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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ail Information
돈은 없어도 떠나고는 싶었다 : 길거리 장사로 지구촌을 누빈 여행작가 이해성의 무전여행기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10708
가격
₩ 18,000
ISBN
9791165398545
페이지
345 p.
판형
152 X 225 mm
커버
Book
책 소개
저자 이해성은 해외여행 자유화 원년인 1989년부터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그 여행기를 각종 일간지에 기고해온, 말하자면 ‘국내 1세대’ 여행작가이다. 젊은 시절에는 국악, 무용, 연극 등 예술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안정된 수입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가에 홀린 듯 가진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출국길에 오른다. 이에 대해 저자 스스로는 타고난 방랑벽 때문이라고 한다. 돌아다니지 않으면 병에 걸리는 체질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처음 몇 년간은 출국 전 처분한 재산을 여행 밑천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 돈은 금세 동났다.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더 필요했고, 급기야 낯선 외국의 길거리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기 시작한다. 길거리 연주(버스킹)도 병행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여행을 계속하며 수많은 경험을 하고 수많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처음 몇 년간은 출국 전 처분한 재산을 여행 밑천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 돈은 금세 동났다.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더 필요했고, 급기야 낯선 외국의 길거리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기 시작한다. 길거리 연주(버스킹)도 병행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여행을 계속하며 수많은 경험을 하고 수많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
목차
머리말
1부 | 남아프리카공화국
1. 진짜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찾아서
2. 서울에 돌아와도 머물 곳 없는 신세
3. 번화가 가게 부근에서 털렸다는 현지 한국인 사장님
4. 불안한 치안 때문에 백인들은 대부분 빠져나가
5.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주 케이프타운으로
6. 장신 금발 백인 미녀의 대쉬
7. 즉석에서 팀을 꾸려 드라이브 하기로
8. 희망봉 등대에는 나라 망신시키는 가장 큰 한글 낙서가
9. 수산업을 하다가 망해 식당 차렸다는 한국인 아저씨
10. 눈길만 마주쳐도 속 빈 사람들처럼 아는 체해
11. 남아공 민주화의 상징 넬슨 만델라의 집은 아주 평범해
12. 7일짜리 3개국 국제 투어에 참가하다
13. 사자와 차량들과의 덩치 경쟁(?)
14. 아침식사 중인 원숭이들의 모습에 폭소가
15. 겁 없이 괴물 차량으로 뛰어오르는 개코원숭이
16. 하마들은 물 밖으로 나오지도 않아
17. 무법자 코뿔소 퇴치법 강의(네팔의 치토완에서)
18. 재롱동이 아프리카 부엉이
19. 엠피티엔탈 산속에는 수만 년 전 부시맨의 벽화가
20. 미국인 아줌마 등반에 도전하지만 곧 포기
21. 아프리카 여행지에서의 개고기 논쟁
22. 도둑이 가장 많은 대표적인 세 나라
23. 각국의 실업률과 경제성장률 고백(?)
24. 미국, 유럽인들 일본에서 대우 못 받아
25. 깨끗한 환경,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좋은 추억 가지고 떠나
2부 | 타이완
1. 국내에는 머물 곳이 없는 신세라 빨리 출국하는 게 상책
2. 엄격하기로 소문난 타이페이 공항 꼬랑내 작전(?)으로 무사통과
3. 욕쟁이 이집트 남자와 우당탕 한바탕 하다
4. 욕심쟁이 영국인 친구
5. 길거리 장사하다 단속경찰에 잡혀 감옥으로 직행
6. 타이완 경찰관, “정말 존경스럽고 부럽습니다”
3부 |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1. 잠깐 길을 물어보다가 배낭까지 날려
2. 주머니 속에는 달랑 120달러, 맥이 풀려
3. 한국인 관광객들 매일 소매치기 당해 대사관으로
4. 빈손으로 김포공항을 통과하려는데 특별히 조사를
5. 집시들, 관광객들 혼을 빼놓아
6. 오스트리아 비엔나 길거리 연주 중 만난 인연
4부 | 홍콩
1. 졸단 거리 한국 식당에서의 한담(閑談)
2. 뇌물(?) 요구하는 영국인 경찰관들
3. 한국인 장사꾼, “양심껏 말했다간 하나도 못 팔아요”
4. 홍콩 법정에서의 코미디 쇼
5. 탈출하다 붙잡힌 이스라엘 친구는 오랏줄에 묶여 철창 안에
6. 신성한 법정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한국인 고문관
7. 짧은 영어로 영국인 재판장과 벌금 흥정을
5부 | 러시아
1. 7년 전 세계여행 떠날 때 재산 탈탈 털어 떠나
2. 한국인 사업가 덕에 숙소 문제 공짜로 해결
3. 곰 사냥, 헬리콥터에 군용 총까지 대동
4. 그놈의 보드카가 원흉?
