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유리 젠가 : 이수현 소설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11020
가격
₩ 13,000
ISBN
9791167910257
페이지
195 p.
판형
110 X 188 mm
커버
Book
책 소개
[유리 젠가]는 2020년 동양일보 신인 문학상을 수상한 이수현의 첫 단편집이다. 2020 충북 작가 신인상 당선작인 <시체놀이>를 포함, 총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품 속 유리 젠가의 세계는 눈이 부시도록 투명하고 위태롭다. 절망의 나락에서 우리는 종종 <시체놀이>의 취업 준비생처럼 주변을 배회하고, <달팽이 키우기>의 지애처럼 사랑하는 이의 패각에 생채기를 낸다. 하지만 <유리 젠가>의 소영처럼 위태로운 젠가 끝에 매달린 사랑에 모든 것을 내놓을 때도, <발효의 시간〉 속 철이처럼 결코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부자간의 갈등을 직면하면서도 결국 우리는 빛을 향해 나아간다. <달팽이 키우기>의 젊은 연인처럼 나보다 작은 존재를 돌보며 서서히 제 삶의 궤적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이 책은 삶의 바탕을 만들어가는 청춘들, 녹록지 않은 인생길에 단단한 용기와 따스한 위안을 건넨다. 위태로운 우리를 향해 소설가 이수현은 다정하게 읊조린다. 인생은 한 번 살아볼 만한 것, 견뎌볼 만한 것이라고.
목차
[책머리에]
시체놀이
유리 젠가
달팽이 키우기
발효의 시간
[작가의 말]
[추천사] 이수현이라는 작가의 특별함_ 김미월
[해설] 펜데믹 속 증상과 치유 모색하기_ 전기철
시체놀이
유리 젠가
달팽이 키우기
발효의 시간
[작가의 말]
[추천사] 이수현이라는 작가의 특별함_ 김미월
[해설] 펜데믹 속 증상과 치유 모색하기_ 전기철
본문발췌
P.25
나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 갸릉갸릉 우는 어떤 작고 가냘픈 생명체에 대한 보속의 기회다. 어떠한 것으로도 대체되지도 않고, 아주 소멸해버리지도 않을 내 존재에 대한 확신이다. 오늘의 시체놀이를 끝으로 나는 내 인생을 한번 살아 보리라 마음먹는다. 방바닥과 하나가 된 내 몸을 큰 대자로 쭉 펴본다. 시간이 멈춘 사각형의 관 속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편안한 시체가 된 몸이 퍽 안락하다. 죽은 듯 자고 일어나, 나는 시체가 아닌 내 생을 그려보리라. 쓰다 만 자기소개서의 커서가 붉은 눈으로 깜빡거리며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다.
P.96
대학 졸업 기념으로 떠났던 나의 첫 해외여행은 발리였다. 비현실적으로 푸르른 바다와 색색의 산호는 마치 투명한 유리로 만든 거대한 성처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수심이 깊은 곳으로 점점 내려가다가 어느 곳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형광색을 띤 약지 손톱만 한 물고기들은 무리를 지어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바다의 꽃이라고 불리는 산호초와 아름다운 물고기 무리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렇게 유유히 흘렀다. 이보다 더 평화롭고 안온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무리에서 길을 잃은 물고기 한 마리가 빙글빙글 한자리에서 돌았다. 보기엔 그저 맑고 투명한 유리와도 같았던 그 세계가 날카로운 파편을 여실히 드러냈다. 살아가는 세상에선 쉬이 발견하기 힘들었던 푸른색의 우아한 산호초, 그리고 그 풍경에 속아 증발해버린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그려졌다.
P.114
누군가 사랑의 정의를 다시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대를 위해 뭐든지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을 때 사랑을 하세요. 그의 무신경을, 무기력함을, 짜증을, 고통을, 비난을 받아줄 수 있는 성인군자라면 언제든 사랑을 시작하세요. 어쩌면 나는 그를 위해 내어줄 마음의 공간이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달팽이는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 갸릉갸릉 우는 어떤 작고 가냘픈 생명체에 대한 보속의 기회다. 어떠한 것으로도 대체되지도 않고, 아주 소멸해버리지도 않을 내 존재에 대한 확신이다. 오늘의 시체놀이를 끝으로 나는 내 인생을 한번 살아 보리라 마음먹는다. 방바닥과 하나가 된 내 몸을 큰 대자로 쭉 펴본다. 시간이 멈춘 사각형의 관 속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편안한 시체가 된 몸이 퍽 안락하다. 죽은 듯 자고 일어나, 나는 시체가 아닌 내 생을 그려보리라. 쓰다 만 자기소개서의 커서가 붉은 눈으로 깜빡거리며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다.
P.96
대학 졸업 기념으로 떠났던 나의 첫 해외여행은 발리였다. 비현실적으로 푸르른 바다와 색색의 산호는 마치 투명한 유리로 만든 거대한 성처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수심이 깊은 곳으로 점점 내려가다가 어느 곳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형광색을 띤 약지 손톱만 한 물고기들은 무리를 지어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바다의 꽃이라고 불리는 산호초와 아름다운 물고기 무리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렇게 유유히 흘렀다. 이보다 더 평화롭고 안온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무리에서 길을 잃은 물고기 한 마리가 빙글빙글 한자리에서 돌았다. 보기엔 그저 맑고 투명한 유리와도 같았던 그 세계가 날카로운 파편을 여실히 드러냈다. 살아가는 세상에선 쉬이 발견하기 힘들었던 푸른색의 우아한 산호초, 그리고 그 풍경에 속아 증발해버린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그려졌다.
