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정보
Detail Information
내가 늙어버린 여름 : 늙음에 대한 시적이고 우아한,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
원서명
L'Eté où je suis devenue vieille
저자
번역자
원저자
출판사
출판일
20210913
가격
₩ 14,800
ISBN
9788934966968
페이지
224 p.
판형
128 X 188 mm
커버
Book
책 소개
프랑스에서 태어나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저자는 어릴 적 향유했던 거대 문학세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하며 이중 문화 문학과 여성 문학, 페미니즘 학자로 미국 유수 대학의 교수로 활동했고 특히 MIT에서 그녀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해 매년 문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에게 상을 수여할 정도로 인정받는 학자였다. 그러나 어느 여름 ‘늙음’이라는 거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엄청난 신체적, 심리적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일생 고독이나 외로움, 추억을 회상하는 일 따위는 없는 꼿꼿한 삶을 살았던 그녀는 이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과거 딸로, 아내로, 운동가로, 정치 참모로, 잘나가던 학자로 살던 여러 가지 나를 만나 그때의 내가 앓았던 결핍마다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목차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감사의 말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감사의 말
본문발췌
P.37
나는 나의 과거로부터 멀어졌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 삶을 지워갔다. 어차피 모든 건 나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 치는 편을, 미리 도망치고, 단념하고, 거부하고, 잊어버리는 편을 선호했다. 그런데 이제껏 악착같이 확보해놓은 이 휑한 공백이 내 마음에 깃든 슬픔으로부터 전혀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남자였어도 이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까?
_ ‘2’
P.76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판단 따위의 노예가 되지는 않겠다고 다짐해왔다. 젊었을 땐 사회가 강요하는 명령 같은 건 거부하겠노라고 맹세했다. 그런데 이제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지난 몇 해 전부터인가 나는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일종의 자기 검열에 해당한다. 정말이지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크게 실망하는 중이다.
_ ‘7’
P.103
나는 늙은이가 되어버린 그 여름에 불현듯 맛본 그 향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거의 아무도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며, 대개는 관심조차 없다. 나는 늙는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기도 하다고, 다음 세대들에게는 폐기 처분해야 마땅할 것으로 보이는 나의 젊은 시절을 한껏 이상화하며 되새김질하는, 그런 것이기도 하다고 속으로 삭였다.
_ ‘9’
P.125
늙은이가 되어버린 이후로, 나는 벌써 오래전에 비교적 평온하게 돌아가신 내 부모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젊은 시절을 온통 두 분에게 반항하는 데 바쳤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그 전엔 알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된다.
_ ‘12’
P.148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을 때, 나는 내가 늘 되고 싶었고, 늘 그렇게 머물러 있고 싶어 했던 젊은 여성,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축소되기를, 단 하나의 의미로 정의되기를 거부하는 여성을 저버렸다. 나는 이곳이 나의 뿌리이며, 나 자신이 이 허약하기 그지없는 뿌리에 속하는 존재이며, 따라서 나의 노년과 죽음을 그 뿌리에 의지하기로 결심했음을 깨달았다. 물론 마지막 순간까지 이방인으로 남으리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지만 말이다.
_ ‘14’
P.153
우리의 우정이 처음으로 사막을 가로지르는 것 같은 시련에 봉착하게 된 건 친구들이 아기를 낳고, 그로 인해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 찾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이렇게 되자 친구들은 육아라고 하는 새로운 일, 새로운 발견, 새로운 책임으로 전전긍긍하게 되었는데, 그것만은 내가 함께 나눌 수 없는 경험이었다. 결국 나는 10년 정도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예전의 친구들을 완전히 되찾았고, 우리가 함께 공유한 삶의 끈, 잠시 느슨해졌지만 결코 돌이킬 수 없이 끊어져버리지는 않았던 그 끈을 다시금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대략 10년쯤 전부터 우정의 두 번째 사막을 가로지르는 중인데, 이름하여 ‘할머니 정체성’에서 기인하는 사막이다.
