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 아니 에르노 장편소설
원서명
Je Ne Suis Pas Sortie
총서명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저자
번역자
원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10720
가격
₩ 13,000
ISBN
9791170400479
페이지
175 p.
판형
128 X 200 mm
판차
개정판
커버
Book
책 소개
출간 당시 국내 작가들과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이 24년 만에 새롭게 출간됐다.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작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성들의 삶을 이어주는 힘 있는 목소리가 된다. 소설과 자전의 경계를 지우는 ‘칼 같은 글쓰기’의 아니 에르노가 바로 첫 번째 작가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작가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느낀 죄책감과 공포, 그리고 좌절감을 기록한 문병일기로 “나는 추호도 어머니 곁에 있었던 순간들을 수정해서 옮겨 적고 싶지 않았다”는 말처럼 그는 치열하게 기록함으로써 어머니가 떠나지 않은 마지막 “밤”을 지키며 “어머니와 화해하려고” 보냈던 이 모든 시간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작가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느낀 죄책감과 공포, 그리고 좌절감을 기록한 문병일기로 “나는 추호도 어머니 곁에 있었던 순간들을 수정해서 옮겨 적고 싶지 않았다”는 말처럼 그는 치열하게 기록함으로써 어머니가 떠나지 않은 마지막 “밤”을 지키며 “어머니와 화해하려고” 보냈던 이 모든 시간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목차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본문발췌
어머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여자아이에게 “얘야, 밤이 너무 늦었단다. 집으로 돌아가야지”라고 말하면서 아주 쾌활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내 귀를 틀어막았다. 뭔가 끔찍한 구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연극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의 어머니다. - 14쪽
어머니를 씻겨드린 후 손톱을 깎아드렸다. 어머니의 손이 무척 더러웠다. 어머니는 일시적으로 제정신이 들자 “난 죽을 때까지 이곳에 있을 테다”라고 말한 후 “난 네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했다. 그런데 그 때문에 너는 한층 더 불행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 26~27쪽
어머니는 마카롱 과자를 주자 먹지는 않고 부스러뜨리기만 했다. 내게 이런 식으로 사랑을 요구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니 울고만 싶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사랑이란 이 이상 더는 충족시켜드릴 수 없는 한계에 달한 사랑이었다. - 36~37쪽
어머니는 수건이며 속치마 등을 모조리 찢어놓았고 물건들을 죄다 비틀어서 구겨놓으려 했다. 완전히 정신이 돌아버린 사람 같았다. 어머니의 턱은 축 늘어져 있고 입은 항상 벌리고 있다. 나는 이렇게까지 크게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바로 나인 것만 같다. - 85쪽
나는 어머니가 타고 있는 휠체어의 제동 장치를 확인하려고 몸을 구부리고 있었는데 어머니도 몸을 숙이더니 내 머리를 껴안았다. 어머니의 이 몸짓, 바로 이 사랑을 나는 한동안 망각한 채 지내왔다. 이 사랑의 몸짓을 잃고서도 어머니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 144쪽
어머니가 돌아가시느니 미쳐서라도 살아 있기를 바랐다.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만 같다. 나는 어머니와 화해하려고 이 모든 시간을 보냈지만 충분히 화해하지 못했다. 어제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146쪽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의 어떤 여자는 십 개월 된 어린 딸아이를 잃어버리고서도 오후에는 미장원에 갔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 여자의 심정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대를 망각해버리려는 그 심정을. - 158쪽
어머니를 씻겨드린 후 손톱을 깎아드렸다. 어머니의 손이 무척 더러웠다. 어머니는 일시적으로 제정신이 들자 “난 죽을 때까지 이곳에 있을 테다”라고 말한 후 “난 네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했다. 그런데 그 때문에 너는 한층 더 불행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 26~27쪽
어머니는 마카롱 과자를 주자 먹지는 않고 부스러뜨리기만 했다. 내게 이런 식으로 사랑을 요구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니 울고만 싶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사랑이란 이 이상 더는 충족시켜드릴 수 없는 한계에 달한 사랑이었다. - 36~37쪽
어머니는 수건이며 속치마 등을 모조리 찢어놓았고 물건들을 죄다 비틀어서 구겨놓으려 했다. 완전히 정신이 돌아버린 사람 같았다. 어머니의 턱은 축 늘어져 있고 입은 항상 벌리고 있다. 나는 이렇게까지 크게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바로 나인 것만 같다. - 85쪽
