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 엄마 박완서의 부엌
총서명
띵{007}; 엄마 박완서의 부엌{}
독자층
일반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10122
가격
₩ 12,000
ISBN
9791191187564
페이지
179 p.
판형
115 X 180 mm
커버
Book
책 소개
2021년 1월 22일은 한국문학의 어머니, 소설가 박완서의 10주기이다. 1970년 장편소설 <나목>으로 등단한 이래 2011년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쉼 없이 작품활동을 해온, 그 자체로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작가.
작고 이후에도 서랍 속 주옥같은 미발표 원고들이 몇 차례 발표되었고, 대표작들은 표지를 갈아입은 개정판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로 남아 있다. 생전에 남긴 육성의 기록은 두 권의 대담집으로 엮였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고인의 모든 책에 수록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 따로 모아 한 권의 책이 되었고, 스물아홉 명의 후배 작가들이 박완서를 추억하고 기리며 오마주한 콩트집도 세상에 나왔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다 되도록 우리는 한시도 잊지 않고 작품을 읽고, 또 읽었다. 이것만 보아도 소설가 박완서가 한국문학사에 어떻게 한 획을 그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맏딸 호원숙이 엄마의 책상을 살뜰히도 살펴왔기 때문이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묵은 원고의 먼지를 털고, 기출간된 책들의 여러 행정적 문제를 해결하고, 출판사에서 새롭게 보내오는 제안을 검토하여 책이 되는 모든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박완서 소설 전집>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등도 모두 호원숙의 손끝에서 시작해 호원숙의 손끝에서 끝날 수 있었던, 대작업이었다.
그러나 호원숙은 엄마의 책상만 관리한 것은 아니었다. 노란집, 박완서의 산문집 제목이기도 하고 실제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머물렀던 그 노란집의 부엌 한켠에서도 늘 바쁘게 움직였다. 실제로 그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책상이 아닌, 부엌이었다고, 호원숙은 고백하고 있다. 하루 세 번 돌아오는 끼니때마다 입에 들어갈 음식을 챙긴다는 것, 삶은 소설보다 더 부지런해야 했다.
엄마의 부엌에서 삶을 이어갈 밥을 해 먹는다. 이것은 숭고한 노동이자, 유연한 돌봄이자, 생존에 대한 원초적 의지였다. 그 무엇을 먹어도 엄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모아 이 책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펴낸다. 엄마의 10주기를 기념하기에 더없이 따스하고 또 경건하다.
작고 이후에도 서랍 속 주옥같은 미발표 원고들이 몇 차례 발표되었고, 대표작들은 표지를 갈아입은 개정판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로 남아 있다. 생전에 남긴 육성의 기록은 두 권의 대담집으로 엮였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고인의 모든 책에 수록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 따로 모아 한 권의 책이 되었고, 스물아홉 명의 후배 작가들이 박완서를 추억하고 기리며 오마주한 콩트집도 세상에 나왔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다 되도록 우리는 한시도 잊지 않고 작품을 읽고, 또 읽었다. 이것만 보아도 소설가 박완서가 한국문학사에 어떻게 한 획을 그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맏딸 호원숙이 엄마의 책상을 살뜰히도 살펴왔기 때문이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묵은 원고의 먼지를 털고, 기출간된 책들의 여러 행정적 문제를 해결하고, 출판사에서 새롭게 보내오는 제안을 검토하여 책이 되는 모든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박완서 소설 전집>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등도 모두 호원숙의 손끝에서 시작해 호원숙의 손끝에서 끝날 수 있었던, 대작업이었다.
그러나 호원숙은 엄마의 책상만 관리한 것은 아니었다. 노란집, 박완서의 산문집 제목이기도 하고 실제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머물렀던 그 노란집의 부엌 한켠에서도 늘 바쁘게 움직였다. 실제로 그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책상이 아닌, 부엌이었다고, 호원숙은 고백하고 있다. 하루 세 번 돌아오는 끼니때마다 입에 들어갈 음식을 챙긴다는 것, 삶은 소설보다 더 부지런해야 했다.