_ ‘15’
P.187
나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한 행동, 내가 저지른 실수, 내가 한 노력, 나의 투쟁, 내가 거둔 승리, 내가 느낀 슬픔, 내가 받아들인 모험, 내 생각, 내가 쏟아낸 말, 이 모든 것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환생을 믿지 않는다. 천당도 지옥도 믿지 않는다. 지난 70년 세월 동안 나는 그럭저럭 살 생각만 해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 여정의 끝을 상상하려니, 그냥 상상이 안 된다. 모든 것의 뒤에 공백만 이어질 거라니. 그러면서도 약간의 호기심이 가미된 불안한 마음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어떻게 올까?
_ ‘18’
P.205
우리는 자정이 되도록 여전히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나는 두 개의 나로 분리되었다. 하나의 내가 말하고 웃고 와인을 마시는 동안 나머지 하나의 내가 우리 두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아직 서른 살도 안 되었을 때, 우리는 인생에서 그토록 많은 일이 일어나며, 특히 어느 날 문득 우리가 그날 저녁의 우리 모습으로-그러니까 고만고만한 여사님이 되어-파리의 웬 식당에 반려견까지 데리고 나와 앉아있게 되리라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_ ‘20’
나는 나의 과거로부터 멀어졌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 삶을 지워갔다. 어차피 모든 건 나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 치는 편을, 미리 도망치고, 단념하고, 거부하고, 잊어버리는 편을 선호했다. 그런데 이제껏 악착같이 확보해놓은 이 휑한 공백이 내 마음에 깃든 슬픔으로부터 전혀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남자였어도 이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까?
_ ‘2’
P.76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판단 따위의 노예가 되지는 않겠다고 다짐해왔다. 젊었을 땐 사회가 강요하는 명령 같은 건 거부하겠노라고 맹세했다. 그런데 이제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지난 몇 해 전부터인가 나는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일종의 자기 검열에 해당한다. 정말이지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크게 실망하는 중이다.
_ ‘7’
P.103
나는 늙은이가 되어버린 그 여름에 불현듯 맛본 그 향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거의 아무도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며, 대개는 관심조차 없다. 나는 늙는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기도 하다고, 다음 세대들에게는 폐기 처분해야 마땅할 것으로 보이는 나의 젊은 시절을 한껏 이상화하며 되새김질하는, 그런 것이기도 하다고 속으로 삭였다.
_ ‘9’
P.125
늙은이가 되어버린 이후로, 나는 벌써 오래전에 비교적 평온하게 돌아가신 내 부모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젊은 시절을 온통 두 분에게 반항하는 데 바쳤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그 전엔 알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된다.
_ ‘12’
P.148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을 때, 나는 내가 늘 되고 싶었고, 늘 그렇게 머물러 있고 싶어 했던 젊은 여성,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축소되기를, 단 하나의 의미로 정의되기를 거부하는 여성을 저버렸다. 나는 이곳이 나의 뿌리이며, 나 자신이 이 허약하기 그지없는 뿌리에 속하는 존재이며, 따라서 나의 노년과 죽음을 그 뿌리에 의지하기로 결심했음을 깨달았다. 물론 마지막 순간까지 이방인으로 남으리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지만 말이다.
_ ‘14’
P.153
우리의 우정이 처음으로 사막을 가로지르는 것 같은 시련에 봉착하게 된 건 친구들이 아기를 낳고, 그로 인해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 찾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이렇게 되자 친구들은 육아라고 하는 새로운 일, 새로운 발견, 새로운 책임으로 전전긍긍하게 되었는데, 그것만은 내가 함께 나눌 수 없는 경험이었다. 결국 나는 10년 정도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예전의 친구들을 완전히 되찾았고, 우리가 함께 공유한 삶의 끈, 잠시 느슨해졌지만 결코 돌이킬 수 없이 끊어져버리지는 않았던 그 끈을 다시금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대략 10년쯤 전부터 우정의 두 번째 사막을 가로지르는 중인데, 이름하여 ‘할머니 정체성’에서 기인하는 사막이다.
_ ‘15’
P.187
나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한 행동, 내가 저지른 실수, 내가 한 노력, 나의 투쟁, 내가 거둔 승리, 내가 느낀 슬픔, 내가 받아들인 모험, 내 생각, 내가 쏟아낸 말, 이 모든 것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환생을 믿지 않는다. 천당도 지옥도 믿지 않는다. 지난 70년 세월 동안 나는 그럭저럭 살 생각만 해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 여정의 끝을 상상하려니, 그냥 상상이 안 된다. 모든 것의 뒤에 공백만 이어질 거라니. 그러면서도 약간의 호기심이 가미된 불안한 마음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어떻게 올까?