5. 식사 준비 중에 뻗어버려 오도가도 못해
6. 러시아 미녀 친구를 만나다
7. 예비 사위 대하듯이 대해주시는 한국계 어머니
8. 모녀와 함께 아무르강변에서
9. 코풀이 왕초 대학생과 길거리 장사를
10. 험상궂은 마피아들 때문에 장사 접어
11. 한국인 웅담(熊膽) 장사꾼의 유혹
6부 | 태국
1. 잊지 못할 첫 여행지 태국으로
2. 파타야 해변의 게이 거리
3. 거리에는 마약상까지
4. 하룻밤 신세, 히치하이크 모두 실패
5. 중동에서 다시 태국으로
6. 난생 처음 해보는 길거리 장사
7. 일본인 류이찌를 만나 같이 장사하러 가기로
8. 단속 경찰들, 외국인들이라고 그냥 가버려
9. 여장남자에게 봉변당할 일본인 친구를 본체만체
10.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혼나긴 처음이야
11. 치앙마이 시골 지역 오토바이 드라이브
12. 청동(靑銅)주화 200바트 불렀다가 300바트로 올렸는데도 팔려
13. 일본 친구와 십 년 후 서신 주고받아
14. 500원짜리를 80배인 45,000원에 팔다
15. 정말로 경찰 닭장차에 실려가다
16. 휴! 장사하며 살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17. 튀김장수 아줌마 파트너
7부 | 이집트
1. 찾아간 곳은 한국대사관이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사관
2. 길을 묻는데 몰라도 아는 체… 골탕먹여
3. 피라미드의 원조 사카라 계단식 피라미드를 향해
4. 몰라도 아는 체하며 시간만 다 빼앗는 이집션들
5. 길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즉석 짤짤이 게임
6. 와따따따따! 이집션 크레이지!
7. 왕가의 계곡을 찾아서
8. 밤 기차 타고 아스완행
9. 유물 한 점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헤어져 따로 작업
10. 고대 누비아족의 터전에서
11. 배삯 바가지 요금 250원을 항의해 25원으로
12. 새벽 차를 타고 아부심벨 신전으로 향하다
13. 귀여운 클레오파트라의 후예들
14. 오늘도 거리에서 짤짤이 게임을
8부 | 덴마크
1. 잠든 새에 기차는 통째로 큰 배에 실려 이미 바다 건너 덴마크에
2. 선배형 집에서 모처럼 포식한다
3.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에 거지협회가?
4. 국가원수인 여왕도 장바구니 들고 장 보러 가
5. 안델센 동화마을에 살고 있다는 친구를 만나러
6. 눈앞에서 가이드 책 한 권 남기고 배낭을 통째로 떠나보내
7. 내가 앉았던 좌석 선반에 내 배낭이… 가슴을 쓸어내리다
8. 동양인이라고 빵 대신 감자와 콩을 위주로 특별히 배려해줘
9부 | 일본
1. 여행 자금 마련을 위해 길거리 장사를
2. 마약 추방 운동, 불우이웃 돕기, 동네 청소하기로 사회공헌하는 야쿠자?
3. 경찰 아닌 야쿠자에게 더 신경 써야 하는 노점상들
4. 질서정연한 우에노 공원의 벚꽃놀이
5. 하라주쿠에서 만난 노숙자 캐나다 친구 싸이몬, 밴쿠버에서 재회하다
6. 조상들과 문화가 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는 여선생
7. 일본어 왕초보 때 실수연발
8. 지나가던 일본 아줌마와 말이 안 통해 실랑이를
9. 방에만 틀어박혀 외출도 안 하는 일본인 남편
10. 동병상련의 친구 영국인 안디
11. 안디와 진한 키스를 나누는 와까바
12. 친절한 할아버지의 길안내
13. 길거리 장사 직접 단속 나온 파출소장
14. 일본 경찰, “왕초(파출소장)가 나올 땐 좀 치우는 시늉이라도…”
15. 너무 예뻐서 깎아줄 수 없어
16. 찐삐라 야쿠자를 어르고 달래어 쫓아버리는 고마운 아줌마
17. 오사카 쯔루하시에 산다는 밴드마스터 친구분 찾아가
18. 술 한잔하고 그러다 보니 그렇게 돼버렸어
19. 일본에서 돈 벌어 예금하면 대접도 달라져
20. 파친코장 앞에서의 길거리 장사
21. 지한파 고수와 다섯 점 접바둑으로 두다
22. 돈내기들을 안 하니 다툴 일이 없어
23. 요시다상, “일본 여자들은 엉큼하고 말만 많아요”
24. 외국인이라고 하니까 더욱 감동한 듯 연방 고맙다고 절을 해
25.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도망가는 도둑
26.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오직 같은 옷차림
27. 오키나와 공항에서 금지품목 압수당해
28.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 한복 입은 조총련계 여고생
29. 길거리 장사 중, “빠가야로 강곡구징!”
30. 어린(?) 친구들이 친구하자고 제의해와
31. 중국 여행 중 들은 “빠가야로!”
32. 일본 아저씨, “후루룩 쩝쩝 우동?”
