위해 투신하고, 알제리 독립을 8개월 앞두고 36세의 짧지만 불같은 생애를 마감했다. 프랑스인이었던 그의 장례는 조국 프랑스가 아니라 그를 국가의 은인으로 여겼던 알제리에서 국장으로 치러졌다.
P.169
처음 몬테소리의 교육법이 나왔을 때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것은 교육의 범주를 넘어서 사회를 향한 파장이었다. 사람을 바라보는 인간의 의식에 대한 개혁이었으며, 정치와 행정의 원칙과 제도마저 새롭게 바꾸는 것이었다.
이렇게 20세기 교육에 혁명의 바람을 일으킨 몬테소리는 이탈리아의 여의사였다. 그녀는 여자는 의사가 될 수 없었던 시대에 태어나서, 숱한 역경을 헤치고 이탈리아 최초로 여의사가 된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는 장애아동을 치료하다가, 한두 명의 아이를 고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것은 그녀로 하여금 임상을 넘어서게 했고, 그녀는 가운을 벗고 평생을 교육가이자 개혁자로 살았다.
P.193
이 위대한 소설은 인간의 삶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권력과 그 속에 서 있는 힘없는 작가의 관계를,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예수의 처형을 교차시키면서 표현한다. 언제 자신에게 처형이 다가올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낮에는 극장에서 일을 하면서, 그는 밤마다 집에서 이 소설을 썼다. 그는 이 소설이 결코 출판되지 않을 것이라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매일 소설을 쓰고 수정하고 끊임없이 다듬었다. 그는 “만일 신이 없다면 누가 지상의 삶을 관장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으로 이 소설을 시작하면서 스탈린 체제를 고발했으며,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이어갔다.
P.201~202
슈바이처를 이 책에서 얘기한다면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왜냐면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서 의술을 펼친 의사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운을 벗은 의사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이야기다.
슈바이처는 의사가 되기 전에 이미 목사로 유명했으며, 대학의 신학부 교수이자 철학자였다. 더불어 슈바이처는 오르간 연주에서 탁월한 연주력과 식견을 가진 연주가로서 유럽의 정상급 직업 연주자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특히 음악가 바흐에 대한 깊이 있고 창의적인 저술을 통해 바흐 전문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런 슈바이처는 자신의 남은 생애를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위해서 봉사하기로 마음을 먹고, 선교보다는 의술을 베푸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 의과대학에 다시 진학한 것이다. 그렇게 의사 자격을 취득한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 가서 자신의 힘으로 병원을 설립하고 그곳의 주민들을 위해 의술을 베풀었다. 그렇다면 슈바이처는 ‘가운을 벗은 의사’가 아니라 ‘가운을 입은 의사’가 되는 셈인데, 왜 여기에서 다루는가 하는 질문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슈바이처가 의사가 된 것은 의술보다는 봉사라는 개념을 먼저 앞세웠기 때문이다. 즉 그에게는 의사가 목적이 아니라 봉사가 목적이었고, 다만 그 수단으로 의술을 택했던 것이다.
사람의 인생에서 다른 요소들이 길을 결정 짓기도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다들 같은 의사 선생님이지만, 각자의 가치관이 있고 나름의 목표가 있고 저마다 다른 분야에서 꿈을 품고 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모두가 같은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라고 해서, 전부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P.12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있었다. 점점 나는 세상 모두가 쫓는 목표에는 회의가 들고, 다들 하려는 일에는 관심이 줄어들었다. 대신에 사람들이 하려고 하지 않지만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여 두 번째로 가운을 벗고, 작은 레코드 가게를 열었다.
P.14
세상이 변하듯 사람도 변한다. 개인의 의식뿐 아니라, 사회의 환경과 인간의 관계도 바뀌어간다. 한 개인도 하고 싶은 일이 새로 생기거나 해야 할 다른 역할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성장하는 존재다. 18세라는 아직 어리고 성숙하지 못한 시기에 한 소년이 내렸던 직업적 결정이 평생을 가야 하는가? 그 시기의 세상에 대한 시각이나 가치관이 나이가 들어서도 변화하지 않고 계속 간다면, 도리어 그것이 더 신기한 일이다.