엄마의 부엌에서 삶을 이어갈 밥을 해 먹는다. 이것은 숭고한 노동이자, 유연한 돌봄이자, 생존에 대한 원초적 의지였다. 그 무엇을 먹어도 엄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모아 이 책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펴낸다. 엄마의 10주기를 기념하기에 더없이 따스하고 또 경건하다.
목차
프롤로그 엄마의 부엌, 그 기억
살구나무 아래서
할머니, 뭇국에 밥 말아줘
나박김치를 만들다가
만두 타령
오븐 앞에서 1
오븐 앞에서 2
외할머니의 느낌
민어와의 사투
산 자를 위한 음식
거의 완벽에 가까운, 멘보샤
전염병 시대의 밥상
나를 위로하는 부드러운 음식
준치, 깨끗하고 감미로웠던
봄비 오는 날의 비빔국수
아차산 기슭의 이웃
대변항 그 횟집
경주의 황혼
남은 음식에 대하여
어찌 대구 맛을 알겠는가
느티떡에서 칼바도스까지
기억으로 기억하는
추천의 글 사랑하는 작가의 식탁에 ㆍ 정세랑
살구나무 아래서
할머니, 뭇국에 밥 말아줘
나박김치를 만들다가
만두 타령
오븐 앞에서 1
오븐 앞에서 2
외할머니의 느낌
민어와의 사투
산 자를 위한 음식
거의 완벽에 가까운, 멘보샤
전염병 시대의 밥상
나를 위로하는 부드러운 음식
준치, 깨끗하고 감미로웠던
봄비 오는 날의 비빔국수
아차산 기슭의 이웃
대변항 그 횟집
경주의 황혼
남은 음식에 대하여
어찌 대구 맛을 알겠는가
느티떡에서 칼바도스까지
기억으로 기억하는
추천의 글 사랑하는 작가의 식탁에 ㆍ 정세랑
본문발췌
어머니는 이 집을 나에게 물려주셨다. 그냥 살아라 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고 그동안 나는 이 집에서 그냥 살았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집의 부엌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서재도 아니고, 마당도 아니고, 부엌이었다.
15쪽 ‘프롤로그 : 엄마의 부엌, 기억’ 중에서
미나리를 다듬으며 거머리를 대담하게 떼어버리던 어머니의 야무졌던 손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다듬고 난 미나리 뿌리를 버리지 않고 예쁜 항아리에 물을 받아 담가두셨지. 그게 다시 잎이 올라와 겨울의 방 안을 연두색으로 생기 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끊어서 먹기도 했다. 알뜰했던 어머니, 아니 그 시절 엄마들은 다 그러셨지. 뿌리의 생명력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웠던 마음이 읽힌다.
37쪽 ‘나박김치를 만들다가’ 중에서
그 애가 세상을 떠나고 세모(歲暮)가 왔다. 어찌 그 몇 달을 지낼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가 쓰신 일기를 잘 보지 않는다. 너무 슬프기 때문에.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이 너무 서글프기 때문이다. 미쳐버리지 못하는 정신의 명료함을 탓하던 그 시간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만두를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다던 아이. “만두 박사가 없는데 무슨 재미로 만두를 하나?” 하시면서도 그해 연말 우리가 마련한 재료로 만두를 빚으셨던 엄마. 그래서 만두를 보면 슬픔이 올라온다. 음식은 말이 없는데, 만두를 빚으면 만두 박사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44쪽 ‘만두 타령’ 중에서
이튿날 어머니 집에 들러 혼자서 민어 한 마리 잡은 것을 무용담 말하듯이 흥분해 늘어놓았다. 큰 칭찬이라도 받을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나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것 같았다. 민어회와 양념한 민어구이를 해드렸을 때 그 바라보던 눈길을 잊지 못한다. 약간은 뜨악하게.
할머니가 생선을 잡으시던 그 장면이 나에게 재현된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음이 아닐까? 그 장면을 쓰셨으면서도 미각에 집착했던 할머니의 유난스러움이 나에게 물려지기를 바라지는 않으신 게 아닐까?