33. 어린 친구가 공부는 제쳐놓고 일찍 장삿길로
34. 한국인들과 롯폰기의 나이트클럽으로
35. 상파울루에서 온 글래머 일본 미녀
36. 아카사카(赤坂) 고급 술집에서 대접받는 한국 소주
37. 철거하기엔 너무 아까운 목조 고옥(古屋)
38. 일본 시골에도 한국 드라마 팬이
39. 신주쿠 여자 점쟁이와의 충돌
40. 야쿠자가 점쟁이의 영업용 탁자를 밟아 부수다
41.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 도래계에 의해 훗카이도로 밀려나
42. 사진작가 미찌코와의 만남
43. 30대 싱글녀들 덕분에 식사 문제는 자연히 해결돼
44. 영문학을 전공한 후배에게 일본어를 쉽게 배워
45. 신주쿠(新宿)의 한국인 보따리 옷장수 아주머니
46. 신주쿠의 길거리 꽃장사 한국인 유학생
47. 꽃장사 유학생, 하루 순수익 540만 원 올리기도
48. 현해탄 페리호에서 만난 현대판 보부상 보따리 상인들
49. 법당 문도 닫고 사기꾼 찾아 일본까지 온 법사 부부
50. 고향 시골마을과 가등청정(加藤淸正)의 서생성(西生城)
51. 캄보디아에서 만난 일본인 여행객들
52. 일본 여행객들과 함께 한국 식당으로
53. 캄보디아에서의 비빔밥 찬가
맺음말
1부 | 남아프리카공화국
1. 진짜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찾아서
2. 서울에 돌아와도 머물 곳 없는 신세
3. 번화가 가게 부근에서 털렸다는 현지 한국인 사장님
4. 불안한 치안 때문에 백인들은 대부분 빠져나가
5.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주 케이프타운으로
6. 장신 금발 백인 미녀의 대쉬
7. 즉석에서 팀을 꾸려 드라이브 하기로
8. 희망봉 등대에는 나라 망신시키는 가장 큰 한글 낙서가
9. 수산업을 하다가 망해 식당 차렸다는 한국인 아저씨
10. 눈길만 마주쳐도 속 빈 사람들처럼 아는 체해
11. 남아공 민주화의 상징 넬슨 만델라의 집은 아주 평범해
12. 7일짜리 3개국 국제 투어에 참가하다
13. 사자와 차량들과의 덩치 경쟁(?)
14. 아침식사 중인 원숭이들의 모습에 폭소가
15. 겁 없이 괴물 차량으로 뛰어오르는 개코원숭이
16. 하마들은 물 밖으로 나오지도 않아
17. 무법자 코뿔소 퇴치법 강의(네팔의 치토완에서)
18. 재롱동이 아프리카 부엉이
19. 엠피티엔탈 산속에는 수만 년 전 부시맨의 벽화가
20. 미국인 아줌마 등반에 도전하지만 곧 포기
21. 아프리카 여행지에서의 개고기 논쟁
22. 도둑이 가장 많은 대표적인 세 나라
23. 각국의 실업률과 경제성장률 고백(?)
24. 미국, 유럽인들 일본에서 대우 못 받아
25. 깨끗한 환경,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좋은 추억 가지고 떠나
2부 | 타이완
1. 국내에는 머물 곳이 없는 신세라 빨리 출국하는 게 상책
2. 엄격하기로 소문난 타이페이 공항 꼬랑내 작전(?)으로 무사통과
3. 욕쟁이 이집트 남자와 우당탕 한바탕 하다
4. 욕심쟁이 영국인 친구
5. 길거리 장사하다 단속경찰에 잡혀 감옥으로 직행
6. 타이완 경찰관, “정말 존경스럽고 부럽습니다”
3부 |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1. 잠깐 길을 물어보다가 배낭까지 날려
2. 주머니 속에는 달랑 120달러, 맥이 풀려
3. 한국인 관광객들 매일 소매치기 당해 대사관으로
4. 빈손으로 김포공항을 통과하려는데 특별히 조사를
5. 집시들, 관광객들 혼을 빼놓아
6. 오스트리아 비엔나 길거리 연주 중 만난 인연
4부 | 홍콩
1. 졸단 거리 한국 식당에서의 한담(閑談)
2. 뇌물(?) 요구하는 영국인 경찰관들
3. 한국인 장사꾼, “양심껏 말했다간 하나도 못 팔아요”
4. 홍콩 법정에서의 코미디 쇼
5. 탈출하다 붙잡힌 이스라엘 친구는 오랏줄에 묶여 철창 안에
6. 신성한 법정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한국인 고문관
7. 짧은 영어로 영국인 재판장과 벌금 흥정을
5부 | 러시아
1. 7년 전 세계여행 떠날 때 재산 탈탈 털어 떠나
2. 한국인 사업가 덕에 숙소 문제 공짜로 해결
3. 곰 사냥, 헬리콥터에 군용 총까지 대동
4. 그놈의 보드카가 원흉?
5. 식사 준비 중에 뻗어버려 오도가도 못해
6. 러시아 미녀 친구를 만나다
7. 예비 사위 대하듯이 대해주시는 한국계 어머니
8. 모녀와 함께 아무르강변에서
9. 코풀이 왕초 대학생과 길거리 장사를
10. 험상궂은 마피아들 때문에 장사 접어
11. 한국인 웅담(熊膽) 장사꾼의 유혹
6부 | 태국
1. 잊지 못할 첫 여행지 태국으로
2. 파타야 해변의 게이 거리
3. 거리에는 마약상까지
4. 하룻밤 신세, 히치하이크 모두 실패
5. 중동에서 다시 태국으로
6. 난생 처음 해보는 길거리 장사
7. 일본인 류이찌를 만나 같이 장사하러 가기로
8. 단속 경찰들, 외국인들이라고 그냥 가버려
9. 여장남자에게 봉변당할 일본인 친구를 본체만체
10.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혼나긴 처음이야
11. 치앙마이 시골 지역 오토바이 드라이브
12. 청동(靑銅)주화 200바트 불렀다가 300바트로 올렸는데도 팔려
13. 일본 친구와 십 년 후 서신 주고받아
14. 500원짜리를 80배인 45,000원에 팔다
15. 정말로 경찰 닭장차에 실려가다
16. 휴! 장사하며 살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17. 튀김장수 아줌마 파트너
7부 | 이집트
1. 찾아간 곳은 한국대사관이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사관
2. 길을 묻는데 몰라도 아는 체… 골탕먹여
3. 피라미드의 원조 사카라 계단식 피라미드를 향해
4. 몰라도 아는 체하며 시간만 다 빼앗는 이집션들
5. 길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즉석 짤짤이 게임
6. 와따따따따! 이집션 크레이지!