P.16
실제로 역사상 수많은 의사들이 배출되었겠지만, 그들이 평생 온전하게 의업에만 종사하다가 일생을 마친 것은 아니었다. 의학을 공부하거나 의업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넓고 다른 세상에서 또 다른 가치를 창조하고 보람을 찾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요즘 말하는 통섭의 선구자들이다. 의학에 다른 분야를 융합하여 더 새롭고 더 큰 일을 이룬 사람들이다.
P.17
그들은 의학을 공부하거나 의업에 종사하다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여 그 길을 걸었다. 그들은 그간 자신이 갈고 닦은 지식과 경험으로 그 분야만 공부했던 사람들과는 차별화될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한 사람들이었다.
P.18
어쨌거나 길고 긴 인생에서, 그리고 한 번뿐인 생애에서 사람이 평생 오직 한 가지의 일만 바라보고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정말 넓은 곳이며, 자신이 할 일은 자신이 만들기 나름이다.
더불어 직업이란 것이 삶에서 중요하기는 하지만, 직업이란 사람의 인생 전체를 규정할 수는 없다. 대학이나 전공이나 직업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나 과정인 것이지, 결코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의사라는 직업을 통하여 자신의 목표를 이룬다면 의사는 멋진 직업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꿈을 속박하는 것이 되어버린다면, 좋다는 직업도 재고할 수 있다.
그야말로 직업은 인생에서 하나의 옷일 뿐이다. 옷은 벗을 수 있고, 바꾸어 입을 수 있다.
P.19~20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쓰다 보니, 하나하나가 인생이 아니라 차라리 역사였다. 작업을 하면서 그들의 사상과 행동에 경외심을 갖기고 했고, 그들이 걸은 좁은 길에 함께했었을 고단함과 외로움을 생각하며 눈물도 훔쳤다.
무엇보다도 가슴 깊이 깨달은 것은 그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는 자신의 길을 택하는 용기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그 길을 가는 데에 남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는 점이다. 용기와 사랑, 이 두 가지가 그들을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가게 했고, 그들의 길을 승리로 인도했다. 인간을 고치기 위한 공부를 한 의사라면 세상도 고칠 수 있다.
P.31
드레퓌스 사건은 국수주의와 인종주의로 빚어진, 프랑스의 양심과 정의에 최대의 위기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역전에는 흔히 졸라가 최대의 공로자로 일컬어지지만, 그 뒤에 클레망소 같은 식견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 있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었다. 졸라가 무대 위의 주연배우였다면, 클레망소는 무대 뒤의 총감독 같은 존재였다.
P.38
클레망소는 대외적으로 전쟁 영웅이었지만, 국내적으로는 군주제와 교회의 전횡과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에 저항했던 정의와 자유의 투사였다. 그는 무기 대신 웅변과 펜으로 싸웠다. 그는 예술을 사랑하고 문학을 중시하며, 항상 독서하고 평생 글을 쓰고, 어디서나 신문과 잡지를 발행했다. 그는 38년간이나 독신으로 살았지만, 세상의 많은 곳을 여행하고, 어디서나 환대받았다. 실로 부러운 인생이 아닌가.
P.46
이 책은 소상하고 날카롭고 감동적이다.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학문을 이용했고, 자신의 지성뿐 아니라 피를 통하는 육체를 모두 사용하여, 세상에서 버림받고 모두가 무관심했던 땅 사할린의 실정과 가능성을 이토록 깊이 있게 써낸 책은 없었던 한명의 의학도로서 사할린으로 떠난 체호프는 이 여행에서 돌아와, 진정으로 균형 잡히고 세상을 넓게 보는 현자가 되었다.
P.66
시노폴리의 지휘자로서의 음악적 해석을 평가하기는 복잡한데, 그대로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개성적이며 극단적인 지휘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를 변호하자면 그가 작품의 배경에 대해서는 역사학과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하며, 인물의 심리에 대해서는 정신의학과 뇌과학적 측면에서 깊은 지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즉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해 있던 전통적이고 방만한 해석과 매너리즘에 일침을 가한 셈이다.
P.74
몸은 대대로 변호사였던 영국 상류층에서 태어나 의사가 되었지만, 그는 평생 작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도 전쟁이 터지면 의사로서 의무부대 요원으로 참전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또한 당시 세상에 만연한 질병과 가난과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신에 대한 회의를 지니고 살면서도, 영국 정보부의 비밀 첩보원이 되어 국가를 위한 스파이 활동도 하는, 모순적이고 이중적면서도 모험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몸은 세상의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재능 넘치고 당대에 가장 인기가 높았던 소설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몸은 평생 그런 세속적 명예에 안주하지는 않았다.