77쪽 ‘민어와의 사투’ 중에서
7시 무렵부터 엄마는 부엌에서 아버지의 저녁 술상을 차렸다. 그때 엄마가 특별히 만들었던 요리를 잊을 수 없다. 그걸 여러 번 만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새우살을 다져 쫀득해진 것을 식빵 사이에 넣어 튀긴 요리는 참으로 황제의 음식처럼 보였다. 그 당시 어느 집에서도 그런 음식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만족감과 행복감은 거의 완벽해 보였다. 그걸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거기에는 그 어떤 눈길도 새어들지 않은 우리 가족만의 낙원이 있었다.
92쪽 ‘거의 완벽에 가까운, 멘보샤’ 중에서
냉장고와 싱크대와 도마와 식탁을 오고 가며 하루 세끼를 해결하고 설거지를 마치는 순간, 하루의 의무를 끝낸 듯 마음이 숙연해진다. 어쩌면 그 마침의 순간을 위해서 하루를 지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행주를 빨아 삶는다. 마치 하나의 마침표처럼. 지루함과 곤고함의 상징과도 같은 행주.
102쪽 ‘전염병 시대의 밥상’ 중에서
남긴 음식에 관한 문제는 음식점의 갈비구이가 아니라도 매일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어떤 때는 과감하게 버리기도 하지만 식구가 집에 없을 땐 혼자서 남긴 음식을 꺼내 먹는 것이 버릇이다. 그게 그리 구차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잘 데우고 약간의 조리를 가하여 번듯한 식사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는 마음이 개운하다고 해야 하나. 음식을 버릴 때보다 남긴 음식을 거두어 먹을 때 떳떳하고 알뜰함에 스스로의 만족감이 분명히 있다.
147쪽 ‘남은 음식에 대하여’ 중에서
15쪽 ‘프롤로그 : 엄마의 부엌, 기억’ 중에서
미나리를 다듬으며 거머리를 대담하게 떼어버리던 어머니의 야무졌던 손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다듬고 난 미나리 뿌리를 버리지 않고 예쁜 항아리에 물을 받아 담가두셨지. 그게 다시 잎이 올라와 겨울의 방 안을 연두색으로 생기 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끊어서 먹기도 했다. 알뜰했던 어머니, 아니 그 시절 엄마들은 다 그러셨지. 뿌리의 생명력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웠던 마음이 읽힌다.
37쪽 ‘나박김치를 만들다가’ 중에서
그 애가 세상을 떠나고 세모(歲暮)가 왔다. 어찌 그 몇 달을 지낼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가 쓰신 일기를 잘 보지 않는다. 너무 슬프기 때문에.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이 너무 서글프기 때문이다. 미쳐버리지 못하는 정신의 명료함을 탓하던 그 시간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만두를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다던 아이. “만두 박사가 없는데 무슨 재미로 만두를 하나?” 하시면서도 그해 연말 우리가 마련한 재료로 만두를 빚으셨던 엄마. 그래서 만두를 보면 슬픔이 올라온다. 음식은 말이 없는데, 만두를 빚으면 만두 박사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44쪽 ‘만두 타령’ 중에서
이튿날 어머니 집에 들러 혼자서 민어 한 마리 잡은 것을 무용담 말하듯이 흥분해 늘어놓았다. 큰 칭찬이라도 받을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나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것 같았다. 민어회와 양념한 민어구이를 해드렸을 때 그 바라보던 눈길을 잊지 못한다. 약간은 뜨악하게.
할머니가 생선을 잡으시던 그 장면이 나에게 재현된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음이 아닐까? 그 장면을 쓰셨으면서도 미각에 집착했던 할머니의 유난스러움이 나에게 물려지기를 바라지는 않으신 게 아닐까?
77쪽 ‘민어와의 사투’ 중에서
7시 무렵부터 엄마는 부엌에서 아버지의 저녁 술상을 차렸다. 그때 엄마가 특별히 만들었던 요리를 잊을 수 없다. 그걸 여러 번 만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새우살을 다져 쫀득해진 것을 식빵 사이에 넣어 튀긴 요리는 참으로 황제의 음식처럼 보였다. 그 당시 어느 집에서도 그런 음식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만족감과 행복감은 거의 완벽해 보였다. 그걸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거기에는 그 어떤 눈길도 새어들지 않은 우리 가족만의 낙원이 있었다.
