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애쓰지 않아도 : 최은영 짧은 소설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20430
가격
₩ 14,500
ISBN
9788960907348
페이지
231 p.
판형
135 X 194 mm
커버
Book
책 소개
등단 이후 줄곧 마음을 어루만지는 맑고 순한 서사, 동시에 폭력에 대한 서늘한 태도를 잃지 않는 작품을 발표해온 최은영 작가의 짧은 소설집. 앞서 발표했던 작품들에서 인물 간의 우정과 애정을 세심하게 살폈던 작가는, 이번 짧은 소설집에서도 그 시선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리가 여리고 민감했던 시절, 몰두했던 관계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상처받아 뾰족해졌던 마음의 모서리를 쓰다듬는다. [애쓰지 않아도]에서 돋보이는 것은 아동과 동물에 대한 폭력 등을 바라보는 최은영의 단호한 태도이다. 폭력을 보는 무심하고 게으른 시선이야말로 폭력적임을 말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작가의 묘사를 통해, 폭력에 둔감해지지 않으려면 부단히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목차
작가의 말
애쓰지 않아도
데비 챙
꿈결
숲의 끝
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
한남동 옥상 수영장
저녁 산책
우리가 그네를 타며 나눴던 말
문동
호시절
손 편지
임보 일기
안녕, 꾸꾸
무급휴가
애쓰지 않아도
데비 챙
꿈결
숲의 끝
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
한남동 옥상 수영장
저녁 산책
우리가 그네를 타며 나눴던 말
문동
호시절
손 편지
임보 일기
안녕, 꾸꾸
무급휴가
본문발췌
P.31~32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P.43
처음 데비가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을 때 거부감을 느낀 건 내게 사랑을 고백했던 남자들과의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를 사랑하는 나’에 도취한 모습과 그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게 감정을 강요하던 남자들에 대한 기억이 내 안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오염시켰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사랑이라는 말이 꼭 협박처럼 느껴져 마음 깊은 곳에서 떨었던 기억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P.44
너도 자라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니. 그렇게 따로 묻지 않았던 건, 외롭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란 꿈처럼 대단한 목표가 아니라 공기나 물처럼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P.52
남희,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운이 좋았지. 그녀와 만나고 사랑할 수 있었잖아. 그게 어떤 건지 태어나서 경험할 수 있었잖아. 어릴 때는 내가 왜 태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하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지. 이런 사랑을 경험해보려고 태어났구나. 그걸 알게 됐으니 괜찮아.
P.62
나는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해.
P.67~68
우리는 네 꿈에서 자주 만났어. 알잖아, 꿈을 기억할지 말지는 너의 선택이었다는 거. 넌 깨어나기 전에 선택할 수 있었어. 그리고 매번 기억하지 않는 걸 선택했고.
P.95
어쩌면 송문 또한 송문으로 살아온 송문의 마음을 영영 배울 수 없을지도 몰랐다. 자기 마음을 배울 수 없고, 그렇기에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채로 살아간다.
P.124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외롭고 고달플 때가 많이 있지. 인간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 결코 자신이 바라는 것만큼을 이룰 수 없을 때의 어려움, 아픈 몸, 연결되고 싶은 사람들과 연결되지 못하고 잘못된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괴로울 때가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어려운 것이 삶일 텐데, 불필요한 고통을 지어내는 세상. 세상은 온갖 방식으로 당신에게 고통을 안겼어.
P.220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P.43
처음 데비가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을 때 거부감을 느낀 건 내게 사랑을 고백했던 남자들과의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를 사랑하는 나’에 도취한 모습과 그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게 감정을 강요하던 남자들에 대한 기억이 내 안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오염시켰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사랑이라는 말이 꼭 협박처럼 느껴져 마음 깊은 곳에서 떨었던 기억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P.44
너도 자라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니. 그렇게 따로 묻지 않았던 건, 외롭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란 꿈처럼 대단한 목표가 아니라 공기나 물처럼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P.52
남희,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운이 좋았지. 그녀와 만나고 사랑할 수 있었잖아. 그게 어떤 건지 태어나서 경험할 수 있었잖아. 어릴 때는 내가 왜 태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하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지. 이런 사랑을 경험해보려고 태어났구나. 그걸 알게 됐으니 괜찮아.