P.92
칠레, 아니 라틴아메리카를 통틀어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사회당 정부를 수립한 최초의 대통령인 아옌데가 의사라는 사실은 그의 명성에 비해서는 잘 조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지녔던 정책적 방향이나 사회적 관심의 토대는 의사라는 전문성과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 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항이다.
그는 포연이 가득한 대통령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나라도 지키지 못하고 정책들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가졌던 국민, 특히 빈곤층을 사랑하는 마음과 정치적인 상징성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되어가는 지금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인생은 실패가 아니다. 그는 대통령으로 서는 실패했지만, 도리어 의사로서는 자신의 정책으로서 성공한 것이 아닐까? 2008년 한 칠레 신문의 조사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칠레인’으로 칠레 국민들은 살바도르 아옌데를 선정했다.
P.116
평생을 의사이자 군인으로서, 군의관이자 소설가로서, 의학자이자 문학자로서, 소설가이자 또한 번역가, 평론가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마치 파우스트나 괴테 또는 갈릴레이나 다빈치에 비견할 만한 왕성한 지적 활동을 벌였던 모리 오가이. 사후에 나온 ‘모리 오가이 전집’은 무려 53권이다. 그는 젊은 날 의사로서 익혔던 지식과 지위를 통해서 더 높고 더 크게 날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P.120
그리하여 체 게바라는 반항의 상징이 되었다. 분연하게 일어나고 용기를 낼 수 있는 행동하는 지성인의 이미지가 되었다. 열사도 혁명가도 용기 있는 자도 사라진, 이토록 순하게 길들여진 사람들만이 살고 있는 양떼목장과 같은 지상에서 우리는 그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티셔츠 하나를 입더라도 그 정신을 알고 입어야 할 것이다. 이 땅에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언 50년이 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 인간을 그리워한다.
P.142~143
뷔히너는 철저하게 사회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역사상 많은 천재들이 좁은 연구실이나 혼자만의 서재에 갇혀 사회와 단절되거나 독선적인 성향을 가지는 데에 반해서, 뷔히너의 모든 행동은 사회적인 것이었으며 소외된 자를 향한 것이었고 결국 남을 위하고 궁극적으로 다 함께 가려고 한 것이었다.
더불어 뷔히너의 문학 작품들도 모두 세상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보여준다. 그는 작품에서나 실생활에서나 자신의 행복보다 다른 이들을 행복으로 이끄는 일에서 보람을 찾았다. 그의 의학적 연구도 인간을 연구하고 인류의 질병을 치료하고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강의와 실습 준비에도 최선을 다했고, 항상 기대에 부풀어서 학생들을 맞았다.
P.154
인종차별의 문제를 유럽인이 아닌 흑인이 흑인의 입장에 서 처음으로 제시하고, 피식민국가의 문제를 피식민국가의 국민으로서 처음 공론화한 사람의 한 명이 파농이다. 그는 흑인으로 태어났지만 프랑스 본토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학박사 학위와 정신과 의사 자격을 취득한 프랑스 사람이자 프랑스 의사였다.
그는 프랑스에서 의사 자격을 갖춘 다음에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로 가서 알제리의 현실을 보고 알제리를 위해 자신을 바친다. 그는 알제리 독립을 위해 투신하고, 알제리 독립을 8개월 앞두고 36세의 짧지만 불같은 생애를 마감했다. 프랑스인이었던 그의 장례는 조국 프랑스가 아니라 그를 국가의 은인으로 여겼던 알제리에서 국장으로 치러졌다.
P.169
처음 몬테소리의 교육법이 나왔을 때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것은 교육의 범주를 넘어서 사회를 향한 파장이었다. 사람을 바라보는 인간의 의식에 대한 개혁이었으며, 정치와 행정의 원칙과 제도마저 새롭게 바꾸는 것이었다.
이렇게 20세기 교육에 혁명의 바람을 일으킨 몬테소리는 이탈리아의 여의사였다. 그녀는 여자는 의사가 될 수 없었던 시대에 태어나서, 숱한 역경을 헤치고 이탈리아 최초로 여의사가 된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는 장애아동을 치료하다가, 한두 명의 아이를 고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것은 그녀로 하여금 임상을 넘어서게 했고, 그녀는 가운을 벗고 평생을 교육가이자 개혁자로 살았다.
