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아무도 모를 것이다 :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총서명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1}
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30120
가격
₩ 17,000
ISBN
9791191842432
페이지
428 p.
판형
128 X 195 mm
커버
Book
책 소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며 한국 독자뿐 아니라 전 세계 독자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정보라 작가의 환상문학 초기 걸작선. 정보라만의 독특하고 매혹적인 환상이 펼쳐지는 9편의 초기 발표작과 1편의 미발표작을 엄선하여 담았다. ‘정도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10년 넘게 소설을 써온 이 작가는 언제나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 혹은 존재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에 이끌린 듯하다.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넘나드는 정보라의 작품세계는 한 번에 톺아보기엔 그 스펙트럼이 폭넓고 깊숙하다. 퍼플레인의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시리즈는 ‘정도경’이라는 작가를 미처 만나지 못한 채 ‘정보라’를 만난 독자들을 위해 그의 작품세계를 집성해 다시 소개한다. 시리즈의 첫 단편집인 [아무도 모를 것이다]는 수십 편의 초기 단편 작품 가운데 정보라의 환상세계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들만을 담았다.
목차
나무
머리카락
가면
금
물
산
비 오는 날
휘파람
Nessun sapra
완전한 행복
작가의 말
머리카락
가면
금
물
산
비 오는 날
휘파람
Nessun sapra
완전한 행복
작가의 말
본문발췌
P.30
그 순간 검은 나무는 그의 눈앞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 자주색, 노란색, 붉은색, 푸른색, 진보라색, 그리고 그가 이름도 알지 못 하고 존재한다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색깔들로 불타오르며 형 형색색의 빛으로 주위의 대기를 채웠다
── (나무)
P.55
태풍이 지나간 여름의 어느 날 하늘에서 씨앗의 비가 내렸다. 씨앗은 바람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왔지만 도시의 땅은 모두 콘크리트와 시멘트와 보도블록으로 덮여 뿌리를 내릴 곳이 없었다. 그래서 씨앗은 열린 창문 사이로, 건물 벽 속으로, 도로의 아스팔트 속으로, 보도블록 사이로 파고들어 그곳에서 싹을 틔웠다. 씨앗이 터져 싹이 난 자리에서는 머리카락이 자라 나왔다.
── (머리카락)
P.83
시작은 소리였다. 그것은 밤중에 천장에서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위층에서 빗자루질을 하는 것 같았다. 슥슥슥. 가끔은 긁기도 했다. 끽끽끽. 드물게는 발걸음 비슷한 소리도 들렸다. 삐걱삐걱. 쿵쿵쿵.
── (가면)
P.138
흉터는 짙은 갈색으로 가늘고 뚜렷했다. 하얀 피부 위에 길게 이어진 자국을 본 순간 남자는 흉터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어쩐지 여자의 피부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다. 그때 여자가, 여전히 화면을 내려다보며, 손목에 금이 간 오른손을 무심하게 움직이며 말했다.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가게 될 거예요.”
── (금)
P.194
그가 느낀 것은 일종의 황홀경이었다. 여자의 손가락에서 배어 나온 물기는 그의 혀를 통과하여 그의 뇌에 직접 침투했다. 그는 3차원의 공간에 고체로 존재하는 인간의 존재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세계를 보았다. 그러한 생명체의 존재를 느꼈다.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생명체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온몸으로 감각하고 이해했다…….
……그리고 그는 전화기가 진동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 (물)
P.219
백 년에 한 번 산은 거대한 안개 속에 잠겼다. 그 안개 속에서 두 거인이 춤추듯이 칼을 휘둘렀다. 산 아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한때 모두들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이제는 잊혀버린 이야기다
── (산)
P.261
나는 그녀의 왼쪽 신발 속에 산다.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물방울이 땅을 때리는 소리는 말발굽 소리와 비슷하다. 오래전의 말발굽 소리.
나는 그녀를 기다린다.
── (비 오는 날)
P.312
그리고 지금은 하늘을 가로질러 어딘지 모를 땅에 내던져졌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휘파람으로 대화하고 나뭇잎으로 치료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 (휘파람)
P.383
Nessun sapra. 물론이다. 아무도 알지 못해야만 했다. 자신이 사랑한 간호사도 자신과 똑같은 혐의를 쓰고 체포되어,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겪고 어쩌면 자신과 같은 병원에 환자로 수감되게 하지 않으려면, 아무도 몰라야만 했다. 사랑만이, 오직 그의 사랑만이 그녀를 그의 것으로 만들었다.