7. 왕가의 계곡을 찾아서
8. 밤 기차 타고 아스완행
9. 유물 한 점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헤어져 따로 작업
10. 고대 누비아족의 터전에서
11. 배삯 바가지 요금 250원을 항의해 25원으로
12. 새벽 차를 타고 아부심벨 신전으로 향하다
13. 귀여운 클레오파트라의 후예들
14. 오늘도 거리에서 짤짤이 게임을
8부 | 덴마크
1. 잠든 새에 기차는 통째로 큰 배에 실려 이미 바다 건너 덴마크에
2. 선배형 집에서 모처럼 포식한다
3.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에 거지협회가?
4. 국가원수인 여왕도 장바구니 들고 장 보러 가
5. 안델센 동화마을에 살고 있다는 친구를 만나러
6. 눈앞에서 가이드 책 한 권 남기고 배낭을 통째로 떠나보내
7. 내가 앉았던 좌석 선반에 내 배낭이… 가슴을 쓸어내리다
8. 동양인이라고 빵 대신 감자와 콩을 위주로 특별히 배려해줘
9부 | 일본
1. 여행 자금 마련을 위해 길거리 장사를
2. 마약 추방 운동, 불우이웃 돕기, 동네 청소하기로 사회공헌하는 야쿠자?
3. 경찰 아닌 야쿠자에게 더 신경 써야 하는 노점상들
4. 질서정연한 우에노 공원의 벚꽃놀이
5. 하라주쿠에서 만난 노숙자 캐나다 친구 싸이몬, 밴쿠버에서 재회하다
6. 조상들과 문화가 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는 여선생
7. 일본어 왕초보 때 실수연발
8. 지나가던 일본 아줌마와 말이 안 통해 실랑이를
9. 방에만 틀어박혀 외출도 안 하는 일본인 남편
10. 동병상련의 친구 영국인 안디
11. 안디와 진한 키스를 나누는 와까바
12. 친절한 할아버지의 길안내
13. 길거리 장사 직접 단속 나온 파출소장
14. 일본 경찰, “왕초(파출소장)가 나올 땐 좀 치우는 시늉이라도…”
15. 너무 예뻐서 깎아줄 수 없어
16. 찐삐라 야쿠자를 어르고 달래어 쫓아버리는 고마운 아줌마
17. 오사카 쯔루하시에 산다는 밴드마스터 친구분 찾아가
18. 술 한잔하고 그러다 보니 그렇게 돼버렸어
19. 일본에서 돈 벌어 예금하면 대접도 달라져
20. 파친코장 앞에서의 길거리 장사
21. 지한파 고수와 다섯 점 접바둑으로 두다
22. 돈내기들을 안 하니 다툴 일이 없어
23. 요시다상, “일본 여자들은 엉큼하고 말만 많아요”
24. 외국인이라고 하니까 더욱 감동한 듯 연방 고맙다고 절을 해
25.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도망가는 도둑
26.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오직 같은 옷차림
27. 오키나와 공항에서 금지품목 압수당해
28.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 한복 입은 조총련계 여고생
29. 길거리 장사 중, “빠가야로 강곡구징!”
30. 어린(?) 친구들이 친구하자고 제의해와
31. 중국 여행 중 들은 “빠가야로!”
32. 일본 아저씨, “후루룩 쩝쩝 우동?”
33. 어린 친구가 공부는 제쳐놓고 일찍 장삿길로
34. 한국인들과 롯폰기의 나이트클럽으로
35. 상파울루에서 온 글래머 일본 미녀
36. 아카사카(赤坂) 고급 술집에서 대접받는 한국 소주
37. 철거하기엔 너무 아까운 목조 고옥(古屋)
38. 일본 시골에도 한국 드라마 팬이
39. 신주쿠 여자 점쟁이와의 충돌
40. 야쿠자가 점쟁이의 영업용 탁자를 밟아 부수다
41.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 도래계에 의해 훗카이도로 밀려나
42. 사진작가 미찌코와의 만남
43. 30대 싱글녀들 덕분에 식사 문제는 자연히 해결돼
44. 영문학을 전공한 후배에게 일본어를 쉽게 배워
45. 신주쿠(新宿)의 한국인 보따리 옷장수 아주머니
46. 신주쿠의 길거리 꽃장사 한국인 유학생
47. 꽃장사 유학생, 하루 순수익 540만 원 올리기도
48. 현해탄 페리호에서 만난 현대판 보부상 보따리 상인들
49. 법당 문도 닫고 사기꾼 찾아 일본까지 온 법사 부부
50. 고향 시골마을과 가등청정(加藤淸正)의 서생성(西生城)
51. 캄보디아에서 만난 일본인 여행객들
52. 일본 여행객들과 함께 한국 식당으로
53. 캄보디아에서의 비빔밥 찬가
맺음말
본문발췌
1989년에 세계여행을 시작하여 올해로 벌써 32년째에 접어든다. 지나고 보니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뒤늦게나마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글 작업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7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갔다.
여행기를 책으로 남겨보겠다고 생각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마음과 달리 주위 환경이 그렇게 되어주지를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여행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책을 내기로 한 것이다.
나의 여행기는 일반 여행이 아닌, 주로 무전여행을 주제로 한 이야기이다. 여느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그런 유형의 여행과는 다른 경우이다.