P.193
이 위대한 소설은 인간의 삶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권력과 그 속에 서 있는 힘없는 작가의 관계를,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예수의 처형을 교차시키면서 표현한다. 언제 자신에게 처형이 다가올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낮에는 극장에서 일을 하면서, 그는 밤마다 집에서 이 소설을 썼다. 그는 이 소설이 결코 출판되지 않을 것이라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매일 소설을 쓰고 수정하고 끊임없이 다듬었다. 그는 “만일 신이 없다면 누가 지상의 삶을 관장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으로 이 소설을 시작하면서 스탈린 체제를 고발했으며,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이어갔다.
P.201~202
슈바이처를 이 책에서 얘기한다면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왜냐면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서 의술을 펼친 의사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운을 벗은 의사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이야기다.
슈바이처는 의사가 되기 전에 이미 목사로 유명했으며, 대학의 신학부 교수이자 철학자였다. 더불어 슈바이처는 오르간 연주에서 탁월한 연주력과 식견을 가진 연주가로서 유럽의 정상급 직업 연주자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특히 음악가 바흐에 대한 깊이 있고 창의적인 저술을 통해 바흐 전문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런 슈바이처는 자신의 남은 생애를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위해서 봉사하기로 마음을 먹고, 선교보다는 의술을 베푸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 의과대학에 다시 진학한 것이다. 그렇게 의사 자격을 취득한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 가서 자신의 힘으로 병원을 설립하고 그곳의 주민들을 위해 의술을 베풀었다. 그렇다면 슈바이처는 ‘가운을 벗은 의사’가 아니라 ‘가운을 입은 의사’가 되는 셈인데, 왜 여기에서 다루는가 하는 질문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슈바이처가 의사가 된 것은 의술보다는 봉사라는 개념을 먼저 앞세웠기 때문이다. 즉 그에게는 의사가 목적이 아니라 봉사가 목적이었고, 다만 그 수단으로 의술을 택했던 것이다.
저자소개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6년 부산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과 전문의로 개업의 활동을 했다. 2003년 풍월당을 설립했으며 저술과 강의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음악, 오페라, 예술 전반, 여행 등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저서로는 [클래식을 처음 듣는 당신에게],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1,2,3, [베르디 오페라: 26편의 오페라로 읽는 베르디의 일생], [불멸의 오페라]I,II,III,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 [오페라 에센스 55], [유럽음악축제 순례기], [박종호의 이탈리아 여행기: 황홀한 여행],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 및 문화예술여행 시리즈 [잘츠부르크], [리스본], [뮌헨], [빈], [베를린] 등이 있다.
서평
“우리가 모르는 곳까지 날아갔던 새들이 있었다”
자신의 길을 택하는 용기와,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병을 고치는 데서 벗어나 세상을 고치기로 한 의사들
한때 의학을 공부하고 의업에 종사했으나,
혁명, 정치, 문학, 음악, 교육, 문화 등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가운을 벗은 의사’ 18인의 이야기
클레망소, 안톤 체호프, 서머싯 몸, 체 게바라, 몬테소리, 쑨원, 코넌 도일, 서재필, 올리버 색스….
역사나 문학작품 속에서 이 이름들을 한번쯤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의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정치가, 작가, 혁명가, 교육자, 음악가이기 이전에 의사였고, 개인의 열망과 시대의 부름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역사를 쓴 사람들이다.
이 책은 이 인물들이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또 다른 꿈을 펼칠 때, 의학과 의업에서 갈고닦은 지식과 경험을 다른 분야와 융합하여, 더 넓고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나가는 모습에 주목했다.
이들을 ‘가운을 벗은 의사들’이라고 표현했으나, 그것은 이들이 의사라는 역할보다 다른 업적들로 더 잘 알려져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들 중에는 실제 의업으로 돌아가지 않은 사람도 있고, 다른 일과 의업을 병행한 이도 있으며, 이미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뒤 나중에 의사가 된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운을 벗고 자신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갔으나, 이들에겐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용기 있게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그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의학이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므로, 그 근간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자리한다. 따라서 이들의 의학적 지식과 경험은 그들이 다른 길을 걸을 때도 현실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의학자만의 남다른 족적을 남겼다.