92쪽 ‘거의 완벽에 가까운, 멘보샤’ 중에서
냉장고와 싱크대와 도마와 식탁을 오고 가며 하루 세끼를 해결하고 설거지를 마치는 순간, 하루의 의무를 끝낸 듯 마음이 숙연해진다. 어쩌면 그 마침의 순간을 위해서 하루를 지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행주를 빨아 삶는다. 마치 하나의 마침표처럼. 지루함과 곤고함의 상징과도 같은 행주.
102쪽 ‘전염병 시대의 밥상’ 중에서
남긴 음식에 관한 문제는 음식점의 갈비구이가 아니라도 매일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어떤 때는 과감하게 버리기도 하지만 식구가 집에 없을 땐 혼자서 남긴 음식을 꺼내 먹는 것이 버릇이다. 그게 그리 구차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잘 데우고 약간의 조리를 가하여 번듯한 식사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는 마음이 개운하다고 해야 하나. 음식을 버릴 때보다 남긴 음식을 거두어 먹을 때 떳떳하고 알뜰함에 스스로의 만족감이 분명히 있다.
147쪽 ‘남은 음식에 대하여’ 중에서
저자소개
1954년 서울에서 호영진 박완서의 맏딸로 태어났다. 경기여중고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뿌리깊은 나무] 편집기자로 일했고, 1992년 박완서 문학앨범에 일대기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을 썼다. 2011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치울에 머물며 [박완서 소설 전집]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등을 출간하는 데 관여했으며, 박완서 대담집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박완서의 말]을 엮었다.
그 밖에 쓴 책으로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그리운 곳이 생겼다]와 동화 [나는 튤립이에요] 등이 있다.
그 밖에 쓴 책으로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그리운 곳이 생겼다]와 동화 [나는 튤립이에요] 등이 있다.
서평
2021년 1월 22일은 한국문학의 어머니, 소설가 박완서의 10주기이다. 1970년 장편소설 [나목]으로 등단한 이래 2011년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쉼 없이 작품활동을 해온, 그 자체로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작가.
작고 이후에도 서랍 속 주옥같은 미발표 원고들이 몇 차례 발표되었고, 대표작들은 표지를 갈아입은 개정판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로 남아 있다. 생전에 남긴 육성의 기록은 두 권의 대담집으로 엮였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고인의 모든 책에 수록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 따로 모아 한 권의 책이 되었고, 스물아홉 명의 후배 작가들이 박완서를 추억하고 기리며 오마주한 콩트집도 세상에 나왔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다 되도록 우리는 한시도 잊지 않고 작품을 읽고, 또 읽었다. 이것만 보아도 소설가 박완서가 한국문학사에 어떻게 한 획을 그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맏딸 호원숙이 엄마의 책상을 살뜰히도 살펴왔기 때문이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묵은 원고의 먼지를 털고, 기출간된 책들의 여러 행정적 문제를 해결하고, 출판사에서 새롭게 보내오는 제안을 검토하여 책이 되는 모든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박완서 소설 전집]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등도 모두 호원숙의 손끝에서 시작해 호원숙의 손끝에서 끝날 수 있었던, 대작업이었다.
그러나 호원숙은 엄마의 책상만 관리한 것은 아니었다. 노란집, 박완서의 산문집 제목이기도 하고 실제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머물렀던 그 노란집의 부엌 한켠에서도 늘 바쁘게 움직였다. 실제로 그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책상이 아닌, 부엌이었다고, 호원숙은 고백하고 있다. 하루 세 번 돌아오는 끼니때마다 입에 들어갈 음식을 챙긴다는 것, 삶은 소설보다 더 부지런해야 했다.