나도 여행 초반 몇 년 동안은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재산을 처분해 돌아다녔다. 그때는 그리 불편하거나 부족한 게 없었다. 그러나 경비가 다 떨어지게 되니 다음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여행을 포기하고 국내에 다시 정착해 살 요량이면 모를까, 나에겐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나?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생각해낸 게 무전여행이었다. 그런데 무전여행을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국내에서도 쉽게 할 수 없는 무전여행을, 그것도 세계 각국을 혼자 돌아다니며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p. 4
세계여행 떠나기 전 예능 계통(음악, 춤)에서 활동할 때만 해도 자유직업인으로서 편하고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즐기며 살았었는데 지금은 결혼도 포기하고 인생의 황금기에 지구촌을 내 집 안방인 양 떠돌며 지내왔으니, 이게 잘하는 짓인지 아니면 생각 없이 미련한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해보기도 한다. 좀 헷갈리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니 결코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p. 6
8시 30분, 가이드 아저씨가 오른쪽 숲 쪽을 바라보라고 하였다. 불빛 비추는 쪽을 바라보니 달빛 아래 높은 거목 조각 같은 것이 보였는데, 바로 기린이었다. 고요한 숲속에 머리를 높이 쳐들고 서 있는 모습이, 강한 전등불의 효과에다 만월의 달빛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였다. 다시 경탄들을 쏟아낸다.
“베리 뷰리풀.”
“오! 갓….”
“어떻게 저렇게 멋있을 수가.”
하고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사람까지, 그 아름다운 자태에 다들 넋을 잃었다. 나도 세상에, 대낮도 아닌 밤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가 있을 줄이야 하고 혼자 뇌까렸다. 저것은 동물이 아니라 바로 신선(神仙)의 모습이었다. 오늘 야간 관광을 따라 나서지 않았더라면 평생을 두고두고 후회할 뻔하였다. 이곳 아프리카를 떠나면 다시는 이런 환상적인 정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고요한 정글의 밤세계와 동물들이 펼치는 이런 자연의 오케스트라 연주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사라지는 기린에게 사람들은 다시 감사의 인사를 보내었다.
p. 52~53
대만에 네 번째 갔을 때쯤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유치장 경력이 꽤나 되었다. 몇 년 전 극단생활을 할 적에 종로에선가 길거리 전봇대에 공연 포스터를 붙이다가 경찰에게 걸려 바로 즉심에 넘어갔는데, 유치장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간이 법정에 나가 변호인도 없는 상태에서 경범죄로 벌금 2만 원인가 낸 적이 있었고, 국내 무전여행 하다가 강릉경찰서에서 하룻밤 신세 지고, 홍콩에서 장사하다가 역시 단속에 걸려 유치장에서 있다가 다음 날 침사추이의 재판정에까지 가서 피고인 신분으로 선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시먼띵(西門) 쪽에서 대만 현지 대학생들 너댓 명과 어울려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다가 합동 단속 나온 경찰들한테 걸려서 경찰서로 끌려가 3박 4일 일정(?)으로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곳 감옥에는 마약사범과 흉악범, 그리고 필리핀, 태국 등에서 온 밀입국자들도 있었다. 지저분한 유치장에서 그렇게 죄수들과 며칠 동안을 보내게 된다.
p. 79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거의 매일 소매치기 등을 당해 이곳에 온다고 하였다. 어제, 오늘만도 너댓 명 된다고 하였다. 일단 임시여권을 만들기로 한다. 같이 앉아서 서울에서의 예능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며칠을 대기해야 할지 모르니 500달러(2014년 기준 400만 원 가치)만 일단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일반인 같으면 적지 않은 돈이라 그렇게까지는 안 해주지만 특별히 그렇게 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왕 이곳에 왔으니 300달러를 더 빌려줄 테니 천천히 구경하고 가라고 하였다. 말씀은 고맙지만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라 내일이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였다.
p. 89
식사 후 한국대사관에 볼일이 있어 택시를 잡아탄다. 사우스 코리아라고 운전기사에게 이야길 하니 안다고 하였다. 다시 한 번 확인하니 걱정 말라고 하였다. 10여 분을 달려 한 건물 앞에 도착했는데 한국대사관 같으면 태극기 정도는 보여야 할 텐데 보이지를 않았다. 틀림없느냐고 하니까 틀림없다고 하였다. 별 의식 없이 큰 대문을 들어서는데 이집트 현지인이 아니라 그런지 제지를 하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여느 나라에 있는 한국대사관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담당자가 어떻게 왔느냐고 하였다.
“여기 한국 대사관 아닙니까?”
“여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네다.”
‘윽!’
그 한마디에 쇼크를 먹는다. 얼떨결에 실내 안쪽을 둘러보니까 한쪽에는 북한 국기인 인공기와 김일성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이럴 수가… 순간적으로 호흡이 멎는다.
“서울에서 오셨습네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예.”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
순간적으로 좀 머뭇거리니까
“동무, 긴장 푸시라요. 어떻게 왔는지 알아야 도와줄 것 아니겠슴매.”
p. 195
형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잘사는 최고의 복지국가에도 거지가 있다고 하였다. 내가 좀 이해가 안 간다고 하니까 설명하기를, 코펜하겐에는 약 20여 명의 거지들이 있는데, 그들끼리 거지협회란 걸 조직하였단다. 그 말에 내가 피식 웃으니, 그 사람들이 못 먹거나 옷을 못 사입어서가 아니라 단지 거지생활을 즐긴다는 것이었다. 잠은 길거리의 아무 데서나 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할머니 거지가 몸이 아파 누워 있으면 담당 간호사가 매일 나와 봐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거지 환자에게 “아무 걱정 말라, 자기가 매일 봐 줄 테니까….” 참 이런 나라도 있나 싶었다. 의료 혜택을 외국인들에게도 주다보니까, 독일 같은 부유한 나라에서도 부상을 입으면 일부러 온다고 하였다. 참으로 복지에 관한 한 지상낙원 같은 곳이었다.