이 책은 이들의 과감한 결단력과 행동하는 지성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보통 사람은 한 번의 인생에서 한 가지도 이룩하기 힘든 것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한 인간이 어떻게 그토록 다채로운 삶을 살았는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삶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그것은 이들의 사상과 관심이 근본적으로 고통 받고 억압 받고 소외된 자들과 분열된 사회를 향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가운을 입지 않았을 뿐 의사로서의 사명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인간을 고치는 의사에서 세상을 고치는 의사로, 더 넓은 세상에서 더 큰 꿈을 펼친 것이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구국의 영웅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8인의 의사 가운데 이러한 면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정치가나 혁명가의 이름으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꾼 이들일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구한 조르주 클레망소, 가난에 허덕이는 칠레를 사회개혁으로 구하려 했던 살바도르 아옌데, 남미 전역을 누비며 혁명의 상징이 된 체 게바라, 피식민지의 문제는 피식민지인의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프란츠 파농, 중국의 양 체제에서 시조로 떠받드는 쑨원이 그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는 독립운동가이자 [독립신문]의 창간인으로 더 잘 알려진 서재필이 있다.
“서재필의 일생을 직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열거하자면, 무엇보다도 혁명가였으며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면서 군인이었고 언론인이었으며 정치가였고, 작가였고 또한 사업가였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통해서 의사라는 직업을 바탕에 지니고 의업에 종사했던 의사였다.”
그는 조선의 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의학을 공부했고, 미국에서 의원을 개업하여 모은 전 재산을 바쳐 조국의 독립에 정신적·물질적으로 투신했다. 그의 이러한 결단과 헌신이 조국으로부터 멸문지화를 당한 고통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의 조국애는 더 숭고하고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비록 해방된 조국이 아닌 미국에서였지만, 그는 죽는 날까지 진료활동을 멈추지 않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의술을 펼쳤다.
전 세계가 좌·우로 나뉘고 가난한 자와 가진 자의 차이가 그 어느 때보다 큰 분열의 시기에, 이 책은 이러한 열정적이고 행동하는 혁명가의 존재를 다시금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문학의 힘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위대한 작가들
그런가 하면 의학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진단하고 문학의 방식으로 치유하려 했던 이들도 있다.
안톤 체호프는 촉망 받는 미래를 뒤로하고 죽음의 땅 사할린으로 가서 세상에서 버림받은 곳의 실상을 널리 알린 [사할린 섬]과 다수의 단편을 남겼다. 서머싯 몸은 뜻하지 않게 의사의 길을 선택했지만 문학과 행동으로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 관심을 보여주었다.
의학자이자 의사이며 군인의 신분으로 문학과 예술에서 최고의 지성으로 인정받은 모리 오가이, 탐정소설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셜록 홈스’ 시리즈의 작가이자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던 아서 코넌 도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의사로서나 작가로서 오로지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며 [보이체크]를 비롯한 걸작들을 남긴 게오르크 뷔히너, 거대 권력에 의해 날개가 꺾였으나 날갯짓을 멈추지 않고 [거장과 마르가리타]라는 작품을 남긴 미하일 불가코프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자연과학과 정신의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성(性)심리를 세련되게 분석한 희곡 작품들을 남겼고, 올리버 색스처럼 문학작품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임상기록으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작가나 소설가로 남아 있는 정신의학자도 있다.
자연과학자의 냉철함과 따뜻한 인문학적 감수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들의 문학적 유산은, 시대를 뛰어넘어 기술로서의 의술이 다룰 수 없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
그밖에 역사학과 인류학, 정신의학과 뇌과학 그리고 음악이라는 세 분야를 하나로 융합하며 가히 천재의 반열에 오른 주세페 시노폴리와, ‘르네상스적인 박학다식함’으로 의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조너선 밀러의 삶은 우리의 지식욕을 자극한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어린이와 여성을 사회의 엄연한 존재로 인식하며 교육계의 한 획을 그는 마리아 몬테소리, 숭고한 의사의 상징 이전에 신학자이자 철학자이자 바흐 음악의 대가였던 슈바이처를 통해 이타적인 삶의 의미도 되새겨본다.