나는 어머니가 타고 있는 휠체어의 제동 장치를 확인하려고 몸을 구부리고 있었는데 어머니도 몸을 숙이더니 내 머리를 껴안았다. 어머니의 이 몸짓, 바로 이 사랑을 나는 한동안 망각한 채 지내왔다. 이 사랑의 몸짓을 잃고서도 어머니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 144쪽
어머니가 돌아가시느니 미쳐서라도 살아 있기를 바랐다.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만 같다. 나는 어머니와 화해하려고 이 모든 시간을 보냈지만 충분히 화해하지 못했다. 어제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146쪽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의 어떤 여자는 십 개월 된 어린 딸아이를 잃어버리고서도 오후에는 미장원에 갔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 여자의 심정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대를 망각해버리려는 그 심정을. - 158쪽
저자소개
1940년 프랑스 르아브르 인근의 작은 공업도시 릴본에서 식품점 겸 식당을 운영하는 뒤셴느 부부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1945년 노르망디 이브토로 이사해 기독교 사립학교를 다닌 후 루앙 대학교와 보르도 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다. 1964년 필립 에르노와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고, 교원자격증을 취득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이후 문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해 2000년까지 프랑스의 방송통신대학교에 해당하는 CNED에서 문학교수를 역임했다. 1974년 사회적 소외감을 독특한 문체로 표현한 소설 《빈 장롱》으로 데뷔했다. 1983년, 네 번째 소설 《남자의 자리》 에서 개인적 경험을 사회학적 관점으로 예리하게 해부한 혁신적인 스타일을 인정받아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이때 작가는 “내가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자신이 쓴 작품과 쓸 작품에 일찌감치 ‘자전적’ 요소를 부여했다.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첫 경험(《소녀의 기억》), 사춘기(《그들이 말한 것, 혹은 말하지 않은 것》), 결혼(《얼어붙은 여자》), 낙태(《사건》), 유부남과의 연애(《단순한 열정》), 유방암 투병(《사진의 용도》), 어머니의 알츠하이머 투병(《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과 어머니의 죽음(《한 여자》) 등 인생의 궤적이 가감없이 담겨 있다. 특히 《단순한 열정》을 발표하면서 대중의 사랑과 함께 받은 윤리적 비난을 극복한 작품이 바로 오 년 후 발표한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은 가난한 노동계급으로서의 부모의 위치를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고급스러운 기독교 사립학교를 오가며 보낸 유년 시절로 이어지며 내면 깊이 자리한 수치심을 응시한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는 문학사상 가장 충격적인 첫 문장 중 하나로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는데, 이 사건은 작가에게도 반드시 한 번은 말해야 하는 근간이자 ‘원체험’이었다. 작가는 《부끄러움》으로 자신의 치부를 열어 보이고, 보다 자유로운 글쓰기로 한발 나아갔다. 자전적, 전기적, 사회학적 글이라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로 ‘칼 같은 글쓰기’라는 수식어를 얻은 작가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문학상(2008), 프랑수아 모리아크 문학상(2008),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문학상(2017)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생존 작가로서는 이례적으로, 2003년 작가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제정되었고 2011년 갈리마르 총서에 선집 《삶을 쓰다》가 포함되는 등 프랑스 최고의 작가로 꼽히고 있다.
역자소개
숭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논문으로는 <이브 본느프와(Yves Bonnefoy)의 시에 나타난 ‘Presence’의 테마연구>가 있다.
서평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여성작가들의 목소리
새롭게 선보이는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이들이 프랑스문학의 반쪽이 아닌 문단의 전모를 보여준다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여성작가만을 모은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만 추리다 보니 여성작가 소설 시리즈가 되었다고 우기고 싶다. ―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을 기획하며, 이재룡(문학평론가, 前 숭실대 불문과 교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 문단에서 탁월한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은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모아서 한국 독자들에게 선보였던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이 새롭게 단장하여 돌아온다. 시리즈의 첫 책 『알렉시』가 출간된 지도 2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단되고 변형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를 요구하고 있다.