_ ‘18’
P.205
우리는 자정이 되도록 여전히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나는 두 개의 나로 분리되었다. 하나의 내가 말하고 웃고 와인을 마시는 동안 나머지 하나의 내가 우리 두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아직 서른 살도 안 되었을 때, 우리는 인생에서 그토록 많은 일이 일어나며, 특히 어느 날 문득 우리가 그날 저녁의 우리 모습으로-그러니까 고만고만한 여사님이 되어-파리의 웬 식당에 반려견까지 데리고 나와 앉아있게 되리라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_ ‘20’
저자소개
작가이자 학자.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님의 이혼 후 미국인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두 개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성장했다. 1960~1970년대 미국의 반문화, 페미니즘 열풍에 온몸으로 화답하면서 세계를 여행했고 브라운대학, 웰즐리대학, 하버드대학, MIT에서 프랑스 문학과 여성 문학, 이중 언어 및 이중 문화 문학을 가르쳤다. 브라운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MIT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2010년에 퇴직했다. 특히 외국어 계열 학과장을 역임한 공로로 MIT는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상’을 제정하여 글쓰기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젊은 인재들을 격려하고 있다.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선거 참모로 활동했으며 페미니즘, 이중 언어, 다문화, 정체성에 관한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역자소개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제3대학에서 불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기자와 파리 통신원을 지냈다. 옮긴 책으로 기욤 뮈소의 [인생은 소설이다]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아가씨와 밤] [브루클린의 소녀] [파리의 아파트] 등이 있으며, [생명경제로의 전환] [위기 그리고 그 이후] [미래의 물결] [철학자의 식탁] [혼자가 아니야] [진정한 우정] [꾸뻬 씨의 핑크색 안경] [페스트와 콜레라] [상뻬의 어린 시절] [탐욕의 시대] [미래 중독자] [물의 미래] [빈곤한 만찬] [식물의 역사와 신화] [빨간 수첩의 여자]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 [잠수종과 나비] [공간의 생산] [그리스인 이야기]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프랑스어로 옮겨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서평
“늙음에 대한 깊고 명료한 접근”
브라운대학, 하버드대학, MIT 교수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의 에세이 국내 첫 출간
** 주한프랑스문화원 PAP SEJONG 선정 도서 **
“여행자, 페미니스트, 교사, 학자, 이중 문화 지식인으로 살아온 그녀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과정을 맞닥뜨리고 그로 인해 야기된 몸과 정신의 변화에 맞선 이야기가 흥미롭다.” _MIT NEWS
하버드대학, 웰즐리대학, MIT를 호령하던
시크 만렙 교수님, ‘늙음’을 마주하다!
저자는 두 가지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프랑스인 특유의 시크함에 집안의 고질병인 우울증까지 물려받아 현실보다 문학에서 행복을 찾았고, 나와 타인을 위한 위로 또한 선망의 대상이던 작가들에게 구했다. 덕분에 프랑스 문학과 여성 문학, 이중 언어, 이중 문화 문학 전문가로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평생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특히 MIT는 그녀의 공로를 인정해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평생 외로움과 초라함, 고립감 따위는 자신의 인생에 없다며 호언장담했지만 어느 여름 ‘늙음’이라는 지독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부러질 듯 꼿꼿한 삶을 살았던 자신을 비로소 놓아주며 ‘어떻게 늙을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나답게 존재할 것인가’를 고민해보기로 마음먹는다.