── (Nessun sapra)
P.387
혼돈의 시기가 끝나가던 어느 겨울에 그의 집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눈 덮인 벌판을 가로질러 찾아온 손님은 온몸이 꽁꽁 얼어붙은 채로 생존을 위한 하룻밤의 온기를 청했다. 그는 문을 열어 손님을 맞아들였다. 식탁에 앉히고 빵과 소금을 대접했으며 날이 저물자 난로의 불빛이 미치는 따뜻한 자리를 양보했다. 남자가 잠든 후에 그는 오랫동안 그 앞에 서서 잠든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남자를 알아보았으나 남자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 (완전한 행복)
그 순간 검은 나무는 그의 눈앞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 자주색, 노란색, 붉은색, 푸른색, 진보라색, 그리고 그가 이름도 알지 못 하고 존재한다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색깔들로 불타오르며 형 형색색의 빛으로 주위의 대기를 채웠다
── (나무)
P.55
태풍이 지나간 여름의 어느 날 하늘에서 씨앗의 비가 내렸다. 씨앗은 바람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왔지만 도시의 땅은 모두 콘크리트와 시멘트와 보도블록으로 덮여 뿌리를 내릴 곳이 없었다. 그래서 씨앗은 열린 창문 사이로, 건물 벽 속으로, 도로의 아스팔트 속으로, 보도블록 사이로 파고들어 그곳에서 싹을 틔웠다. 씨앗이 터져 싹이 난 자리에서는 머리카락이 자라 나왔다.
── (머리카락)
P.83
시작은 소리였다. 그것은 밤중에 천장에서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위층에서 빗자루질을 하는 것 같았다. 슥슥슥. 가끔은 긁기도 했다. 끽끽끽. 드물게는 발걸음 비슷한 소리도 들렸다. 삐걱삐걱. 쿵쿵쿵.
── (가면)
P.138
흉터는 짙은 갈색으로 가늘고 뚜렷했다. 하얀 피부 위에 길게 이어진 자국을 본 순간 남자는 흉터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어쩐지 여자의 피부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다. 그때 여자가, 여전히 화면을 내려다보며, 손목에 금이 간 오른손을 무심하게 움직이며 말했다.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가게 될 거예요.”
── (금)
P.194
그가 느낀 것은 일종의 황홀경이었다. 여자의 손가락에서 배어 나온 물기는 그의 혀를 통과하여 그의 뇌에 직접 침투했다. 그는 3차원의 공간에 고체로 존재하는 인간의 존재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세계를 보았다. 그러한 생명체의 존재를 느꼈다.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생명체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온몸으로 감각하고 이해했다…….
……그리고 그는 전화기가 진동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 (물)
P.219
백 년에 한 번 산은 거대한 안개 속에 잠겼다. 그 안개 속에서 두 거인이 춤추듯이 칼을 휘둘렀다. 산 아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한때 모두들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이제는 잊혀버린 이야기다
── (산)
P.261
나는 그녀의 왼쪽 신발 속에 산다.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물방울이 땅을 때리는 소리는 말발굽 소리와 비슷하다. 오래전의 말발굽 소리.
나는 그녀를 기다린다.
── (비 오는 날)
P.312
그리고 지금은 하늘을 가로질러 어딘지 모를 땅에 내던져졌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휘파람으로 대화하고 나뭇잎으로 치료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 (휘파람)
P.383
Nessun sapra. 물론이다. 아무도 알지 못해야만 했다. 자신이 사랑한 간호사도 자신과 똑같은 혐의를 쓰고 체포되어,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겪고 어쩌면 자신과 같은 병원에 환자로 수감되게 하지 않으려면, 아무도 몰라야만 했다. 사랑만이, 오직 그의 사랑만이 그녀를 그의 것으로 만들었다.