인생은 길고 가지 않은 길은 많다
모두가 자신만의 인생을 개척하기를…
이 책의 저자 역시 정신과 개업의로 활동하다, 평생 간직해온 인문과 예술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 의대생 시절 적잖이 방황하며 의학 공부를 포기하려던 시간도 있었지만, 저자의 인문학적 관심과 예술에 대한 열정은 인간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삶에 크나큰 원동력이 되었다.
‘의사’라는 직업은 물론 그 자체로도 숭고한 목표이지만, 저자에게 직업이란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목표 그 자체는 아니었다. 저자는 의사로서 소위 말하는 사회적·경제적 성공을 이루었으나, 그 성공의 순간에 그동안 접어뒀던 꿈을 향해 과감하게 가운을 벗고 세상에 필요한 일을 시작했다. 저자의 이런 용단은 의사라는 직업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많은 의학도들에게 적잖은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울림에 응답하고 그들의 방황을 응원하는 저자의 애정 어린 메시지다.
그러나 이 책은 의학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인간은 성장하는 존재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갖고 있는 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성장 과정에서 변화할 수 있고, 또 변화해야 한다.
“많은 이들은 자신에게 날개가 달렸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래서는 작은 나무 한 그루에도 오르기 어렵다.”
이 책은 스스로 날개를 달고 우리가 모르는 곳까지 날아간 위대한 인간이 있었음을 전한다. 우리는 그들만큼 멀리 또 높이 날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날갯짓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아직 날아오를 가치가 있는 높고 아름다운 산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길을 택하는 용기와,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병을 고치는 데서 벗어나 세상을 고치기로 한 의사들
한때 의학을 공부하고 의업에 종사했으나,
혁명, 정치, 문학, 음악, 교육, 문화 등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가운을 벗은 의사’ 18인의 이야기
클레망소, 안톤 체호프, 서머싯 몸, 체 게바라, 몬테소리, 쑨원, 코넌 도일, 서재필, 올리버 색스….
역사나 문학작품 속에서 이 이름들을 한번쯤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의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정치가, 작가, 혁명가, 교육자, 음악가이기 이전에 의사였고, 개인의 열망과 시대의 부름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역사를 쓴 사람들이다.
이 책은 이 인물들이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또 다른 꿈을 펼칠 때, 의학과 의업에서 갈고닦은 지식과 경험을 다른 분야와 융합하여, 더 넓고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나가는 모습에 주목했다.
이들을 ‘가운을 벗은 의사들’이라고 표현했으나, 그것은 이들이 의사라는 역할보다 다른 업적들로 더 잘 알려져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들 중에는 실제 의업으로 돌아가지 않은 사람도 있고, 다른 일과 의업을 병행한 이도 있으며, 이미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뒤 나중에 의사가 된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운을 벗고 자신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갔으나, 이들에겐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용기 있게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그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의학이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므로, 그 근간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자리한다. 따라서 이들의 의학적 지식과 경험은 그들이 다른 길을 걸을 때도 현실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의학자만의 남다른 족적을 남겼다.
이 책은 이들의 과감한 결단력과 행동하는 지성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보통 사람은 한 번의 인생에서 한 가지도 이룩하기 힘든 것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한 인간이 어떻게 그토록 다채로운 삶을 살았는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삶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그것은 이들의 사상과 관심이 근본적으로 고통 받고 억압 받고 소외된 자들과 분열된 사회를 향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가운을 입지 않았을 뿐 의사로서의 사명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인간을 고치는 의사에서 세상을 고치는 의사로, 더 넓은 세상에서 더 큰 꿈을 펼친 것이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구국의 영웅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8인의 의사 가운데 이러한 면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정치가나 혁명가의 이름으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꾼 이들일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구한 조르주 클레망소, 가난에 허덕이는 칠레를 사회개혁으로 구하려 했던 살바도르 아옌데, 남미 전역을 누비며 혁명의 상징이 된 체 게바라, 피식민지의 문제는 피식민지인의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프란츠 파농, 중국의 양 체제에서 시조로 떠받드는 쑨원이 그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는 독립운동가이자 [독립신문]의 창간인으로 더 잘 알려진 서재필이 있다.
“서재필의 일생을 직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열거하자면, 무엇보다도 혁명가였으며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면서 군인이었고 언론인이었으며 정치가였고, 작가였고 또한 사업가였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통해서 의사라는 직업을 바탕에 지니고 의업에 종사했던 의사였다.”