P.62
나는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해.
P.67~68
우리는 네 꿈에서 자주 만났어. 알잖아, 꿈을 기억할지 말지는 너의 선택이었다는 거. 넌 깨어나기 전에 선택할 수 있었어. 그리고 매번 기억하지 않는 걸 선택했고.
P.95
어쩌면 송문 또한 송문으로 살아온 송문의 마음을 영영 배울 수 없을지도 몰랐다. 자기 마음을 배울 수 없고, 그렇기에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채로 살아간다.
P.124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외롭고 고달플 때가 많이 있지. 인간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 결코 자신이 바라는 것만큼을 이룰 수 없을 때의 어려움, 아픈 몸, 연결되고 싶은 사람들과 연결되지 못하고 잘못된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괴로울 때가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어려운 것이 삶일 텐데, 불필요한 고통을 지어내는 세상. 세상은 온갖 방식으로 당신에게 고통을 안겼어.
P.220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저자소개
삼색 고양이의 날에 태어나 삼색 고양이와 고등어 고양이와 함께 사는 소설가. 타고난 집순이지만 매일 장기간의 세계 일주를 꿈꾼다. 여행, 글쓰기, 고양이, 바다, 친구, 잠을 좋아한다. 콤플렉스와 약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1984년 경기 광명에서 태어났다. 2013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장편소설 [밝은 밤]이 있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1984년 경기 광명에서 태어났다. 2013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장편소설 [밝은 밤]이 있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림저자소개
일상의 빛나는 순간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다. 에밀리카 예술대학Emily Carr University of Art&Design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그림책과 민화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instagram/ saehee_ya
instagram/ saehee_ya
서평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지치지를 않나봐요.
자꾸만 노력하려 하고, 다가가려 해요.
나에게도 그 마음이 살아 있어요.”
삶의 모난 부분을 보듬는 섬세한 시선과 폭력에 맞서는 단호한 태도
최은영 작가 신작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 출간
등단 이후 줄곧 마음을 어루만지는 맑고 순한 서사, 동시에 폭력에 대한 서늘한 태도를 잃지 않는 작품을 발표해온 최은영 작가의 신작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가 출간되었다. 최은영 작가는 젊은작가상,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의 중요한 이름으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두 권의 소설집([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과 한 권의 장편소설([밝은 밤])을 발표하는 동안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는 등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작가다.
앞서 발표했던 작품들에서 인물 간의 우정과 애정을 세심하게 살폈던 최은영은, 이번 짧은 소설집에서도 그 시선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리가 여리고 민감했던 시절, 몰두했던 관계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상처받아 뾰족해졌던 마음의 모서리를 쓰다듬는다. 상처를 응시하는 시선은 올곧고 바르지만, 이를 감싸는 문장은 사려 깊고 따뜻하다. 어긋난 관계로 인해 상처받았던 사람이라면, 최은영의 소설에서 정확한 위로를 받게 된다.
마음산책 열네 번째 짧은 소설로 출간되는 이번 책은 김세희 그림 작가가 함께했다. 풍경에 스미는 빛을 포착해서 캔버스 위에 옮겨놓는 김세희 작가의 작품들은 따스한 봄을 닮았다. 애틋함이 가득한 그림들은 최은영 소설 속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애쓰지 않아도]에는 짧은 소설 열세 편과 함께 원고지 100매가량의 단편소설이 한 편 수록되어 있다. 보다 자연스럽고 경쾌하게 진행되는 짧은 소설과 어우러진 단편소설에서는 최은영 특유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좀 더 묵직한 호흡으로 만나볼 수 있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애쓰지 않아도 타인에게 마음을 쏟는 것이 가능했던 시절,
마음을 할퀴고 간 자리를 바라보다
표제작 「애쓰지 않아도」에서 최은영은 우리가 서툴고 미숙했던 시절, 누군가를 동경하고 사랑했던 시절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비밀을 공유하며 가까워졌다고 느끼지만 배신당하고, 선망은 사실 열등감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핍진하여 읽는 사람에게 한 시절을 다시 경험하게 한다. 열병 같았던 시절을 지나고, 어느덧 담담해진 현재를 마주하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성장담으로 다가온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_「애쓰지 않아도」 중에서, 31~32쪽
관계에서 상처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무심하게 주고받는 말들은 상대의 마음을 베곤 한다. 최은영은 날 선 말과 행동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간 자리를 가만히 응시하며, 들끓고 넘치다가 이내 고요해지는 한 사람의 내면의 흐름을 묘사한다. 그리고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결국 그를 봉합하고 아물게 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진실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실린 단편 「무급휴가」에서는 친구 사이인 두 여성이 나오는데, 예술과 가족, 관계를 아우르며 어떻게 상처를 이겨내고 공감에 이르는지를 보여준다.