피폐해져가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며 공포를 느끼는 딸, 무능력한 언니들을 부양하며 할머니의 마지막 유산인 호텔을 지키는 손녀, 이혼 후 아들에게 애정과 서운함을 느끼면서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엄마……. 작가들이 묘사하는 소설 속 여성들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가까운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의 고단한 일상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지나온 삶을 이어주는 힘 있는 목소리가 된다.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은 세대와 국경을 넘어 프랑스문학의 오늘을 만들어가는 여성작가들을 만나볼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이 필연적으로 다른 삶과 겹치기 마련이라면
이 일기는 우리의 마지막 나날을 담은 이야기가 된다.”_편혜영(소설가)
“나는 죄의식을 느끼면서 어머니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프랑스문학의 거장 아니 에르노, 소설과 자전의 경계를 지우는 ‘칼 같은 글쓰기’
지난 47년간 프랑스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해온 아니 에르노. 그녀의 언어는 우리의 삶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생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온다. “나는 내가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고 스스로의 작품세계를 정의했던 것처럼 그녀의 소설은 결코 삶과 분리될 수 없다. 그녀가 삶에서 겪은 상실감과 어떤 존재적 결핍은 언제나 글쓰기를 촉발하는 단서로 작용했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죽음이라는 저항할 수 없는 이별을 마주한 아니 에르노의 처절한 심정을 담은 문병일기다.
“‘인생을 살면서 자기 스스로를 방어할 줄 알아야 한다, 강하지 못할 경우에는 악하기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던” 어머니는 교통사고 이후 얻은 기억상실증이 치매로 이어지면서 “장소들을 기억하지 못했고 사람들과 손자들, 내 전남편 그리고 나조차도 알아보지 못했다.” “정신 나간 여자가 되어 온 집 안을 사방팔방으로 헤매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어머니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바로 나인 것만” 같은 무력감과 죄책감, 그리고 자신의 미래 또한 그럴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녀의 마지막 나날을 기록으로 남긴다. “나는 글쓰기가 세상을 향한 전진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를 문병하고 있는 현재의 글쓰기를 통해서는 가혹한 피폐 상태를 확인하게 될 뿐이었다”는 말처럼, 그녀는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어머니의 죽음이 더욱 명백한 현실로 규정지어진다는” 극단의 좌절을 경험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녀의 쓰는 행위에 원동력이 된다.
“생전 처음으로 ‘어머니는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글로” 적으며 “소설을 쓰면서 결코 이 말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라 짐작하는 작가의 담담한 서술은 더 큰 울림으로 전달된다.
“그때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인생의 전부이리라.”
떠나지 않은 ‘밤’에 남아 있는 것들
나는 추호도 어머니 곁에 있었던 순간들을 수정해서 옮겨 적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들은 시간의 흐름을 벗어난 순간 ― 아니면 짤막하게 되찾았던 유년시절의 한순간쯤으로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 오로지 ‘이분은 내 어머니이시다’라는 생각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망각하며 지냈던 순간들이었다. ― ‘작가의 말’에서
‘나’에게 세상은 “어딘가 어머니가 존재해 있”을 필연적 공간을 의미했던 만큼 그 빈자리에서 기인하는 슬픔은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 곁에 있었던 순간들을 수정해서 옮겨 적고 싶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는 치열한 기록 행위를 통해서 어머니가 떠나지 않은 마지막 “밤”을 지키며 “어머니와 화해하려고” 보냈던 이 모든 시간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은 어머니를 기록하는 것, 이는 어머니에게 전하는 마지막 사랑이 된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나’의 어머니가 글로 쓴 마지막 문장이다. “뭔가 잃어버린 것을 찾는 사람처럼 자꾸만 집을 되돌아보”던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문장이 떠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은 그녀가 살아온 궤적에 갖는 열렬한 의지를 보여준다. 밤의 거칠고 험상궂은 몰골은 낮과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그 시간까지도 모두 자신의 소유임을 알고 있었던 어머니는 “결국 혼자 힘으로 자신의 밤을 헤치고 나갔던 것이다.”
오래도록 화해하지 못했던 유년시절 폭력의 기억과 지난하지만 놓을 수 없었던 어머니를 향한 사랑처럼 “인생의 많은 것이 부질없이 흩어지고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은 영영 그대로 남을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어느 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노라’는 마지막 문장을 적게 할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알아야 할 것을 우리는 대개 그런 밤이 되어서야 배운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타고 남은 삶의 흔적으로부터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아니 에르노의 고백이 아닐까.
새롭게 선보이는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이들이 프랑스문학의 반쪽이 아닌 문단의 전모를 보여준다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여성작가만을 모은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만 추리다 보니 여성작가 소설 시리즈가 되었다고 우기고 싶다. ―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을 기획하며, 이재룡(문학평론가, 前 숭실대 불문과 교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 문단에서 탁월한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은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모아서 한국 독자들에게 선보였던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이 새롭게 단장하여 돌아온다. 시리즈의 첫 책 『알렉시』가 출간된 지도 2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단되고 변형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를 요구하고 있다.