“몸이 단언하듯 명백한 사실을 들이밀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노화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늘 신체적, 심리적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해왔다고 자부했으며,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준 독립심과 자유로운 정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새로운 상황과 대면해야 했다. 이 현실과 맞닥뜨리기 위해서는 다른 수단을 찾아내야 할 터였다.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다른 지표가 필요했다.” _21~22쪽
지하철역, 안과, 카페에서 무방비상태로 마주하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진짜 ‘늙음’ 이야기
작가는 총 스물두 편의 자기 고백을 통해 결핍과 우울, 후회로 점철된 회고를 들려준다. 무조건적인 반항으로 부모님에게 상처를 주었던 유년기, 맹목적으로 자유를 좇으며 일탈을 일삼았던 청년기 그리고 ‘잘나가는’ 여성 학자로 승승장구하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선거 참모로 활동한 최근까지, ‘두려움’ 없는 인생을 살며 미처 돌보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라떼는 말이야’가 가끔 튀어나오긴 하지만, 이마저도 귀여운 프렌치 시크로 여겨진다. 어떻게 늙을 것인가라는 고민을 할 새도 없다. ‘늙음’이란 예고 없이, 지하철역에서 안과에서 카페에서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여유롭고 느긋하게, 인자하게 늙는 방법 따위는 없다. 대신 사회와 관계로부터 배제와 차별이 곧 도래할 것임을, 쥐고 있는 과거의 망령은 그만 놓아주고 늙음이라는 변화에 백기 투항하며 그 옛날 문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아하고 지적이게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어쩔 줄 모르는 늙다리 반동주의자 같은 태도를 취하는 내 모습에 적잖이 심기가 불편했다. 이래 봬도 젊은 시절엔 내로라하는 반항아로서 선배들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난하면서 도발했던 나인데.”
(중략)
“새로이 전개되어가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나에게는 ‘탈물질화’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현상이다. 말 자체도 벌써 냉랭하면서 어쩐지 병원 냄새를 풍긴다. 뭔가 아주 사소한 동작 하나를 하려 해도, 보이지 않는, 탈물질화한 권력의 가학적인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형편이니, 나는 나의 무지 앞에서 한없이 위축된다. 점점 더 쪼그라드는 세상에 갇혀버린다.” _61~66쪽
늙음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세상으로 나선
한 여성 지식인의 도발적인 질문
이 책에 ‘이렇게 늙어라’ 같은 슬기로운 조언 따위는 담겨있지 않다. 편의를 위해 목차를 두었지만 원서에는 목차조차 없다. 이는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의 삶이 어떤 문장으로 명명될 수 없음을 암묵적으로 의미하며, 문학 학자로서 자신의 글이 독자에게 어떻게 가 닿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이 탐구하고 심취했던 문인들의 삶과 문장을 인용해 장마다 묘한 크로스오버를 이루어내며 독자에게 다양한 해석을 요구한다. 또한 결코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고백을 통해 그저 세상을 조금 더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배제와 고립, 내가 쌓아온 많은 것들이 부정당하는 ‘늙음’이 문득 찾아왔을 때 과연 당신은 어떻게 ‘노화’와 일상을 직조해나갈 것이냐고 묻는다. 지나치도록 솔직하고, 때로는 우아한 저자의 고백을 통해 ‘늙음’과 ‘죽음’에 대한 막연함을 조금은 걷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고대한다.
“우리는, 아직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비록 주위에서 사례가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하는 것 같긴 하지만, 죽음이 아직은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너나없이 모두 고통과 도를 넘는 쇠락은 거부하는 입장이지만, 십중팔구, 바라는 대로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리라는 걸 잘 안다. 그렇지만 내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우리 앞엔 아직도 순수한 웃음,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 아무도 쓰러뜨릴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연대의식, 늘 함께한다는 암묵적인 동조 의식이 굳건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_160~161쪽
브라운대학, 하버드대학, MIT 교수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의 에세이 국내 첫 출간
** 주한프랑스문화원 PAP SEJONG 선정 도서 **
“여행자, 페미니스트, 교사, 학자, 이중 문화 지식인으로 살아온 그녀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과정을 맞닥뜨리고 그로 인해 야기된 몸과 정신의 변화에 맞선 이야기가 흥미롭다.” _MIT NEWS
하버드대학, 웰즐리대학, MIT를 호령하던
시크 만렙 교수님, ‘늙음’을 마주하다!
저자는 두 가지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프랑스인 특유의 시크함에 집안의 고질병인 우울증까지 물려받아 현실보다 문학에서 행복을 찾았고, 나와 타인을 위한 위로 또한 선망의 대상이던 작가들에게 구했다. 덕분에 프랑스 문학과 여성 문학, 이중 언어, 이중 문화 문학 전문가로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평생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특히 MIT는 그녀의 공로를 인정해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평생 외로움과 초라함, 고립감 따위는 자신의 인생에 없다며 호언장담했지만 어느 여름 ‘늙음’이라는 지독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부러질 듯 꼿꼿한 삶을 살았던 자신을 비로소 놓아주며 ‘어떻게 늙을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나답게 존재할 것인가’를 고민해보기로 마음먹는다.