P.114
누군가 사랑의 정의를 다시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대를 위해 뭐든지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을 때 사랑을 하세요. 그의 무신경을, 무기력함을, 짜증을, 고통을, 비난을 받아줄 수 있는 성인군자라면 언제든 사랑을 시작하세요. 어쩌면 나는 그를 위해 내어줄 마음의 공간이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달팽이는 그렇지 않았다.
저자소개
1995년 서울에서 태어나 2020 충북 작가 신인상 소설 부문 당선, 2020 동양일보 신인 문학상 수필 부문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충북작가회의 회원으로 있으며,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에서 창작 지원금을 수혜받았다.
서평
위태롭게 쌓아 올린 유리젠가, 당신에게 빛으로 건네는 마음
청춘들이 위태롭게 쌓아 올린 유리젠가, 그 사이를 파고드는 빛으로 건네는 마음이 있다. 눈이 시리도록 투명한 그 길을 걷는 이가 결코 당신 혼자가 아님을, 결국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고.
〈시체놀이〉
죽지 않은 피부는 죽음의 색을 벗겨내자 다시금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문송합니다.” 반복되는 취업 실패를 겪으며 ‘꿈을 좇는 삶이 아닌, 되는대로 살아지는 삶’을 살던 주인공. 죽음의 그림자를 입고 주변인으로 배회하는 와중 작고 단단한 존재들을 마주한다. 그녀는 어떠한 것으로도 대체되지도, 소멸해버리지도 않을 제 존재를 확신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유리 젠가〉
네 나이 서른여섯인데, 이제 또 누군가와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여자로서는 거의 마지노선이잖아.
평범한 30대 후반 직장인 소영은 오래된 연인과의 권태기를 겪으며 좌절하고 아파한다. 영원히 지속될 달콤한 사랑이 과연 있을까? 눈이 부시도록 빛나면서도 위태로운 그 사랑을, 이젠 다시 믿어보려 한다.
〈달팽이 키우기〉
서울에 내 집 마련은 힘들지만, 너를 위한 집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
코로나 이후, 암담한 현실을 마주한 젊은 연인은 부서진 패각 안으로 자꾸만 숨으려 한다. 공기마저 냉랭한 그들의 공간에 들어온 작은 생명체는 자꾸만 새로운 다짐을 움트게 한다.
〈발효의 시간〉
마음의 반죽처럼 둥글게 부풀어 발목까지 쌓인 눈 위로 아직 그 누구의 발자국도 남겨져 있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 진심과 정성을 담은 삼 대의 반죽이 독자의 마음속에서 부풀어 올라 행복의 향기를 풍기는 것처럼. 삶의 방향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우리는 각자가 서 있는 이곳에서 묵묵히 걸어 나갈 것임을 알기에.
청춘들이 위태롭게 쌓아 올린 유리젠가, 그 사이를 파고드는 빛으로 건네는 마음이 있다. 눈이 시리도록 투명한 그 길을 걷는 이가 결코 당신 혼자가 아님을, 결국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고.
〈시체놀이〉
죽지 않은 피부는 죽음의 색을 벗겨내자 다시금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문송합니다.” 반복되는 취업 실패를 겪으며 ‘꿈을 좇는 삶이 아닌, 되는대로 살아지는 삶’을 살던 주인공. 죽음의 그림자를 입고 주변인으로 배회하는 와중 작고 단단한 존재들을 마주한다. 그녀는 어떠한 것으로도 대체되지도, 소멸해버리지도 않을 제 존재를 확신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유리 젠가〉
네 나이 서른여섯인데, 이제 또 누군가와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여자로서는 거의 마지노선이잖아.
평범한 30대 후반 직장인 소영은 오래된 연인과의 권태기를 겪으며 좌절하고 아파한다. 영원히 지속될 달콤한 사랑이 과연 있을까? 눈이 부시도록 빛나면서도 위태로운 그 사랑을, 이젠 다시 믿어보려 한다.
〈달팽이 키우기〉
서울에 내 집 마련은 힘들지만, 너를 위한 집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
코로나 이후, 암담한 현실을 마주한 젊은 연인은 부서진 패각 안으로 자꾸만 숨으려 한다. 공기마저 냉랭한 그들의 공간에 들어온 작은 생명체는 자꾸만 새로운 다짐을 움트게 한다.
〈발효의 시간〉
마음의 반죽처럼 둥글게 부풀어 발목까지 쌓인 눈 위로 아직 그 누구의 발자국도 남겨져 있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 진심과 정성을 담은 삼 대의 반죽이 독자의 마음속에서 부풀어 올라 행복의 향기를 풍기는 것처럼. 삶의 방향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우리는 각자가 서 있는 이곳에서 묵묵히 걸어 나갈 것임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