엄마의 부엌에서 삶을 이어갈 밥을 해 먹는다. 이것은 숭고한 노동이자, 유연한 돌봄이자, 생존에 대한 원초적 의지였다. 그 무엇을 먹어도 엄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모아 이 책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펴낸다. 엄마의 10주기를 기념하기에 더없이 따스하고 또 경건하다.
그리운 소설가 박완서 10주기를 기념하는
가장 가까운 목소리
박완서의 소설과 산문은 정직하게 시대를 기록하면서도 세대를 막론하고 관통하는 인간사의 보편적인 정서를 품고 있다.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와중에도 늘 유머를 잊지 않는 그런 여유 또한 갖추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시대에 뒤처지거나 정서에 맞지 않는 것이 하나 없는, 선명하고 분명함이 있다. 여러 후배 문인들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의 존경을 받는 국민작가로 한국문학에 길이 남을 이름, 박완서.
박완서의 소설에는 음식에 대한 묘사도 적지 않다. 아무래도 동시대 보통의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삶에 현미경을 갖다댄 듯 정밀하고 섬세한 관찰과 묘사가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소설 속에서 음식은 아주 중요한 문학적 장치이자 시대상의 반영이었다. 박완서의 소설 속 장면과 호원숙의 유년 시절은 자유롭게 넘나들고, 분명 소설 속 대사지만 그건 실제로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이기도 했다.
그 덕에 우리는 박완서 문학, 그 이면의 생생한 이야기를 귀하게 듣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세상 그 누구가 박완서의 소설을 이토록 생생하게 증언하듯 풀어낼 수 있을까. 오직 딸이기에 가능한 ‘박완서 문학’의 코멘터리다. 그 어떤 문학평론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엄마 없는 엄마의 부엌에서 또 삶을 꾸려나가고, 날씨와 계절에 맞는 음식을 정성껏 차려 먹는, 일상의 풍경이 잔잔히 흐른다. 호원숙의 글은 박완서의 글을 닮은 듯하면서도 고유의 글맛이 있다. 다정하고 단정하면서도, 경험과 연륜에서 우러나는 깊이가 있다. 특히 음식 이야기를 할 때면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묘사에 절로 침이 고인다.
이 책에는 단순히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태도를 폭넓게 담아내고 있다. 훌륭한 소설가의 딸이면서도, 슬하의 자식들 역시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 또 자애로운 할머니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호원숙의 어린 손녀들은 할머니가 끓여주는 ‘뭇국’의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을 음미할 정도로 성숙하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삶은 이렇게 대를 이어 흘러가고, 개인의 하루하루는 가족의 역사가 되었다가 시대의 기록이 되기도 한다. 박완서 호원숙 모녀가 쌓아올린 이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은 그 자체로 진실되고 또 견고하다. 10년. 강도 산도 변한다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많은 것이 그대로이다.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박완서를 닮은 젊은 소설가들의 약진이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다는 것. 책의 말미에는 이 책을 먼저 읽은 소설가 정세랑이 ‘추천의 글’을 덧붙여 10주기를 기렸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많은 후배 문인들의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계시지는 않지만 여전히 수없이 많은 글로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영원한 현역 작가. 故 박완서 소설가의 10주기에 이 책을 헌정한다.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박완서를 충분히 그리리워하고, 기억하고, 또 용기와 위안을 받기를 바란다.
작고 이후에도 서랍 속 주옥같은 미발표 원고들이 몇 차례 발표되었고, 대표작들은 표지를 갈아입은 개정판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로 남아 있다. 생전에 남긴 육성의 기록은 두 권의 대담집으로 엮였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고인의 모든 책에 수록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 따로 모아 한 권의 책이 되었고, 스물아홉 명의 후배 작가들이 박완서를 추억하고 기리며 오마주한 콩트집도 세상에 나왔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다 되도록 우리는 한시도 잊지 않고 작품을 읽고, 또 읽었다. 이것만 보아도 소설가 박완서가 한국문학사에 어떻게 한 획을 그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맏딸 호원숙이 엄마의 책상을 살뜰히도 살펴왔기 때문이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묵은 원고의 먼지를 털고, 기출간된 책들의 여러 행정적 문제를 해결하고, 출판사에서 새롭게 보내오는 제안을 검토하여 책이 되는 모든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박완서 소설 전집]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등도 모두 호원숙의 손끝에서 시작해 호원숙의 손끝에서 끝날 수 있었던, 대작업이었다.