피폐해져가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며 공포를 느끼는 딸, 무능력한 언니들을 부양하며 할머니의 마지막 유산인 호텔을 지키는 손녀, 이혼 후 아들에게 애정과 서운함을 느끼면서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엄마……. 작가들이 묘사하는 소설 속 여성들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가까운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의 고단한 일상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지나온 삶을 이어주는 힘 있는 목소리가 된다.
《열림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은 세대와 국경을 넘어 프랑스문학의 오늘을 만들어가는 여성작가들을 만나볼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이 필연적으로 다른 삶과 겹치기 마련이라면
이 일기는 우리의 마지막 나날을 담은 이야기가 된다.”_편혜영(소설가)
“나는 죄의식을 느끼면서 어머니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프랑스문학의 거장 아니 에르노, 소설과 자전의 경계를 지우는 ‘칼 같은 글쓰기’
지난 47년간 프랑스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해온 아니 에르노. 그녀의 언어는 우리의 삶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생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온다. “나는 내가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고 스스로의 작품세계를 정의했던 것처럼 그녀의 소설은 결코 삶과 분리될 수 없다. 그녀가 삶에서 겪은 상실감과 어떤 존재적 결핍은 언제나 글쓰기를 촉발하는 단서로 작용했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죽음이라는 저항할 수 없는 이별을 마주한 아니 에르노의 처절한 심정을 담은 문병일기다.
“‘인생을 살면서 자기 스스로를 방어할 줄 알아야 한다, 강하지 못할 경우에는 악하기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던” 어머니는 교통사고 이후 얻은 기억상실증이 치매로 이어지면서 “장소들을 기억하지 못했고 사람들과 손자들, 내 전남편 그리고 나조차도 알아보지 못했다.” “정신 나간 여자가 되어 온 집 안을 사방팔방으로 헤매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어머니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바로 나인 것만” 같은 무력감과 죄책감, 그리고 자신의 미래 또한 그럴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녀의 마지막 나날을 기록으로 남긴다. “나는 글쓰기가 세상을 향한 전진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를 문병하고 있는 현재의 글쓰기를 통해서는 가혹한 피폐 상태를 확인하게 될 뿐이었다”는 말처럼, 그녀는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어머니의 죽음이 더욱 명백한 현실로 규정지어진다는” 극단의 좌절을 경험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녀의 쓰는 행위에 원동력이 된다.
“생전 처음으로 ‘어머니는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글로” 적으며 “소설을 쓰면서 결코 이 말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라 짐작하는 작가의 담담한 서술은 더 큰 울림으로 전달된다.
“그때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인생의 전부이리라.”
떠나지 않은 ‘밤’에 남아 있는 것들
나는 추호도 어머니 곁에 있었던 순간들을 수정해서 옮겨 적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들은 시간의 흐름을 벗어난 순간 ― 아니면 짤막하게 되찾았던 유년시절의 한순간쯤으로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 오로지 ‘이분은 내 어머니이시다’라는 생각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망각하며 지냈던 순간들이었다. ― ‘작가의 말’에서
‘나’에게 세상은 “어딘가 어머니가 존재해 있”을 필연적 공간을 의미했던 만큼 그 빈자리에서 기인하는 슬픔은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 곁에 있었던 순간들을 수정해서 옮겨 적고 싶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는 치열한 기록 행위를 통해서 어머니가 떠나지 않은 마지막 “밤”을 지키며 “어머니와 화해하려고” 보냈던 이 모든 시간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은 어머니를 기록하는 것, 이는 어머니에게 전하는 마지막 사랑이 된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나’의 어머니가 글로 쓴 마지막 문장이다. “뭔가 잃어버린 것을 찾는 사람처럼 자꾸만 집을 되돌아보”던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문장이 떠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은 그녀가 살아온 궤적에 갖는 열렬한 의지를 보여준다. 밤의 거칠고 험상궂은 몰골은 낮과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그 시간까지도 모두 자신의 소유임을 알고 있었던 어머니는 “결국 혼자 힘으로 자신의 밤을 헤치고 나갔던 것이다.”
오래도록 화해하지 못했던 유년시절 폭력의 기억과 지난하지만 놓을 수 없었던 어머니를 향한 사랑처럼 “인생의 많은 것이 부질없이 흩어지고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은 영영 그대로 남을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어느 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노라’는 마지막 문장을 적게 할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알아야 할 것을 우리는 대개 그런 밤이 되어서야 배운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타고 남은 삶의 흔적으로부터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아니 에르노의 고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