p. 231
시부야에서 긴자(銀座)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한 빌딩 계단을 오를 때이다. 체구가 좀 작고 흰머리가 성성한 70대 초의 할머니가 허리가 구부정한 채 무거운 짐을 들고 힘들게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몇 걸음 옮기다가 쉬고, 또 몇 걸음 옮기다가 쉬고를 반복하였다. 숨이 가쁜지 허리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너무 힘들어 하셨다. 옆으로 젊은 남녀들이 많이 오르내렸지만 누구도 시선 한번 안 주었다. 나도 좀 도와주고 싶었지만 일본어를 잘 못할 때라 괜히 나서고 싶지 않았지만, 보기가 너무 애처로워
“할머니 짐 이리 주십시오. 제가 들어드릴게요.”
하고 더듬거리는 일본어로 말하였다.
“아, 다이죠부데쓰(아 괜찮습니다).”
폐를 끼치는 게 싫었는지 극구 사양하셨다.
그래도 내가 짐을 들고 계단 위까지 들어다주니까,
“아, 혼또니 아리가또 고자이마시다(아, 정말 고맙습니다)” 하며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연방 고맙다고 하셨다. 젊은 놈이 노인네에게 절을 받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저 일본사람 아닙니다. 한국사람입니다”라고 하니까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번에는 더욱 고개를 조아리시며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신다. 같은 일본의 젊은 사람들도 나몰라라 하는데 외국인인 내가 도와주다니 하는 그런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는 돌아서 가시는데 가다가 다시 또 돌아서며 90도로 두어 번 인사를 하시었다. 별 것 아니라 하지만 무거운 짐을 들고 힘들게 걸어가는 노인분을 젊은 사람들 그 누구도 신경을 안 써 준다는 게 보기에 뭐하였다. 일본 사람들 예의 있다고들 들었는데 경로사상에 있어서는 아닌 것 같았다. 우리 같은 젊은 세대들도 세월이 흐르면 다 저분처럼 될 터인데… 쯧쯧!
p. 282~284
교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오사카의 쯔루하시에 머물고 있을 때이다. 숙소에서 나와 오사카 시내를 걸어가고 있었다.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 좀 한가한 길을 걸어가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게 보였다. 그것은 하얀 저고리와 검정색 치마의 한복 차림 여성이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였다. 맞은편 쪽에서 걸어오는 여성은 10대의 호리호리한 몸매의 젊은 여성이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말을 한번 걸어본다.
“저기… 한국사람…?”
“…조선사람인데….”
“그럼 혹시… 조총련계?”
“예.”
“아이구! 그럼 동포잖아요. 이거 반갑네요.”
“예. 반갑습니다.”
“대학생?”
“고등학생인데요… 이곳에 사는 분입니까?”
“아니. 일본에 여행 왔어요.”
p. 291
( /본문중에서)
여행기를 책으로 남겨보겠다고 생각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마음과 달리 주위 환경이 그렇게 되어주지를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여행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책을 내기로 한 것이다.
나의 여행기는 일반 여행이 아닌, 주로 무전여행을 주제로 한 이야기이다. 여느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그런 유형의 여행과는 다른 경우이다.
나도 여행 초반 몇 년 동안은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재산을 처분해 돌아다녔다. 그때는 그리 불편하거나 부족한 게 없었다. 그러나 경비가 다 떨어지게 되니 다음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여행을 포기하고 국내에 다시 정착해 살 요량이면 모를까, 나에겐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나?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생각해낸 게 무전여행이었다. 그런데 무전여행을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국내에서도 쉽게 할 수 없는 무전여행을, 그것도 세계 각국을 혼자 돌아다니며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p. 4
세계여행 떠나기 전 예능 계통(음악, 춤)에서 활동할 때만 해도 자유직업인으로서 편하고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즐기며 살았었는데 지금은 결혼도 포기하고 인생의 황금기에 지구촌을 내 집 안방인 양 떠돌며 지내왔으니, 이게 잘하는 짓인지 아니면 생각 없이 미련한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해보기도 한다. 좀 헷갈리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니 결코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p. 6
8시 30분, 가이드 아저씨가 오른쪽 숲 쪽을 바라보라고 하였다. 불빛 비추는 쪽을 바라보니 달빛 아래 높은 거목 조각 같은 것이 보였는데, 바로 기린이었다. 고요한 숲속에 머리를 높이 쳐들고 서 있는 모습이, 강한 전등불의 효과에다 만월의 달빛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였다. 다시 경탄들을 쏟아낸다.
“베리 뷰리풀.”
“오! 갓….”
“어떻게 저렇게 멋있을 수가.”