그는 조선의 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의학을 공부했고, 미국에서 의원을 개업하여 모은 전 재산을 바쳐 조국의 독립에 정신적·물질적으로 투신했다. 그의 이러한 결단과 헌신이 조국으로부터 멸문지화를 당한 고통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의 조국애는 더 숭고하고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비록 해방된 조국이 아닌 미국에서였지만, 그는 죽는 날까지 진료활동을 멈추지 않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의술을 펼쳤다.
전 세계가 좌·우로 나뉘고 가난한 자와 가진 자의 차이가 그 어느 때보다 큰 분열의 시기에, 이 책은 이러한 열정적이고 행동하는 혁명가의 존재를 다시금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문학의 힘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위대한 작가들
그런가 하면 의학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진단하고 문학의 방식으로 치유하려 했던 이들도 있다.
안톤 체호프는 촉망 받는 미래를 뒤로하고 죽음의 땅 사할린으로 가서 세상에서 버림받은 곳의 실상을 널리 알린 [사할린 섬]과 다수의 단편을 남겼다. 서머싯 몸은 뜻하지 않게 의사의 길을 선택했지만 문학과 행동으로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 관심을 보여주었다.
의학자이자 의사이며 군인의 신분으로 문학과 예술에서 최고의 지성으로 인정받은 모리 오가이, 탐정소설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셜록 홈스’ 시리즈의 작가이자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던 아서 코넌 도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의사로서나 작가로서 오로지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며 [보이체크]를 비롯한 걸작들을 남긴 게오르크 뷔히너, 거대 권력에 의해 날개가 꺾였으나 날갯짓을 멈추지 않고 [거장과 마르가리타]라는 작품을 남긴 미하일 불가코프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자연과학과 정신의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성(性)심리를 세련되게 분석한 희곡 작품들을 남겼고, 올리버 색스처럼 문학작품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임상기록으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작가나 소설가로 남아 있는 정신의학자도 있다.
자연과학자의 냉철함과 따뜻한 인문학적 감수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들의 문학적 유산은, 시대를 뛰어넘어 기술로서의 의술이 다룰 수 없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
그밖에 역사학과 인류학, 정신의학과 뇌과학 그리고 음악이라는 세 분야를 하나로 융합하며 가히 천재의 반열에 오른 주세페 시노폴리와, ‘르네상스적인 박학다식함’으로 의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조너선 밀러의 삶은 우리의 지식욕을 자극한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어린이와 여성을 사회의 엄연한 존재로 인식하며 교육계의 한 획을 그는 마리아 몬테소리, 숭고한 의사의 상징 이전에 신학자이자 철학자이자 바흐 음악의 대가였던 슈바이처를 통해 이타적인 삶의 의미도 되새겨본다.
인생은 길고 가지 않은 길은 많다
모두가 자신만의 인생을 개척하기를…
이 책의 저자 역시 정신과 개업의로 활동하다, 평생 간직해온 인문과 예술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 의대생 시절 적잖이 방황하며 의학 공부를 포기하려던 시간도 있었지만, 저자의 인문학적 관심과 예술에 대한 열정은 인간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삶에 크나큰 원동력이 되었다.
‘의사’라는 직업은 물론 그 자체로도 숭고한 목표이지만, 저자에게 직업이란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목표 그 자체는 아니었다. 저자는 의사로서 소위 말하는 사회적·경제적 성공을 이루었으나, 그 성공의 순간에 그동안 접어뒀던 꿈을 향해 과감하게 가운을 벗고 세상에 필요한 일을 시작했다. 저자의 이런 용단은 의사라는 직업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많은 의학도들에게 적잖은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울림에 응답하고 그들의 방황을 응원하는 저자의 애정 어린 메시지다.
그러나 이 책은 의학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인간은 성장하는 존재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갖고 있는 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성장 과정에서 변화할 수 있고, 또 변화해야 한다.
“많은 이들은 자신에게 날개가 달렸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래서는 작은 나무 한 그루에도 오르기 어렵다.”
이 책은 스스로 날개를 달고 우리가 모르는 곳까지 날아간 위대한 인간이 있었음을 전한다. 우리는 그들만큼 멀리 또 높이 날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날갯짓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아직 날아오를 가치가 있는 높고 아름다운 산들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