진짜를 가질 자신이 없어서 늘 잃어도 상처 되지 않을 관계를 고르곤 했다. 어차피 실망하게 될 거, 진짜가 아닌 사람에게 실망하고 싶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으면 조각난 자기 자신을 복구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_「무급휴가」 중에서, 228~229쪽
“불필요한 고통을 지어내는 세상.
세상은 온갖 방식으로 당신에게 고통을 안겼어.”
폭력을 응시하는 곧은 자세와 약한 존재에 대한 애정
[애쓰지 않아도]에서 돋보이는 것은 아동과 동물에 대한 폭력 등을 바라보는 최은영의 단호한 태도이다. 고기를 먹지 못했던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했다는 이야기(「호시절」), 병아리가 닭이 될 때까지 키우며 고기를 먹는 데 반감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안녕, 꾸꾸」) 등 동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서는, 생명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학대받은 아이가 자라서 학대하는 어른이 된다’는 식의 지하철 공익광고를 보고 상처받는 인물을 보여주며(「손 편지」) 폭력을 보는 무심하고 게으른 시선이야말로 폭력적임을 말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작가의 묘사를 통해, 폭력에 둔감해지지 않으려면 부단히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약하고 고통받는 존재에 대한 최은영의 한없는 애정은, 「우리가 그네를 타며 나눴던 말」에 잘 드러난다. 우리가 사는 ‘저쪽’ 세상에서 상처를 받았던 ‘당신’은, 사회적 폭력에 시달린 소수자성을 띤 존재다. 평행우주인 ‘이쪽’ 세상에서 함께 나란히 그네를 타며, 그를 위무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따뜻하기 그지없다. 함께 발을 구르며 그네를 타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소설 속 문장 그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것들뿐’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것들뿐인데. 나란히 앉아서 그네를 탈 수 있는 시간,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빛으로 마음껏 빛날 수 있는 시간, 서로에게 커다란 귀가 되어줄 수 있는 시간 말이야.
_「우리가 그네를 타며 나눴던 말」 중에서, 127쪽
깊이 있는 시선과 문장, 불의를 바라보는 올곧은 시선, 최은영이 써 내려가는 관계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은 단단하고 미덥다. 폭력에 무감해진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일상의 더께 속에서 막혔던 감정이 흐르도록 물꼬를 터주는 그의 작품들은, 지금 우리가 왜 최은영을 읽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이야기의 세계 속을 유영하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익숙했던 주변 공기의 흐름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자꾸만 노력하려 하고, 다가가려 해요.
나에게도 그 마음이 살아 있어요.”
삶의 모난 부분을 보듬는 섬세한 시선과 폭력에 맞서는 단호한 태도
최은영 작가 신작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 출간
등단 이후 줄곧 마음을 어루만지는 맑고 순한 서사, 동시에 폭력에 대한 서늘한 태도를 잃지 않는 작품을 발표해온 최은영 작가의 신작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가 출간되었다. 최은영 작가는 젊은작가상,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의 중요한 이름으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두 권의 소설집([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과 한 권의 장편소설([밝은 밤])을 발표하는 동안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는 등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작가다.
앞서 발표했던 작품들에서 인물 간의 우정과 애정을 세심하게 살폈던 최은영은, 이번 짧은 소설집에서도 그 시선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리가 여리고 민감했던 시절, 몰두했던 관계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상처받아 뾰족해졌던 마음의 모서리를 쓰다듬는다. 상처를 응시하는 시선은 올곧고 바르지만, 이를 감싸는 문장은 사려 깊고 따뜻하다. 어긋난 관계로 인해 상처받았던 사람이라면, 최은영의 소설에서 정확한 위로를 받게 된다.