── (Nessun sapra)
P.387
혼돈의 시기가 끝나가던 어느 겨울에 그의 집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눈 덮인 벌판을 가로질러 찾아온 손님은 온몸이 꽁꽁 얼어붙은 채로 생존을 위한 하룻밤의 온기를 청했다. 그는 문을 열어 손님을 맞아들였다. 식탁에 앉히고 빵과 소금을 대접했으며 날이 저물자 난로의 불빛이 미치는 따뜻한 자리를 양보했다. 남자가 잠든 후에 그는 오랫동안 그 앞에 서서 잠든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남자를 알아보았으나 남자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 (완전한 행복)
저자소개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여 한국에선 아무도 모르는 작가들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과 사랑에 빠졌다. 어둡고 마술적인 이야기, 불의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맞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사랑한다. 지은 책으로는 장편소설 [문이 열렸다] [죽은 자의 꿈] [붉은 칼], 단편소설집 [저주토끼] [여자들의 왕] 등이 있다.
1998년 연세문화상에 응모하여 〈머리〉가 당선되었고, 2008년 제3회 디지털문학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에 〈호狐〉가 당선되었으며, 2014년 〈씨앗〉으로 제1회 SF어워드 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2022년 [저주토끼]로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예일대학교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과 폴란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러시아어와 러시아문학, SF에 대해 강의하며, [거장과 마르가리타] [창백한 말] 등 여러 문학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1998년 연세문화상에 응모하여 〈머리〉가 당선되었고, 2008년 제3회 디지털문학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에 〈호狐〉가 당선되었으며, 2014년 〈씨앗〉으로 제1회 SF어워드 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2022년 [저주토끼]로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예일대학교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과 폴란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러시아어와 러시아문학, SF에 대해 강의하며, [거장과 마르가리타] [창백한 말] 등 여러 문학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서평
2022 부커상 최종후보, [저주토끼]를 탄생시킨
정보라의 환상세계, 그 뿌리를 들여다보는 초기 걸작선
경계를 휘저으며 가지를 뻗어 나가는 마술적인 이야기의 향연
“불량률이 매우 낮은 타일 작업장처럼 좋은 이야기들이 구워져 나온다.
광택이 있고 단단하고 아직 식지 않은 소설들이 차곡차곡.”
─ 정세랑, 소설가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며 한국 독자뿐 아니라 전 세계 독자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정보라 작가의 환상문학 초기 걸작선. 정보라만의 독특하고 매혹적인 환상이 펼쳐지는 9편의 초기 발표작과 1편의 미발표작을 엄선하여 담았다.
[저주토끼]로 갑작스레 수면 위로 부상한 듯 보이지만, 정보라는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장르소설 독자들에겐 오랜 애정의 대상이었다. ‘정도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10년 넘게 소설을 써온 이 작가는 언제나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 혹은 존재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에 이끌린 듯하다.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넘나드는 정보라의 작품세계는 한 번에 톺아보기엔 그 스펙트럼이 폭넓고 깊숙하다.
퍼플레인의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시리즈는 ‘정도경’이라는 작가를 미처 만나지 못한 채 ‘정보라’를 만난 독자들을 위해 그의 작품세계를 집성해 다시 소개한다. 시리즈의 첫 단편집인 [아무도 모를 것이다]는 수십 편의 초기 단편 작품 가운데 정보라의 환상세계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들만을 담았다.
정보라의 환상세계, 그 뿌리를 들여다보는 초기 걸작선
경계를 휘저으며 가지를 뻗어 나가는 마술적인 이야기의 향연
“불량률이 매우 낮은 타일 작업장처럼 좋은 이야기들이 구워져 나온다.
광택이 있고 단단하고 아직 식지 않은 소설들이 차곡차곡.”
─ 정세랑, 소설가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며 한국 독자뿐 아니라 전 세계 독자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정보라 작가의 환상문학 초기 걸작선. 정보라만의 독특하고 매혹적인 환상이 펼쳐지는 9편의 초기 발표작과 1편의 미발표작을 엄선하여 담았다.
[저주토끼]로 갑작스레 수면 위로 부상한 듯 보이지만, 정보라는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장르소설 독자들에겐 오랜 애정의 대상이었다. ‘정도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10년 넘게 소설을 써온 이 작가는 언제나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 혹은 존재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에 이끌린 듯하다.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넘나드는 정보라의 작품세계는 한 번에 톺아보기엔 그 스펙트럼이 폭넓고 깊숙하다.
퍼플레인의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시리즈는 ‘정도경’이라는 작가를 미처 만나지 못한 채 ‘정보라’를 만난 독자들을 위해 그의 작품세계를 집성해 다시 소개한다. 시리즈의 첫 단편집인 [아무도 모를 것이다]는 수십 편의 초기 단편 작품 가운데 정보라의 환상세계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들만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