하고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사람까지, 그 아름다운 자태에 다들 넋을 잃었다. 나도 세상에, 대낮도 아닌 밤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가 있을 줄이야 하고 혼자 뇌까렸다. 저것은 동물이 아니라 바로 신선(神仙)의 모습이었다. 오늘 야간 관광을 따라 나서지 않았더라면 평생을 두고두고 후회할 뻔하였다. 이곳 아프리카를 떠나면 다시는 이런 환상적인 정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고요한 정글의 밤세계와 동물들이 펼치는 이런 자연의 오케스트라 연주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사라지는 기린에게 사람들은 다시 감사의 인사를 보내었다.
p. 52~53
대만에 네 번째 갔을 때쯤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유치장 경력이 꽤나 되었다. 몇 년 전 극단생활을 할 적에 종로에선가 길거리 전봇대에 공연 포스터를 붙이다가 경찰에게 걸려 바로 즉심에 넘어갔는데, 유치장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간이 법정에 나가 변호인도 없는 상태에서 경범죄로 벌금 2만 원인가 낸 적이 있었고, 국내 무전여행 하다가 강릉경찰서에서 하룻밤 신세 지고, 홍콩에서 장사하다가 역시 단속에 걸려 유치장에서 있다가 다음 날 침사추이의 재판정에까지 가서 피고인 신분으로 선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시먼띵(西門) 쪽에서 대만 현지 대학생들 너댓 명과 어울려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다가 합동 단속 나온 경찰들한테 걸려서 경찰서로 끌려가 3박 4일 일정(?)으로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곳 감옥에는 마약사범과 흉악범, 그리고 필리핀, 태국 등에서 온 밀입국자들도 있었다. 지저분한 유치장에서 그렇게 죄수들과 며칠 동안을 보내게 된다.
p. 79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거의 매일 소매치기 등을 당해 이곳에 온다고 하였다. 어제, 오늘만도 너댓 명 된다고 하였다. 일단 임시여권을 만들기로 한다. 같이 앉아서 서울에서의 예능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며칠을 대기해야 할지 모르니 500달러(2014년 기준 400만 원 가치)만 일단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일반인 같으면 적지 않은 돈이라 그렇게까지는 안 해주지만 특별히 그렇게 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왕 이곳에 왔으니 300달러를 더 빌려줄 테니 천천히 구경하고 가라고 하였다. 말씀은 고맙지만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라 내일이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였다.
p. 89
식사 후 한국대사관에 볼일이 있어 택시를 잡아탄다. 사우스 코리아라고 운전기사에게 이야길 하니 안다고 하였다. 다시 한 번 확인하니 걱정 말라고 하였다. 10여 분을 달려 한 건물 앞에 도착했는데 한국대사관 같으면 태극기 정도는 보여야 할 텐데 보이지를 않았다. 틀림없느냐고 하니까 틀림없다고 하였다. 별 의식 없이 큰 대문을 들어서는데 이집트 현지인이 아니라 그런지 제지를 하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여느 나라에 있는 한국대사관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담당자가 어떻게 왔느냐고 하였다.
“여기 한국 대사관 아닙니까?”
“여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네다.”
‘윽!’
그 한마디에 쇼크를 먹는다. 얼떨결에 실내 안쪽을 둘러보니까 한쪽에는 북한 국기인 인공기와 김일성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이럴 수가… 순간적으로 호흡이 멎는다.
“서울에서 오셨습네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예.”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
순간적으로 좀 머뭇거리니까
“동무, 긴장 푸시라요. 어떻게 왔는지 알아야 도와줄 것 아니겠슴매.”
p. 195
형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잘사는 최고의 복지국가에도 거지가 있다고 하였다. 내가 좀 이해가 안 간다고 하니까 설명하기를, 코펜하겐에는 약 20여 명의 거지들이 있는데, 그들끼리 거지협회란 걸 조직하였단다. 그 말에 내가 피식 웃으니, 그 사람들이 못 먹거나 옷을 못 사입어서가 아니라 단지 거지생활을 즐긴다는 것이었다. 잠은 길거리의 아무 데서나 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할머니 거지가 몸이 아파 누워 있으면 담당 간호사가 매일 나와 봐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거지 환자에게 “아무 걱정 말라, 자기가 매일 봐 줄 테니까….” 참 이런 나라도 있나 싶었다. 의료 혜택을 외국인들에게도 주다보니까, 독일 같은 부유한 나라에서도 부상을 입으면 일부러 온다고 하였다. 참으로 복지에 관한 한 지상낙원 같은 곳이었다.
p. 231
시부야에서 긴자(銀座)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한 빌딩 계단을 오를 때이다. 체구가 좀 작고 흰머리가 성성한 70대 초의 할머니가 허리가 구부정한 채 무거운 짐을 들고 힘들게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몇 걸음 옮기다가 쉬고, 또 몇 걸음 옮기다가 쉬고를 반복하였다. 숨이 가쁜지 허리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너무 힘들어 하셨다. 옆으로 젊은 남녀들이 많이 오르내렸지만 누구도 시선 한번 안 주었다. 나도 좀 도와주고 싶었지만 일본어를 잘 못할 때라 괜히 나서고 싶지 않았지만, 보기가 너무 애처로워
“할머니 짐 이리 주십시오. 제가 들어드릴게요.”
하고 더듬거리는 일본어로 말하였다.
“아, 다이죠부데쓰(아 괜찮습니다).”
폐를 끼치는 게 싫었는지 극구 사양하셨다.
그래도 내가 짐을 들고 계단 위까지 들어다주니까,
“아, 혼또니 아리가또 고자이마시다(아, 정말 고맙습니다)” 하며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연방 고맙다고 하셨다. 젊은 놈이 노인네에게 절을 받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저 일본사람 아닙니다. 한국사람입니다”라고 하니까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번에는 더욱 고개를 조아리시며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신다. 같은 일본의 젊은 사람들도 나몰라라 하는데 외국인인 내가 도와주다니 하는 그런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는 돌아서 가시는데 가다가 다시 또 돌아서며 90도로 두어 번 인사를 하시었다. 별 것 아니라 하지만 무거운 짐을 들고 힘들게 걸어가는 노인분을 젊은 사람들 그 누구도 신경을 안 써 준다는 게 보기에 뭐하였다. 일본 사람들 예의 있다고들 들었는데 경로사상에 있어서는 아닌 것 같았다. 우리 같은 젊은 세대들도 세월이 흐르면 다 저분처럼 될 터인데… 쯧쯧!
p. 282~284
교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오사카의 쯔루하시에 머물고 있을 때이다. 숙소에서 나와 오사카 시내를 걸어가고 있었다.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 좀 한가한 길을 걸어가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게 보였다. 그것은 하얀 저고리와 검정색 치마의 한복 차림 여성이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였다. 맞은편 쪽에서 걸어오는 여성은 10대의 호리호리한 몸매의 젊은 여성이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말을 한번 걸어본다.