마음산책 열네 번째 짧은 소설로 출간되는 이번 책은 김세희 그림 작가가 함께했다. 풍경에 스미는 빛을 포착해서 캔버스 위에 옮겨놓는 김세희 작가의 작품들은 따스한 봄을 닮았다. 애틋함이 가득한 그림들은 최은영 소설 속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애쓰지 않아도]에는 짧은 소설 열세 편과 함께 원고지 100매가량의 단편소설이 한 편 수록되어 있다. 보다 자연스럽고 경쾌하게 진행되는 짧은 소설과 어우러진 단편소설에서는 최은영 특유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좀 더 묵직한 호흡으로 만나볼 수 있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애쓰지 않아도 타인에게 마음을 쏟는 것이 가능했던 시절,
마음을 할퀴고 간 자리를 바라보다
표제작 「애쓰지 않아도」에서 최은영은 우리가 서툴고 미숙했던 시절, 누군가를 동경하고 사랑했던 시절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비밀을 공유하며 가까워졌다고 느끼지만 배신당하고, 선망은 사실 열등감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핍진하여 읽는 사람에게 한 시절을 다시 경험하게 한다. 열병 같았던 시절을 지나고, 어느덧 담담해진 현재를 마주하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성장담으로 다가온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_「애쓰지 않아도」 중에서, 31~32쪽
관계에서 상처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무심하게 주고받는 말들은 상대의 마음을 베곤 한다. 최은영은 날 선 말과 행동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간 자리를 가만히 응시하며, 들끓고 넘치다가 이내 고요해지는 한 사람의 내면의 흐름을 묘사한다. 그리고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결국 그를 봉합하고 아물게 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진실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실린 단편 「무급휴가」에서는 친구 사이인 두 여성이 나오는데, 예술과 가족, 관계를 아우르며 어떻게 상처를 이겨내고 공감에 이르는지를 보여준다.
진짜를 가질 자신이 없어서 늘 잃어도 상처 되지 않을 관계를 고르곤 했다. 어차피 실망하게 될 거, 진짜가 아닌 사람에게 실망하고 싶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으면 조각난 자기 자신을 복구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_「무급휴가」 중에서, 228~229쪽
“불필요한 고통을 지어내는 세상.
세상은 온갖 방식으로 당신에게 고통을 안겼어.”
폭력을 응시하는 곧은 자세와 약한 존재에 대한 애정
[애쓰지 않아도]에서 돋보이는 것은 아동과 동물에 대한 폭력 등을 바라보는 최은영의 단호한 태도이다. 고기를 먹지 못했던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했다는 이야기(「호시절」), 병아리가 닭이 될 때까지 키우며 고기를 먹는 데 반감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안녕, 꾸꾸」) 등 동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서는, 생명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학대받은 아이가 자라서 학대하는 어른이 된다’는 식의 지하철 공익광고를 보고 상처받는 인물을 보여주며(「손 편지」) 폭력을 보는 무심하고 게으른 시선이야말로 폭력적임을 말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작가의 묘사를 통해, 폭력에 둔감해지지 않으려면 부단히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약하고 고통받는 존재에 대한 최은영의 한없는 애정은, 「우리가 그네를 타며 나눴던 말」에 잘 드러난다. 우리가 사는 ‘저쪽’ 세상에서 상처를 받았던 ‘당신’은, 사회적 폭력에 시달린 소수자성을 띤 존재다. 평행우주인 ‘이쪽’ 세상에서 함께 나란히 그네를 타며, 그를 위무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따뜻하기 그지없다. 함께 발을 구르며 그네를 타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소설 속 문장 그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것들뿐’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것들뿐인데. 나란히 앉아서 그네를 탈 수 있는 시간,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빛으로 마음껏 빛날 수 있는 시간, 서로에게 커다란 귀가 되어줄 수 있는 시간 말이야.
_「우리가 그네를 타며 나눴던 말」 중에서, 127쪽
깊이 있는 시선과 문장, 불의를 바라보는 올곧은 시선, 최은영이 써 내려가는 관계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은 단단하고 미덥다. 폭력에 무감해진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일상의 더께 속에서 막혔던 감정이 흐르도록 물꼬를 터주는 그의 작품들은, 지금 우리가 왜 최은영을 읽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이야기의 세계 속을 유영하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익숙했던 주변 공기의 흐름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