그러나 호원숙은 엄마의 책상만 관리한 것은 아니었다. 노란집, 박완서의 산문집 제목이기도 하고 실제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머물렀던 그 노란집의 부엌 한켠에서도 늘 바쁘게 움직였다. 실제로 그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책상이 아닌, 부엌이었다고, 호원숙은 고백하고 있다. 하루 세 번 돌아오는 끼니때마다 입에 들어갈 음식을 챙긴다는 것, 삶은 소설보다 더 부지런해야 했다.
엄마의 부엌에서 삶을 이어갈 밥을 해 먹는다. 이것은 숭고한 노동이자, 유연한 돌봄이자, 생존에 대한 원초적 의지였다. 그 무엇을 먹어도 엄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모아 이 책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펴낸다. 엄마의 10주기를 기념하기에 더없이 따스하고 또 경건하다.
그리운 소설가 박완서 10주기를 기념하는
가장 가까운 목소리
박완서의 소설과 산문은 정직하게 시대를 기록하면서도 세대를 막론하고 관통하는 인간사의 보편적인 정서를 품고 있다.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와중에도 늘 유머를 잊지 않는 그런 여유 또한 갖추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시대에 뒤처지거나 정서에 맞지 않는 것이 하나 없는, 선명하고 분명함이 있다. 여러 후배 문인들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의 존경을 받는 국민작가로 한국문학에 길이 남을 이름, 박완서.
박완서의 소설에는 음식에 대한 묘사도 적지 않다. 아무래도 동시대 보통의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삶에 현미경을 갖다댄 듯 정밀하고 섬세한 관찰과 묘사가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소설 속에서 음식은 아주 중요한 문학적 장치이자 시대상의 반영이었다. 박완서의 소설 속 장면과 호원숙의 유년 시절은 자유롭게 넘나들고, 분명 소설 속 대사지만 그건 실제로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이기도 했다.
그 덕에 우리는 박완서 문학, 그 이면의 생생한 이야기를 귀하게 듣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세상 그 누구가 박완서의 소설을 이토록 생생하게 증언하듯 풀어낼 수 있을까. 오직 딸이기에 가능한 ‘박완서 문학’의 코멘터리다. 그 어떤 문학평론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엄마 없는 엄마의 부엌에서 또 삶을 꾸려나가고, 날씨와 계절에 맞는 음식을 정성껏 차려 먹는, 일상의 풍경이 잔잔히 흐른다. 호원숙의 글은 박완서의 글을 닮은 듯하면서도 고유의 글맛이 있다. 다정하고 단정하면서도, 경험과 연륜에서 우러나는 깊이가 있다. 특히 음식 이야기를 할 때면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묘사에 절로 침이 고인다.
이 책에는 단순히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태도를 폭넓게 담아내고 있다. 훌륭한 소설가의 딸이면서도, 슬하의 자식들 역시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 또 자애로운 할머니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호원숙의 어린 손녀들은 할머니가 끓여주는 ‘뭇국’의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을 음미할 정도로 성숙하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삶은 이렇게 대를 이어 흘러가고, 개인의 하루하루는 가족의 역사가 되었다가 시대의 기록이 되기도 한다. 박완서 호원숙 모녀가 쌓아올린 이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은 그 자체로 진실되고 또 견고하다. 10년. 강도 산도 변한다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많은 것이 그대로이다.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박완서를 닮은 젊은 소설가들의 약진이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다는 것. 책의 말미에는 이 책을 먼저 읽은 소설가 정세랑이 ‘추천의 글’을 덧붙여 10주기를 기렸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많은 후배 문인들의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계시지는 않지만 여전히 수없이 많은 글로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영원한 현역 작가. 故 박완서 소설가의 10주기에 이 책을 헌정한다.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박완서를 충분히 그리리워하고, 기억하고, 또 용기와 위안을 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