“저기… 한국사람…?”
“…조선사람인데….”
“그럼 혹시… 조총련계?”
“예.”
“아이구! 그럼 동포잖아요. 이거 반갑네요.”
“예. 반갑습니다.”
“대학생?”
“고등학생인데요… 이곳에 사는 분입니까?”
“아니. 일본에 여행 왔어요.”
p. 291
( /본문중에서)
저자소개
1954년생으로 국악(연주, 무용)무대와 연극무대에서 활동했으며 KBS, MBC에서 다수의 TV,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다. 영화 안무(按舞) 제작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예천청단놀음 안무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했다. YMCA, YWCA, 기독교 사회복지관, 카톨릭문화관, 그리고 전국 각지의 문화원에서 강사 활동을 했다.
1989년부터 2021년까지 120여 차례에 걸쳐 아시아, 아프리카, 남태평양, 중동, 중남미, 북미, 서유럽, 동유럽 등에서 약 60개국을 여행했다. 해외에서 길거리 장사와 길거리 연주로 여행 경비를 벌었다. 그 경험을 살려 한때는 무역업을 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 등에 여행기와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1989년부터 2021년까지 120여 차례에 걸쳐 아시아, 아프리카, 남태평양, 중동, 중남미, 북미, 서유럽, 동유럽 등에서 약 60개국을 여행했다. 해외에서 길거리 장사와 길거리 연주로 여행 경비를 벌었다. 그 경험을 살려 한때는 무역업을 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 등에 여행기와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서평
코로나 종식을 앞두고 꿈틀거리는 여행 본능
돈이 없어 떠나지 못한다면 이 남자를 보라!
현지에서 길거리 장사와 버스킹으로 돈을 모아
세계 곳곳을 누빈 여행작가 이해성의 ‘펀펀한’ 무전여행기
한국인의 자유로운 해외여행은 88올림픽 직후인 1989년에 들어서야 가능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특수목적이 아닌 관광목적의 출국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 관광목적으로 출국하는 국민의 수는 해마다 늘어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에는 무려 2,900만여 명의 한국인이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해외여행이 불가능했던 30여 년 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이 책의 저자 이해성은 해외여행 자유화 원년인 1989년부터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그 여행기를 각종 일간지에 기고해온, 말하자면 ‘국내 1세대’ 여행작가이다. 젊은 시절에는 국악, 무용, 연극 등 예술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안정된 수입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가에 홀린 듯 가진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출국길에 오른다. 이에 대해 저자 스스로는 타고난 방랑벽 때문이라고 한다. 돌아다니지 않으면 병에 걸리는 체질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처음 몇 년간은 출국 전 처분한 재산을 여행 밑천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 돈은 금세 동났다.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더 필요했고, 급기야 낯선 외국의 길거리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기 시작한다. 길거리 연주(버스킹)도 병행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여행을 계속하며 수많은 경험을 하고 수많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
이제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게 된 저자는 말한다. 독자들이 자기를 따라하지 않길 바란다고. 그 고생을 하며 떠난 무전여행은 너무도 힘들었다고. 하지만 여행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코로나19의 현 시국에, 적어도 이 책은 독자에게 ‘대리여행’의 만족감을 선사해줄 것이다.
돈이 없어 떠나지 못한다면 이 남자를 보라!
현지에서 길거리 장사와 버스킹으로 돈을 모아
세계 곳곳을 누빈 여행작가 이해성의 ‘펀펀한’ 무전여행기
한국인의 자유로운 해외여행은 88올림픽 직후인 1989년에 들어서야 가능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특수목적이 아닌 관광목적의 출국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 관광목적으로 출국하는 국민의 수는 해마다 늘어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에는 무려 2,900만여 명의 한국인이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해외여행이 불가능했던 30여 년 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이 책의 저자 이해성은 해외여행 자유화 원년인 1989년부터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그 여행기를 각종 일간지에 기고해온, 말하자면 ‘국내 1세대’ 여행작가이다. 젊은 시절에는 국악, 무용, 연극 등 예술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안정된 수입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가에 홀린 듯 가진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출국길에 오른다. 이에 대해 저자 스스로는 타고난 방랑벽 때문이라고 한다. 돌아다니지 않으면 병에 걸리는 체질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처음 몇 년간은 출국 전 처분한 재산을 여행 밑천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 돈은 금세 동났다.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더 필요했고, 급기야 낯선 외국의 길거리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기 시작한다. 길거리 연주(버스킹)도 병행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여행을 계속하며 수많은 경험을 하고 수많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
이제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게 된 저자는 말한다. 독자들이 자기를 따라하지 않길 바란다고. 그 고생을 하며 떠난 무전여행은 너무도 힘들었다고. 하지만 여행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코로나19의 현 시국에, 적어도 이 책은 독자에게 ‘대리여행’의 만족감을 선사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