“몸이 단언하듯 명백한 사실을 들이밀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노화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늘 신체적, 심리적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해왔다고 자부했으며,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준 독립심과 자유로운 정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새로운 상황과 대면해야 했다. 이 현실과 맞닥뜨리기 위해서는 다른 수단을 찾아내야 할 터였다.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다른 지표가 필요했다.” _21~22쪽
지하철역, 안과, 카페에서 무방비상태로 마주하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진짜 ‘늙음’ 이야기
작가는 총 스물두 편의 자기 고백을 통해 결핍과 우울, 후회로 점철된 회고를 들려준다. 무조건적인 반항으로 부모님에게 상처를 주었던 유년기, 맹목적으로 자유를 좇으며 일탈을 일삼았던 청년기 그리고 ‘잘나가는’ 여성 학자로 승승장구하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선거 참모로 활동한 최근까지, ‘두려움’ 없는 인생을 살며 미처 돌보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라떼는 말이야’가 가끔 튀어나오긴 하지만, 이마저도 귀여운 프렌치 시크로 여겨진다. 어떻게 늙을 것인가라는 고민을 할 새도 없다. ‘늙음’이란 예고 없이, 지하철역에서 안과에서 카페에서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여유롭고 느긋하게, 인자하게 늙는 방법 따위는 없다. 대신 사회와 관계로부터 배제와 차별이 곧 도래할 것임을, 쥐고 있는 과거의 망령은 그만 놓아주고 늙음이라는 변화에 백기 투항하며 그 옛날 문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아하고 지적이게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어쩔 줄 모르는 늙다리 반동주의자 같은 태도를 취하는 내 모습에 적잖이 심기가 불편했다. 이래 봬도 젊은 시절엔 내로라하는 반항아로서 선배들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난하면서 도발했던 나인데.”
(중략)
“새로이 전개되어가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나에게는 ‘탈물질화’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현상이다. 말 자체도 벌써 냉랭하면서 어쩐지 병원 냄새를 풍긴다. 뭔가 아주 사소한 동작 하나를 하려 해도, 보이지 않는, 탈물질화한 권력의 가학적인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형편이니, 나는 나의 무지 앞에서 한없이 위축된다. 점점 더 쪼그라드는 세상에 갇혀버린다.” _61~66쪽
늙음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세상으로 나선
한 여성 지식인의 도발적인 질문
이 책에 ‘이렇게 늙어라’ 같은 슬기로운 조언 따위는 담겨있지 않다. 편의를 위해 목차를 두었지만 원서에는 목차조차 없다. 이는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의 삶이 어떤 문장으로 명명될 수 없음을 암묵적으로 의미하며, 문학 학자로서 자신의 글이 독자에게 어떻게 가 닿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이 탐구하고 심취했던 문인들의 삶과 문장을 인용해 장마다 묘한 크로스오버를 이루어내며 독자에게 다양한 해석을 요구한다. 또한 결코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고백을 통해 그저 세상을 조금 더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배제와 고립, 내가 쌓아온 많은 것들이 부정당하는 ‘늙음’이 문득 찾아왔을 때 과연 당신은 어떻게 ‘노화’와 일상을 직조해나갈 것이냐고 묻는다. 지나치도록 솔직하고, 때로는 우아한 저자의 고백을 통해 ‘늙음’과 ‘죽음’에 대한 막연함을 조금은 걷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고대한다.
“우리는, 아직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비록 주위에서 사례가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하는 것 같긴 하지만, 죽음이 아직은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너나없이 모두 고통과 도를 넘는 쇠락은 거부하는 입장이지만, 십중팔구, 바라는 대로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리라는 걸 잘 안다. 그렇지만 내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우리 앞엔 아직도 순수한 웃음,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 아무도 쓰러뜨릴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연대의식, 늘 함께한다는 암묵적인 동조 의식이 굳건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_160~161쪽